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59)
아빠는 강하다(3)
변명을 하자면 홍석영은 이십 년 뒤에서 온 제자가 사실은 아들이라는 사실에 들떠 있는 상태였다.
아마 미래의 홍석영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겼을 우희재가 정작 다급해지자 ‘아빠’를 찾을 정도로 그에게 의지했다는 사실 때문일 거다.
우희재가 의지한 사람이 지금의 홍석영은 아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날 선 어린애가 그런 멋진 어른이 되었다면.
다시는 가족을 만들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눈알이 빠질 것처럼 휘둥그레 눈을 뜬 아이가 그런 속 깊은 어른으로 자란 걸 보면 자신이 나쁜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서.
그래.
들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이록아, 응? 아저씨 아들 하지 않을래?”
“뭐라는 거야!”
그리고 열 살 우이록은 울컥 짜증을 내며 손을 저었다.
찰싹.
“윽.”
“오.”
우이록은 홍석영의 뺨에 안착한 자신의 손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며 등 뒤로 손을 숨겼다.
홍석영은 어린애가 때렸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화끈한 볼을 매만지다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그 모든 슬픔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다시 가족을 가지게 되는 것이…
……좋아서.
“왜 웃는 거야! 나 아저씨 아들 안 할 거야!”
“하하, 왜? 아저씨 아들이 되면 좋을 텐데?”
“뭐가 좋아!”
“글쎄…. 아저씨는 힘도 세고.”
“우리 형도 세거든?!”
“돈도 많고.”
“우리 형도…!”
“형이랑 같이 아저씨 아들 되자.”
“…뭐?”
“그래. 둘 다 아저씨 아들 되면 되겠다. 둘째 아들과 막내아들. 이거 완전 아들 부잣집인데.”
우희재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 죽었던 홍석영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를 찾아낸 우울한 인간이 아니라, 소중한 가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히어로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할 말을 잃고 멀뚱히 눈만 깜빡이는 우이록을 안은 채 홍석영은 웃고 또 웃었다.
* * *
우이록은 펜션까지 자기가 걷는 건 무리라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홍석영에게 안기는 걸 완강히 거부했다.
애 취급이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세운이도 저 나이 때는 자긴 아기가 아니라며 잔뜩 짜증 내곤 했다. 홍석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우이록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등을 내밀었다. 우이록은 조금 망설이다가 홍석영에게 업혔다.
“그럼 이제… 아.”
“응?”
홍석영은 땅에 떨어뜨린 자신의 창을 보았다. 홍석영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본 우이록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거 아저씨 창이잖아요.”
“음.”
“안 들고 가도 돼요?”
“들고 가는 게 좋겠… 지?”
“왜 나한테 물어요?!”
“으으음.”
홍석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차피 이걸 들고 갈 만한 사람은 없으니까 여기 잠깐 세워 두자.”
“세워? 으악!”
홍석영은 허리를 굽혀 창을 주웠다. 순간 앞으로 쏠린 우이록이 비명을 지르며 목에 힘을 주었다.
“아이고, 아저씨 숨 막힌다. 힘이 세네, 이록이.”
“그렇게 막 움직이지 말라고요!”
“하하. 그래, 그래. 미안하다.”
홍석영은 날이 아래로 가게 창을 들었다. 등에 매달린 우이록의 시야를 잠시 고민하다가 창을 바닥에 꽂는 척 각도를 조절했다. 마력을 세밀하게 조정해서 무언가 꿰뚫어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했다.
홍석영은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우이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연구소에 있던 아이는 묘하게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이런 단순한 눈속임에도 쉽게 속아 넘어갔다. 반대로 연구소에만 있어서 순진할 수도 있고.
“머리 만지지 마요!”
금방 꽥꽥 고함을 치는 우이록을 달래며 홍석영은 창이 셈 블룸의 시체에 잘 꽂혀 있는지 확인했다. 이렇게 하면 셈 블룸이 다시 눈을 뜨는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뭐, 확실하게 죽인 느낌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 셈 블룸은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목숨이 위험하면 죽은 척하는 몬스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우이록이 쓰러진 나쁜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홍석영은 서둘러 움직였다.
“근데요, 아저씨.”
아이가 걱정되어 천천히 산책하듯 달렸던 게 화근이었을까. 가만히 잘 있던 우이록이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사람이요.”
“응?”
“죽은 거예요?”
홍석영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아무리 그래도 홍석영은 한 번 아버지였던 적이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아이의 정서 발달에 좋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필사적으로 자리를 벗어났지.
“아저씨가 힘이 세다고 했잖아.”
문제는 우이록이 자신의 말을 순순히 믿을까인데.
은근히 순진한 아이니 믿지 않을까?
“기절시켰어.”
“…기절이요?”
“걔가 마법사거든. 그래서 아저씨도 힘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어. 아마 며칠은 못 일어날 거다.”
“아하…. 근데 그래도 저렇게 두면 도망갈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그렇지’라고 대답하지 말고요!”
“펜션에 가면 다선의 헌터 아저씨들한테 체포해 달라고 말하려고 했지.”
우이록은 몸을 뒤척였다.
“그 아저씨들 경찰이에요?”
“응? 아니.”
“그럼 왜 그 아저씨들이 체포해요?”
“…….”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하고, 예리하다. 홍석영은 잠깐 추억에 빠지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 아저씨들은 경찰이 아니긴 하지만 비슷한 일을 하고 있거든.”
아무리 들떠 있다고는 해도 홍석영은 아이에게 다선이 국제이능협회의 특수활동부라고 말하지 않을 정신머리는 있었다. 협회 소속의 몇몇 헌터는 국제 공조를 통한 수사권을 지녔고, 불법 각성자 처리 및 각성자 범죄 방지를 위해 용의자를 현장에서 사살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이미선과 다선의 주요 헌터 몇 명도 마찬가지다.
홍석영도 마찬가지였다. 협회 소속 헌터는 아니었지만.
“마법사나 헌터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각성자가 아닌 경찰들은 체포하기 힘들 수 있잖아?”
“그래서 헌터 아저씨들이 체포하는 거예요?”
“그래. 그 아저씨들이 체포해서 수사하는 거란다.”
홍석영의 말에 우이록은 납득했는지 다시 조용해졌다.
멀리서 펜션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김채민의 마법이 활성화되어 있다. 펜션을 둘러싼 장미 넝쿨 담장을 본 우이록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김채민의 마법에 함께 끌려갔으니 펜션 외관은 보지 못했을 거다.
“저건 김 선생님 마법이야.”
“…마법이라고요?”
“아까 그 나쁜 사람이 몰래 들어오려고 해서 말이야. 김 선생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거든.”
“……그래도 들어왔잖아요.”
우이록의 목소리가 뾰족하다. 잘못하면 한국에서도 몇 안 되는 대마법사의 실력을 의심할 판이라 홍석영은 허둥거리며 설명을 보충했다.
“그건 나쁜 사람이 못된 꾀를 써서 그렇지. 아까 그놈, 그 사람 붙잡고 있던 장미 못 봤니? 그게 김 선생 마법이야. 도망 못 가게 꽉 잡고 있었어.”
“…….”
“그래서 아저씨가 이록이를 구할 수 있었던 거고.”
“흐음….”
우이록은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홍석영은 그런 우이록을 못 본 척하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혼자 있었다면 김채민의 마법을 가르고 그냥 들어갔을 텐데, 아직 각성도 못 한 아이가 있으니 그런 무식한 방법을 사용할 순 없다.
그리고 우이록을 데리고 가기 전 확인할 일도 있었다.
-잡았어요?!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김채민은 통화음이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잡았네.”
홍석영은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내 창을 세워 뒀어. 잘 보일 거네. 다선 헌터들한테 데려가라고 말하게.”
-네, 알겠어요.
김채민은 눈치가 빠르다. 게다가 몇 차례 홍석영과 방주를 쫓은 적이 있다. 홍석영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바로 알아들었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김채민은 홍석영이 묻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이록이는요? 우 선생님이 일어나자마자 이록이부터 찾았는데.
“지금 나한테 업혀서 내 전화를 훔쳐 듣고 있지.”
우이록이 홍석영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신발도 신지 않은 발이어서 아프진 않았지만 성격만큼은 굉장하다. 홍석영은 그걸 감탄해야 할지, 아니면 걱정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납치당한 사실에 충격을 크게 받지 않은 건 다행이긴 한데….
-아, 다행이다! 우 선생님, 이록이 괜찮대요! 교장 쌤이랑 같이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무어라 소리가 들린다. 음질이 썩 좋지 않아 제대로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우희재의 목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홍석영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자신이 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포션으로 응급 처치는 했지만 걱정되던 건 어쩔 수 없었다.
“우 선생과 한 선생은?”
-두 사람 다 괜찮아요. 혜은이가 많이 도움이 됐어요.
“그래? 혜은이가 고생이 많았네.”
-포션 덕분에 상처가 많이 아물어서요.
“그래도 고생한 건 고생한 거지. 어쨌든, 이제 마법은 풀어도 되네.”
-아, 네! 바로 풀게요. 들어오세요.
“그래도 다 풀지는 말고. 혹시 모르니까 다른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해 놔.”
홍석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알렉스 호프가 아직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놈의 저의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처음에 강태우를 습격했던 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쉬워서 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셈 블룸을 죽이라더니 구해 가고, 구해 가더니 죽이라고 속삭여 댄다.
게다가 어찌 되었든 셈 블룸이 펜션을 습격할 것이라 경고를 해 주기도 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알렉스 호프의 경고가 없었더라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제아무리 자신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있지 않은 곳에서마저 최강일 수는 없었다.
반대로 손 닿는 곳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것이다.
장미 담벼락은 천천히 넝쿨을 풀었다. 꼬이고 꼬였던 넝쿨은 시간을 뒤로 감은 것처럼 모습을 바꾸었다. 사람 팔뚝만 하던 굵기가 가느다랗게 변했다. 짙은 갈색을 띠던 색도 연한 초록색이 되었다.
화려하게 피어 있던 장미도 마찬가지다. 짙은 붉은색 장미 꽃잎이 오므라들더니 연한 꽃봉오리가 되었다. 꽃봉오리와 넝쿨은 점점 크기가 줄어들더니 결국 작은 새싹이 되었다.
새싹은 흙 속으로 사라졌다.
“…와.”
“신기하지?”
김채민의 마법은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만개한 장미를 보면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넋을 놓고 마법을 구경하던 우이록은 귓가를 붉히며 고개를 맹렬히 돌렸다. 그래 봤자 붉어진 귀를 숨기지 못해서 홍석영은 작게 웃었다.
“나 내릴래요.”
그 웃음소리가 또 심기를 거슬렀는지 우이록은 홍석영의 등에서 내려왔다. 어차피 펜션에 도착한 뒤라 홍석영도 억지로 우이록을 붙잡지 않고 두었다. 우이록은 미묘한 표정으로 홍석영을 돌아보더니 펜션을 향해 달려갔다.
“…….”
홍석영은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저만치 달려가던 우이록은 발을 멈추더니 뒤를 돌았다.
홍석영도 걸음을 멈췄다.
“뭐야! 왜 멈춰요?!”
우이록은 양손을 허리에 올려놓더니 고함을 질렀다.
“빨리 뛰어요!”
“…….”
“그렇게 걸어서 어느 세월에 갈래요?”
홍석영은 다시 걸었다. 얼른 오라는 우이록의 말과는 반대로 느릿한 속도였다.
그 모습을 잔뜩 답답해하면서도 우이록은 먼저 가지 않았다. 홍석영이 곁에 오자 빨리 걸으라며 소매를 잡고 끌어당기긴 했지만.
엉망이 된 정원을 지나 펜션에 들어가기 전.
우이록은 홍석영에게도 겨우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구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형을 부르며 펜션 안으로 냉큼 들어갔다.
“허.”
홍석영은 헛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맹랑한 뒷모습을 보았다.
왜 자신이 우희재를 입양했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