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6)
신입생(2)
방주는 사이비 집단이다.
아니, 종교는 아니다. 방주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주제에 오히려 종교를 싫어한다. 놈들은 인류를 더 나은 길로 이끌 수 있는 건 자신들밖에 없다고 믿는 유사 과학 동호회에 가깝다.
동호회치고는 수상하게 돈이 많았고, 수상하게 행동력이 좋았을 뿐.
역사도 꽤 오래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홍석영이 말했던 것처럼, 아이들을 납치하는 바람에 꼬리를 밟혔다.
그동안 물밑에서 조심스럽게 활동하던 방주가 왜 갑자기 각성자의 아이를 납치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마력 시계를 뒤져도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는 게 없었다.
어쨌든 그 덕에 수사가 진행되었고, 홍석영을 위시한 헌터들은 내가 있었던 연구소를 알게 되었다. 헌터들은 연구소를 박살 냈고….
납치되었던 아이들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럼 된 거지. 해피 엔딩이다.
“글쎄요….”
“이제 와서 모른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뇨. 그건 아닌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명확히 설명해야 할 부분이 있어서요.”
반응을 보아하니 모르는 게 분명하니까.
나중에 한 소리 듣는 것보단 미리 말해 주는 게 낫겠지.
하지만….
내가 구출되기 겨우 일 년 전인데 이렇게까지 정보가 없단 말인가?
아무리 내부자와 연락이 끊겼다고 해도 말이지. 정보를 김 군과 정체 모를 원래의 내부자에게 의존했다고는 해도…. 그사이에 상황이 바뀔 만한 일이 있었나?
아니면, 모른 척하고 있는 건가?
“설마 납치한 아이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뭐?”
그렇다면 대단한 연기력이다.
홍석영은 능청은 잘 떨지만 사람을 속이는 건 다른 분야다. 이 아저씨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큼이나 그런 재능은 없었다.
들끓던 마력이 잠잠해졌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방주에 대해서 얼마나 파악하고 계십니까?”
방주는 점조직이다. 연구소나 자금 확보를 위한 기업들은 업무에 필요한 기관이 아니면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조직도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이도 극소수다.
납치 건은 아마 연구소의 단독 소행일 것이다. 연구소장이 뭐라 떠들어 댔던 기억이 있다. 뭐라고 했더라. 워낙 옛날 기억이라….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든, 새 발의 피입니다. 방주는….”
“그건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냐.”
홍석영은 딱 잘라 말했다.
음.
예상 밖의 반응인데.
“자네가 김 군을 통해서 준 정보는 고맙게 생각하네. 하지만 그 정보들로 우리가 무얼 할지는 우리 문제야. 방주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이네.”
여기서부터는 월권이라는 말이군.
이해했다. 지금은 여기까지가 내 신뢰도이다.
지금 내게 원하는 것은 조직에 대한 정보이다. 그 정보가 기존에 알고 있는 정보이든, 새로운 정보이든 그걸로 뭘 할지 정하는 것은 홍석영의 관할이고.
좋아. 그럼 우회하자.
괜히 경계심을 살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자네 편의를 많이 봐준 건 알지?”
적당히 하라는 말이다.
룬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좀 더 경계를 풀어도… 아직 알려 준 룬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하긴, 헌터는 가불과 후불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법이지. 헌터 등쳐 먹는 업자들이 제일 많이 말하고 다니는 단어 아닌가.
“저도 많이 바라지는 않고요.”
나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으며 말했다.
“일단 아이들을 구해 주고요.”
“그건 조건으로 안 달아도 돼. 당연히 할 거니까.”
“…저기, 많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
“몇 명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납치된 아이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 방금 말했잖습니까.”
홍석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방주가 관리하는 기관 중에는 보육원도 여럿 있습니다.”
“…….”
“몇 개 됩니다. 제가 아는 것만 해도. 모르는 건 더 많을 거고요.”
홍석영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빠르게 알아들었다. 잠잠해졌던 마력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참 다행이지.
“다음으로.”
“뭔가.”
“저도 데려가십시오.”
“…….”
이게 본론이다.
홍석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넬 데려가라고?”
“네.”
우리 생각이란 걸 한번 해 보자.
이렇게 말하면 인간적으로 막돼먹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 시기에는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것보다는 더 급한 일이 많았다. 길드 단합이나 마력석 공급 안정이나…. 던전 브레이크 같은 거.
워낙에 던전 브레이크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절이다. 정부에서는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게 노력으로 되는 일이었다면 많은 게 더 빨리 해결됐겠지.
던전 등급에 상관없이 던전 브레이크는 재난이다. 사상자와 실종자는 넘쳐 났다.
도로변에서 대놓고 아이들을 납치한다고 해도 한 달만 지나면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잊히고 만다.
일반 시민의 아이가 납치되어 봤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냉정한 시절이다.
하지만 이 말은.
그런 상황에서도 나라가 움직일 만큼 이 납치 사건이 중요하다는 뜻이 된다.
연이은 아동 실종으로 민심이 들끓어서일까?
가능성이 없진 않지.
하지만 더 그럴싸한 대답은….
납치된 아이들 중에 누군가 높으신 분의 자녀가 있던 게 아닐까. 안타깝게도 본부장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납치되었던 아이들의 인적 사항은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았다. 솔직히 짐작 가는 게 없지도 않다.
“왜?”
“아이들만 구출하고 말 겁니까? 연구소를 안 둘러보고요? 거긴 방주 내에서도 손꼽히는 연구시설입니다. 조금만 버벅거리면 자료를 자기들 손으로 날려 버릴 텐데요.”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시간을 낭비할 순 없지 않습니까. 길 안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네가 직접 갈 필요 있어? 설명해 주면 되지.”
“제가 없으면 문을 못 열어서요.”
단순히 내부자, 혹은 탈주자라는 신분을 계속 달고 있으면 안 된다. 미래를 생각하면 양심 있고 아주 협력적인 내부 고발자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 불우한 과거로 인한 희생자 설정도 추가되면 좋고.
방주는 그 제물이 될 예정이다.
누가 보아도 나쁜 놈이 있으면 이래서 편하다. 모든 걸 그놈 탓으로 돌려 버릴 수 있으니까.
“자네 도망쳤잖아. 무슨 문일지는 모르겠지만 못 여는 건 마찬가지지 않나?”
“제가 그걸 대비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그럼 알려 주면 되지.”
“저 아니면 못 쓰는 방법이라서요.”
아직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한데….
여기선 감정적으로 나가야지. 이 사람한테는 그게 더 잘 먹히겠지.
“그리고….”
우수에 찬 얼굴로 슬그머니 홍석영의 시선을 피했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거짓말은 아니다. 진짜. 거짓말이 아니다.
어린 우희재를 찾아봐야 한다. 걔가 이곳에 있는지.
없으면 없는 대로 문제고, 있어도 있는 대로 문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모른 척하고 있을 순 없다.
“걔가… 무사한지.”
아,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
홍석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마력은 잠잠하다. 마력만큼 솔직한 게 또 없지.
이미 반쯤 넘어왔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쐐기를 박을 만한 이야기가….
“좋네.”
홍석영은 내가 더 말하기도 전에 말했다.
생각보다 금방 답을 내줬다.
“안내가 있는 편이 확실하긴 하지. 좋네. 자네도 데려가지.”
설득이 더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하다못해 날 자극해서 속내를 끌어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홍석영은 깔끔하게 수긍했다.
뭐,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저씨보다 훨씬 젊기도 하니 그럴 수도 있지. 어차피 내가 무슨 수를 쓰든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다.
그 정도 자신감은 있어 줘야지.
“하지만 좀 시간이 걸릴 거야.”
“시간? 얼마나?”
“글쎄….”
홍석영은 턱을 매만졌다.
“나 혼자 움직이는 것보단 몇 명 더 부르는 게 나아 보이니. 며칠만 기다리면 쓸 만한 놈들을 모을 수 있을 거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날 뭐로 보고?”
홍석영은 코웃음 쳤다.
“난 아이들이 걸린 일에는 장난치지 않아.”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급한 일도 아니니 괜찮다. 아이들이 거기서 고문받거나 하지도 않으니까 엄마 아빠를 며칠 더 못 보는 것쯤이야 참을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 * *
그리고 계속 수업만 했다.
박서현은 여전히 음침했고, 최진우는 처음에 살갑게 질문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내 눈치를 살살 보았다.
…뭐가 잘못된 거지.
칭찬은 계속 해 주고 있는데.
“쌤!”
나의 구원자는 이승연이었다. 이승연만큼은 내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며 친한 척해 왔다. 덕분에 이름을 모르던 다른 시범고 학생들과도 인사할 수 있었다.
이승연의 뒤를 따라온 학생 하나가 눈이 마주치자 쭈뼛쭈뼛 인사했다.
“여기서 뭐 해요? 서현이랑 진우는요?”
나는 내 뒤쪽을 가리켰다.
어린 마법사 두 명은 다 그린 룬 종이를 바닥에 놓고 집중하고 있었다.
“와, 아직도 그리고 있어요? 점심시간인데? 밥은요? 먹고 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파라솔 아래에 굴러다니는 도시락 껍데기를 가리켰다.
쟤네들이 자기 쉬는 시간을 줄여 가며 연습하겠다는데 내가 말려서 뭐 하나. 원래 선생님이란 존재는 자습하는 학생들을 칭찬해 줘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다.
단순히 룬을 따라 그리는 게 뭐가 어렵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마력펜의 보정 기능도 없는 지금, 마법사들은 룬을 그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리는 것 이상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내내 마력을 쓰다 보니 피로도도 크고.
쉬엄쉬엄해도 괜찮다니까 듣지 않고….
이게… 칭찬의 힘인가?
처음에야 나도 칭찬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입에 붙는다.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 알았으면 관리청 사람들한테도 해 줄 걸 그랬다.
시말서 반려로 괴롭히지 말고….
아니, 괴롭힌 게 아니지. 나는 상사로서 부하의 잘못을 정당하게 지적했을 뿐이다. 그게 싫었으면 처음부터 똑바로 했어야지. 아니면 나보다 더 출세하든가.
말이 딴 길로 새는군.
어쨌든, 생각보다 두 사람이 잘 따라오고 있다. 슬슬 다음 룬을 가르쳐도 될 것 같다.
“마법사들이라 그런가…. 난 저렇게 한 자리에 오래 못 앉아 있겠던데.”
“네가 검사라고 했던가?”
“네! 근데 우 쌤은 왜 검 두고 다녀요?”
“너희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선 검 들고 다니지 말라더라.”
“에이…. 그 검 가까이서 한번 보고 싶었는데.”
그러고 보니 어린 우희재가 이곳에 있을 수 있다면, 유지은의 검도 하나 더 있을 수 있을까?
이만한 성능의 검이… 하나 더?
검이 내 주력 무기는 아니지만 혹하긴 하는데.
끼이이익!!
이승연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다지고 있을 때.
자동차 한 대가 흙먼지를 폴폴 풍기며 공터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샛노란 스포츠카는 흙길을 달려오느라 아랫부분이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소리를 들었는지 컨테이너 안에서 홍석영이 나왔다.
달칵.
“어, 왔어?”
스포츠카 운전석에는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차에서 내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도로가 이렇게 엉망일 거라곤 얘기 안 했잖아요! 그럼 다른 차 끌고 왔을 텐데!”
수년 뒤, 주제도 모르고 S급 몬스터를 잡아 보겠다며 설치던 B급 헌터를 구하려다 죽은 대마법사 김채민이 헌터 양성 시범 고등학교에 나타났다.
…단언하건대, 원래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