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61)
불청객(2)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홍석영이 움직였다.
피부가 저릿한 살기가 폭발적으로 터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홍석영은 알렉스 호프의 목을 쥐고 들어 올렸다. 호프는 홍석영의 손을 붙잡고 다리를 버둥거렸다.
“켁, 자, 잠깐!”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그야, 날아서?”
“장난칠 기분 아냐.”
“나도, 장, 난, 아냐!!”
털썩.
홍석영은 알렉스 호프를 놓았다. 호프는 벌겋게 손자국이 남은 목을 매만지며 우는 소리를 내었다.
“내가 경고해 줬잖아!”
“놈을 구해 간 것도 네놈이었지.”
“그러게 누가 죽이지 말래? 던전에서 죽였으면 다 됐다고! 그럼 나도 귀찮아질 일도 없고 좋잖아!”
알렉스 호프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 우리 과거의 일은 잊고 미래를 보자고. 인간들은 그런 거 좋아하더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이런 거. 그치?”
“그건 인간들끼리 잘 살아 보자는 의미지.”
“그럼 딱 좋네! 나도 인간이니까!”
호프는 박수를 치며 소리 내어 웃었다. 홍석영의 살기는 여전한데 담도 좋다.
보다 못한 내가 홍석영을 불렀다.
“저기.”
“응?”
살기가 사라졌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홍석영은 알렉스 호프를 보기 전처럼 헤실거리며 웃었다.
나는 원래 하려던 말을 잊고 내 기분을 그대로 표현했다.
“그만하면 안 되겠습니까?”
“뭘 말인가?”
“그거… 그거요.”
“그거라니?”
홍석영은 능글거리며 웃었다. 다 알고서 하는 짓이다. 나는 홍석영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렇게 웃지 말라고요!”
“아니, 우리 아들이….”
“닥쳐요!!!”
역시 눈치챘잖아!
“부끄러워하지 말고.”
“누가 부끄러워한다는 거야!!”
그래도 홍석영의 웃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진짜 짜증 나….
“큼. 큼큼.”
그 와중에 알렉스 호프는 헛기침을 하다가 양 손을 크게 흔들었다.
“저기요? 내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 우리 부대장이 내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차리기 전에 들어가 봐야 하거든.”
호프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니까 우리 바로 본론에 들어가지 않을래?”
* * *
“…내가 말한 본론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닥쳐.”
“근데 넌 언제 저 남자의 아….”
“닥치라고.”
“포럼에서는 제자라고 하지 않았어?”
“닥치라니까. 좋게 대해 줄 때.”
“에이. 원래 무슨 협약에 따라 인질에 대한 처우는 인도적이어야 한다고 들었어. 제리 어쩌고 협약. 알아?”
“제네바 협약. 그건 전쟁 포로에 대한 거지, 범죄자에 대한 내용은 아냐.”
“맞는 내용인데, 뭘!”
알렉스 호프는 급하게 불려 온 김채민에 의해 결박되었다. 김채민은 벌써부터 놈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포럼 내내 놈이 어떻게 성질을 긁어 댔는지 뒤늦게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채민은 자존심이 상했다.
“도대체 나 몰래 어떻게 들어온 거야? 아무리 그래도 침입자 경계는 하고 있었는데. 못 알아차릴 리가 없는데….”
호프가 아무렇지 않게 펜션 내부에서 발견된 것이 대마법사의 자존심을 건드렸나 보다. 마음 같아서는 해부라도 해서 알아내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그거야 쉽지.”
그러나 호프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웃었다. 목에는 보랏빛으로 변한 멍을 달고, 대마법사에 의해 꽁꽁 묶여 있는데도.
“세미는 가여운 혼종이고, 나는 굳이 따지면 순정인걸. 내 특화는 건너뛰기. 마력 사이를 파고드는 건 나한테만큼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야!”
“아, 그래.”
“좀 더 성의 있게 감탄해 주면 안 될까?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는 거지? 산드라도 그렇고 왜….”
호프는 말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산드라!”
“뭐?”
“산드라 말이야!!”
“산드라가 누군데?”
“다음번에 대화할 때는 산드라가 자기가 하겠다고 꼭 전화하랬어! 나보고는 입 다물고 있을 때가 제일 예쁘니까 되도록이면 다물고 있으랬거든.”
산드라라면 알렉스 호프가 가끔 언급하던 이름이다. 호프는 양손이 등 뒤로 묶인 채로 끙끙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저기, 이쪽 주머니 안에 내 휴대폰이 있거든? 좀 꺼내 줄래?”
“…….”
김채민은 나를 보았고, 나는 홍석영을 보았다.
홍석영은 팔짱을 끼고 딱딱한 얼굴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호프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 본체보다도 더 묵직해 보이는 액세서리가 잔뜩 달려 있고, 뒷면에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낡은 휴대폰이었다. 기종은 지금 기준으로는 최신형으로 보였는데, 액정이 깨진 탓인지 몇 년은 족히 되어 보였다.
“비번 없어. 전화 목록 보면 산드라가 있을 거야.”
성도 없이 단순하게 Sandra.
이름을 누르자 1로 시작하는 번호가 나왔다. 미국의 국가 번호다.
사용감이 넘치는 휴대폰이긴 하지만 호프가 무슨 짓을 해 놨을지 모른다. 액정 위로 뜬 번호를 내 휴대폰으로 옮긴 다음, 이미선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 번호 조사해봐요. 알렉스 호프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놈입니다]답장은 금방 왔다. 우리가 급하게 자리를 떠난 터라 뒷수습으로 정신이 없었을 텐데.
[우 선생님도 점점 홍 헌터님 닮아가는 거 아세요?]어떻게 그런 심한 소리를 할 수 있지.
[아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제가 우리 애들한테 들어야 해요?]그건… 화낼 만하지.
[누군 걱정해서 연락만 기다리고 있는데, 대뜸 일만 던져준다고요?] [게다가 미국?] [전 한국지부에서 일하고 있다고요. 미국 일은 몰라요!] [이거 알아내려면 얼마나 발품팔아야 하는지 알아요???]나는 홍석영과 닮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이미선에게 일을 시켰는지는 옆에서 봐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못한다고요?]이미선은 1분 넘게 답장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마디 툭 왔다.
[누가 못한다고요]의외로 단순하다니까.
“아, 정말! 산드라에게 전화 걸라구!”
내가 이미선과 대화하는 걸 본 홍석영과 김채민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호프는 답답한 얼굴로 외쳤다. 그대로 바닥을 뒹굴며 어린애처럼 버둥거리는 꼴을 보자 어쩐지 허무해졌다.
이딴 놈한테 여지껏 흔들리고 있었던 건가.
어쨌든 호프는 산드라라는 인물을 거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고 잡아뗐다. 나는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국제 전화 요금은 홍석영에게 청구해도 되는 걸까.
무미건조한 통화음이 들렸다. 나는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호프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자가 호프의 상사라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방주와 관련된 인물이겠지?
…호프의 얼굴을 보면 상사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Hello?
나 같으면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국제 전화는 받지 않을 텐데, 이 여자는 받았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다. 목소리로는 나이를 짐작할 순 없지만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산드라!”
-What the FUCK did you do again?!!
여자는 해맑은 호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Aw… Sandra, dear. Come on.”
알렉스 호프는 처음으로 민망한 표정으로 우는 소리를 냈다. 우리와 능숙하게 한국어로 대화한 것만큼이나 능숙한 영어였다. 생각해보면 국적이 호주이니 영어로 말하는 건 당연한 건데.
여자는 호프의 애교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욕설을 퍼부었다.
생글생글 잘 웃던 호프의 얼굴이 점점 벌겋게 변했다. 그래도 놈이 수치는 아는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산드라아아….”
결국 호프는 우리 눈치를 살피다가 한국어로 말했다.
“네가 말한다고 해서 내가 전화했다구우…. 잘했다고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냐?”
-…….
여자가 조용해졌다.
한국어를 못 알아들은 건 아닐까. 하지만 호프에게도 뇌가 있고, 생각이라는 기능을 할 수 있다면 영어로 잘 대화하다가 언어를 바꾸지는 않았겠지.
이 여자도 호프나 셈 블룸처럼 한국어를 배운 건가?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내뱉는 언어가 단순히 배운다고 가능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호프는 그나마 대만 출신의 모친을 가지고 있으니 반은 아시아인이라고 우겨볼 수야 있다지만 셈 블룸은 그것도 아닌 평범한 네덜란드인이다.
…그러고 보니 셈 블룸은 어떻게 됐지. 홍석영이 놈을 끌고 오진 않았는데.
놈에 대한 건 나중에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의 골칫거리는 알렉스 호프다.
-거, 거기.
놀랍게도, 그러나 놀랍지 않게 여자는 한국어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도 있어?
그러나 알렉스 호프나 셈 블룸처럼 능숙하진 않았다. 아니, 잘하긴 하는데 억양은 아니다.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이라는 티가 물씬 난다.
“아니면 내가 왜 전화했겠어?”
-네가 또 폰 잃어버리고 나한테 사 달라고 전화한 줄 알았지!
“에이. 내가 언제 너한테 사 달라고 그랬어? 나 돈 잘 벌어.”
-지금 네가 쓰는 거 프랑스에서 내가 사 준 거야!!
“아… 그랬나?”
-Fu…!!!!
여자가 다시 욕설을 내뱉었다.
결국 듣다 못한 내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라면 끝이 안 날 것 같다. 방주에서 호프보다 더 윗선에 있는 이가 아닐까 싶었는데, 호프와 대화하는 걸 들어보면 그런 분위기는 또 아니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지?”
-어. 어어. 자, 잠깐.
여자는 호프에게 욕설을 날리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전화를 뚝 끊었다.
“…….”
호프를 보았다.
“산드라가 수줍음이 많아!”
홍석영을 보았다.
홍석영은 김채민을 보았다.
김채민은 나와 홍석영을 번갈아 보더니 난감한 듯 볼을 긁적였다.
“매달까요?”
“잠깐! 그건 아니지, 마법사!”
“밖에 며칠 매달아 놓으면 없는 말도 말해 주지 않을까요….”
“아니라니까!”
마력의 틈을 파고 드는 건 쉽다고 떠들어 댔지만, 그런 놈이라고 해도 점점 굵어지는 장미 넝쿨은 무서운 모양이었다.
기겁하는 알렉스 호프에게는 다행히, 내 휴대폰이 울렸다. 국가번호 1로 시작하는 숫자. 그 여자의 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다. 액정에 떠오른 화면이 바뀌었다.
-아, 됐다! 나 보여? 보입니까?
어색한 한국어와 함께 기껏해야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흑인 여성이 나타났다.
숏컷으로 자른 머리카락은 짧은 길이와는 달리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덕분에 너저분한 느낌이 들었다. 헤어스타일이 문제가 아니라 헐렁한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도수가 높아 보이는 검은색 뿔테 안경 때문일 수도 있고.
여자의 뒤로 복잡한 설계도와 기계, 공구들이 보였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숙여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홍석영은 그런 나를 어리둥절해하며 보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여자를 알아본 사실을 눈치챈 거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산드라라는 이름에서부터 알아차려야 했나? 하지만 그 이름은 흔한 이름이다. 이름만 듣고 어떻게 산드라 갬블이 알렉스 호프와 연관 있다고 짐작했겠냐고!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돗자리 깔고 점을 보고 있었겠지!!
미래에 마력 공학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될 천재는 수줍은 얼굴로 인사했다.
-H, hello? 난 산드라 갬블이고, 저 얼굴만 예쁜 바보의… 외장형 인간성 같은 겁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