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62)
외장형 인간성(1)
-음음.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한다고 배웠는데!
여자는 볼을 긁적이며 인사했다. 꽤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그걸 배려해 줄 정신은 없었다. 저 수줍은 얼굴로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선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본인보다도 말이다.
-아, 한국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건 선생님 말곤 처음이라서! 그러니까, 내 한국말이 이상해도… 음, 어, 이해 부탁합니다?
노아 미셀에 이어 산드라 갬블?
이십 년이나 돌아왔으니 인재들을 키우고, 못된 놈들을 쫓아 멸망을 막은 뒤 평온하게 은퇴하겠다는 내 계획은 사실 시작부터 글러 먹었던 게 아닐까?
아버지나 내가 뭘 하든 멸망할 수밖에 없던 세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노아 미셀이야 주위에서 뭐라고 추켜세우든 근본적으로 마법사다.
미셀이 고유 마법을 발현한 게 몇 살이더라? 다섯 살? 여섯 살? 마법 연구하다 돌아 버린 수많은 마법사들을 생각하면 그 여자가 어린 나이에 미쳐 버린 것도 이해는 한다. 방주… 를 만들었든 어쨌든 대마법사의 광기라면, 그래. 마법사가 또 마법사 한 거다.
노아 미셀이 유명하긴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마법사로서의 영역이다. 노아 미셀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태양의 딸이니 어쩌고 떠들어도 노아 미셀에 대한 인식은 어디까지나 ‘대단한 마법사’이다. 대마법사와 마법사의 차이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미셀이 발명한 룬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는가?
미셀의 룬은 민간인이 아니라 헌터들이나 체감했고, 그녀의 마법 이론이 마법 사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마법사들이나 알았다.
그러나 산드라 갬블은 다르다.
산드라 갬블의 유명세는 노아 미셀을 뛰어넘는다. 단순한 천재 마력 공학자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CEO 중 하나로 꼽히며, 인류를 안전하게 지키는 데 가장 공헌한 이로 거론된다.
마력 측정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를 미리 감지할 수 있다? 그게 얼마나 획기적인 발명이었는지 입 아프게 떠들지 않아도 분명하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때마다 적게는 수십 명, 많으면 수만 명이 죽어 나갔다. 마력 측정기는 그 숫자를 0으로 만들었다.
물론 마력 측정기는 비싸고, 마력 측정기를 설치하지 못한 던전이 훨씬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는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 측정기뿐만이 아니다. 산드라 갬블의 파로스 사는 현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물품을 선보였다. 환경 오염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마력석을 이용한 동력 개발이나, 체내 마력 농도를 측정하여 마력 중독을 조기 발견하는 방법이나, 하다못해 던전 내부에서 작동하는 자동차마저 갬블의 회사가 만들었다.
노아 미셀이 헌터들의 생존율을 올렸다면 산드라 갬블은 인류의 생존율을 높였다.
그만큼 대단한 여자였다.
내가 과거로 오기 전… 약 1년 전쯤, 테러에 휘말려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마는.
어쨌든 산드라 갬블은 던전과 함께 살아가야만 했던 인류의 안전에 수많은 영향을 끼쳤다.
노아 미셀 하나뿐이라면 모른다. 하지만 산드라 갬블의 이름이 더해지면 다르다.
모든 게 더 나빠진다.
-그러니까… 뭐부터 말해야 하더라?
“바보.”
-넌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갬블은 눈앞에 있으면 호프를 향해 휘둘렀을 것처럼 스패너를 휘둘렀다.
…저 여자가 원래 저런 성격이었던가?
모르겠다. 산드라 갬블과 만난 적이야 있지만 성격이 어떻다니 말을 할 정도로 친근한 사이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일로 만난 거였고, 파로스 사의 대표는 웃는 얼굴로 사람을 깔아뭉개기 좋아하는 미친 여자로 명성이 드높았다.
‘하하, 무슨 말씀을. 난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을 싫어할 뿐입니다. 머리가 나쁜 건 괜찮아요.’
…어느 용기 있는 기자가 물었을 때 그렇게 대답했었지.
‘보세요. 당신 같은 사람도 나름 머리에 든 게 있다고 여기서 나한테 질문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다음번에 우리가 만났을 때 배운 게 없다? 그럼 당신은 끝난 거죠.’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는 겁니까?’
‘그걸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당신은 안 된다는 건데….’
뭐, 결국 그 기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채 회장을 나갔다.
노련하게 자신을 공격하려던 기자를 돌려세웠던 여자는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비치는 좁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어쨌든! 그동안 저 멍청이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쟤가 지능이 없어서요!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한 것치고는 너무 능숙하다. 어색한 발음이 아니었다면 호프나 셈 블룸같이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하고 있다고 여겼을 거다.
저 어설픔이 오히려 산드라 갬블을 인간적으로 보이게 했다.
…외장형 인간성이란 말이 무슨 뜻인 거지?
“지능이 없기는 왜 없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니까 만약 오해가 있다면 샨샨, 알렉스가 잘못한 게 맞아요. 죽이는 건 좀 곤란하지만, 죽지 않을 정도로는… 보기보다 튼튼해서 몇 대 때려도 안 죽으니까 괜찮아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훨씬 더 발랄하고 수더분하고 경쾌한 얼굴이다.
아직 파로스를 설립하지 않은 산드라 갬블은 자신의 화면에는 잡히지도 않을 알렉스 호프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오해는 풀어야 우리가 평화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샨샨! 너 아직도 얘기 안 했지?!
“무슨 얘기?”
-그럴 줄 알았어!
“세미가 습격하는 거? 그건 했어! 제대로 경고했어!!”
-아니, 그거 말고!
갬블은 안경을 벗고 머리를 마구 긁었다. 반쯤 우리의 존재를 잊고 있는 듯했다.
-멍청아! 네가 죽였던 애들 사실 다 살아 있다고 얘기하랬잖아!!!
“…뭐?”
“아.”
알렉스 호프가 멍청한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아아아.”
“뭐라고?”
“맞아, 그거.”
“누가 살아 있다고?”
“이제 기억난다.”
알렉스 호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이야기하라고 했었잖아!!”
-뭘 태연하게 대답하고 있어! 그걸 얘기 안 하면 이 사람들이 널 끔찍한 아동 연쇄 살인마로 생각할 거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제일 먼저 얘기하라고도!!!
“…….”
호프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다가 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었나?”
…통화 음질이 좋군. 바로 내 옆에 있지도 않은 호프의 목소리가 갬블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을 보면.
대리점에서 적당한 싸구려 휴대폰을 구해 온 건데, 이 시대의 기술력도 얕볼 건 아니다….
내가 잠시 휴대폰 기종을 살피며 현실 도피를 하는 동안 산드라 갬블의 욕설이 허공을 떠다녔다.
호프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차라리 기가 죽었으면 갬블도 진정했을 것 같은데.
갬블은 스페인어가 섞인 영어로 한국으로 가서 네 머리 뚜껑을 열어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내뱉었다. 호프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 하품이나 해 댔다. 카메라를 그리로 돌려 줄까 하다가 더 길어져 봤자 욕만 듣고 있을 거란 생각에 가만히 있었다. 끼어들 타이밍이….
……내가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드니 홍석영과 김채민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둘 다 나란히 엄지를 치켜세웠다.
산드라 갬블이 말하는 인공지능을 저 사람들 머리에도 심을 수 있는 걸까.
“산드라. 네가 한국에 올 때쯤이면 난 이미 호주로 돌아갔을 텐데?”
“…….”
산드라 갬블이 진정하고 드디어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 * *
[산드라 갬블] [26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마력 공학 박사]이미선은 빠르게 2021년의 산드라 갬블에 대해 찾아왔다.
미국에서 사람 조사하는 일은 어렵다니 어쩌니, 했으면서도 금방 해낸다. 내가 이름을 주긴 했어도….
빠르게 이미선이 보낸 정보를 훑었다. 솔직히 다 아는 내용이라 참고할 것도 못 되었다. 그래도 김채민이나 홍석영에게도 보여 주었다. 젊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딴 것 말고는 그리 주목할 것 없는 이력이다. 심지어 박사 과정을 끝낸 뒤로는 학회 활동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렇다 할 일도 하지 않았다.
산드라 갬블은 이 시기에 자기 집 차고에 틀어박혀서 마력석을 이용한 실험을 반복했다고 했다. 그 실험이 훗날 마력 측정기의 기반이 된다.
-약간의 눈속임이면 시체 정도야 금방 만들어 내지. 한국은 사망자 수가 많아서 그런지 시신 검사도 딱히 안 하잖아요. 그래서 쉬웠어. 쉬웠습니다.
갬블은 멋쩍은 얼굴로 설명했다.
휴대폰과 TV를 연결하여 화면을 키웠다. 적어도 내내 휴대폰을 들고 있지는 않아도 되었다.
-뭐… 아주 안 죽인 건 아닌데.
“애들은 기절시켜서 데려가고, 방주와 관련된 이들은 다 죽였어!”
-아동 납치범도 인식이 좋은 건 아니거든…. 샨샨, 제발 내가 얘기하게 해 줄래?
“계속 얘기해.”
-아, 넵. 그래서 애들을 한국에 계속 뒀다가 들키면 곤란해서 미국으로 옮겼습니다!
“미국으로?”
홍석영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살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닐 텐데 화면 속의 갬블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제가 재단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다 데리고 있어요. 아니, 위탁 가정에 있기는 한데, 우리 재단이 돌보고 있으니까…. 무세이온이라고.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무세이온?”
-네! 무세이온이요! 이집트에서 알렉산드리아에 설립한 학당 이름에서 따온 건데, 학술과 예술의….
“그건 됐고요.”
-아, 네….
무세이온이 갬블의 재단이었나? 그랬다면 내가 알았을 텐데?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세이온은 이미선의 승연 재단처럼 던전 희생자들을 지원해 주었다. 사망한 헌터의 가족이나 어린 각성자들이 주 대상이었다. 관리청에도 무세이온의 후원을 받았던 이가 몇 명 있었다.
‘주임님!!’
‘왜.’
‘죄송한데, 저희, 그, 휴가를, 휴가요!’
다급하게 달려오던 얼굴들.
‘…무슨 일인데?’
산드라 갬블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그 뒤처리를 하느라 피곤할 때여서 나도 말이 곱게 나가진 않았다. 갬블의 사망으로 파로스와 맺었던 마력 측정기 협약을 재검토해야 하는데 손이 비는 게 달갑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서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진 않았다.
‘저, 그, 으, 은사님이 도, 도, 돌아가셨다고.’
‘은사님?’
‘저희, 그, 저희, 후, 후원받은, 거, 아시잖습니까.’
‘…무세이온?’
‘네. 그, 저흴, 도, 돌봐 주시던, 분이.’
결국 보내 줬다. 미국까지 가야 한다고 해서 있는 휴가 없는 휴가 다 몰아줬더랬다. 어쩌겠는가. 머나먼 미국으로 입양 갔는데도, 굳이 자기 뿌리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이 은사님의 마지막만큼은 챙겨야 한다는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자기들을 돌봐 주었던 은사가 산드라 갬블인가? 그렇다면 걔네들은 무세이온을 갬블이 세웠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걸 꼭꼭 숨기고 나한텐 얘기도 안 해 줬다고?
…아니면 우리 쪽 정보를 넘기고 있었나?
숨을 골랐다.
잊지 말자. 한 번에 하나씩. 눈앞에 있는 것부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말고, 지금 내 앞에 잘 차려진 단서부터 파헤치자.
“들키면 곤란하다는 건 무슨 뜻이지?”
산드라 갬블은 입을 살짝 열었다가 멈췄다. 의아한 얼굴로 갬블을 바라보자 눈가를 움찔거리다가 호프를 불렀다.
-샨샨.
“응?”
-걔 죽은 거 확실하지?
“응. 확인했어.”
갬블의 얼굴이 바뀌었다. 호프도 마찬가지였다.
-그거야 미셀 그년이 눈치채면 희생물로 바쳐 버릴 테니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