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67)
가족의 형태(3)
“희재 군, 우리 이야기를 좀….”
“바쁩니다.”
“희재 군, 잠깐….”
“애들 수업 시간입니다.”
“희재 군.”
“이 헌터님, 제가 부탁한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오전에만 다섯 번 넘게 쳐 냈더니 홍석영은 작전을 바꿨다.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것으로.
나에게 직접 말을 거는 대신 등에 꽂히는 시선이 매섭다. 작전을 잘못 택한 건 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코 바쁘다고 쳐 낼 게 아니라 그냥 말을 들어 줬어야 했다. 거기서 죽어라 무슨 헛소리하는 거냐고, 벌써 노망이라도 들었냐고 해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죽어라 피하고 있는 건 내 쪽에서 제 발 저린 티를 내는 꼴 아닌가. 젠장,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가 먼저 말을 거는 것도… 아닌가? 그게 나으려나?
아직 홍석영이 다짜고짜 내게 달려들진 않고 있다. 인내심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서 정말 바빴다는 티를 내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 진짜 바쁘기는 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난 아직도 이곳에서 되게 애매한 직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미선이고 김채민이고, 죄다 나만 찾고 있다.
홍석영이 지금 내 뒤를 따라다니고 있어서 그런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피할 수는 없으니 빨리 결단을 내자. 호프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떼면 되겠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홍석영이 있는 곳을 보았다.
“……?”
“우 선생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뇨…. 아까 홍 선생님 저기 계시지 않았습니까?”
“네? 아, 갑자기 안으로 들어가시던데요.”
눈을 찌푸렸다. 홍석영이 겨우 이틀 쫓아다녔다고 포기하진 않을 텐데.
…뭐지?
잘 있던 사람이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강아지가 안 보이면 ‘안 돼!’라고 외치고 보는 사람과 같은 이치다. 홍석영은… 그럴 수 있다. 이십 년 뒤의 다 늙은 아버지도 그랬는데 그때보다 더 행동력이 좋은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다. 내가 나이 반백의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며 홍석영을 찾았다. 그러나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홍석영도 바쁘다는 걸 알면 이렇게까지 불안해지지 않을 텐데. 더불어 억울하지도 않을 거다. 종일 나만 쫓아다니고 있다? 누군 진짜 바빠 죽겠는데…!
보이지 않는 홍석영에 대한 분노를 곱씹다가 결국 다선의 헌터를 붙잡고 물었다.
“홍 선생님은 하는 일이 없습니까?”
관리청에 있을 때는 아버지가 내게 일을 떠넘기더라도 본인이 던전에 들어가 있다는 걸 아니 나도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요 며칠 홍석영은 어떤가. 딱히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방주를 추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다못해 부서진 펜션을 정리하고 있지도 않잖은가. 그나마 하는 거라곤 수업? 그마저도 정원이 엉망이니 애들을 굴려 대진 못한다. 얌전히 실내에 앉혀 놓고 던전 강습이나 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건 홍석영이 잘하는 수업이 아니다. 홍석영이 들어가는 던전 수준이 너무 높아서 아이들이 따라가질 못한다.
“나름… 토템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마침내 다선 헌터들도 미쳐 가기 시작했는지, 지유건이 헛소리했다. 오래 버텼지. 나도 나지만, 이 사람들 업무량도 어마어마하다. 일이 저렇게 몰아치는데 나 같으면 진작 그만뒀다.
“아, 네…. 토템이요.”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최소한 침입자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하. 하하….”
엉망이 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시범고 건물을 빨리 짓고 그리로 옮기는 게 나을 듯싶었다. 저걸 복구하는 것도 다 돈이고, 시간이고, 일이다. 점점 줄어드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지유건을 지나쳤다.
어차피 펜션 밖으로 나가진 않았을 테니 직접 찾아볼까 싶다가, 왠지 자존심이 상해서 말았다. 급한 사람이 찾아와야지, 나는 전혀 급하지 않다.
결국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도록 홍석영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홍석영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형!!”
그날 저녁, 우이록이 파드득거리며 나에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납치당할 뻔한 애치고는 해맑다. 별의별 꼴을 다 보고 자라서 그런가.
이미선이 나한테 슬쩍 우이록은 괜찮냐고, 아는 상담사가 있다고 말하기는 했는데…. 내가 쟤였던 적이 있어서 아는데, 얜 진짜 괜찮은 거다. 겨우 그런 일에 흔들릴 정도였으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지. 형은 나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우이록은 달려오자마자 나에게 덥석 매달렸다.
“왜 그래?”
최근에는 그래도 의젓하게 굴려고 어리광도 줄어들었던 녀석이 갑자기 왜 이래. 내가 나에 대해 너무 자신했나? 실망이다, 우이록….
“무슨 일이야?”
“형!!”
우이록은 꽥 고함을 질렀다.
“형, 진짜 그 아저씨 아들 될 거야?!!”
“컥.”
마침 지나가던 다선의 헌터들이 그 말에 사레가 들려 목을 잡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씨발. 이 펜션은 너무 오픈되어 있다.
나는 억지로 웃었다. 동생한테 화를 낼 순 없다. 얘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전부 내 잘못이지. 이곳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걸 홍석영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내 잘못.
내 잘못… 은 개뿔. 이게 왜 내 잘못인가. 다 홍석영이 잘못한 거지.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디 있어.”
“응?”
“이록아, 그 아저씨 지금 어디 있어.”
이렇게 치사하게 나올 줄 알았으면 진작 얘길 했겠지. 사람이 근성도 없이 몇 번 피했다고 애를 가지고, 지금.
이게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의 관록인가? 사냥감이 제 발로 찾아오게 하는?
관록은 개뿔. 자기 맘대로 안 된다고 지금 떼쓰는 거잖아.
* * *
“음. 왔나.”
홍석영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뭐 하자는 겁니까?”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지….”
“아니, 그딴 개소리는 치우고요.”
“개소리라니.”
홍석영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아빠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을 거라고 자부한단다.”
씨발.
“뭐라는 겁니까.”
“아빠는 참 섭섭해.”
“뭐라는 거야.”
“세상에는 많은 형태의 가족이 있어.”
“또 그 소리입니까?”
“단순하게 피로 이어진 가족, 입양 가족,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가족….”
홍석은 또 입바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요즘 내내 입에 저 말을 달고 살고 있다. 오죽하면 김채민이 호프와 갬블의 우정이 그렇게 부러웠냐며 진저리 칠 정도였다.
하지만 홍석영이 얘기하는 건 그 둘이 아니었다. 김채민의 말에 ‘몬스터와 인간의 종을 뛰어넘는 우정이라니. 감명받을 만하지 않나.’ 하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나는 속지 않았다.
보아라.
“그러니 미래에서 온 아들과 가족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홍석영은 손쉽게 내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전 선생님 아들이 아닌데요.”
“아빠라고 실컷 불러 댔잖나.”
이….
누가 실컷 불러 댔어?! 발끈하려다가 겨우 억눌렀다. 침착하자.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요.”
“음.”
홍석영은 빤히 내 얼굴을 보았다.
“뭐, 기억이 안 나? 그런 거야? 그럼 그런 설정으로 해 주지.”
“…그러니까.”
“근데 생각을 해 봤거든.”
기시감이 몰려든다.
이 남자가 생각을 해서 좋을 일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과거의 경험이.
홍석영이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브레이크 직전의 던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불안해졌다.
“자네가 내 제자라고는 해도 지금의 내 제자는 아니잖아?”
“…….”
“그렇지?”
홍석영은 내게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듯 끈질기게 물었다. 이거 함정인데. 함정인데, 뿌리칠 수가 없다.
“그래…. 그래서 뭔가 새로운 관계 정의가 필요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제 동생보고 아들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한 겁니까.”
“이록이 같은 아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아?”
말끝은 올라가 있지만 내 대답을 바라고 있진 않다. 홍석영의 내면에서는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 웅크리고 있던 작은 등을 보았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진 아직도 선명하다.
저 아이의 아버지를 없애 버렸다.
머리를 굴렸다. 2041년이면 모를까 2021년의 우희재는 가진 게 참 없더랬다. 거의 쓸 일도 없는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두고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미선의 지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사실 이미선은 홍석영의 말이 있어서 호의로 나를 도와주고 있는 거 아닌가.
물론 홍석영이 나를 내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어린애도 아닌데 계속 손을 벌리고 싶지도 않다. 본인은 도와주고 싶어 안달일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홍석영은 혹시나 내가 잘못되었을 경우 동생을 맡기기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검증된 사람이기도 했고.
홍석영을 단념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피가 날 때까지 상처를 후벼 파다 보면 제아무리 홍석영이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나는 홍석영을 물러나게 할 말을 알고 있다.
‘죽은 아들을 겹쳐 보는 거라면 포기하세요.’
한번 했던 일이다.
그때는 내가 이미 홍석영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홍석영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아들이 되기 전이라면 홍석영은 계속 고집을 피울 수 있을까? 내가 이 말을 꺼낼 정도로 거부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알아서 물러날 거다. 눈치 빠른 아저씨는 이래서 편하다.
하지만….
앞으로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만약을 위해 보험 하나 정도라면.
“그리고 우희재 같은 아들도 있다면 좋겠거든.”
“욕심이 너무 많은데요.”
“나 정도 되는 사람은 그래도 돼.”
“…….”
당당한 모습에 할 말이 없다.
“아빠는 아들한테 항상 좋은 것만 주고 싶거든.”
“그거 아니라고요.”
“안 그래도 자네 설명에 뭔가 빠진 게 있다고 느꼈는데, 내가 아빠라고 생각하니 다 맞아떨어지더라고.”
홍석영은 헤벌쭉 웃었다. 어쩐지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니라고요.”
“그럼 그것대로 괜찮아. 미래에 자네가 내 아들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자네를 내 아들 삼기로 결정했으니까.”
“…….”
“그래. 자네 아버지는 내가 아니겠지.”
홍석영은 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자네 아버지는 행복했을 거네. 나 자신이니까 알 수 있어.”
여기서 부정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아들을 잘 키워 놨는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지? 자넬 볼 때마다 뿌듯해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을 텐데.”
“…….”
“자네가 날 아버지라고 여기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난 자네를 내 아들이라고 생각할 거야.”
부정해라. 부정할 수 있잖아. 우린 그런 사이 아니었다고, 그냥 스승과 제자였다고.
그렇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아들 대신 후계자였다고 말하는 건 쉬웠다. 하지만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그건…….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이록이가 그, 되고 싶다고 하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