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68)
채용 사기(1)
“근데, 형.”
“왜?”
“있잖아.”
“그래.”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슬쩍 고개를 드니 괜히 태블릿 PC만 만지작거리는 열 살 꼬마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 아침 시범고 아이들이 모두 펜션을 떠났다. 본격적으로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이 학교 아닌 학교가 언제 그런 거에 신경 쓴 적 있던가. 마지막까지 집에 안 가면 안 된다고 반항하던 한은영만 살기 싫은 표정으로 오빠 손에 끌려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거의 열 명에 가까운 애들이 없어지니 넓은 펜션이 고요하다. 걔네가 있었을 땐 신경 쓸 게 많아서 귀찮기만 했는데 막상 없으니까 좀… 허전하기도 하고.
게다가 우이록도 어쩐지 조용해졌다.
아이들에게 살갑게 굴기는커녕 가끔 내킬 때면 걷어차는 시늉을 할 정도로 사납게 굴었지만 홍석영에게 굴려지는 예비 헌터들에게 비각성자 열 살 꼬마가 그래 봤자 얼마나 우습겠는가. 애들은 우이록을 퍽 귀여워했다. 내가 보기엔 우이록도 생각보다 애들을 잘 따르고 있었다. 자기만 남겨진 걸 조금 섭섭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귀염성은 없었지만, 쟤는 또 모르지 않는가. 솔직히 이젠 쟤와 나는 다른 사람으로 봐야 한다.
“너도 여행 가고 싶어?”
아이들이 얌전히 떠난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그 나이 또래 애들에게 비하면 순하고 말을 잘 듣긴 했지만, 그게 얌전하다는 뜻은 아니니까.
‘김 쌤이 그런 마법을 썼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요!!’
특히 오현욱이 반항했다. 새끼 돼지 주제에….
이래서 목소리 큰 놈이 있으면 피곤하다. 기가 약한 애들이 쉽게 휩쓸린다. 새끼 돼지의 목소리에 힘입어 가만히 잘 있던 애들도 농성을 시작했다. 유혜은이 나와 한태경의 상처를 치료했던 까닭에 별거 아니라고 넘어가기도 힘들었다.
물론 애들은 알 거 없다고 해도 되기는 한데….
나도 안다고. 그런 말을 해 봤자 반항심만 부추긴다는 걸.
그래도 강태우는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유혜은에게 전해 들은 상황만으로도 대충 어떤 일에 휘말렸는지 짐작이 간 모양이었다.
그런 강태우의 손목에는 여전히 여동생의 팔찌가 있었다. 호프가 처리한 아이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으로 데리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라 강태우에게는 알리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강태우에게 소식을 전해 줬다가 방주의 귀에 들어가면 그때는 진짜 아이들이 죽는다.
‘소방 훈련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새끼 돼지가 발악했다.
참고로 내 아이디어는 아니다. 다선의 헌터 중 하나가 아이들의 원성에 당황하다가 얼결에 그렇게 대답했다고 들었다.
새끼 돼지의 말을 들어 주는 것도 귀찮고, 우이록이 일어나기 전 아이들을 치워 버리고 싶어서 나는 대충 사실대로 말했다.
‘교장 선생님께 원한을 가진 범죄 조직이 복수하려고 습격했다.’
딱히 틀린 설명도 아니잖아?
‘그래서 소란스러웠던 거야. 당분간은 조용할 테니 걱정 말고, 추석이니 푹 쉬고 와라.’
새끼 돼지와 그 일당들은 석연찮은 표정으로 펜션을 떠났다.
아침에 있었던 일에서 벗어난 나는 눈앞에 있는 우이록을 보았다.
“갈래?”
“아니….”
우이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라.”
아니라고는 해도 묘하게 차분한 꼴을 보니 애들한테 우이록을 딸려 보내 버릴 걸 그랬나, 싶었다. 다른 애들이라면 몰라도 강태우라면 저 녀석을 그럭저럭 다룰 수 있을 텐데.
…처음에 대놓고 수상쩍게 접근한 3호를 이렇게까지 편하게 여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땐 강태우를 데리고 방주를 낚을 방법이나 찾고 있었지.
지금에 와서 보면, 아무리 홍석영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생각이 짧았다. 처음 홍석영이 여겼던 대로 방주가 단순한 범죄 조직이었다면 그렇게 실마리를 잡아 소탕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홍석영도 그럴 계획이었을 거다. 다만 방주가… 홍석영과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크고, 미쳐 돌아가던 곳이었을 뿐. 하마터면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망할 뻔했다.
또 그렇게 생각하면 호프가 보육원에서 그… 지랄을 한 게 우리에게는 나쁘지 않게 작용했다. 강태우와 방주의 연결 고리를 끊고 우리 쪽에서 보호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게 호프와 다시 연결되어서… 역시 사람 인생이란 모르는 법이다.
“그런 게 아니면?”
“…….”
우이록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곧 산드라 갬블이 이곳으로 온다. 호프는 여전히 호주에 있고, 갬블의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호주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고 본인의 입으로 말했다.
갬블의 신원을 우리가 데리고 있는 이상 호프는 멋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놈의 말대로 동족을 배신할 정도로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방주의 목적이나 미셀이 왜 방주를 만들었는지, 혹은 합류했는지는 모른다.
우이록의 얼굴도 풀릴 줄 모른다.
역시 쟬 여기서 내보내야 했던 게….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셈 블룸이 저 녀석을 납치하려고 시도했다. 아직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노아 미셀 아래에 셈 블룸만 있지 않을 테고, 또 다른 놈이 습격할 수도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이록을 내 눈앞에 둬야 마음이 놓인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이 생기는 것보단 차라리 내가 상황을 바로 알 수 있는 곳이 낫다.
“…….”
“…….”
한참을 기다려도 우이록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면 말하겠지, 싶어서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보던 자료로 돌아갔다.
이미선이 주고 간 제본된 책자였다.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았다.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종이를 넘겼다. 종이마다 룬이 빼곡히 있다.
아직 발표 날짜를 정하진 않았지만, 내용은 완성되었다. 지난번 다선의 이름으로 발표한 룬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할 룬이었다. 당연하지만….
나는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당연하지만, 노아 미셀의 마력 가림막 룬도 포함되어 있다.
이걸 그대로 발표해도 될까.
홍석영과 여러 차례 논의해 보았지만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시간대에서 노아 미셀이 마력 가림막 룬을 공개하는 것은 아직 몇 년 더 남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개 시기를 말한다. 실제로 미셀이 가림막 룬을 언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섣불리 발표했다가는 미셀의 주의를 끌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처음 발표했던 룬에도 미셀의 룬이 섞여 있었다. 김채민이 말하길, 마법사 커뮤니티에서 미셀이 룬을 보고 반응했었다고 했지. 그중 이미 미셀이 만들어 놓은 룬은 없었을까?
홍석영은 나보고 생각이 너무 많다고 했지만 이런 사안을 앞에 두고서 어떻게 생각을 안 할 수가 있냐고.
부스럭.
손에 쥔 얇은 책자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미간을 좁힌 채 생각에 빠져 있던 우이록은 그새 태블릿 PC를 보고 있었다. 소파 반대편에 드러누워 있는 꼴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놈의 고양이.
형은 지금 일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결국 보던 자료를 덮었다. 우이록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잔뜩 좁히고 있었다.
갑자기 고양이 인형이 가지고 싶다거나 하는 소리를 하진 않겠지?
잠깐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다가, 다행히 우이록이 이렇게 망설일 만한 이야깃거리가 떠올랐다.
나는 인상을 썼다.
“그 아저씨가 괴롭혀?”
“…….”
꼼지락거리던 우이록이 움직임을 멈췄다. 이거였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형이 말했었지. 싫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싫다고… 말해?”
“그래.”
“그렇게 싫지는 않았는데….”
홍석영이 들으면 좋아서 뒤로 넘어가겠군.
저 아이의 형이 될 각오가 되었다고 꽤 비장하게 선언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 원래 감정적으로 되면 그럴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분의 문제지, 나는 이미 저 건방진 꼬마의 형이었다. 쟤가 새삼 다시 내 동생이 되었다고 해서 생활에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내 행동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좀 더… 평범한 형제처럼 구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원래 나는 저 나이 때쯤 형이 사라지면서 조금씩 삐뚤어졌다. 아버지에게 구출된 뒤 지냈던 보육원은 도움이 안 되었다.
내가 참조할 만한 형제 관계는 유지은뿐이다. 유지은은 누나였으니 남동생과의 관계에 일대일로 치환하면 안 되겠지만….
다리를 뻗어 우이록을 툭툭 건드렸다. 뭔가 생각에 빠져 있던 미니미는 귀찮다는 듯 몸을 뒤틀었다.
어쩐지….
음.
나는 다리를 더 크게 움직였다.
쿵!
“아야!”
소파에서 떨어진 우이록이 벌떡 일어나 나를 노려보았다.
“뭐야!”
“아까부터 형을 불러 놓고 왜 아무 말도 안 해?”
“이이익….”
우이록의 얼굴이 못생긴 인형처럼 찌그러졌다.
유지은이 왜 날 볼 때마다 그렇게 시비를 걸었는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
우이록은 바싹 약이 올라 나한테 덤벼들었다. 아직 각성하지 못했는데도 움직임이 제법 빠르다. 각성하려면 멀었긴 한데, 그때는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제풀에 지칠 때까지 놔뒀다. 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우이록은 금방 포기했다. 역시 나다. 자기 분수를 잘 알고 있다.
우이록은 소파에 앉는 대신 바닥에 철푸덕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 아저씨가 자꾸 나보고 자기 아들이 되라고 하던데.”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이 아저씨한테 하지 말라고 해 줘?”
“근데 그 아저씨가 형이 자기 아들이니까 나도 자기 아들이라는데. 진짜야?”
짜증 난다….
“난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네가 그 아저씨 아들 되고 싶으면 해도 돼.”
그럼 나도 말릴 생각은 없다.
우이록은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럼 형은?”
“나?”
“형도 아저씨 아들 돼?”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형제라면 아빠가 같아야 한다고 하던데.”
“요즘 시대에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어.”
잠깐 말을 멈췄다.
“아빠가 다를 수도 있는 거고… 그건 그쪽 가족 사정이지.”
“형이랑 내가 가족인 것처럼?”
“우린 피로 이어져 있으니까 그거랑은 이야기가 좀 다르지만….”
“으음….”
“그래서, 아저씨한테 싫다고 말해 줘? 형이 안 해 줘도 네가 싫다고 하면 아저씨는 더 안 할걸.”
“…….”
의외로 우이록의 입에서 싫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홍석영이 어떻게 쟬 구워삶은 거지? 며칠이나 됐다고?
지금 우이록은 보육원 시절을 거치지 않았으니 나보다 난도가 낮긴 하다. 아니,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는 말은 반대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면 된다. 그럼 우이록은 홍석영의 아들이 된다.
뭐… 그것도 괜찮은 타이틀이지.
뭔가 더 말해 주려다가 말았다. 저건 홍석영과 우이록 사이의 일이니 내가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할 일이 많다고.
“…….”
나는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 휴대폰을 보았다. 이미선의 이름이 찍혀 있다.
이래서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다. 할 일이 많다고 했는데, 또 일이 늘었다.
“네. 무슨 일입니까?”
-우 선생님! 나오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이미선이 말했다.
-갬블 데려왔어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