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7)
신입생(3)
[김채민 – S급(대마법사)] [계열 – 드루이드] [스승 – 김강연(부친)] [제자 – 없음] [고유 마법 – 만개하는 장미 넝쿨(3단계)] [2024년 7월 9일 세이렌*과의 전투 중 사망]* * *
“어머, 학교라더니 진짜네! 교복도 있어요?”
“당연하지.”
“이야기는 들었는데…. 진심이셨군요?”
“난 애들 엮인 일로는 장난 안 쳐.”
“그거야 당연하죠.”
김채민은 싱긋 웃었다.
화창한 날씨에 맞게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김채민은 양산까지 꼼꼼하게 쓴 채 홍석영과 나란히 공터를 거닐었다.
홍석영은 장학관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랑하는 교장 선생님처럼 김채민에게 시범고를 구석구석 소개했다. 생각해 보니 교장 선생님이긴 하네.
…컨테이너 세 개밖에 없는데 도대체 뭘 자랑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홍 헌터님이 말씀하셔서 오긴 했는데….”
“내 제안은 생각해 봤나?”
“그것부터 묻는 거예요?”
김채민은 작게 웃었다.
“아이들에게 간단한 마력 운용법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든 거 아시죠?”
“제자도 없잖아?”
“그렇긴 한데….”
김채민은 파라솔에 앉아서 아닌 척 이쪽을 흘깃거리고 있는 어린 마법사 두 명을 보았다.
“다른 마법도 그렇긴 하지만, 제 마법은 특히 더 속성이 맞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저 두 친구한테는 이쪽 적성은 없어 보여요.”
“그걸 바로 알 수 있어?”
“저 정도 되면 척하면 척이죠.”
김채민은 박서현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 여자애는 박노경 선생님의 손녀죠? 그럼 이미 어지간한 마법은 다 알고 있을 텐데.”
“서현이? 하지만 경험 없는 마법사인 건 마찬가지지. 난 마법사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잘 몰라서….”
“저 아이 같은 경우에는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건 별로 없고요. 마력 운용 노하우 정도만이라도 괜찮다면.”
“그렇게만 해 줘도 고맙지.”
김채민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방주와 관련된 일이라더니…. 이러려고 학교로 불렀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그리고 관련이 없는 것도 아냐.”
홍석영은 나를 보았다. 그제야 내 존재를 깨달은 김채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 사람이죠? 그때 옥상에 서 있던 사람!”
“아, 네. 안녕하십니까.”
“어머머, 왜 거기 있었대요? 게다가… 여기서 일해요?”
“…그렇게 됐습니다. 저기 저 애들을 가르치고 있는 우희재라고 합니다.”
“저 애들…?”
김채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파라솔에 앉아 있는 마법사를 가리켰기 때문이리라.
“저기…. 마법사… 이신가요? 명동에선 검을…? 들고 있지 않으셨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검을 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검과 창은 어딘가 통하는 게 있지만, 마법은 완전히 다른 분야다.
“우 선생은 마법사가 아냐.”
홍석영이 히죽 웃으며 끼어들었다.
…왠지 불안하다. 왜 저렇게 웃고 있는 거야.
“예? 그럼 마법사를 어떻게… 뭘 가르쳐요?”
김채민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와 어린 마법사들을 번갈아 보았다. 나도 홍석영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 가만히 있었다.
홍석영은 더욱 불길하게 웃었다.
“우 선생은 더 대단한 걸 알고 있거든.”
“더… 대단한 거요?”
“그래. 마법사만 할 수 있는 거.”
김채민의 눈이 더 커진다.
“고유 마법 말하는 건가요?!”
그것도 마법사만 할 수 있는 게 맞긴 하다만….
홍석영은 대답하지 않고 짓궂게 웃고만 있었다.
내가 당할 때는 별로여도 구경하는 건 재밌긴 하다.
어차피 공개할 생각이었으니 홍석영에게 쓰고 싶으면 쓰라고 말하긴 했다. 하지만 쓰게 할 마법사를 이렇게 직접 불러올 줄은 몰랐는데.
몰랐지만.
음.
좋다. 괜찮다. 나쁘지 않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된다.
그렇잖아도 김채민은 내 리스트 제일 위에 있는 이름이다. 당장 접촉할 방법이 없으니 눈앞에 있는 박서현에게 집중하려고 했을 뿐이지.
냅다 이렇게 안겨 주면 고마울 뿐이다.
게다가 방주도 언급했었지? 부른다던 헌터 중 한 명인가 본데, 대마법사라면 충분하지.
잠깐, 이거 더 기대해도 되는 부분인가?
설마 김채민만 부르진 않았을 테고. 더 있겠지? 나머지도 다 쟁쟁한 헌터들이겠지?
“고유 마법이 아닙니다.”
나는 김채민의 오해가 더 커지기 전에 정정했다.
“전 저 아이들에게 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룬?”
김채민이 덜그럭거리며 고장 났다.
현재 룬의 위상을 생각하면 대놓고 비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김채민의 인성을 알 수 있다.
이것도 합격이다.
인성은 중요하지.
“어…. 저기, 홍 헌터님도 그렇고 마법사가 아니라서 잘 모를 수 있지만….”
어떻게든 말을 가려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모습을 보아라. 이게 바로 참된 헌터의 표본이다.
“룬이 쓰레기라고요?”
“아, 아뇨! 쓰레기까지는 아니고요!”
하지만 그만큼 쓸모는 없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보여 드리는 게 빠르겠군요. 잠깐…. 박서현! 최진우!”
박서현과 최진우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린 거 들고 와.”
둘 다 허둥거리며 파라솔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종이들을 챙겼다.
어색해하던 박서현도 지금은 곧잘 내게 룬을 확인받고 있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흠칫거리긴 하지만….
처음 박서현이 이상한 반응을 보였던 것도 뒤늦게 이해가 됐다. 조손 가정에서 자랐다고 했던가? 할아버지가 칭찬에 인색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나도 칭찬하는 데 어색하지 않던가.
어색한 사람끼리 그러고 있었으니 당황할 만하지.
앞으로 계속 칭찬해 주면 박서현도 익숙해질 거다.
“이게… 룬이에요?”
김채민은 두 사람이 들고 온 룬을 보며 깜짝 놀랐다.
지금 김채민이 알고 있는 룬은 원시적인 형태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 착해 빠진 프랑스 대마법사의 룬은 화려하고, 복잡하고, 기이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중 몇 가지를 골라서 아이들에게 짧게 피드백했다.
“이건 최진우, 네가 그린 거지? 이 부분을 길게 빼는 거 고치라니까. 습관 되면 안 된다.”
“넵.”
“박서현. 넌…”
칭찬! 칭찬!!!!
“잘했어. 점점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는 게 보여. 하지만 아침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선에 확신을 가져.”
“네, 네….”
지속 룬은 헌터 아카데미의 룬 개론 중간고사 1번 문항이다. 룬 개론 과목이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만큼 중요한 룬이다.
일주일 안에 이 정도로 완성도 높게 룬을 그릴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승연의 말을 들어 보면 하교한 뒤에도 열심히 연습한다고 했던가.
마법사가 너무 룬에만 매진해도 안 좋은데. 마법사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마법이니까.
뭐, 아직 어린애들이니까.
“그린 건 모두 합격점이다. 방금 말해 준 것만 조심하고. 그럼 확인해 볼까?”
“네!”
아이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김채민이 옆에서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뭘 확인한다는 거죠? 무슨 룬인가요? 이렇게 복잡한 룬은 처음 보는데….”
“잠깐 기다려 보게, 김 헌터.”
요 며칠 동안 마법사들의 룬 수업에 익숙해졌는지 공터에 흩어져서 저마다 수련하고 있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구석으로 향해 자리를 잡았다.
박서현과 최진우는 자신들이 그린 룬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최진우는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공용 마법 중 하나다. 불티를 만들어 불을 피우는 마법인데, 몇 가지 수식을 추가하기만 하면….
화르륵!
…아주 손쉽게 불기둥을 만들 수 있다.
“뭐, 뭐예요? 왜 불을!”
당황하는 건 김채민뿐이다.
룬을 내려놓았던 바닥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평범한 불이라서 헌터밖에 없는 이곳에서는 다칠 만한 사람도 없다.
다음은 박서현이다.
박서현의 수식은 훨씬 짧다. 그렇지만 위력이 뒤처지는 건 아니다.
최진우가 붙였던 불 위로 물이 떨어진다. 처음에는 작은 한 방울이었던 게, 곧 장대비가 된다. 바닥에 고인 물은 파도가 되어 공터에 붙은 불을 휩쓸었다.
불과 물이 휩쓴 공터에는 룬이 그려진 종이만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나는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최진우와 박서현이 빠르게 룬을 수거했다.
“다음.”
최진우와 박서현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룬을 교복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보통 룬은 이렇게 하면 망가진다.
하지만.
“어, 어어? 자, 잠깐만요!”
최진우와 박서현은 손끝에서 작은 빛을 만들었다.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구체는 주위가 밝아 빛이 나는지 안 나는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마법이다.
마법은 마력을 사용한다.
그러니 최진우와 박서현에게서는 마력이 느껴져야 한다.
“뭐야? 왜 마력이? 어떻게? 어떻게 한 거예요?!”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마력 한 줌 느껴지지 않았다.
홍석영은 낄낄 웃으며 최진우의 주머니에서 룬 종이를 뺐다. 더 커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김채민의 눈이 더 커졌다.
“그거? 그게?!”
“룬이야.”
“룬이라고요?”
“우 선생은 마력 가림막 룬이라고 부르더군.”
“마력 가림막?”
“그래. 딱 이름 그대로의 성능.”
“…….”
김채민은 홍석영의 손에서 룬 종이를 빼앗았다. 잔뜩 구겨졌지만 룬 자체는 지워지지 않았다. 김채민은 무서운 얼굴로 종이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저기… 우희재 씨, 라고 했죠? 이거 우희재 씨가 만든 건가요?”
“아뇨. 아는 사람이 만든 겁니다.”
“………그래도 우희재 씨가 알고 있어서 애들한테 가르친 거죠?”
“그렇죠.”
“가르친다… 혹시 다른 룬도 알고 있나요? 이거랑 비슷한 거?”
“효과는 다르긴 하지만 알고는 있습니다.”
김채민은 룬 종이와 내 얼굴, 그리고 홍석영와 두 마법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홍 헌터님.”
“응?”
“여기 학교라고 그랬죠.”
“음.”
“신입생 받으세요?”
“……으음?”
홍석영은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김채민은 홍석영의 멱살을 잡아챘다.
“저 여기 입학할래요.”
“어엉?”
“그럼 저도 저 룬을 배울 수 있는 거죠?”
“어어엉?”
* * *
“아니, 이렇게까지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지.”
홍석영은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한 잔 타서 내게 내밀었다.
“노리긴 한 거군요?”
“당연하지. 내가 던전에서 써먹으려면 제대로 된 믿을 수 있는 마법사가 필요한데, 김 헌터 정도면 완벽하잖나.”
“제자가 없어서 마법사들을 가르치기에 알맞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요?”
“그 점도 없진 않았고.”
효과가 너무 좋았을 뿐이다.
나로서는 반대할 건 없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와 내 품에 저절로 굴러와 안긴 격인데 왜 반대해.
오히려 일이 너무 잘 풀려서 걱정될 지경이다. 보통 이렇게 잘 풀리면 꼭 어디서 뭔가 잘못되던데.
홍석영은 내 옆에서 아직도 룬 종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김채민에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상단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근로 계약서.
물론 김채민을 신입생으로 받을 순 없었고, 마법 선생님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저 노예 계약서는 대마법사도 피할 수 없는 건가.
“김 헌터. 이거 읽어 보고, 고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난 저런 말 없었잖아.
“김 헌터? 김채민 헌터?”
“……네? 아, 괜찮아요. 그 룬 수업이라는 거 저도 듣게만 해 주면 돼요. 아니면 희재 씨가 저한테 룬 한 장씩 그려 주거나요.”
“월급이나 뭐 이런 건?”
“에이, 제가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 애들 가르치는 데 돈 많이 들 텐데 거기에 보태세요.”
……?
“그래도 괜찮나?”
“희재 씨, 아니, 우 선생님이 저한테 룬만 가르쳐 주면 된다니까요.”
“그래? 그럼 잘 부탁하네, 우 선생.”
“…….”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믹스커피를 꼴깍 마셨다.
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자.
이럴 때가 아니면 대마법사를 제자로 언제 둬 보겠어.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이럴 거면 연봉 협상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 수업이 월급 대신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럼 쟤 월급을 나한테 주든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