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77)
생각하는 사람(3)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휴대폰 스피커를 통해 빈말로라도 잘 부른다고 할 수 없는 노래가 울려 퍼진다. 노래라기보다는 그냥 악쓰는 거에 가깝다.
-사랑하는…!
거기서 목소리가 작아지면 어쩌냐.
어이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름이 들어가는 구절은 잔뜩 뭉개졌다. 웅얼거리는 발음 사이로 선생님이라든지, 우이록이라든지 익숙한 단어가 조금 들렸다.
그리고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생일 축하합니다!!!!
더 이상 노래가 아니었다. 누구 목소리가 큰지 겨루는 거다.
이만하면 많이 참았지.
영상 통화를 끊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홍석영은 껄껄 웃으며 자연스럽게 내 손을 막고는 우이록을 향해 손짓했다.
“이록아, 얼른 촛불 꺼야지.”
-와아아!! 이록아, 소원 빌자!
-무슨 소원 빌 거야?
-야, 소원을 말하면 무슨 소용이야! 혼자 알아야지.
-그런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야.
스피커에서 다시 왁자지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이록은 당황한 눈으로 홍석영과 휴대폰 액정 속의 시범고 학생들, 그리고 내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래도 결국 마지막으로 바라본 곳은 앞에 놓인 커다란 케이크다. 딸기가 가득 올라간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
쟤 입맛에는 안 맞을 거다. 내가 그러니까.
하지만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볼 때는 저 케이크가 참 맛있어 보였다. 때로는 이상과 현실이 기대와 맞물리지 않는다는 것을 쟤도 배울 때가 됐다.
“촛농 떨어진다, 이록아. 얼른 불어.”
“…….”
우이록은 아빠 신발을 신은 어린아이처럼 삐걱거렸다. 그 꼴이 웃겨서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홍석영은 멍청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똑같이 휴대폰을 들었다. 사진을 찍나 했더니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결국 우이록이 눈을 질끈 감았다.
두 볼을 크게 부풀린 다음 후, 내뱉는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촛불이 꺼졌다.
-생일 축하해, 이록아!!
“생일 축하한다.”
홍석영은 휴대폰을 들지 않은 손으로 우이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우이록은 바둥거리며 홍석영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지만 묘하게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간 홍석영이 귀찮게 달라붙는 것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아, 우리도 거기 있어야 하는데!
화면 너머 아이들은 영상 통화를 시작하고 쭉 카메라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승연이 승리한 모양이었다. 이승연은 카메라에 바짝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지만 아무래도 좋아 보였다.
-쌤, 우리 없이 생일 파티 하니 좋아요?
“좋은데.”
-너무 냉정한 거 아니에요?
“너희가 있어 봤자 뭐 하냐.”
-우리가 쌤 생일을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시범고 방학은 9월이다.”
-아, 쌤!!
애들을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 버리겠다고 했던 게 예상보다 길어졌다. 어차피 방학도 없이 굴렀던 거, 홍석영은 이 기회에 아예 푹 쉬라고 풀어 주었다.
지금 얘네가 어디 있더라. 동해 쪽이었나. 이미선의 가족 별장이 아니라, 다연과 연계된 리조트라고 들었는데.
한 군데에 몰아 놨으니 관리하기도 쉽고, 핑계도 적당했다. 이미선마저 아이들이 없는 이 기회를 틈타 귀찮고 손 많이 가는 일들을 싹 처리해 버리자고 좋아했으니까.
그런 어른들의 속도 모르고 이승연은 나름대로 생일 선물도 준비하려고 했다면서 아쉬운 얼굴로 말해 왔다.
-진짠데. 완전 끝내주는 거로….
“주면 너희 다 보충 수업이다.”
-윽. 왜요?!
“돈 없는 애들한테 선물 받아서 뭐 하게.”
-돈 없는?
이승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수 없는 녀석…. 다행히 이승연은 순순진에게 곧바로 응징당했다. 이제 카메라는 순순진의 손에 들어갔다.
-우 쌤, 혹시 수제를 좋아하는 타입?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그게 아니면….
“나중에 너희가 졸업하고 손수 돈을 벌게 되면 사 와라. 그럼 받아 줄 테니까.”
내 말에 순순진은 고양이처럼 생글거리며 웃었다.
-좋아요!
왠지 말을 잘못한 것 같은데….
-그럼 저희 생일도 졸업한 뒤에 챙겨 주는 거예요?
“…밥 정도는 사 줄 수 있지.”
-진짜죠?
“아니.”
-에이, 한번 말한 건 지키셔야죠!
“……뭔가 실수한 기분인데.”
-착각이에요!
내가 불길함에 떨든 말든 순순진은 과하게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 쌤, 이록이한테는 선물 줘도 되는 거죠?
나는 슬쩍 우이록을 보았다. 홍석영이 호들갑을 떨며 플라스틱 칼을 우이록에게 쥐여 주고 있었다. 우이록은 그걸로 홍석영을 찔러 버릴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무 문제 없었다.
나는 다시 순순진을 보았다.
“그러든지.”
-와! 그럼….
“내가 확인할 거니까 알아서 잘해라.”
-……넵.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관리청 애들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굴진 않았겠지. 하지만 걔넨 다 큰 어른이고 얘넨 미성년자이니 어쩔 수 없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축하해 줘서 고맙다. 그럼….”
-근데요, 선생님. 저희 방학 언제 끝나요?
“방학이 끝나면 보자.”
-그러니까 그 방학이 언제 끝나냐고요.
“그동안 너무 놀지만 말고, 공부도 하고.”
-쌤!
“너희들끼리 대련도 하고 그래. 알았지?”
-아니, 방학이….
“그럼 끊는다.”
순순진이 무어라 입을 뻐끔거렸지만,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 액정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날짜와 시간이 떠올랐다.
9월 30일.
나와 우이록의 생일이다.
* * *
생일이라고 해서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결국 1년 365일 중 하루일 뿐이고, 그런 날짜 하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거야말로 의미가 없는 일이다.
생일이라고 해서 몬스터가 얌전한가?
생일이라고 해서 던전이 잠잠한가?
생일이라고 해서 일이 사라지는가?
…아, 음. 뭐, 아버지는 생일이면 휴가를 내곤 했다. 아버지의 생일 말고, 미미. 그러니까 죽은 아내의 생일에.
그것까지 뭐라고 할 순 없지. 나도 공감 능력이라는 게 있다.
우이록은 기대 어린 얼굴로 생크림 케이크를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입에 표정이 미묘해졌고, 두 번째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세 번째에는 인상을 찌푸렸다.
케이크는 너무 달아서 별로라니까.
그래도 영화에서나 보던 케이크를 직접 보는 것에 만족했는지 우이록은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 이록아.”
“응?”
우이록은 입맛에 맞지도 않는 케이크를 먹으며 고개를 들었다. 맛은 없어도 아마 저 케이크 조각은 다 먹을 거다. 누굴 닮았는지 쓸데없는 고집만 세다. 나는 우이록의 옆에서 헤프게 웃고 있는 홍석영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다음 주부터 학교 간다.”
“…….”
우이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학교?”
“그래. 이제 갈 수 있어.”
“나, 나 아직 공부 다 못 끝냈는데!”
“괜찮아. 학교 가서 배우면 돼지.”
학교라도 다니면 좀 나아지겠지. 최소한 지금처럼 빈둥거리며 소파에 누워 고양이 애니메이션이나 보고 있진 않을 거다.
“잘됐구나, 이록아.”
홍석영은 미리 소식을 알고 있던 주제에 처음 들은 일인 것처럼 감탄했다.
“이제 책가방도 필요하겠네. 이록아, 아저씨가 가방 사 줄까? 이록이 생일 선물로. 어때?”
홍석영은 여전히 우이록을 향해 구애의 춤을 추고 있었다. 입양을 구애라고 말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꼴을 보며 코웃음을 치다가 이미선에게 슬쩍 다가갔다.
“이 헌터님.”
“아뇨.”
이미선은 대뜸 고개를 저었다.
“…네?”
“저 지금 진짜 바빠요.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물론 나는 이미선의 말을 무시했다. 아니, 일을 부탁하려는 게 아니었다고.
…아닌가?
“그거 말고,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들. 다 회수되었습니까?”
“…….”
이미선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대부분은요. 협회 도움을 받아서 등급 재조정 중인데…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요?”
“시키다뇨. 그동안 정중하게 부탁한 거죠.”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하세요.”
“부탁한 겁니다.”
“…….”
이미선은 나를 흘겨보았다.
“어쨌든, 등급 재조정 중이라면… 거의 작업이 끝났다는 거죠?”
“어떤 작업이냐에 따라 다르죠.”
“던전 관리법이요.”
이미선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홍 헌터님이 알려 줬어요? 아니, 저 양반은 이상하게 한 번씩 입이 가볍다니까요.”
사실 알려 주지 않았다. 나야 원래 이맘때쯤에 그게 시행되니 여기서도 비슷하겠거니 하고 찔러본 거다. 하지만 이미선이 물어본다면 홍석영은 부정하지 않고 자기가 그랬다며 웃고 말 거다.
명동 사태 이후로 국가에서는 길드에게 부여했던 던전 권리를 모두 회수했다. 이전에도 말이 나오고 있긴 했었다. 실제보다 한참 등급을 낮추어 신고를 한 바람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대응이 늦어져서. 명동이 쐐기를 박은 거지. 그러잖아도 한국의 던전 관리 방식을 비판하고 있던 협회는 얼씨구나 하고 등급 재심사를 도와주었을 거고.
사실 이게 맞긴 하다. 꼭 국가에서 관리할 필요 없이 등급 판정에만 관여해도 되기는 한데, 뭐 복잡한 정치적 다툼이 엮여 있다고는 들었다. 아버지가 지나가면서 한 말이었다.
어쨌든 길드에서 관리하는 것보단 이게 낫다. 길드라면 제아무리 홍석영이라 하더라도 싫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국가가 상대라면 다르다. 홍석영이 던전 하나 공략하겠다고 내놓으라 하면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다. 설사 허가가 나오지 않더라도 이미선이 어떻게 해 줄 거다.
…이미선의 일이 늘어나는 건가? 알 게 뭐야.
“언제부터 시행됩니까?”
이미선은 그런 내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10월 둘째 주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될 거예요. S급이야 조정될 등급도 없으니 제일 먼저 목록화될 거고, 그 아래는 차차….”
“잘됐군요.”
“왠지 선생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불안한데요.”
“착각입니다.”
나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들어가야 하는 던전이 하나 있는데, 확인을 해 줄 수 있습니까?”
“들어가야 하는 던전이요?”
이미선은 미간을 좁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쪽 관련이 아니고요. 한 선생님 데리고 공략이나 하나 할.”
“한 선생님과?!”
예상치 못하게 격한 반응이다. 나는 뭐 문제 있냐는 눈으로 이미선을 보았다.
“저기, 우 선생님. 아무리 홍 헌터님이 허락하셨다고 해도 사람을 찌르는 건 범죄예요.”
“……네?”
“한태경 헌터가 조금 시끄럽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거든요….”
조금?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말로 해결하자고요. 던전이 증거 인멸하기 편한 건 알고 있는데, 시범고 선생님들이 공략 들어가서 한 명이 안 나오면 그게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그제야 나는 이미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내가 무슨 오해를 받고 있는지도.
아니, 한태경이 오해를 받고 있는 건가? 분명 시범고에 오기 전 길드에 있었을 텐데, 도대체 어떤 길드 생활을 보냈는지 짐작이 안 간다.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미선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게 아니라 진짜 공략하러 들어가는 겁니다.”
“…한 헌터랑요?”
“네.”
“왜요?”
나는 우이록에게 커다란 분홍색 고양이 인형을 안겨 주고 있는 한태경을 보았다. 의기소침해 있는 주제에 그래도 할 건 다 하고 있다.
“한 선생님 실력을 확인하려고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