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82)
고양이 사변(3)
“자, 얼마 안 남았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속은 것 같습니다.”
“강해지고 싶다면서요?”
“저 역시 사기당했지 않습니까?”
“기껏 시간 내서 도와주고 있잖습니까. 계속하세요.”
짝짝.
독촉의 의미로 박수를 두어 번 쳤다. 한태경은 울컥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어허. 날 볼 여유가 있습니까? 좋군요. 쉬는 시간을 줄여도 되겠군요.”
“아뇨!!!”
한태경은 기겁하며 외쳤다.
“선배님, 아니, 교장 쌤도 휴식 시간만큼은 보장해 준다고요!”
“저는 교장 선생님이 아니니 차별화를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그렇게 우는소리를 해도 한태경은 착실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홍석영에게서 쓸 만한 검을 빌려오길 잘했다.
펄쩍펄쩍 뛰는 고블린들이 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본인 실력에 자신이 없다면서요. 던전 몇 개를 연이어 공략하다 보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될 겁니다.”
“판단은 무슨! 이거 그냥 제 노동력 착취 아니에요?!!”
한태경 주제에 예리한 면이 있다.
그러나 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하. 그런 거라면 고블린이 나오는 던전에 들어왔겠습니까. A급 던전이라도 들어가지.”
사실 들어갈 예정이다.
그냥 여긴 펜션에서 제일 가까운 던전이라 온 거다. 만약을 대비해서 정리해 놓는 게 마음 편했고, 이미선이 자신에게 일을 시키고 싶으면 뭐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하라고 눈치를 줬기 때문이다.
이미선의 그 눈빛이 겨우 C급 던전을 공략하라는 뜻은 아니었겠지만… 원하는 게 있다면 말을 똑바로 해야지.
뭐, 어쨌든 A급까지는 돌 생각이니까 그 정도면 이미선도 만족하겠지. 다른 사람 없이 둘이서만 공략할 거니 그 이상 가는 건 아무리 나라도 부담스럽다.
일단, 나는 안 싸울 거거든.
“거기서는 다리를 더 뻗으세요. 뻗다 마니까 자세가 어정쩡해지지 않습니까.”
“키엑!”
나에게 다가오는 고블린 하나를 걷어찼다. 등을 걷어차인 놈은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넘어졌다. 공교롭게도 한태경의 발치였다.
“선배님, 선배님은 진짜 하나도 안 잡을 겁니까?”
한태경은 고블린의 목을 베며 물었다.
“전 한 선생님 도우러 온 겁니다.”
“이게 어떻게 돕는 건데요!”
“말을 바꾸죠. 지도하러 온 겁니다.”
시범고 애들에게 고블린 던전 공략에 대해 가르친 적이 있었다. 애들한테 공략하라고 내건 가상의 던전도 이곳처럼 C급 던전으로 가정했었다. 그 던전은 지하 토굴이었지만, 여긴 지상이라는 점이 다를까.
고개를 들면 던전 특유의 밤하늘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별이 가득한 하늘.
건축물이라곤 하나도 없고, 던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 같은 자연물도 없다. 허허벌판에 고블린 수천 마리가 있을 뿐이다. 이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고블린이 아니었다면 S급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엄폐물이 없어서 불리한 건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 쪽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태경은 잘했다. 아직 경험이 적은 A급 헌터라고 생각하면 정말 잘 싸우고 있었다.
“거기서 뒤로 돌고. 허리 숙이고요. 펴지 마세요.”
한태경은 잔뜩 투덜거리면서도 내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나는 완성된 한태경을 알고 있다.
답안지를 보고 왔다는 점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와 마찬가지로 도움이 된다. 박서현이 대마법사가 될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의 속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과 같다. 아주 약간의 방향만 잡아 줘도 알아서 잘하기 때문이다.
한태경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태경은 어느 정도 싸울 줄 알기 때문에 변화가 크다. 한태경이 과거의… 미래의 돼지 새끼, 오현욱처럼 자존심만 더럽게 센 놈이었다면 이 방법은 먹히지 않았을 거다. 내가 한마디 할 때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더럽게 반항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한태경은 이미 나에게 한 번 졌고, 셈 블룸에게 져서 자신감이 다소 낮아진 상태였다. 그러니 내가 옆에서 뭐라고 지껄이든 입으로는 잔뜩 투덜거려도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거기서 한 바퀴 턴. 양손을 둥글게 말아서 들어요.”
“…이건 뭡니까?”
“앙오라고, 발레의 기본 동작 중 하나입니다.”
“네?”
“수고했다고요. 던전 핵 부수고 나갑시다.”
한태경은 뭐라 설명하기 힘든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래도 역시 군말하지 않고 던전 핵을 향해 걸어갔다. 아직 숨통이 붙어 있는 고블린들이 있긴 했지만, 겁을 잔뜩 먹어 덤벼들진 않을 것 같았다.
고블린과 마찬가지로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던전 핵은 오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대한 수정 원석처럼 생겨서는 그 안에 온갖 색이 다 들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별처럼 반짝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깊은 바다같이 보이기도 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홀릴 것 같은 깊음이 그 안에 있었다.
한태경은 핵을 그대로 베었다.
단단해 보이는 생김새와 달리 던전 핵은 무르다. 마력을 쓰지 않아도 가벼운 물리적 충격에도 금방 금이 가고 부서진다. 방금 한태경의 움직임으로 핵에 세로로 길게 금이 갔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지않아 핵이 무너질 것이다. 핵을 바로 파괴하지 않은 건 시간을 벌기 위해서이다. 게이트로 돌아가 밖으로 나갈 시간.
“갑시다, 선배님!”
“아뇨.”
그러나 나는 한태경을 붙잡았다.
이미 나는 알고 있다. 핵이 부서지고, 던전이 무너져 내리더라도 안에 들어간 헌터들은 바깥으로 무사히 나온다는 사실을.
“네? 지금 나가야 해요!”
“괜찮습니다.”
어느 순간 핵이 파괴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같이 사라진다는 게 기정사실처럼 되었다. 이십 년 뒤에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무너지는 던전 안에 남아 있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핵이 없는 던전에 남겨졌던 사람이 없을까. 분명 없진 않았을 텐데. 생존자를 그저 행운으로 취급하기라도 했던 건가.
하긴, 생존자도 거의 없었을 거다. 낮은 등급의 던전이라면 모두 게이트를 통해 나왔을 거고, 높은 등급이라면… 던전이 무너지기 전에 남아 있는 몬스터들에게 죽었겠지. 몬스터를 모두 죽였다면 굳이 던전 안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고.
한태경은 멀리서 보이는 게이트를 보며 끙끙거렸다. 내 팔을 풀고 달려가려고 했으나 금방 제압당했다.
“가만히 좀 있어요.”
“아니, 던전이 무너지고 있다고요!”
“괜찮다니까 그러네.”
한태경과 한참 실랑이했다. 마침내 삐걱거리던 핵이 완전히 부서졌다. 던전은 핵이 부서지고 난 뒤에도 꽤 오랫동안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키, 키이익….”
살아남은 고블린들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구덩이에 머리를 집어넣는 꼴이 마치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도 다시 한참을 기다렸다. 한태경은 마침내 나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포기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른 풀로 가득하던 벌판이 버석버석 갈라지기 시작했다. 말라비틀어진 풀은 나나 한태경이 건들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럴 때마다 고블린들의 비명이 더 커졌다.
던전이 무너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전은 오랫동안 버텼다. 흙바닥에 머리를 파묻었던 고블린들이 켁켁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구덩이의 흙이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고블린들은 펄쩍펄쩍 뛰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래 봤자 시야를 방해하는 게 없어 뭘 하는지 훤히 보였다.
고블린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검은 가루가 휘날린다. 흙과 풀이 먼지가 되어 부서지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빠져나가는 게 늦어지면 한 번씩 보게 되는 풍경이었다. C급 던전이라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진행 속도가 빨랐다.
그래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다.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던전 핵이 부서진 던전이 어떤 식으로 끝을 맞이하는지 궁금했던 건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더 작은 던전으로 해 볼 걸 그랬나.
바로 그때.
쨍그랑.
머리 위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었다. 별이 가득한 하늘을 가로지르는 선이 하나 생겼다.
쨍그랑.
하나 더.
쨍그랑. 쨍그랑.
계속해서.
하늘에 금이 갔다. 마치 하늘이 유리창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많은 실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그 사이로 마력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마치 황금처럼 보이는 찬란한 금빛 마력이다.
“우와….”
한태경이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공략 중에도 벗지 않은 선글라스가 희미하게 빛났다.
“선배님. 저건 무슨 현상입니까?”
“저도 모릅니다.”
이렇게까지 던전이 무너질 때까지 안에 남아 있었던 적이 없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던전 내부가 넓어지고, 핵을 부순다고 하더라도 던전이 무너지기까지 길게는 며칠이 걸릴 수 있다.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유리가 깨져 부서지기 시작했다. 저것도 유리라고 할 수 있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유리 조각은 마치 중력이 없는 것처럼 바닥으로 바로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다녔다. 마력이 부서진 틈 사이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어쩐지 갬블이 좋아할 만한 풍경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엉망이 된 펜션을 보고도 아포칼립스니 뭐니 하면서 영감이 샘솟는다지 않았나.
무너져내린 틈으로도 별이 가득한 하늘이 보였다. 금색 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것도 보였다. 무서울 정도로 거칠게 움직이던 마력이 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거다. 그 압력으로 인해 그러잖아도 금이 간 하늘이 끼기긱거리는 소리를 냈다. 부서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한태경이 조용해졌다. 선글라스가 번쩍번쩍 빛나는 걸 보면 한태경도 나와 비슷한 풍경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저 아이템은 나조차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박서현의 그림자 속에서 길을 찾아냈으니까. 한태경을 슬쩍 본 나는 다시 무너지는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숨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 고요함과 멀리서 들리는 고블린들의 비명. 머리 위에서 폭풍처럼 몰아치고 짓누르는 마력의 압박. 그리고 마치 하나의 세상이 부서지고 있는 걸 목도하고 있는 듯한 장엄함 속에서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어?”
한태경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나, 나왔네?”
“음. 역시 이렇게 되는군요.”
풍경은 삽시간에 바뀌었다. 흘러내린 마력 때문에 앞을 보기가 힘들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마치 꿈에서 깬 듯 기묘한 현실 감각이 나를 덮쳤다.
쏴아아….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바닷가에 있는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물이 빠지는 시간이었는지 서해의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 보았던 풍경과 똑같았다.
“원래, 어. 나와지는 겁니까?”
“그렇더라고요.”
“허, 그, 그렇군요….”
“어디 가서 말하지는 말고요. 지금 검증 중이거든요.”
“아하….”
한태경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헐레벌떡 따라왔다.
“이러면 공략할 때 더 편해지는 거 아닙니까?”
“왜요?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일단 핵만 부수면 되니까요! 게이트로 밖으로 안 나와도 나갈 수 있잖아요.”
“남아 있는 몬스터가 없다면 그렇죠. 뭐, 최후의 수단으로 핵을 부수고 도망쳐도 살아만 있으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는 편해지겠군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한태경은 히죽 웃으며 운전석에 올랐다. 나는 새하얀 클래식카를 노려보았다. 보닛에 그려진 고양이가 가증스럽다.
…잊고 있던 면허부터 따야지. 그리고 미뤄 둔 생일 선물로 자동차를 요구하자. 홍석영이라면 기꺼이 사 주겠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