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83)
고양이 사변(4)
“야!!!!!”
“야?”
“…우희재!!!”
“우희재?”
“……씨.”
“씨?”
“…………선배님.”
한태경은 입을 삐죽거리며 웅얼거렸다. 얼굴에는 여전히 반항 어린 기색이 묻어 있었지만 한풀 꺾인 기세다. 제법 마음에 드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자신감이 너무 없어도 곤란하지만, 너무 넘쳐도 난감하다. 뭐든 적당한 게 좋다, 적당한 게.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한태경은 고난과 역경을 스스로 극복한 탓에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철철 흘러내렸었다. 한태경은 그런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뭐, 자랑스러워했던 것도 이해가 안 거는 건 아니다.
아버지를 선배라고 부르며 따라다녔지만, 그뿐이다. 젊은 시절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간 일을 알 방법은 없지만, 최소한 내가 아는 한 아버지가 한태경의 배경과 실력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일은 없다. 한태경이 시범고와 관리청에 자리를 잡은 것도 결국은 한태경이 실력이 있어서였으니까. 그게 기준에 못 미쳤더라면 제아무리 후배라고 하더라도 아버지는 한태경을 써먹지 않았을 거다.
즉, 한태경은 독립적인 헌터였다. 자신의 의지를 필요 이상으로 관철하는.
누군가는 그런 한태경을 좋아했을 수도 있다. 골치 아픈 성격이었지만 한태경이 끝까지 1팀의 팀장으로 있었던 건 이유가 있다.
하지만 아버지를 비롯해서… 1팀에 속한 헌터들도 간혹 중얼거렸다.
‘우리 팀장님이 실력뿐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성장하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불쌍한 1팀이 이번에도 똑같은 고난을 겪도록 만들 순 없지.
그래도 내가 억지로 한태경을 기죽이는 것도 아니고. 이건 정당한 지도다.
저것 봐라. 그새 야, 라고 불러 대기 시작하는 놈을 무슨 수로 기를 죽이냐고. 이런 놈들은 봐주면 금방 기어오른다. 꼬투리가 잡히지 않도록 정당한 이유로 찍어 눌러야 한다.
“힘이 빠졌는데요, 한 선생님.”
나는 자세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말했다. 한태경은 몸서리를 쳤다.
“아니, 지금 제가 며칠째 던전 공략만 하고 있는데 당연히 힘이 빠지죠!!”
“더 할 수 있는 거 압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선배님이 왜 아냐고요!!!”
한태경의 입에서 우는 소리는 나와도 못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한태경은 솔직했다. 묘하게 거짓말을 못 하는 인간인지라.
지금도 입으로는 질려 하지만 착실하게 몬스터의 공격을 피해 내고 틈을 엿보고 있다.
음. 물론 사람이 혼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적절한 칭찬. 적절한 칭찬….
“그래도 고블린 잡을 때와 비하면 훨씬 나아졌습니다. 이제 슬슬 A급으로 들어가도 되겠군요.”
“네?!”
한태경은 파드득 떨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한태경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곰을 가리켰다.
“한눈팔지 말고요.”
오늘 한태경은 내가 홍석영에게서 빌린 검이 아니라 어디서 주워 왔는지 모를 무기를 들고 있었다. 아니, 진짜로. 저건 어디서 난 거래?
촤르륵.
한태경은 사슬을 끌어당겼다. 마력이 담긴 사슬은 자아를 가진 뱀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사슬은 바닥을 기어가 두 발로 선 곰의 뒷다리를 타고 올라가 숨통을 죄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은 한태경과 연결되어 있다. 정확히는 한태경이 들고 있는 낫과.
“…….”
한태경이 저딴 걸 들고 싸우고 있게 된 사고 과정은 쉽사리 추측할 수 있었다.
검을 들었더니 내가 자세를 지적해 온다. 그러니 지적하지 못하도록 내가 다루지 못할 것 같은 무기를 들고 오자.
그래서 한태경은 다음 던전에 들어갈 때는 홍석영이 빌려준 검을 거절하고 다른 무기를 들고 왔다.
멍청하게도 창을 들고 오더라.
한태경 앞에서 창을 쓴 건 홍석영과의 대련 아닌 대련을 했을 때였으니 내가 창이 서툴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그건 사실 대련이라고도 할 수 없었고, 창이라고도 하기도 뭣했다.
나는 한태경의 착각을 정정해 주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주 무기를 오인당하는 건 슬프지 않은가.
‘헉, 허헉, 서, 선배님. 잠깐 쉬었다 가도….’
‘창은 지팡이가 아닙니다. 똑바로 드세요.’
‘쉬었다….’
‘저기 몬스터 있네요.’
‘쉬었….’
‘뭐 합니까? 가서 안 잡고.’
‘…….’
한태경은 그다음 던전에서 또 무기를 바꿨다. 이것저것 대충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한태경은 어떤 의미로는 아버지가 원했던 헌터상이기도 했다.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능숙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검이든 창이든, 단검이든 뭐든 상관없다. 다룰 수 있는 무기가 많다는 건 헌터의 강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다. 특출나게 잘 다루는 무기가 없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특출난 헌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
내가 아는 한태경은 후자다.
그래서 나는 선의를 담아 한태경을 굴렸다. 노아 미셀이 대뜸 방주의 주인으로 나온 이상 이쪽 전력을 조금이라도 높여 놔야 한다.
물론 한태경이 우는 것처럼 쉬지 않았던 건 아니다. 중간중간 펜션에도 돌아갔다. 우이록의 첫 등교를 챙기지 않으면 두고두고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서 싸우지 말고.’
‘…….’
‘이록아, 알겠지? 학교에 있는 애들은 연구소에 있는 애들 같지가 않으니까….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야 해.’
솔직히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전학생이란 타이틀이 이렇게 불안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당분간 우이록은 근처에 있는 도시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이승연과 강태우가 청춘 여행을 떠났던 버스 터미널이 있는 곳이다.
시범고 건물이 세워지고, 내가 지낼 곳도 확실하게 정해지면 우이록도 전학 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학교에 얼마 다니지도 못할 텐데 괜히 혼란만 증가시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펜션에만 있게 하는 것도 조금. 잠깐이라도 학교에 다녀 보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시범고 애들과도 그럭저럭 잘 어울렸으니 괜찮겠지.
우이록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걱정을 숨기고 등을 떠밀었다.
‘잘 갔다 와.’
우이록은 내 얼굴을 보며 한참 있다가 차에서 내리며 대답했다.
‘…다녀, 오겠습니다.’
다행히 우이록은 적응을 잘하고 있었다. 저 시절의 나는 내 기억보다 사회화가 잘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벌써 일주일도 더 된 이야기. 매일 아침,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어 지유건의 차를 타고 등교하는 우이록을 확인했다. 걔가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자마자 나는 한태경을 끌고 본격적으로 던전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한태경의 매일같이 바뀌는 무기는 그렇게 지낸 지 나흘 만에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래 버티기는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한태경은 낫과 사슬이라는 기상천외한 무기를 들고 왔다. 언제쯤이면 한태경이 포기라는 것을 배울까. 아버지는 한태경과 달리 제정신이었기 때문에 저런 미친 무기를 들고 싸우지는 않았다. 사실 헌터 중에서도 저따위 무기를 들고 다니는 놈이 있다고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니,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검이 있는데 누가 저딴 무기를 들고 싸우겠냐고….
“자세를 더 낮추라니까요.”
하지만 한태경이 잘못 생각한 게 있다면, 결국 무기는 무기란 거다. 나는 저런 괴악한 무기는 써 보진 않았지만, 사슬을 사용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있다. 꼭 사슬이 아니어도, 비슷한 느낌으로 사용하는 것들이 있다. 황금 실을 꼬아 만든 밧줄처럼. 그 밧줄은 헌터들이 자주 사용하는 물품 중 하나로 끊기가 아주 힘들다. 덕분에 몬스터를 포획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대충 비슷한 걸 떠올리고 빈 부분은 경험으로 채워 넣는다. 그럼 저런 정신 나간 무기에 대해서도 대충 조언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무기가 바뀐다고 해서 전반적인 전투 흐름이 달라질 일도 없잖은가. 몬스터한테 맞으면 아프다는 사실은 한태경의 손에 뭐가 들렸든 바뀌지 않는 사실이었다.
“거기서는 팔을 더 뻗어야죠. 힘이 부족하잖습니까. 아니, 그렇게 말고!”
“이익…!”
“사슬은 장식입니까? 거추장스러워할 거면 가져오질 말았어야죠.”
한태경은 버스만 한 곰의 목에 걸린 사슬을 잡아당겼다. 곰을 버둥거리다가 한태경의 힘에 끌려 앞발을 내렸다. 한태경은 그대로 숨통을 끊어 내려는 것처럼 사슬을 더 끌어당겼다. 곰은 바닥에 앞발을 단단히 박아 넣고 버티기 시작했다.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주둥이에서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한태경은 사슬을 움직였다. 곰이 한태경을 떨어뜨리기 위해 몸을 격하게 흔들었다. 한태경은 사슬을 꽉 쥔 채 타이밍을 엿보다가 곰의 움직임에 맞추어 뛰어올랐다. 그대로 곰의 목덜미에 올라타서 정수리를 낫으로 내리찍었다.
…그냥 검을 쓰지. 왜 하필 낫을?
곰은 머리에 낫을 꽂은 채 버둥거렸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곰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은 뒤, 한태경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핵은 더 들어가야 있더라고요. 저놈이 보스였으니 핵만 부수고 바로 나갑시다.”
“…저 혼자서 엄청나게 고생했는데.”
“아, 네.”
“…….”
“…….”
한태경은 입을 쭉 내밀었다. 뭐야? 뭘 원하는.
아. 뭐, 달래 줄 땐 달래 줘야 오래 부려 먹을 수 있겠지.
“수고하셨습니다.”
“네!”
말 한마디로 저렇게 기분이 휙휙 바뀐다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편 아니겠는가.
남아 있는 몬스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보스가 죽으면서 기세가 확연히 꺾였다. 던전 핵에 다가가려는 걸 막는 놈이 몇 마리 있었지만, 어느새 사슬과 낫이 손에 익었는지 한태경이 훨씬 가뿐하게 처리해 냈다.
“선배님. 이거 꽤 괜찮은 무기 아닙니까?”
“…맘에 들면 쓰세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요. 괜찮지 않습니까? 유니크하잖아요.”
“남들이 안 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아, 선배님. 저한테 너무 냉정하다니까요. 저도 동생한테 하는 것처럼, 네? 친절하게.”
“한 선생님은 제 동생이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역시 우이록과 한태경을 더 떼어 놔야 한다.
“그럼 시범고 애들처럼?”
“걔들이 미성년자라 제가 봐주고 있는 건 알고 하는 소리죠?”
한태경은 대답하지 않고 핵을 부수었다. 챙캉!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핵은 손쉽게 박살 났다. 던전이 무너져도 무사히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한태경은 거리낌 없이 던전을 부수었다.
핵이 완전히 부서진 걸 확인한 후 다시 게이트로 이동했다. 던전이 무너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니 매번 기다릴 순 없었다.
“B급 던전도 이제 익숙해졌으니 A급으로 가 볼까요.”
“저 A급인데요.”
“헌터 등급이 실력을 뜻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통행세 기준인 거지.”
“아니, 그렇긴 한데 그래도 어느 정도 기준은 되잖아요. A급 던전을 혼자 공략하라고요? 저도 제 실력은 압니다, 선배님.”
“제가 한 선생님이 공략을 못 할 곳을 골랐겠습니까. 한 선생님 능력이라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습니다.”
한태경은 입술을 파들파들 떨었다.
“휴, 휴식 시간은 충분히 주시는 거죠?”
“…….”
“주시는 거죠?”
“교장 선생님께 포션이나 받아서 갑시다.”
“…….”
한태경은 발을 질질 끌며 내 뒤를 따라 걸었다. 마치 사형 선고라도 받은 얼굴이다. 누가 보면 내가 괴롭히는 줄 알겠네.
“괜히 도와달라고 했어….”
안 들린다, 안 들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