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85)
선택과목(1)
“집에서 동물 키우는 게 아이들의 정서에 좋대요.”
“…딱히 반대하는 건 아닌데요.”
“그럼 표정이 왜 그래요?”
갬블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뭘 하려는가 싶어 가만히 지켜보니 곧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똥 씹은 표정!”
“…아, 네.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군요. 교재라도 필요하십니까?”
“요즘 인터넷으로도 학습 프로그램이 잘되어 있어서요.”
나는 갬블의 말에 맞추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갬블은 내 성의 없는 태도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커피를 홀짝였다. 우유 거품으로 제법 사실적인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이상하게 재주가 많은 바리스타… 아니, 헌터라니까.
나는 혹시나 해서 갬블에게 물었다.
“커피 내려 주는 사람 헌터인 건 알죠?”
“네? 헌터였어요?”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갬블은 자신의 커피와 부엌 쪽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야기는 다시 우이록의 새끼 고양이로 돌아왔다.
“표정이 안 좋아서 동물 싫어하는 줄 알았죠.”
“…싫어하진 않고요.”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우이록이 다른 것도 아니고 무언가 키워 보고 싶어할 줄은 몰랐다. 그게 고양이가 되었든, 강아지가 되었든. 하다못해 햄스터나 물고기라도.
왜냐하면 나는 한 번도 뭔가를 키워 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거든.
나는 학교에서 나눠 주는 강낭콩도 키우기 귀찮아했던 아이였다.
‘친구네 고양이가 새끼 낳았다고 했거든!’
‘…그래.’
‘한 마리 데려가도 된대서 데려왔는데.’
우이록은 슬쩍 내 얼굴을 살폈다.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얼마든지 투쟁을 일으킬 얼굴이었다.
‘이거 내 생일 선물로 할래.’
‘생일 선물?’
‘고양이 키우기.’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 걸 생일 선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안다.
‘나중에 가지고 싶은 거 생기면 말하랬잖아.’
‘그러니까 얘 키울래.’
‘아니, 쟨 키워도 되고…. 책임지고 돌볼 자신은 있어?’
‘안 그랬으면 안 데리고 왔어!’
‘그래…. 고양이 키우는 법은 알아? 찾아봤어?’
‘응.’
‘그럼 나중에 필요한 거 형이랑 같이 사러 가자….’
우이록은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좋은가.
우이록은 내가 자러 가라고 할 때까지 새끼 고양이 옆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나도 옆에서 고양이를 한참 지켜보았지만 역시 모르겠다. 동물? 동물보다 못한 인간들을 더 많이 봐서 그런가…. 아. 그런 거라면 인간 대신 키워 볼 만도 하지.
나는 턱을 매만졌다.
우이록이 학교에 다닌 지 이제… 며칠 됐더라. 보름? 어린아이에게는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나도 다른 친구 집에 놀러 가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보육원에서 우이록을 데려왔을 때부터 알긴 했지만….
이렇게 눈앞에 사실이 대뜸 밀어 넣어지면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진다. 우이록은 정말 내가 아니구나 싶어져서. 이제 와서 홍석영이 우이록을 입양한다고 하더라도 우희재가 될 순 없다.
쟨… 글쎄, 나와는 달리 헌터가 되고 싶어 하려나? 시범고 애들이 구르는 걸 재밌어하던 것도 처음에만 그랬다. 뒤로 갈수록 질려 하던 기색을 떠올리면 헌터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건 나와 같을 수도 있겠다.
그럼 뭐가 되려나. 나처럼 영화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도 별로라며 생각지도 못한 것을 해 보겠다고 할 수도 있고. 지금처럼.
난생처음 다녀 보는 학교에도 금방 적응하고, 얼룩무늬 새끼 고양이를 키워 보고.
…아버지도 날 보며 똑같이 느꼈으려나.
“근데 고양이 이름은 정했대요?”
“…….”
이번엔 내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도 새끼 고양이를 들여다보며 요란하게 싸우고 있던 우이록과 한태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체이시!! 체이시야!!!!’
‘미친 거 아냐? 얘 아저씨 고양이 아니거든요?!’
‘고양이인데 어떻게 체이시가 아닐 수 있어?!! 그리고 아저씨 아냐! 형이라고 불러!!’
‘아저씨!!!’
‘야, 내가 너네 형보다 어리거든?!’
‘아저씨!!!!’
‘아저씨 아니라고!!’
내 표정을 보더니 갬블은 알만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도 이쪽대로 한태경한테 시달렸다.
던전을 돌던 도중 잠시 펜션에 들를 때마다 한태경이 갬블을 찾아내서 그 고양이에 대해 떠들어 댔으니까. 그렇게 얘길 했는데 왜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아 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쨌든 고양이 때문에 던전 들어가는 것을 며칠 미루었다. 한태경은 아닌 척 좋아했다.
쉬는 동안 우이록과 함께 고양이 용품을 사러 가고…. 아. 면허. 이김에 면허도 얼른 따 놔야지. 매번 다선 헌터나 김채민을 대동하는 게 번거로웠다.
“어디 있나 했지. 어제 던전 공략하고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펜션 한구석에 있는 테이블에서 갬블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으니, 홍석영이 찾아왔다.
홍석영은 갬블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더니 나를 불렀다.
“희재 군, 잠시만.”
“왜요?”
“내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희재 군의….”
“그거 그만하라고요!”
“…선생님인데 둘이서 대화도 못 하나?”
젠장.
괜히 약점만 잡혀 가지고.
갬블이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거리길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갬블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얼굴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챙겨 온 연습장을 펼쳤다. 그러다가 나를 붙잡았다.
“아!”
“…네?”
“말하는 거 깜빡했는데. 샨샨이 조만간 한번 찾아오겠대요.”
“조만간?”
“목적은?”
나와 홍석영이 동시에 물었다.
“어떻게 오겠다는 겁니까? 예의, 그거? 순간이동?”
“네? 아뇨. 비행기 타고 정식으로요. 대충… 가족 방문? 같은 느낌으로?”
“가족?”
“가족 같은 사이니까요! 제가 취직했다니까 구경하고 싶다는 핑계를 댈 거라고 하긴 하더라고요. 다른 곳도 아니고….”
갬블은 홍석영을 보았다.
“그 홍석영의 길드니까요. 사실 평범한 헌터라면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겸사겸사 미셀도 놀리고?”
“그건 샨샨이 이미 잘 했을 거지만…. 와도 괜찮죠?”
나는 홍석영을 보았다.
홍석영은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배를 탔다고 할 수 있는 사이인데 한 번쯤은 정식으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지. 앞으로는 불쑥 찾아오지 말고 이렇게 박사를 통해 오라고 전하게.”
“네!”
“언제 올지 정해지면 말해 주고.”
“넵.”
갬블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호프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호주와의 시차가 어떻게 되더라…. 잠은 자나? 육체는 인간이랬으니 자기야 하겠지만.
“그럼, 희재 군?”
홍석영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싫은 표정을 지으며 홍석영의 뒤를 따라갔다.
* * *
“무슨 일인데요?”
홍석영은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왜요?”
“인식표는?”
“네?”
“인식표.”
홍석영은 자신의 인식표를 꺼내 흔들었다. 이름 첫 자도 다 새겨지지 않았다.
“하고 있어?”
“어….”
“하고 다니라니까. 이번에 던전도 들어갔다 나왔지 않나.”
“그래 봤자 C급이랑 B급인데요.”
“이번엔 A급이었다고 들었는데.”
“공략이 거진 끝난 곳이라 안에 두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홍석영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자네가 과거로 오기 전. 제일 먼저 터졌다는 그 던전도 D급이었다며. 송파구 절반 날려 버렸다지?”
“…….”
“방심하면 안 돼. 특히 던전 안이라면.”
맞는 말이라 반박은 할 수 없었다.
“해.”
“…뭐를요?”
“지금 인식표 목에 걸라고.”
“나중에 필요하면 제가 걸겠습니다.”
“지금 여긴 걸핏하면 던전이 터진다니까? 나중에 필요할 때는 너무 늦었어. 지금 바로 걸게.”
“…….”
틀린 말이 없다. 홍석영은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지갑.
“지갑? 그거 아공간인가?”
홍석영은 내 허름한 지갑을 알아보았다. 처음 과거로 왔을 때, 붙잡혀서 수사실에 넘겨졌었지. 그때 이 지갑도 압수당했었다. 홍석영도 살펴보았을 거다.
“네. 제 마력 패턴으로 열리는 거라 저만 열 수 있습니다.”
“그거 탐나는 기능인데.”
“십 년쯤 뒤에 다연에서 개발하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보세요.”
“십 년이나?”
“그땐 환갑이던가.”
“…아니, 그렇지는 않거든.”
홍석영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공간에 들어 있는 인식표는 두 개. 잘못 꺼내지 않도록 주의했다. 홈이 파여 있는 거 말고,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것.
가죽끈에 꿰어진 인식표. 아버지게 내게 주었던 것.
홍석영은 내가 인식표를 꺼내자마자 손을 뻗었다. 인식표 앞뒤를 꼼꼼하게 확인한 뒤에야 홍석영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항상 하고 다녀.”
“…네.”
이걸 내 목에 걸지 않는 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았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인식표를 목에 걸었다. 기껏해야 반년 정도 목에 걸고 있지 않았을 뿐인데,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왠지 머쓱해져서 목을 긁적였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요?”
“음? 아, 셈 블룸 말이네.”
“…사실 살아 있었다, 뭐 그런 말 하려는 건 아니죠?”
“자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은데.”
“…….”
홍석영은 킬킬 웃다가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부검 결과가 나왔네.”
“…이제요?”
“결과가 뜻밖이라 이런저런 검사를 더 진행했거든.”
“도대체 어땠길래?”
“몬스터야.”
홍석영은 평이하게 내뱉었다. 그래서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네?”
“인간이 아냐. 몬스터라고.”
“…….”
“재밌는 거 알려 줄까?”
“보통 재미없는 이야기를 할 때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맞아. 재미없는 이야기네.”
그러나 홍석영은 여전히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싱겁게 재미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는데도.
…그만큼 정말 재미가 없다는 거다.
“다리는 인간이야. 몸통도 인간이지. 내부 장기 중에는 조금 애매한 게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인간이야.”
단어 선택이 묘하다. 인간. 전반적으로 인간.
그러나 홍석영은 셈 블룸이 몬스터라고 했다.
“팔은 확실히 몬스터. 음, 깃털이 달려 있는데 그게 인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그리고 셈 블룸도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했었다.
홍석영이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부위가 있었다.
“…머리는요?”
“아, 머리. 여기가 정말 재미있어.”
“…….”
“여기도 대부분 인간이야. 머리카락, 피부, 혀, 식도. 아, 귀까지.”
“눈도요?”
“그건 몬스터.”
아직 남았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이.
답변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으면 확신할 수 없다.
홍석영은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나는 짓이기듯 내뱉었다.
“뇌.”
“역시 내 아들이라니까. 딱 알아차리네.”
“몬스터였습니까?”
“음. 인간과 몬스터가 적당히 공존하고 있었다는 느낌이었지.”
홍석영은 씩 웃었다. 일렁거리는 마력이 느껴진다.
“그걸 진행 중이라고 표현하기로 했네.”
‘노아는 눈을 안 바꿨거든.’
호프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이만하면 자길 인간이 아니라고 칭할 만하지. 셈 블룸이 거짓말은 안 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