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88)
일상(1)
우이록의 하루는 간단하다.
먼저 7시 20분 기상. 알람 소리에 맞춰서 눈을 뜨지만, 침대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앞으로 기울어지던 머리가 침대에 닿을 때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똑똑똑.
“…….”
대답이 없으면 얌전하던 노크가 거세게 바뀐다.
쿵쿵쿵!
“우이록, 일어나!!”
형의 목소리다.
“학교 지각할래?!”
“…아니이…….”
꾸물거리는 대답이 들려오면 그제야 문을 두드리는 걸 멈춘다. 우이록은 침대에 머리를 박고 꿈틀거리다가 거의 미끄러지듯 침대에서 내려왔다.
일단 두 발로 일어서자 정신이 든다. 우이록은 머리를 마구 긁적였다. 그대로 방을 나서려다 말고, 우이록은 몸을 돌려 엉망인 이불을 정리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우이록은 형과 같은 방을 사용했다. 연구소에서 사용했던 것보다 족히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침대 두 개가 들어갔는데도 한참 남을 만큼 방은 컸다. 연구소에서야 열 명도 넘는 애들이 방 하나를 같이 썼으니 형과 같은 방을 사용해도 상관없었는데, 형은 그걸 마음에 들지 않아 했었다.
‘애들한테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법이라고요.’
‘저기, 우 선생님. 여기가 무슨 호텔 같은 곳이라고 착각하고 계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었어요?’
‘…….’
‘농담이고요. 어차피 지금 제가 쓰는 방도 회의실에 있던 가구 다 빼고 침대 넣은 거라면서요. 방 하나 비워 주면 고마울 것 같은데.’
처음에는 형이 자신과 같이 지내는 게 싫었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침대와 책상, 작은 옷장이 있는 방을 보자… 뭐라고 해야 할까. 안심이 되었다. 우희재는 우이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여기가 네 방이야. 네가 뭘 하든… 아니, 방을 부수거나 하는 건 안 되지만. 다른 사람이랑 있기 싫으면 여기 와 있으면 돼. 형도 네 방에 들어올 때는 꼭 노크할 테니까.’
‘노크?’
‘그래. 이렇게 방문을 두드려서 볼일이 있다고 말해 주는 거야. 네가 허락하지 않으면 안 들어가는 거지.’
처음으로 주어진 자신만의 공간.
우이록은 방을 가진 다음에야 왜 형이 자신에게 방을 만들어 주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형에게도 그런 공간이 필요했던 거구나.
지금에서 다시 형과 같은 방을 쓰라고 하면 싫다고 꽥 고함을 내지르고 말 거다. 형과 같은 방을 쓰라니? 일단 형은 늦게 자고,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데다가, 별 쓸데없는 잔소리까지 따라온다.
‘이록아. 이게 다 형이 너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으. 싫어.
쾅쾅쾅!!
“우이록!! 일어나!!!!”
“일어났어!!!”
우이록은 문을 향해 꽥 고함을 내질렀다.
“그럼 얼른 씻고 밥 먹어!!!”
“알았다고!!”
말끔하게 펴진 이불을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은 우이록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방을 나섰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전날 챙겨 둔 가방을 들고나오면 이미 아침을 먹고 있던 사람들이 반겨 주었다.
“이록아, 잘 잤니?”
홍석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우이록을 위해 의자를 꺼내 주었다. 우이록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의자에 앉았다.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그런 우이록을 향해 아침 인사를 던졌다. 오늘은 그래도 사람이 적은 편이다.
홍석영과 우희재, 다선이라는 길드 사람들, 얼마 전부터 여기서 일하게 되었다는 흑인 누나 한 명. 산드라라는 이름으로 소개받은 외국인 여성은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다가 우이록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상하게 자길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우이록은 고개를 살짝 꾸벅이며 인사에 답했다.
“얼른 밥 먹어.”
그리고 그런 우이록을 향해 우희재가 신문을 뒤적거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침 식사는 대체로 간단하고 빠르게 준비할 수 있는 메뉴였다.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는 우이록은 뭐가 되었든 배불리 잘 먹었다. 오늘은 설탕을 입힌 프렌치토스트와 베이컨이 듬뿍 들어간 오믈렛, 샐러드와 오렌지가 식탁 위에 있다.
“자, 부족하면 더 말해.”
우이록은 자기 앞에 놓인 토스트를 빠르게 먹어 치웠다. 지유건은 그런 우이록을 보고는 프라이팬에서 막 구운 프렌치토스트 하나를 접시 위에 더 올려 주었다.
“이 나이에는 원래 이렇게 많이 먹던가?”
“지 헌터. 애 먹는데 구박하지 마.”
“구박하는 게 아니라요. 우 선생님 키가 크니까 이록이도 많이 크려나 싶어서 그런 거죠.”
“아… 뭐. 저랑 비슷하게 크지 않을까요.”
“하, 부럽다. 이록아, 크면 형한테 10cm만 떼어 주지 않을래?”
우이록은 프렌치토스트를 꿀꺽 삼키고 한심함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대꾸했다.
“지금이라도 운동하세요. 학교에서 체육 쌤이 그랬는데, 농구가 키 크는 데 좋은 운동이래요.”
“내 나이에 농구 해서 키 클 수 있으면 진작 했을 거란다….”
다 큰 아저씨가 키가 뭐라고 우는소리를 한담.
우이록의 시선이 더욱 차갑게 식어 갔다.
식사가 끝나면 얼추 8시가 된다.
지유건은 차 키를 들고 일어났다. 최근에는 지유건이 우이록의 등교를 도맡아 하고 있다. 우희재와 홍석영이 배웅을 위해 차고까지 따라왔다.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맨날 하는 소리!”
“친구와 싸우지 말고.”
“안 싸워요!!”
“수업 시간에 졸지도 말고.”
“아저씨는 어릴 때 졸았죠?”
“저 아저씨는 무단결석도 많이 했을걸.”
“어허! 희재 군, 그런 말 하지 말게! 애가 듣고 배우면 어쩌나.”
“그럴 생각 없거든요.”
홍석영은 부루퉁하게 내뱉은 우이록의 말에 껄껄 웃기 바빴다.
우이록은 입술을 더 쭉 내밀며 홍석영과 우희재를 보았다. 요 며칠 동안 던전을 공략하니 마니 하면서 자리를 비운 우희재를 대신해서 홍석영이 아침마다 우이록을 챙겼다.
형은 아침에도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방문만 두드렸지만 홍석영은 달랐다.
‘이록아.’
‘…….’
‘이록아. 지금 안 일어나면 지각인데?’
‘으으음….’
볼을 쿡쿡 찌르는 손길이 거치적거려서 이불 안을 파고들면 어쩐지 귀가 간지러워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잠결에 무심코 그 목소리를 더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걸 깨닫자마자 눈을 번쩍 떴지만.
벌떡 몸을 일으키면 그제야 볼을 찌르던 손이 사라진다. 홍석영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낄낄 웃었다.
‘아이고, 아주 푹 잤나 보네.’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오면 화장실까지 등을 떠밀었다.
‘얼른 씻고 나오렴.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지.’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며 우이록은 신기하기만 했다.
‘이록아, 아저씨 아들 안 할래?’
홍석영이 입에 달고 다니는 그 말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기한테 해 주는 모든 행동들이 연구소에서 봤던 영화 속의 아버지들 같아서.
저런 게 일반적인 아버지인 걸까?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네 아버지는 일하는 중이라며 없었다. 그래도 음. 거실에 있던 가족사진을 보면 좋은 아빠 같았다. 자신을 만든 그 사람들과는 달리.
아니지, 아니다. 그래도 우이록에게는 그런 부모도 아닌 부모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사람이 있다. 형.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해 준 사람.
“조심해서 갔다 와.”
우희재가 손을 흔들었다.
우이록은 잠깐 망설이다가 형을 보며 물었다.
“형, 던전에는 또 언제 가?”
“던전?”
우희재는 턱을 매만지다가 대답했다.
“아직 잡힌 건 없지만…. 다음 주에는 하나 들어갈 거야. 왜?”
“아니. 그냥. 형 원래 던전 들어가는 거 싫어했잖아.”
“그거야….”
우희재는 지유건이 탄 자동차 문을 열며 대꾸했다.
“던전에 들어가면 네가 걱정됐으니까 그렇지.”
“지금은 걱정 안 해?”
“당연히 걱정되지.”
우희재는 대신 들고 있었던 우이록의 책가방을 자동차에 실었다.
“평생 걱정할걸. 내 동생인데 당연하잖아.”
우이록은 내가 걱정되면 던전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형이 하는 일에는 이유가 있었다. 괜히 고집을 피워서 형을 곤란하게 만드는 건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그리고 형은 언제나 돌아왔다. 우이록에게는 그거면 되었다.
“알았어. 그럼 나도 형이 걱정되니까 항상 조심해야 해. 알았지? 애들이 그러는데 던전에 들어가는 거 엄청 위험한 일이랬어.”
“뭐….”
우희재는 어깨를 으쓱였다.
시계가 8시 10분을 가리키자 지유건이 초조한 기색으로 세 사람을 흘깃거렸다.
“저기, 지금 안 가면 이록이 지각해요.”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이록아, 잘 갔다 오렴.”
우이록은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홍석영과 부드럽게 웃고 있는 우희재를 보았다.
차고 안으로 아침 햇살이 밝게 들어왔다.
우이록은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작게 서려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 * *
“…….”
“…….”
“자네 말이야.”
“조용히 하세요.”
“…….”
자동차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기다리던 홍석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조용히 하라니까요.”
우희재의 단호한 말에도 불구하고 홍석영은 굴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자랐나?”
“…욕입니까?”
“아니. 내가 잘 키웠다고.”
“욕입니까?”
“자네도 저렇게 귀여운 시절이 있었나? 아니, 지금도 내 눈엔 귀엽긴 하지만. 그, 무슨 말인지 알지? 저 나이 때는 사실 뭘 해도 귀엽긴 해.”
우희재는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귀를 씻어 내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반응이 재밌어서 괜히 더 장난치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뭐, 아직도 다선의 헌터들이나 이미선은 한 번씩 우희재를 어려워하는 눈치이기는 했다. 속이야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는 맺고 끊음이 확실하다 보니.
물론 김채민이야 예외로 둬야 한다. 마법사는 아무래도 감각이 조금 이상하니.
“그나저나 생각보다 호프가 빨리 오겠다던데.”
어제, 밤늦게 갬블이 호프의 일정을 알려 왔다. 우희재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놈도 제법 급한가 보죠.”
“그렇기야 하겠지.”
홍석영은 자신이 한 제안에 대해 우희재가 어떤 선택을 할지 듣지 못했다. 우희재가 무슨 길을 택하든 간에 지지할 거란 말은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말하지 않으면 그것으로도 족했다.
우희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얼굴로 가만히 있다가 불쑥 물었다.
“김 선생님은 도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습니까?”
“김 선생?”
홍석영은 화려한 인상의 젊은 대마법사를 떠올렸다.
“미셀에 대한 정보를 박박 긁는 중이네.”
“…아무리 김 선생님이라고 해도 프랑스의 자랑에 대한 정보를 얻긴 힘들 것 같은데요.”
“노아 미셀을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꼬장꼬장한 노친네들이 있는 모양이야. 미셀이, 아. 자네는 모를 수도 있겠군. 몇 년 전에 인도의 마법사들과 한판 했거든.”
“인도요?”
“나도 마법사 쪽 사정은 잘 모르는데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나 봐. 그쪽을 쑤시면 뭐가 나올 것 같다고 하더라고. 아버지 쪽 인맥도 있으니까.”
우희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쓸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좋고. 나도 미국의 아는 사람한테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 놨네.”
“미국이요?”
“호프가 오면 자세히 털어 볼 거긴 하지만, 중남미 쪽에서 활개 치는 방주 조직도 신경을 써야 하니….”
“아. 하긴, 거기도 꽤 문제가 크죠.”
“솔직히 당장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곳은 그쪽이지.”
홍석영은 우희재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펜션으로 돌아갔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