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89)
일상(2)
강태우는 가끔, 아니, 사실은 제법 자주 이승연이 부러웠다.
무슨 일에도 무던하게 웃고, 손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누군가 자신을 밀어낼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채. 혹시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금방 훌훌 털어 버리고서는 그다음을 생각한다.
그 외에도 이승연이 부러운 이유야 여럿 있었지만, 역시 제일 부러웠던 건.
‘다음번에 잘하면 되지!’
그 대책 없는 해맑음 아니었을까.
살면서 가장 심각했던 고민이 기껏해야 친구들 사이의 다툼이 전부였던 인간.
‘다음번이 없으면 어떻게 해?’
그게 얄밉기도 해서 일부러 물어보면 고민하는 시늉도 없이 단번에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또 하면 돼.’
한 번도 인생에 ‘다시’라는 기회가 없었던 강태우는 그런 이승연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마 이승연도 강태우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더 짜증이 솟구쳤다.
‘계속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잖아.’
‘야. 넌 애가 왜 이렇게 우울해?’
‘내가 뭘….’
‘다음번이 없을 것 같으면 다른 것도 해 보면 되지! 인생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하나만 할래?’
그러니까 이승연은 자신이 소위 말하는 ‘있는 집안’의 자식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분명 이승연은 자신이 짜증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해맑아서 그렇지,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승연은 여전히 경쾌하게 웃으며 듣는 사람 속 터지는 소리를 해 댔다.
‘그렇게 하다 보면 뭐라고 잘하는 걸 알게 되겠지.’
‘…….’
‘아니다. 네가 잘하는 일을 계속하면 되잖아. 너 말곤 아무도 못 할 것 같은 걸로!’
그게 말이 쉽지.
울컥하는 마음에 날카로운 말을 내뱉으려다가도 꾹꾹 눌러 참았다. 이승연은 그게 정말 진심이었기 때문에 한 말일 테니까.
나쁜 의도는 없다. 이승연은 정말 응원하려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다. 이제 강태우도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이승연을 알게 되었다.
‘야. 날 봐. 나도 솔직히 잘하는 거 하나 없는데 뭐라도 하고 있잖아.’
‘형은….’
연구소에서 보았던 영화 하나가 떠올렸다.
돈이 있는 것도 재능이다. 그게 할아버지 돈이든, 부모님 돈이든.
연구소에서, 보육원에서 지냈던 강태우는 일찍 현실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충분한 돈이 있다면….
동시에 강태우는 불가능한 현실을 꿈꾸는 소년도 아니었다. 강태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모를 이승연은 손안에서 볼펜을 굴리며 입을 오리 주둥이처럼 쭉 내밀었다.
‘그리고 너 재능 있던 것 같은데. 안 그러면 우 쌤이 너만 특별히 봐줄 리가 없잖아. 그거 아냐? 나 너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날? 왜?’
‘그야 난 헌터가 되고 싶었으니까!’
이승연은 그 말이 또 뭐가 그렇게 웃긴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여전히 강태우는 이승연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왜 여기에 이러고 있더라? 각성한 것까지는 우연이었고, 그것 때문에 우희재에게 전화한 건 보육원의 원장님이 시켜서였다.
그러고 보면 우 선생님은 진작 날 알아봤겠구나…. 전화번호를 준 것도 일부러였겠지.
평범한 아이였다면 상처받았을지도 모르지만 강태우는 그러려니 넘어갔다. 자신이 우희재여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육원이 그 꼴이 났는데도 자신을 보호해 주다니. 사람 좋은 것도 정도가 있지. 내가 나쁜 마음을 먹었으면….
강태우는 교장 선생님과 이승연의 고모를 떠올렸다.
뭘 하기도 전에 그 두 사람이 나섰겠지. 내가 누굴 걱정해.
어쨌든, 강태우의 미래 계획에는 헌터는 물론이요, 각성조차 없었다. 그래서 헌터가 되고 싶어 하는 이승연을, 이번에도 이해하지 못했다.
‘헌터가 되면 죽을 수도 있잖아.’
‘그게 낭만인 거지!’
‘…….’
왜 그게 낭만이 되는 건지, 역시 강태우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말들이었다.
부잣집 애는 원래 이런 성격인 건가? 보육원 시절 다녔던 고등학교에도 그럭저럭 돈 많은 티를 내는 무리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애들도 저런 말은 하지 않았다.
정말 목숨을 걸고 던전을 공략하고 다니는 현역 헌터들이 들었더라면 기함했을 말이다. 강태우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떠오른 걸 드디어 눈치챘는지 이승연은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아니,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그럼?’
‘순전히 내 노력으로만 이룰 수 있는 거잖아. 부모님의 도움 같은 거 없이. 내가 열심히 하냐 안 하냐에 따라서….’
‘지금도 이미선 헌터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던데.’
‘아, 아픈 데 찌르지 마라!’
‘그리고 꼭 그게 헌터여야 하는 거야?’
‘응?’
‘세상에는 노력 없이 얻을 수 없는 건 없는데.’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건 있지만. 강태우는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를 매만졌다.
이승연은 강태우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 그래서 내 노력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거든.’
강태우는 알 듯, 말 듯 미묘한 얼굴로 이승연을 보았다. 역시 이 형과는 맞지 않는다. 성격이나….
아니지. 다른 사람에게라면 모를까, 나 자신에게는 솔직해야지.
강태우는 이승연이 부러웠다. 저 해맑은 성격이 제일 부러웠지만, 역시… 저런 성격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질투였다.
저렇게 풍족한 환경까지는 아니어도 자신 또한 어머니의 사랑과 지지를 잠시나마 받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스쳐 지나갔던 그 사랑을 꾸준히 받아 온 사람은 저런 성격으로 자랐겠구나 싶어서.
뭐.
다 지나간 일이다.
바꿀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만큼 미련한….
“으악!”
쾅!
“승연아. 그래서 책상이 부서지겠어? 더 세게 박아야지.”
연필 끝을 잘근잘근 씹어 대고 있던 박서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꽂혔다.
“기왕 머리 깰 거면 나가서 깨고 와. 집 안에서 다치면 귀찮으니까.”
뒤를 이어 순순진이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줄래?”
한은영도 차갑게 말했다.
“그으, 답답하면 산책이라고 하고 와.”
유혜은은 부드럽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승연은 짧은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가 연필을 내던졌다.
“우리가 왜 이걸 하고 있어야 해?!”
이승연이 던진 연필은 문제집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거실에 커다란 상을 펴고 옹기종기 모여서 문제집을 풀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다 퀭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나마 차분했던 것은 여자아이들이었고, 이승연처럼 연필을 내려놓은 것은 남자아이들이었다.
강태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채점을 계속했다. 동그라미. 동그라미. 아, 이건 틀렸다.
“헌터는 싸움만 잘하면 되는 거 아냐?!”
“우 쌤이 그랬잖아. 싸움은 머리로 하는 거라고.”
지겨운 표정을 짓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풀고 있던 문제집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서한성이 대답했다. 이승연은 고개를 번쩍 들고 서한성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 머리는 이 머리가 아닐 거라고!!”
이승연의 수학 문제집에는 빨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처참한 결과물이 눈앞에 드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서한성은 웃기만 했다. 강태우는 서한성의 채점지를 흘깃 보았다. 틀린 문제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판단해?”
“아니, 딱 보면 알잖아, 딱 보면! 몬스터 잡는 데 미분이 왜 필요하냐고!! 이걸 해서 어디에다 써먹어?!”
“…대학 가는 데?”
서한성이 다소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승연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서한성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 길드 만들 거잖아. 그거 하려면 너네 고모처럼 대학 나오는 게 좋을걸.”
“서한성 말이 맞아. 내가 저번에 알아봤는데 길드 만들면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더라고.”
서한성의 뒤를 이어 입을 연 건 이승연처럼 연필을 집어 던지고 바닥에 드러누운 오현욱이었다.
이승연은 틀린 개수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보다는 오답이 적은 오현욱의 문제집을 훔쳐보며 억울한 얼굴로 외쳤다.
“그런 건 다 사람 쓰면 돼!”
“사람 쓰는 것도 사람 쓰는 거 나름이지. 걔네가 너 몰래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사기 안 당하려면 아는 게 많아야 해.”
“무슨 소리야? 원래 사기는 고학력일수록 잘 당한댔어.”
“아. 그래서 중졸로 만족하시겠다?”
“변명 하나는 기가 막히네…. 사기 안 당하려고 중졸로 남겠다는 거냐?”
“야, 현욱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진짜 덜떨어지고 이상한 사람 같잖냐.”
“그럼 아냐? 떠들려면 나가서 떠들어! 방해하지 말구!”
결국 박서현이 잔뜩 짜증 냈다.
그제야 이승연은 눈치를 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박서현은 그게 더 짜증이 났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박서현은 연필 끝으로 강태우를 가리켰다.
“너도 쟤처럼 얌전히 공부하라구. 쟤보다 네 성적이 더 낮은 거 알지?”
“아, 태우는 얼마 전까지 학교 다녔잖아!”
“무슨… 넌 안 다닌 것처럼 말한다? 지금 우리 공부 봐주는 선생님도 원래 네 과외 선생님이셨다며.”
“시범고 들어가고 난 뒤로 그 과외 쌤 다시 안 볼 줄 알았다, 솔직히.”
이승연은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딱 봐도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짓이라 다들 크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채점을 끝낸 강태우는 빨간색 색연필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던 가닥이 있어서인지 요 몇 달 동안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도 걱정했던 것만큼 성적이 떨어지진 않았다.
아니, 이젠 성적이라고 하지 말고 검정고시 준비라고 해야 하나….
결국 이승연을 시작으로 모두 문제집에서 시선을 뗐다. 반년 넘게 마력 운용이니 던전 공략법이니 공부와 담쌓은 생활을 하다가 막상 하려니 적응이 되지 않던 것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마지막까지 어색하게 연필을 쥐고 있던 강태우는 이승연의 독촉 아닌 독촉에 시달려 잠깐의 휴식을 즐기기로 했다.
“근데 우리 학교로 인정될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굳이 검정고시 칠 필요는 없잖아.”
“너희 고모가 말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기초적인 공부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금이야 어쩔 수 없이 여기서 과외나 받고 있지만 나중엔 학교에서도 한다며?”
“뭐? 진짜? 고모가 그랬어?”
“그래도 학교인데 몬스터나 던전 관련된 것만 배우게 할 순 없다고…. 너 도대체 설명해 줄 때 뭐 들었냐?”
“수능도 보게 할 거라고 했는데. 딴 건 몰라도 국어, 영어, 수학은 해야 한댔어.”
“솔직히 국어나 영어까지는 그렇다 쳐도 수학은… 모르겠다. 해야 하나?”
“몬스터 몇 마리 죽였는지 알려면 해야지.”
“그건 수학이 아니라 사칙 연산이지.”
시답잖은 이야기가 오가긴 했지만, 강태우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왜 어른들이 자신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누가 강태우에게 말해 주거나, 강태우가 유독 눈치가 빨라서 그랬던 건 아니다.
‘애들 놀게만 하지 말라는 거엔 동의하지만…. 검정고시?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애들한테는 필요가 없을지는 몰라도… 아니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까요. 걔네 중에서 헌터가 되고 싶지 않은 아이가 생길지도 모르잖습니까.’
‘으음, 뭐. 그럴 수도 있죠.’
단순히 우희재와 이미선이 이야기하는 걸 몰래 들었었기 때문이다.
아마 우희재라면 자신이 듣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챘을 것 같지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