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91)
가정 방문(1)
과거로 온 뒤로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일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주로 아버지와 유지은이 나에게 숨겼던 일. 혹은 방주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고 미친놈들이라는 사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다.
“형!! 형!!!!!”
“…왜.”
“이거 봐라!!”
“뭔데.”
“조커가 토했어!! 헤어볼이래!”
“버리고 와.”
“왜?!”
“버려.”
“으….”
육아를 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우이록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뒤를 작은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저 모습만 보면 고양이보다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있다는 다선의 헌터 하나는 지금의 저런 모습을 즐겨야 한다고 했다. 고양이도 머리가 굵어지면 인간에 대한 흥미를 잃고 고양이가 되어 버린다고.
…의심스러운 발언이긴 하지만, 저 고양이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우이록은 경험자의 조언을 유심히 들었고, 결국 남는 건 사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새끼고양이의 사진과 영상이 우이록의 일과에 자리 잡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일에 증거물을 남기고자 하는 모습은 확실히 나와 닮긴 했는데.
그래도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금방 꺼지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우이록은 고양이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이름도….
그래. 이름.
다행히 스트레이트나 플러시, 원페어 같은 이름이 붙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커가 괜찮은 이름처럼 들리진 않았다. 차라리 스페이드 같은 이름이 더 무난하지 않았을까? 일단 한태경이 저 이름을 좋아했다는 사실부터가 잘못되었다는 증거라고.
하지만 자기 고양이 이름, 자기가 짓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어차피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내가 후회하나. 쟤가 부끄러워하겠지.
다 그렇게 크는 거다.
내가 말렸다는 사실만 존재하면 된다.
“김 선생님은요?”
나는 우이록이 충분히 멀어진 다음에야 슬그머니 내 뒤로 다가온 이미선에게 물었다.
“겨우 전화가 되긴 했는데, 뭔가 엄청 급한 일이 있던가 보더라고요.”
“급한 일이요?”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한 뒤로는 전화도 이제 안 돼요.”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거라는 믿음은 있지만….
“…그럼 김 선생님 없이 진행하는 걸로?”
“홍 헌터님도 계시니까 호프가 다른 마음을 먹진 못하겠죠.”
내일이면 알렉스 호프가 온다.
호프와 셈 블룸이 자신의 마법을 쏙쏙 피해 간 것에 자존심 상해 하길래 당연히 이때까지는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래도 그간 지켜보았던 김채민은 없는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다. 분명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거겠지.
“정식 공문까지 보냈는데 다른 마음 먹으면 곤란해지는 건 우리뿐만이 아닐걸요.”
“하하하. 그건 그렇죠.”
이미선은 얼마 전 받은 공문을 떠올렸는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저번처럼 몰래 오지 않고, 정식으로 방문하겠다는 호프의 말은 사실이었다.
호프의 길드에서 보낸 공문에는 호프의 인적 사항이 구구절절 적혀 있었다. 세계미공략던전 포럼에서 보았던 호주 헌터의 얼굴이 괜히 떠올랐다. 같은 길드 소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프를 대하는 꼴을 보면 알 만했다. 그쪽에서도 호프는 꽤… 요주의 인물이었던 모양인지 공문에서는 어떻게든 호프가 준법정신이 투철한, 무해한 헌터임을 강조했다.
그렇게 해 봤자 알렉스 호프가 어떤 놈인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우린 이미 호프의 정체를 알고 있고, 알고 있다고 해도 방문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잖은가. 걜 데려와서 이야기하는 건 우리에게도 급한 일이다.
어쨌든 호프는 친지 방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갬블이 지내고 있는 곳이 현재 홍석영의 길드 거점으로 되어 있어서 절차가 이렇게 복잡해진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외부에서 만나면 된다. 우리가 갬블을 가둬 놓고 외부 접촉을 싹 끊어 버리는 악독한 회사도 아니고. 외국에서 온 직원의 사생활을 하나하나 감시한다면 그게 더 문제다.
그러니 그런 공문을 타 길드에게, 그 길드의 소속원을 만나고 싶다는 이유로 보내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다. 그 문서를 작성했을 길드 사무직원이 안쓰러워졌다. 그걸 작성하고 보내는 데에 어쩐지 호프의 고집이 들어갔을 거라는 영문 모를 믿음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여전히 알렉스 호프는 종잡을 수 없었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예상되는 행적이 있었다.
호프의 길드에서 필사적인 공문이 몇 차례 더 오고 나서야 일정이 잡혔다.
겉보기에는 평화롭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방문인데, 보이지 않는 곳은 엉킨 실타래보다도 더 복잡하다.
호프가 일부러 그딴 문서를 보내온 것도 미셀 때문이 아니겠는가. 호프가 하는 짓을 보니 노아 미셀은 호프가 멍청하고 요란하게 굴수록 학을 떼는 모양이던데.
“하하. 하하하….”
나는 웃음을 영 멈추지 못하고 있는 이미선을 보았다.
뭐, 나나 홍석영 입장에서야 지루한 직장 생활에 활력을 더해 주는 에피소드였지만 그걸 처리해야 하는 실무자로서는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미선이었으면 진작 홍석영을 칼로 찔렀다.
호프를 죽이면 국제적인 문제가 되니까 비교적 당사자와 완만한 협의를 거칠 수 있을 것 같은 홍석영이 낫지. 어차피 다치기나 할까.
물론 나보다 이성적인 이미선은 홍석영의 뒤통수를 죽일 듯 노려보기만 하고 행동에 옮기진 않았다. 그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아쉬운 듯 손을 한 번 꿈틀거렸을 뿐이지.
대신….
“아. 그리고, 우 선생님.”
“네?”
“공략한 던전은 전부 정산 완료됐어요.”
내 뒤통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마는….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오늘 안에 입금이 될 거고요, 뭔가 문제가 있다면 말해 주세요.”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홍석영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건 이미선, 길드 다선이지 않은가. 모기업인 다연인가? 그럼 그쪽에 말해야지. 협회 일까지 쓰리잡 뛰라고 한 건 홍석영이 아니다.
그리고 그 파트너십은 정확히는 홍석영 개인이 아니라 홍석영의 길드와 맺은 계약이었고, 길드원이 늘어나다 보니 나와 갬블의 일도 이미선에게 갔을 뿐이다.
마음에 안 들면 사람을 늘리든지, 아니면 관두든지.
그래도 이미선의 시선이 내 뒤통수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홍석영보다 내 뒤통수가 난도가 낮은 것도 사실이고.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되고 일을 부탁할 거,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한 헌터한테도 이야기를… 아, 그 인간은 또 어디 갔어!!”
“차고로 가 보세요.”
친절, 친절.
이미선은 내 목을 조르고 싶다는 얼굴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고로 향했다.
아니,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이게 다 본인이 유능해서 생긴 일이잖아. 원래 현대 사회에는 유능한 사람에게 일이 몰리게 되어 있다….
* * *
“조커!”
그래.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육아를 하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흐른다.
일주일 동안 관리청에서 비상근무 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시간 흐름이었다. 그땐 너무 바빠서 고개를 들고 시계를 확인할 때마다 두세 시간씩 지나가곤 했다.
당연히 그때보다야 지금이 여유롭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시간은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아침에는 우이록 등교시키느라 정신없고, 오후에는 데리고 오느라 정신이 없다. 숙제시키고, 좀 놀아 주고, 저녁을 먹이면 하루는 금방 끝난다.
내가 우이록 입장일 때는 몰랐는데…. 정말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키웠지. 심지어 지금은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우이록을 돌봐 줄 사람도 많고, 지켜봐 줄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없었다. 아니,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같은 건물에 지내고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걸 알았더라면 매년 어버이날 때 카네이션 화분 말고도 좀 더 신경 써서 선물을 준비했을 텐데.
얼마 전에 결국 면허를 땄다. 어차피 운전이야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시작했다. 2021년의 운전면허 시험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쉬웠기 때문에 단번에 붙을 수 있었다.
자동차는 펜션에 굴러다니는 다선의 자동차를 빌렸다. 내가 우이록을 데리러 가면, 우이록은 옛날 생각 난다며 좋아했다. 덕분에 나도 괜히 감성에 잠겼다.
물론 우이록은 자동차가 멈추자마자 바로 뛰어내려서 고양이에게 달려갔다. 나는 뒷좌석에 팽개쳐진 책가방을 들고 터덜터덜 걸었다. 아버지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카네이션 화분 말고 다른 걸 준비했어야 했다, 진짜.
“조커야! 잘 있었어?”
“야옹.”
“그런데 왜 이름을 조커로 지은 거니?”
곧바로 고양이에게 달라붙는 우이록의 곁에는 갬블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처음에 갬블에게 낯을 가리던 우이록도, 갬블이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자 빠르게 친해졌다. 갬블이 한국어를 잘한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솔직히 우이록보다 잘하지 않을까 싶은 정도다.
좀 더 객관적인 이유를 들자면 지금 이 펜션에 있는 사람 중 한가한 사람이 갬블과 한태경밖에 없었다는 것도 있었고.
“그야 멋지잖아.”
“그런가?”
“멋지다고.”
우이록은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이다.
갬블은 그런 우이록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처음에 연구소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피하던 것과는 달라진 반응이다. 갬블도 마찬가지다. 실험 장비도 없는 여기서 갬블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홍석영에게 붙들려서 아침 운동 하기? 각성자이기는 해서 그럭저럭 쫓아오기는 하는데, 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냈다. 물론 홍석영은 갬블의 고통을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심심한 두 영혼은 인종과 국가의 장벽을 넘어 친구가 되었다. 갬블과 우이록이 친해지면 호프가 더 건들지 못하겠다는 계산으로 놔두고 있었고.
솔직히 우이록의 관심을 가져가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학교에 적응을 완료한 우이록은 나날이 요구 조건이 늘어났고, 하나같이 매우 구체적이었다.
‘형, 나 저거 가지고 싶어.’
처음에는 단순한 장난감으로 시작해서.
‘형, 나 노트북 살래.’
갑자기 난도가 훅 뛰더니.
‘형, 나 태권도 배울래.’
이건 좀 그 나이대 남자애가 요구할 만했다.
가지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우이록을 보고 있다 보면 기분이 묘해지곤 했다. 나와 비슷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을 요구하는 걸 보면… 사람이란 결국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구나 싶어져서.
저렇게 고양이와 놀고 있는 우이록은 자라서 내가 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우이록! 오늘 친구 집에서 잔다며. 얼른 짐 챙겨. 형이 데려다줄 거니까.”
“어제 다 챙겨 놨어!”
“잊어버린 건 없어? 잠옷은? 숙제도 챙겼어?”
“엉!”
우이록은 방에서 가방을 들고 다시 나왔다. 슬슬 날씨가 쌀쌀해지는 터라 외투를 입는 것까지 확인하자 우이록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형.”
“음.”
“조커 밥 잘 챙겨 줘야 해. 알았지?”
“…알았어.”
우이록이 주말에 친구 집에서 하루 자고 와도 되냐고 물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적당한 이유를 지어내느라 골치 아팠을 것이다.
아무리 우이록이 갬블과 친해졌다고 해도 말이지, 되도록이면 호프와 같은 공간에 두고 싶지 않았다.
“이록아, 잘 놀다 와.”
손을 흔들며 우이록을 배웅하는 갬블과 눈이 마주쳤다.
갬블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