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93)
가정 방문(3)
“내가 왜 방주를 쫓게 되었는지 모르나?”
“산드라. 알아?”
호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갬블을 돌아보았다. 소파에 앉아 있던 갬블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무릎을 세워 끌어안았다. 불안해 보이는 몸짓이다.
“노아 미셀이고 뭐고 간에, 난 원래 남미의 암시장에서 뭣도 모르고 활개 치는 놈들을 잡아 죽이려고 했었거든.”
“아.”
그 말을 듣자마자 호프가 어깨를 움츠렸다. 마치 홍석영의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홍석영이 더 말을 잇기도 전에 호프가 다급하게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역시 자네가 한 짓이군?”
“안 하고 싶었다니까?!”
“그런데도 했다는 거 아냐.”
“재미도 없는데 누가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해! …아닌가? 하고 싶어 하던 인간이 꽤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할 말은 다 했나?”
폭풍처럼 거센 마력이 몰아친다. 톱날처럼 날카로운 기세가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단번에 솟구쳤다.
호프는 화들짝 놀라며 갬블에게 달려갔다. 소파에 올라가서 갬블의 등에 딱 달라붙자 갬블은 당황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호프를 자기 등 뒤에 숨겼다.
아주… 쌍으로 지랄하고 있네.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건 홍석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딴 짓을 하고도… 잘도 내 앞에 뻔뻔히 나타났어.”
“저번엔 괜찮았잖아! 왜 지금 와서 그렇대?”
“사람이 그땐 어이가 없어서 제대로 생각을 못 했거든.”
“그럼 거기서 끝이야! 이미 지나갔다고!! 원래 시간이 지나면 그거, 그거! 벌 안 받는다고 했단 말야!!”
“공소 시효? 이 건은 해당 사항이 아닌데. 게다가 목에 걸린 현상금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아니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어쩔 수 없었다고!”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그렇게 말하더군. 그리고 높은 비율로 시답잖은 이유를 대더라고. 내가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다.”
홍석영은 더욱 사납게 웃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다들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도 영문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홍석영이 왜 이러지? 내가 놓친 게 있던가?
“어쩔 수 없었다.”
홍석영이 씹어 먹어도 부족할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도 아니라면 그렇게 말하더라고. 난 안 그러려고 했는데 쟤가 먼저.”
“어, 으음….”
“저기, 얘가 아니라 제가 시켰어요.”
몸을 작게 말고 있는 호프 대신 갬블이 나섰다. 호프에게 쏟아지는 살기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닐 텐데 갬블은 홍석영을 똑바로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별거 아닌 각성자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다면 파로스 사의 산드라 갬블이 되지도 못했겠지.
“제가 시킨 일이라구요. 그러니까 얘한테 그러지 마세요.”
무릎에 올려놓은 손이 덜덜 떨린다. 창백한 얼굴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홍석영을 노려보고 있다.
가족이라고 했던가. 세상에는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 많은데 조금 감동적인가… 싶었지만, 홍석영은 오히려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좋게 생각해 주려고 했는데.”
“다 알고 우리 받아 준 거 아니었어요?”
“그랬어야 했지.”
“그러면서 이제 와서?”
“이제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거든.”
홍석영의 손이 꿈틀거린다. 금방이라도 무기를 빼 들 것 같은 모습이다.
아니, 도대체 이 아저씨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나도 여전히 호프가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다만 지금 호프를 죽이면 여러모로 일이 꼬인다는 건 안다. 게다가 갬블! 산드라 갬블은 지금 죽으면 안 된다. 저 여자가 나중에 발명할 것들을 생각해 보라고. 마력 측정기야 내가 설계도를 가지고 있다지만,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분명 그 점도 설명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 아저씨가 저러는 이유를 알아야 나도 뭐라고 말릴 수 있다. 다급하게 이미선을 돌아보자 이미선도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득이 없다.
“그리고 자네 입으로 인정했지.”
홍석영이 돌변한 이유가 뭐였지?
호프에게 뭘 물었더라?
호프가 방주의 보스라는 소문과….
“자네는 인간성이라며? 타인의 인간성을 자처한다면 적어도 그만큼 사람 됨됨이는 좋아야 하지 않나.”
“됨… 그게 뭔데요?”
“…….”
갬블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홍석영의 흉흉한 기세 따위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갬블의 실력이라면 저렇게 멀쩡할 리가 없는데. 괜히 의심스러워서 유심히 살펴보자, 아니나 다를까. 호프가 뒤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은근슬쩍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홍석영의 말에 당황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갬블에게 해를 끼친다면 가만히 당하고 있진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갬블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손에 언뜻 마력이 넘실거렸다.
“얼마나 사람다운지 말하는 거야. 남을 해치지 않고,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
홍석영은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어가 서툰 갬블을 위해 설명했다.
여전히 홍석영의 손은 허전한 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홍석영도 호프가 무엇을 대비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정면에 있는데 눈치를 못 채는 게 이상하지.
이거 진짜 큰일 나겠는데.
나야 괜찮겠지만…. 일단 일이 일어나면 산드라 갬블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미선도 아슬아슬하다. 헌터로서의 이미선의 실력이 대단하지는 않다. 다선의 헌터들은… 괜찮을지도. 한태경이 있었다면 한태경도 어떻게 몸을 뺄 수 있었을 거다. 주말 동안은 공략할 던전도 없으니 휴가라도 즐기고 오라고 했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지만.
“최대한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샨샨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말해도 그딴 일을 저질렀으면….”
필사적으로 홍석영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방주의 보스가 호프라는 뜬소문과, 홍석영이 방주를 쫓게 되었던 이유.
아.
잠깐만.
홍석영은 원래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범죄 조직을 쫓고 있었다. 이미선과 김채민도 마찬가지다. 어쩌다가 나와 엮이고, 아이들을 납치한 연구소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뿐 처음에는 분명 남미 암시장에서 활개를 치던….
홍석영은 방주를 쫓고 있던 이유를 분명히 말했다. 놈들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좀 더 개인적인 사유도 있었다.
던전 내부에서 살해당한 지인의 유해를 되찾기 위해.
이미 시간이 꽤 지났으니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나가면서 들었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했다는 말도 아니다.
최소한 사람을 죽이고 시신마저 훔친 놈들을 찾으려고 했겠지.
“…….”
나는 눈을 찌푸렸다.
이건 안 된다. 글러 먹었다. 홍석영을 막을 방법은 없다. 내가 옆에서 아무리 뭐라고 한들, 홍석영은 듣지 않을 거다.
그리고 나에게도 홍석영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놈들과는 아무리 위급 상황이라 하더라도 손을 잡을 수 없다. 오히려 그딴 짓을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우리한테 협력을 요청하는 게 소름 끼친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생각도 못 할 일이잖은가.
나는 뒤로 물러났다. 이 일에 끼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아직 무슨 일인지 깨닫지 못했는지 이미선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이미선도 홍석영과 같은 이유로 방주를 쫓고 있던 게 아니었나?
…하긴, 그 사이에 방주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이 많이 밝혀졌지. 진작 초기의 목적을 잊어버렸다고 해도 놀랍지는 않다.
“물론 그게 잘못된 일인 건 알죠!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요. 미셀의 눈을 피해 영향력을 키우려면 돈이 필요했고….”
갬블은 지지 않고 대꾸했다.
“최대한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처리하려고 했어요.”
“피해가 가지 않는 선? 피해란 피해는 다 끼쳐 놓고선?”
“그렇다고 저희가 가짜를 거래한 것도 아니고.”
“가짜? 하, 기도 안 차는군. 돈이 필요해서 그 짓을 했다고?”
홍석영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마력이 더욱 폭발적으로 휘몰아쳤다. 이미선이 숨쉬기 버거워졌는지 작은 신음을 냈다.
갬블도 얼굴이 창백해지긴 했지만, 호프의 보호 아래에서 어떻게든 버텨 냈다. 호프는 이제 홍석영을 노려보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갬블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여전히 호프를 등 뒤에 숨기는 자세였다.
홍석영도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갬블에게 다가갔다.
“겨우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팔아 치웠다는 건가?”
“물론 유적지를 멋대로 도굴하는 건 잘못이지만 최대한 온전히 보존했다고요!”
“…….”
“…….”
부글부글 끓던 마력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갬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경이 콧대에서 미끄러졌다. 오래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었다.
“시, 시체? 시체를 팔아요?”
홍석영도 입을 크게 벌렸다. 흔히 말하는 대로 파리라도 한 마리 들어갈 것은 얼굴이었다.
“유적지? 도굴했다고?”
그리고 싸늘한 정적이 맴돌았다.
“…….”
“…….”
나도 상황 파악이 덜 되었지만 뭔가 오해가 있었다는 건 알겠다.
침묵을 깨기 위해 나서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호프가 갬블의 뒤에서 삐죽 나타났다.
“으응. 좋아.”
뭐가 좋다는 건지.
“이럴 걸 대화가 필요하다고 해야 하는 거겠지.”
“…….”
“…….”
“마침 잘됐다. 우리 대화하려고 모인 거잖아?”
틀린 말은 아닌 게 기분 나빴다.
“…그렇긴 하지.”
“좋아, 좋아. 이야기 좀 해 보자. 내가 이런 부분은 많이 약한데, 지금 우리 사이에 엄청난 오해가 있다는 건 알겠거든?”
“…….”
한층 소강상태가 되었다.
홍석영은 한숨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 갬블과 호프는 소파 구석으로 물러났다. 소파가 커서 다행이다. 갬블과 호프, 홍석영 사이에는 우이록 하나를 눕혀도 남을 만큼 공간이 있었다.
이미선은 고집스럽게 앉기를 거부했고, 나는 일인용 소파에 따로 앉았다. 앞으로 무슨 이야기가 나오든 동요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물론, 이 각오는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홍석영은 항상 내 예상을 뛰어넘는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내겐 처남이 하나 있어.”
“……!”
깜짝 놀라서 홍석영을 보았다.
처남이라면 보통 아내의 남자 형제를 뜻하는 단어였다. 홍석영의 입에서 나올 만한 단어 중 제일 거리가 먼 것이었다.
“아내의 남동생이지.”
아내가 입양되었던 미국인 가족의 친자라고, 홍석영은 덧붙였다.
“그리고 헌터였어.”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전 가족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아버지는 여전히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그 말은 적합하지 않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죽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 아들이나, 아내.
죽은 아내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성격이 조금 급한 게 흠이기는 했지만, 실력은 괜찮은 녀석이었어. 그 던전에서 사고를 당할 만한 애는 아니었거든.”
홍석영이 왜 그리 화를 냈는지 이해가 됐다.
갬블 또한 마찬가지였다. 갬블은 어깨를 움츠리며 홍석영의 눈치를 보았다.
“장모님이 울면서 소식을 전해 줬는데…. 내가 처남 시신을 수습하진 못하더라도 그렇게 만든 놈은 다 죽이겠다고 약속해 버렸지 뭔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