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94)
가정 방문(4)
헌터 사회에 몸을 담고 있다 보면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홍석영의 죽은 아들에 관한 이야기도 그중 하나였다.
뭐, 그래도 아버지의 아들, 홍세운에 대한 이야기는 그전에도 종종 들을 수 있기는 했다. 유명인에게는 항상 악의적인 소문이 따라다니기 마련이었으니까. 하나뿐인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이야기였을 거다. 어린아이의 귀에 남몰래 속삭일 만큼.
하지만 그런 나도 아버지의 아내… 분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집에 사진이 남아 있긴 했지만 내가 아는 것은 딱 그 정도. 아버지와 동갑이었고, 같은 고아원 출신이라는 것.
그런 만큼 나에게 갑작스럽게 등장한 아버지의 처남의 존재는 퍽 당황스러웠다. 비록 불운한 사건에 휘말려 죽은 이라 하더라도.
하지만 이미선은 이미 알고 있었던 얘기였는지, 뒤늦게 홍석영이 이러는 이유를 알게 되어 놀란 것 말고는 다른 반응이 없었다.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홍석영을 이렇게 뒤흔들 수 있는 존재가 가족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아니, 오히려 더 있는 쪽이 무섭다.
“그런데….”
날뛰는 마력 자체는 가라앉았지만 그게 평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홍석영은 여전히 날카로운 눈초리로 갬블과 호프를 바라보았다.
“저흰 모르는 일입니다!”
갬블은 잽싸게 말했다.
“아깐 돈 때문에 했다며?”
“도굴 건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죠! 그런… 그걸 거래하진 않아요!”
“그래?”
홍석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사와는 달리 저쪽은 뭔가 아는 눈치인데.”
“네? 어, 어어? 샨샨?”
“응? 아, 내가 하진 않았어. 산드라도 마찬가지고. 그건 나쁜 짓이잖아.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알아도 자네라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지 않나.”
“흐응.”
호프는 잠깐 망설였다.
“여기서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이미 늦었지?”
“늦었네.”
홍석영은 날카롭게 웃었다. 호프도 비슷한 얼굴로 마주 웃었다. 언제라도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처럼.
결국 내가 나섰다.
“그만하시고요.”
홍석영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또 살살 긁고만 있지 마세요.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잖습니까.”
“으음.”
“…호프가 말했듯이 지금은 이야기하려고 온 거니까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던 홍석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홍석영에게서 시선을 뗐다. 호프가 마치 자기가 이겼다는 듯 히죽 웃었지만 갬블에게 옆구리가 찔린 다음 얌전해졌다.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워 보이는 저 둘에게 맡겨 두면 안 된다.
나는 여전히 인간인 갬블에게 물었다.
“도굴은 무슨 말입니까?”
갬블은 홍석영의 눈치를 살짝 살피다가 대답했다.
“…자금이 필요해서.”
“자금?”
“회사 세우는 건 돈이 많이 필요해요…. 더군다나 재단을 굴려야 하니까.”
조사한 바로는 호프나 갬블이나 재벌까진 아니더라도 꽤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다. 호주에서 유명한 길드 마스터의 아들과 유명 마력 공학자의 딸이니까.
…뭐, 부모님의 돈으로 수상한 일을 벌일 수는 없겠지. 갬블이 좀 더 불법적인 자금 확보 루트를 만들려고 했다는 건 이해했다.
“그런데 도굴이요?”
“그냥… 뭐, 사람들이 잘 안 가는 유적지 같은 데에서 몇 개를.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갬블은 거의 기어들어 가다시피 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굴만?”
“…….”
갬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다른 것도 많이 훔쳤어요!”
“다른 것이라고 한다면?”
“밀거래하던 총 같은 거 숨겨 놓고 돈을 받기 전에는 돌려주지 않는다거나, 어. 돈 안 주면 신고할 거라고 하거나….”
갬블은 홍석영에게 지지 않고 호프를 감싸던 용기는 어디로 갔는지 벌벌 떨면서 설명했다.
“좋은 일도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요?”
“도둑맞은 물건을 찾아 준다거나! 사례금만 챙겼어요, 그건.”
“누가 훔쳤는데요?”
“…샨샨이?”
“…….”
“…….”
“그렇지만 마약이었다고요!”
“사례금 받았다고 그걸 돌려줬어요?”
“…신고하고 포상금도 챙겼어요.”
“…….”
“…….”
이걸 아슬아슬하게 도덕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더한 놈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들의 침묵을 뭐라고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갬블은 좀 더 나쁜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갬블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시, 신고 안 하겠다고 한다면 증거도 보여 줄 수 있어요.”
“…….”
“그, 그 이상은 안 되는데…. 저 감옥 가기는 싫은데.”
“그럴 만한 행동이라는 자각은 있고요?”
“……증거가 없으면 무죄죠!”
“뭐라는 겁니까.”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건 됐고. 그… 자금 확보 활동은 방주의 이름으로 한 겁니까?”
“실제로 움직인 건 샨샨이라서….”
“애매해.”
볼을 붉히며 멋쩍게 웃고 있는 갬블 대신 호프가 끼어들었다.
“음. 좋아. 이것까지 말해 줄 생각은 없었는데, 거길 찾고 있던 거라면 상관없겠다.”
호프는 작게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너희, 지금 방주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어?”
* * *
방주.
The Ark.
이름에서부터 사이비 종교 냄새가 폴폴 나지만, 놀랍게도 종교 단체는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듣도 보도 못한 유사 과학을 들먹이며 회원들의 돈을 거두어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종교는 아니다.
강태우가 활동하던 던전 피해… 아동 모임인가. 거기도 그렇다. 방주의 입김이 닿고, 수상쩍은 구석도 존재하긴 하지만 동시에 그 단체의 도움을 받은 이들도 적지 않게 있다. 그것도 사회의 다양한 계층에서.
이건 방주가 의외로 괜찮은 집단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악질적인 집단이라고 말하는 거지.
참여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 준다.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고. 정말로 무엇에 가담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따지면 사이비 단체보다는 다단계에 가깝지 않을까. 아니, 다단계다, 이미.
나의 친부모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연구의 목적이 더 나은 곳으로 인류를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아, 그래. 그런 애들도 있어. 연구소 애들이지? 노아는 괜히 말이 꼬이면 귀찮아질 테니 대충 그런 거라고 했거든. 알아서 오해해 주고, 알아서 열심히 해 주고 있으니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했던가.”
그들이 인류의 진화를 일구어 낼 연구라고 생각했던 것이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를 꺼내기 위한 미친 여자의 속셈이었다는 것을 알기는 했을까. 오래전 죽은 친부모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옛날이라니까. 애초에 기억할 만큼 자주 만났던 사람도 아니다.
“노아는 얌전하게 생겼지만, 얌전히 앉아 있는 걸 잘 못하거든. 그래서 그런 연구는 그쪽에 아예 맡겨 놨어. 성과가 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원래 거긴 다른… 산드라, 어디라고 했었지?”
“제약 회사 출신이라고 했었는데. 이름이….”
“아틀라스?”
“어. 알아요?”
“뭐라고요?!”
“거기 창립 멤버인데, 지금은 아니고요. 나온 지 꽤 됐어요. 옛날 일이라 당시 자료 찾는 게 어려웠는데, 내부 문제로 어쩌고저쩌고한 거 보면 그때 방주로 빠지지 않았나 싶어요.”
시간대가 조금… 이상하지 않나?
노아 미셀이 아무리 천재였다고 한들, 본인이 뭐라고 주장하고 있든, 인간인 이상 나이의 제약을 벗어던지기는 힘들다. 아틀라스 제약에서 창립 멤버들이 나간 건….
꽤 오래전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형이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졌을까 싶었을 때.
노아 미셀이 마법사로 각성하기도 전이다.
…기존에 있던 사이비 단체를 집어삼킨 걸까. 차라리 그쪽이 말이 된다. 내 친부모도 대마법사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아니지. 본인들이 이용한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여기는 이들이라고 정말 똑똑한 짓만 하는 건 아니니까.
“아, 그런데 거기가 생각보다 자기주장이 강해서 노아가 귀찮아하긴 했어. 이번에 날려 버린 것도 결국 그 탓도 있을걸? 노아는 자기 말 잘 듣는 얌전한 애들을 좋아하니까!”
점점 내 안에서 노아 미셀의 이미지가 안 좋아지고 있다.
그래도 옛날에는 아낌없이 주는 마법사로 여겨서 좋게 보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미셀은 굳이 왜 룬을 만들어서 알렸지?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것도 있고. 무슨 일이 있으면 노아한테 달려오잖아. 그렇게 얻는 정보도 꽤 되는가 보더라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 노아 미셀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어쨌든 미국 쪽은 노아가… 다소 험한 방법을 사용해서 세력을 넓힌 거거든. 그 과정에 내 얼굴이… 얼굴? 아닌데. 내 얼굴은 그래도 잘 숨겼는데. 내가 보스라는 소문이 정확히 어떻게 난 건데?”
“나이가 많지 않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다. 자동차를 휴지 조각처럼 구겨 버린다.”
“얼굴이 안 알려졌으면 됐어. 머리를 염색하면 또 사람들이 못 알아보니까. 슬슬 바꿀 때가 됐나….”
“핑크! 다음엔 핑크로 해 줘!!”
“싫어. 아메리카 쪽은 좀 더 노아의 수족에 가까워. 노아가 부탁해서 나도 거기서 움직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런, 귀찮, 음, 역겨운 짓은 안 해. 인간 시체를 어디다 써먹어?”
“그럼?”
“이걸 설명하려면 방주의 구조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데.”
방주는 점조직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을 주축으로 동아시아에 주류하고 있는 방주와, 남미의 암시장을 비롯한 북남미에서 전반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방주는 아예 다른 조직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이다.
우리가 짐작하고 있었던 대로 남미에서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돈이 노아 미셀의 연구 자금으로 쓰였다.
“근데 여기서 상납금은 어마어마하게 걷어 가는데, 자기한테 떨어지는 몫이 적잖아? 그럼 어떻게 되겠어?”
“불만을 품겠지.”
“맞아. 그래서 거기도 지금 난리거든. 그… 처남? 거기가 그렇게 된 것도 그 상황에서 일어난 일일 거야.”
“제가 보기엔 노아 미셀이 감당하기에 조직 규모가 너무 커지기도 했고요.”
“대마법사라고 해도 사람들을 관리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오히려 대마법사니까 못할 수도 있고요.”
방주의 내부자의 입으로 듣는 내부 사정은… 예상치 못하게 개판이었다.
갬블의 말대로 노아 미셀이 조직 관리에 재능이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뭘 하기도 전에 방주가 알아서 망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랬으려나? 뭐, 망하지는 않았겠지만 규모는 줄었을 수도 있지. 아버지가 방주를 모두 박멸했다고 착각했을 정도로.
그래서 갬블이 이십 년 가까이 버텼을 수도 있고….
“어쨌든 여기서 제일 불만을 품은 게 헨리야.”
새로운 이름.
“헨리?”
“세미가 노아의 오른쪽 새끼발가락이라고 한다면, 얜 왼쪽 새끼발가락 정도 돼.”
“…왼팔과 오른팔이 아니라?”
“그 정도로 중요한 애는 아니거든.”
호프는 가차 없이 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