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197)
우주 만물(1)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색 코트와 헤링본 무늬의 정장 바지, 받쳐 입은 하얀색 셔츠. 푹 눌러쓴 버킷햇 아래로 구불거리는 금발 한 올이 떨어진다.
또각.
또각.
굽이 높지 않은 단화가 거친 아스팔트와 부딪치면서 일정한 박자로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가로등조차 꺼져 있는 어두운 골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다. 현란한 색상의 낙서 밑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던 이들이 여자를 흘깃거리며 수군거리기 바빴다. 그러나 밤인데도 불구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얼굴이 그들을 한 번 흘겨보니 거대한 육식 동물 앞에 놓인 가녀린 토끼처럼 바들바들 떨어 대기 시작했다. 여자는 코웃음도 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또각. 또각.
여자는 방해라곤 받지 않은 것처럼 단정한 걸음걸이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자의 걸음이 멈춘 곳은 사람이 살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낡은 건물.
“…내가 옮기라고 했는데.”
못마땅한 듯 일그러지는 입술로 유리창이 깨져 있는 1층을 바라보던 여자는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 계단을 올랐다. 또각. 또각. 또각.
1층을 지나, 2층. 3층. 7층까지 멈추지 않고 올라갔다.
불이 꺼진 아래층과는 달리 꼭대기 층에서는 소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부서진 채 덜렁거리는 문패에 남아 있는 알파벳은 a와 n뿐이다.
문틈 사이로는 쿵쿵 거리는 음악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망설이며 계단을 올라온 방문객은 문고리를 잡은 채 숨을 골랐다.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티가 역력했지만, 천천히 문은 열렸다.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 소리부터 예상은 했지만, 허름하다고는 해도 문은 문이랍시고 나름대로 소리를 차단하고 있었는지 문을 열자 얼굴이 절로 찌푸려지는 요란한 음악이 들려왔다. 노골적인 가사에 혀를 가볍게 찬 여자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쾅.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 안쪽은 넓다.
무게가 실릴 때마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벽은 칠이 벗겨진 채 회색 벽돌이 훤히 보인다.
천장에는 불이 나간 채로 방치되어 있는 등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벽 하나 없는 넓은 공간을 밝히고 있는 건 낡아 빠진 스탠드 등이다.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아 스펀지가 튀어나온 오래된 안락의자 주위를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안락의자 옆에는 위태롭게 쌓여 있는 책 더미가 있다. 빈 술병과 다 먹은 컵라면 용기들로 가득 찬 협탁 대신 그 책 더미를 탁자로 쓰는지, 제일 위에 놓인 책 표지에는 눌어붙은 커피 자국이 보였다. 그 위로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커피가 새롭게 자국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안락의자의 반대편에는 종이가 덕지덕지 붙은 벽이 보인다. 너덜너덜한 신문 기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따로 편집한 자료를 인쇄한 것으로 보였다. 누군가 빨간색 펜으로 글을 써넣어 자료를 보충하기도 했다.
여자는 벽 앞에 서서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종이를 들추며 적힌 글씨를 읽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