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
원치 않은 1회(1)
19년 후.
대한민국 서울 중구 이능관리청 3층 제2회의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는 서울 지도가 떠올라 있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그 앞에 서서 말했다.
“영등포 제2던전과 인왕산 제1던전이 각각 오늘 오전 9시 42분과 10시 17분에 위험도 2급으로 상승했습니다.”
단조로운 목소리였지만 나직하게 말한다.
이미 던전 공략에 대해 전달받은 헌터들은 늘어진 자세로 남자의 설명을 들었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똑바로 안 듣습니까? 규모 B급과 C급 던전이라고 해도, 위험도가 상승한 이상 내부는 불안정합니다. 정신 차리세요. 들어가서 허둥거리지 말고.”
그제야 헌터들이 허리를 바로 세웠다. 남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헌터들을 보다가 이어 설명했다.
“B2급 영등포 던전은 2팀이 갑니다. 2팀, 변동 사항 있습니까?”
“없어.”
회의실 제일 뒤에 앉아 있는 여자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남자는 여자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1팀은 태안 던전에 갔고, 3팀과 4팀은 던전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휴식 중입니다. 인왕산 던전은 외부 길드가 맡기로 했습니다.”
이미 전달된 사항이었다.
“보급품은 준비해 뒀습니다. 2팀장은 빠진 게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세요. 던전 진입 시간은 14시입니다.”
남자는 시간을 슬쩍 확인했다. 이제 막 점심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남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헌터들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 외에 질문 사항은?”
“…….”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럼 식사들 하시고, 2팀은 던전 정보 확인하고 대기하세요. 제가 없는 동안은 상황실에서 커버할 겁니다. 해산.”
남자는 일방적으로 회의를 종료했다. 어차피 회의랄 것도 없는 던전 공략 브리핑이었던 관계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헌터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뒤, 회의실에는 남자와 제일 뒤에 앉아 있던 여자만 남았다.
남자는 여자를 보고 인상을 썼다가 금세 표정을 풀고 생글생글 웃었다.
“뭡니까, 유지은 헌터.”
“내가 말한 던전은?”
“던전요?”
남자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가 느리게 아, 하고 알은체했다.
“방이동 던전요? 그거 확인해보니까 겨우 D급 던전이던데요.”
유지은은 인상을 썼다.
“던전 등급과 위험도는 별개야. 거기 공략해야 한다니까.”
“위험도는 6급인데요, 뭘. 던전 공략은 위험도 2급 이상부터입니다. 기억하죠? 유지은 헌터 경력이 몇 인데 기억해야죠.”
“느낌이 안 좋아.”
남자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느낌이 이상하다고 D6급 던전을 공략하자고 하면 곤란합니다. 방이동 던전에서 나오는 자원이 뭔 줄 압니까? 마력석이에요, 마력석. 함부로 닫았다가는 무슨 이상한 이름 붙여서 뉴스에 나올지 모릅니다.”
“야.”
“유지은 헌터가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있는 절차를 무시하면 안 되죠. 세간에서 그걸 뭐라고 하는 줄 압니까? 권력 남용이라고 해요, 권력 남용.”
“그건 네가 하고 있는 거고, 낙하산.”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유능한 낙하산 봤습니까?”
“일도 못했으면 진작 널 찔렀을 거다.”
“헌터가 공무원 공격하면 단순 상해 정도로 안 끝납니다.”
남자는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브리핑 자료를 챙겨 여자를 지나쳤다.
여자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거기 진짜 느낌이 안 좋아.”
“그러니까 공략하고 싶으면 제대로 된 근거를 가지고 오라고요. 세상에 헌터의 감만큼 못 믿을 것도 없으니까.”
“너도 헌터 라이센스 있거든?”
“그러니까 못 믿는다고요.”
남자는 여자를 보다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저라면 이런 쓸데없는 건의를 할 시간에 공략 준비나 하겠습니다. 아, 뭐….”
그러나 그 미소는 곧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 얄미운 얼굴로 바뀌었다.
“그 유지은 헌터인데 알아서 잘하겠죠. 제가 없으니 지원품도 얼마든지 마구 낭비하시고요.”
“뭐야. 진짜 가? 공략을 앞두고? 일 안 해?”
“일은 이미 질릴 정도로 많이 하고 있거든요.”
남자는 다시 여자에게서 등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저는 14시부터 휴가입니다. 연락하지 마세요.”
“야! 우희재!”
그러고는 가증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어차피 던전 진입하면 연락 못 하죠? 잘됐네요.”
여자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 * *
이틀 뒤, 밤.
대한민국 부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급 바.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창가 테이블에서 소란이 있었다.
“어머, 그럼 이게 뉴스에 나오던 그거라고요?”
고급 정장을 입은 남자는 소매를 걷었다. 정장에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디자인의 시계가 있었다.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부와 한국마력연구소의 야심작이죠. 아직 시험 단계라 대한민국에는 단 두 개밖에 없는 물건이기도 하고요.”
무척이나 겸손한 말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고?
이건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단 두 개밖에 없는 시제품이었으니까!
“와….”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여자들을 보았다.
평소라면 초고층 호텔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홀로 술잔을 기울였겠지만 오늘은 휴가 아닌가. 매일 출근하면 보는 지긋지긋한 헌터가 아닌 민간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좋지. 관리청 이미지가 어떤지 조사할 기회기도 하고.
…아. 그럼 관리청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안 되려나.
“그럼 진짜 대단한 거 아니에요?”
엄청 대단한 거지.
이걸 개발하느라 그간 했던 고생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엄청 대단한 헌터이신가 봐요!”
그래도 헌터들의 얼빠진 소리를 듣다가 민간인들의 순진한 감탄사를 들으니 마음이 안정된다.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긴 한데, 헌터는 아니고요.”
“그럼…?”
“이능관리청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헌터 라이센스가 있는데 헌터가 아니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지 되묻는다. 민간인이 관리청 내부의 사정을 알기가 어려웠던가? 하긴,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도 있지.
나는 친절하게 웃었다.
“네. 하지만 이능관리청에는 헌터만 있는 게 아니라서요.”
이능관리청은 대한민국의 모든 헌터와 던전을 관리하는 곳이다. 현대 사회는 헌터와 던전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고로, 관리청에는 다소 사회의 권력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만큼, 이 중요한 일을 모두 머리에 든 거 없는 헌터들에게 맡겨놓을 수 없지 않은가. 던전 공략의 주축이야 헌터라지만 그 외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는 다른 이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하나이다.
아니, 그런 사람들을 관리하는 관리자. 그게 바로 나다.
평범한 직원이 대한민국에 단 두 개밖에 없는 물건의 시제품을 가지고 있겠냐고.
“헌터들이 마음 편히 던전을 공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죠. 본부장님 직속입니다.”
“관리청의 본부장이라면 그분이시죠! 우리나라 최고의 헌터!”
워낙 유명한 인간이라 그런지 다소 시큰둥하던 반응이 돌변한다. 이럴 때 이름 팔기 편해서 좋다.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쓰기 편한 사연이 아직도 더 남아 있었다.
“네. 부끄럽지만 제 아버지시죠.”
“아버지라고요?”
“정확히는 양아버지요.”
“아….”
여자들의 입에서 기계적인 반응이 나왔다.
“어릴 때 사고에 휘말려서 부모님을 잃었거든요. 절 구해 준 본부장님이 절 입양하고 키워 주셨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진짜로.
날 구해 준 것도 사실이고, 입양한 것도 사실이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은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 낙하산이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이건 거짓말이다. 사실 낙하산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마냥 낙하산인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제도를 이용해서 공무원이 된 것뿐이다. 헌터 라이센스 가산점이나 뭐 그런 거.
없는 제도를 만들어서 들어간 것도 아니고, 있는 걸 이용했을 뿐인데 낙하산은 아니지. 아니고말고.
유지은같이 앞뒤 꽉 막힌 꼰대라면 모를까 본부장 청문회에서도 아무 탈 없이 지나갔다고.
눈앞에 있는 여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당연하죠. 그분은 공명정대하다고 유명하시잖아요?”
“오히려 부자가 같이 일하다니. 멋지잖아요.”
보통 사고로 양친을 잃고 입양된 고아의 눈물겨운 성공 스토리를 들으면 저런 반응이 나온다.
“그럼 희재 씨는 부산에 어떻게 온 거예요? 출장?”
“승진 기념 휴가요. 올 생각 없었는데, 지난해부터 하루도 안 쉬었다고 쫓겨났어요.”
이건 반쯤 거짓말이다.
그래도 내 능청스러운 말에 여자들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일에 너무 열중해도 안 좋아요. 놀 땐 놀아야죠.”
“다들 그럼 휴가…?”
“네. 저희도 휴가예요.”
“아, 이거 제가 쉬는데 방해한 건 아닌지….”
여자들이 내게 해 준 것처럼 나도 마음에도 없는 입에 발린 소리를 던졌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싹트는 게 바로 현대 사회의 신뢰 아니겠는가.
이렇게 서로 돕고 사는 거지.
“저희도 덕분에 신기한 거 보는데요. 한 번 더 보여 주시면 안 될까요?”
여자 중 하나가 내 손목에 있는 장치를 가리켰다.
“이름이 뭐라고 했죠? 아까 들었는데 너무 길어서….”
“헌터 전용 초소형 복합통신 단말기입니다. 그냥 편하게 마력 시계라고 불러요. 보통 시계보다 기능은 많긴 하지만.”
정부 산하로 개발했고, 당연히 이능관리청 소속 헌터들에게 우선적으로 보급될 예정이다. 민간에 풀리려면 최소 10년은 더 있어야 할 거다.
앞으로 이 시계가 던전 공략의 중심이 될 것이다….
“생긴 건 그냥 시계처럼 보이는데.”
“그것도 좀 못생긴 시계.”
“희재 씨가 못생긴 시계를 차고 다닌다는 말은 아니고요.”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다가 까르르 웃었다.
“회사에 가면 자랑해야지. 희재 씨, 이거 사진 찍어도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시계의 가치도 모르는 골 빈 헌터들만 상대하다가 그냥 순수한 감탄이 듣고 싶었을 뿐이다. 민간인에게 기밀을 내주어 줄 만큼 정신을 빼놓진 않았다.
“미안해요. 아직은 기밀이라서요.”
“와, 기밀이래….”
“어차피 조만간 공개될 정보지만 그래도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면 안 되니까요.”
“그렇죠. 그럼요.”
공직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일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오래된 격언이 있잖은가.
좋은 말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물리적인 힘보다는 보이지 않는 힘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런데 시계처럼 생기기만 했지, 정말 시계는 아니죠? 이걸 어떻게 써요?”
“마력 패턴을 등록해서 소유자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해요. 잠깐만요. 다른 사람도 읽을 수 있게 해 줄게요.”
마력 시계의 설정을 바꿨다. 아직 두 개밖에 없는 물건이다 보니 모든 기능이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기본적인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내 업무에도 도움이 되고 있고…. 민간인에게 보여 줘도 문제없지만 그럴싸하게 보일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그래. 이거다.
시계 위로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내 눈에만 보이게 패턴화되어 있는 창이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마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게 바뀌었다.
“우와….”
“이건 뭐예요? 던전… 위험도 일람?”
나는 창을 흘깃 보며 설명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던전들의 상태예요. 마력 측정기와 연동되어서 실시간으로 던전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요.”
서울영등포2던전(B) – 위험도 2급
서울인왕산1던전(C) – 위험도 2급
충남태안3던전(A) – 위험도3급
…
“위험도 순으로 정렬되어 있고… 2급부터는 즉시 공략 대상이고…. 이 세 던전은 지금 전부 공략 중인 던전이에요.”
“어… 그러네요. 뉴스에서 봤어요.”
“엊그제 들어갔으니 슬슬 나올 때가 됐어요. 아마 내일쯤이면 공략 완료로 뉴스에 나올 겁니다.”
여자들은 신기해하며 홀로그램 창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여유롭게 칵테일을 마셨다.
가끔은 휴가를 즐기는 것도 괜찮은데?
“어?”
“어어… 저기, 희재 씨?”
“네?”
“이 던전, 등급이 갑자기 확 오르는데 괜찮아요?”
“네?”
나는 다급하게 정보 창을 확인했다. 위험도가 급변하는 던전은 제일 상단에 뜬다.
던전 하나가 깜빡거리며 숫자를 바꾸고 있었다.
서울방이동1던전(D) – 위험도 5급
서울방이동1던전(D) – 위험도 3급
서울방이동1던전(D) – 위험도 1급
“…!”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울방이동1던전(D) – 00000000000
던전이 터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