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05)
현실(4)
몽생미셸.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작은 바위섬. 정확히는 그 바위섬 위에 지어진 수도원을 일컫는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을 따르는 이들을 보듬어 왔던 공간은 수도원의 가장 꼭대기에 던전 게이트가 생기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신의 공간으로 남았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현대에 들어와서는 수도사들이 남아 있지 않은 관광지가 되었지만, 던전이 발생한 이후에는 관광지는 폐쇄되고, 비상사태를 대비한 수도사들이 몽생미셸에 상시 거주하게 되었다. 수도사라고는 하나 교황청 소속 헌터로, 평소에는 던전 피해가 심각한 곳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를 죽이거나 피해 복구를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다.
“몽생미셸이라고.”
“응.”
교황청의 헌터 말고도 프랑스와 영국의 길드들이 돌아가며 몽생미셸의 던전을 감시한다.
나라마다 일 순위로 경계하는 던전이 있기 마련이다. 던전 규모는 E에서 A, 그리고 S급으로밖에 구분을 하지 않지만 같은 등급의 던전이라고 해서 전부 똑같은 수준이지는 않다. 가장 구분하기 쉬운 방법이 있지 않은가.
희생자가 많은 던전.
그런 던전이 터지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모든 던전을 감시할 순 없지만 절대 터져서는 안 되는 던전.
몽생미셸도 그런 던전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몽생미셸의 던전은 수십, 수백을 넘어 수천 명의 헌터를 잡아먹은 악명 높은 던전이었다.
던전에 들어갔던 대부분의 헌터들이 사망했던 탓에 던전 내부는 아직도 밝혀진 바가 거의 없다. 만에 하나라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프랑스는 물론, 가까운 영국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몽생미셸에 프랑스 헌터와 교황청의 봉사단뿐만이 아니라 생뚱맞은 영국 헌터들이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몽생미셸은 앞으로 이십 년 뒤까지도 얌전하다. 도서관이라는 별명답게, 던전 안에 있는 책을 노리고 몰래 들어가는 마법사들이 던전 희생자 수를 간간이 늘려 주었을 뿐.
“몽생미셸이라고.”
홍석영은 한 번 더 던전을 되새겼다. 떨떠름한 표정이다.
홍석영은 내게서 미래에 어떤 던전이 미공략으로 남아 있는지 들었다. 미공략던전 포럼에서 진입 금지라고 소개된 던전은 미래에 하나씩 차례로 공략되었다. 유일하게 공략되지 못한 곳은 몽생미셸뿐.
…지금의 홍석영은 몽생미셸에 들어간 적이 없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간 적 있는 아버지는 내게 경고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좋게 생각하자.
사람은 긍정적인 면을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원래도 악명 높은 던전에 귀찮은 설정이 추가됐을 뿐이다. 왕인지 뭔지가 그 안에 틀어박혀 있다고 해서 몽생미셸이 막… E급 던전에서 S급 던전이 되지는 않는다.
거긴 원래도 S급 던전이었다. S급이라는 표현으로는 몽생미셸의 위험도가 와닿지 않으니 몽생미셸을 위한 규격 외 등급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고.
위험함에 위험함을 더해 봤자 위험하다는 사실만 남는다. 어차피 위험한데 더 위험해졌다고 해서…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어쨌든, 그런 위험한 던전이 하나뿐이라 정말 다행이지 않은가. 내가 인지도 하지 못하고 있던 작은 던전이 사실 최종 보스였던 것보다 훨씬 낫지. 던전 하나만 청소하면 다 끝나는 일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씨발.
“몽생미셸.”
그래서 나도 몽생미셸이나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제부터 아버지조차 버거워했던 던전을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젠장. 던전 안이 어떤 꼴인지 더 자세히 들어 놓을걸.
“그런데….”
홍석영은 여전히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몽생미셸은 오래전부터 진입이 금지되어 있을 텐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몽생미셸은 던전 발생 초창기부터 관리받았어.”
“아마 그럴걸?”
“아마가 아니라 확실하네. 그때 크게 난리가 나서 기억해.”
호프는 어깨를 으쓱였다. 홍석영은 천천히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노아 미셀이 대리인? 그 왕을 대신해서 자네한테 명령하거나… 여하튼 한다는 거 아닌가.”
“그렇지.”
“그럼 노아 미셀은 그 안에 들어가서 그… 왕이라는 놈을 봤다는 말이겠지?”
“그렇겠지?”
나도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대화에 끼어들어 호프에게 물었다.
“미셀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마법사라 하더라도 몽생미셸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어. 어떻게 들어간 거야? 미셀이 몽생미셸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들은 적 없는데.”
미래에도 없다. 프랑스의 자랑이 아무도 공략하지 못한 몽생미셸에 들어갔다면 대서특필되고 남는다. 낭트의 보석이 우릴 구해 줄 거라며.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그만한 일이 일어났다면 분명 기억하고 있을 텐데.
“몰래 들어간 건가?”
헌터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고 해도 던전에 진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매년 몰래 들어가는 놈들이 나오니까.
하지만 나올 때는 다르다. 헌터가 던전에 진입하면 게이트 주위의 마력에 잔류 흔적이 남는다. 헌터들은 그 흔적을 보며 아, 또 골 빈 놈들이 자살하고 싶어졌구나, 하는 거다.
신실한 수도사들은 헌터들이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며 기도회를 열어 주지만, 게이트를 통해 귀환할 수 있었던 이들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는 노아 미셀이라 하더라도 게이트를 마음대로 드나들기는 힘들다.
“아, 그게.”
미셀에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몽생미셸 경비원 중에 마법사가 없겠어?”
“마법사?”
“세미처럼 노아를 따르는 마법사가 없겠냐고.”
“…….”
생각지도 못한 현실적인 이유였다.
그냥 눈감아 줬다는 말이군.
뭐, 다른 비장의 방법이 있는 것보다야 낫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노아 미셀이 몽생미셸에 드나든 거지?”
“으으음.”
호프는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끙끙거리며 몸을 뒤틀던 호프는 툭 내뱉었다.
“이건 진짜 아무도 모르는 거거든. 다른 데 가서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진짜 안 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몇 번이고 말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던 호프는 나나 홍석영이 짜증을 낼 때쯤에야 제대로 입을 열었다.
“있잖아.”
“그러니까 얘기 안 한다고.”
“…미셀이 대마법사로 각성한 게 몇 살인지 알아?”
“그거야….”
미셀의 각성은 유명하다.
“여섯 살.”
최연소 대마법사의 탄생이었다.
“그게 몇 년 전이게?”
“이십 년 전.”
왜 이런 걸 묻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답은 해 주었다.
그러나 홍석영의 미간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아버지는 이런 스무고개식 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맞아. 이십 년 전이지.”
호프는 홍석영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럼 있지. 몽생미셸의 요람이 나타난 건 언제일까?”
“이십….”
대답하려다 말고 말을 멈췄다.
“……!”
“응. 이십 년 전.”
못마땅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던 홍석영이 반쯤 몸을 일으켰다. 드물게 홍석영의 얼굴이 경악으로 가득하다. 내가 마력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는 저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이건 그럴 만한 일이었다.
“윽!”
나는 더 생각하지 못하고 호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다행히 김채민의 마법은 나를 막지 않았다.
몽생미셸의 도서관이 나타난 것은 이십 년 전.
노아 미셸이 대마법사로 각성한 것도 이십 년 전.
공교로운 우연이라고 치부하면 되는 일이다. 이십 년이라는 시간은 같지만, 구체적인 날짜가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호프가 일부러 언급했지 않나.
관계가 있다.
“사람을 각성시킬 수 있어?”
“아파!”
“각성시키는 방법이 있냐고.”
“아프다니까!”
호프는 내 손을 쳐 내기 위해 바둥거렸다.
묵직한 마력제어기를 단 채로는 성공할 수 없다. 호프의 비명 소리가 들리자 갬블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우리를 보았다. 차마 나를 말리지는 못하고, 호프를 보며 절절매는 얼굴이 보였다.
“놔!”
“대답해.”
“아프다고!”
“노아 미셀을 대마법사로 만든 건 네놈들 짓인가?”
결국 호프는 백기를 들었다.
“그런 방법은 없어! 높은 마력에 노출된 노아가 원래 했어야 할 각성을 일찍 했을 뿐이야!!”
호프는 내게 붙잡힌 채로 설명했다.
“걔가 어릴 때, 거기가 관광지였다며. 관광하고 있었대. 요람, 던전이 나온 날.”
여섯 살의 노아 미셀을 가족과 함께 몽생미셸을 방문 중이었다. 자국민들도 일부러 찾아올 만큼 몽생미셸은 유명한 관광지였으니까.
6월 4일.
몽생미셸에 던전이 나타났다.
게이트의 간섭 범위 안에 있던 관광객들은 노아 미셀을 포함해 89명. 게이트 발생 시 휘말린 민간인의 숫자로써는 최다였다.
“생존자는 없다고 들었는데.”
“그야 마법 협회에서 숨겼으니까?”
털썩.
호프의 멱살을 놓았다.
“여섯 살짜리 인간 아이가 마법사가 되었어. 그것도 대마법사가. 마법 협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나보다 너희가 더 잘 알 텐데?”
유일한 생존자는 여섯 살이다. 생존자가 대마법사가 아니었다면 극적인 귀환, 신의 은혜, 기적 따위로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생존자 노아 미셀은 대마법사였고 기적은 없었다. 순전히 자력으로 던전 안의 몬스터를 죽이고 스스로 게이트를 걸어 나왔다.
대마법사지만 여섯 살. 여섯 살이지만 대마법다. 보호자 없는 어린 대마법사를 휘두르고 싶었던 마법 협회는 생존자의 신변 보호를 명목으로 노아 미셀의 존재를 숨겼다. 그래 봤자 겨우 삼 개월 뒤에 여섯 살 최연소 대마법사의 탄생을 자랑스럽게 떠들어 댔지만.
“노아의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마법사라는 사실만 아는데.”
오래전 죽은 사람이라 자료가 많지 않았다.
“응. 그래서 노아는 마법사로 자랐어. 태어났을 때부터. 그게 무슨 뜻인지도 알지?”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호프는 목을 매만지며 내 눈치를 살폈다.
“마력이 풍부한 요람 속에서 각성했어. 그리고 왕을 만났고. 갓 각성한 마법사 눈에는… 음. 모르긴 몰라도 마력 그 자체로 보이지 않았을까? 마력의 현신 같은 걸로 말야.”
“…….”
“노아는 마법사니까 인간들이 믿곤 하는 신을 믿진 않았지만…. 대신 눈앞에 나타난 전지전능한 존재는 믿었어. 완벽해 보였던 부모님보다도 더 완벽한 존재가 있었다고. 이건 본인한테 직접 들었던 설명이니까 내 사감이 들어간 거라고 오해하지 마.”
“…그리고?”
“음. 간단해. 여섯 살짜리 인간 마법사는 눈앞의 존재를 신으로 생각하기로 했어. 그래서 첫 번째 신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지.”
“해야 할 일?”
“자신과 피가 이어진 귀중한 산 제물을 바치고, 그걸로도 모자라다고 느껴서 주위에 있던 다른 인간들마저 제물로 바쳤어.”
“…….”
“그 대가로 노아는 신이 이 땅에 내려올 때 첫 번째 종으로 곁에 서는 걸 약속받았어.”
“여섯 살에?”
“여섯 살에.”
“지금도 그럼 그 존재를 신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다고 하더라고.”
“어린 시절, 살기 위해 부모를 희생했고, 그 죄책감을 잊기 위해서 부정할 수 없던 게 아니라?”
“아하하하!”
호프는 내 말에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노아를 직접 봤다면 절대 그런 소리 못 할걸.”
“…….”
“걘 그냥 미친년이야. 왕이 아니었더라도 인간이 싫어서 인간을 멸종시킬 애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