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08)
방이동 던전(2)
“이놈들이 그렇게 커진다고?”
홍석영은 지네가 발밑을 지나갈 때마다 놓치지 않고 반으로 갈라 죽였다.
어차피 던전을 닫을 거라면서 왜 그런 수고를 들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버지와는 던전을 돈 적이 많지 않아 홍석영이 던전 공략할 때 어떤 버릇이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홍석영보다는 차라리 유지은과 더 많이 돌았지. 유지은이나 오현욱…. 뭐, 오현욱은 업무이기는 했다.
내가 왜 굳이 죽이는 수고까지 하냐 물으니 홍석영은 예의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턱을 매만지며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이 더욱 기분 나빴다.
“이건 내가 안 가르쳤나 보지?”
“안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어허!”
홍석영은 혀를 찼다.
“하긴, 던전 공략하는 법을 가르쳤으면 다 가르치긴 했지. 이건 그냥 습관 같은 거야.”
“습관이요?”
“눈앞에 몬스터가 지나가잖냐. 아무리 닫을 던전이라고는 해도 멀쩡하게 있는 꼴이 짜증이 나잖나.”
“…….”
홍석영은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었다.
“내 앞에서 살아 나갈 수 있는 몬스터는 없다.”
“아, 네….”
일부러 몬스터를 놓치는 것도 아니고 죽인다는데. 뭐라고 할 건 아니지. 하긴, 홍석영이 몬스터를 놓친다면 그게 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홍석영은 걸리적거리는 지네를 손쉽게 처치하며 던전 안쪽으로 향했다.
핵이 있는 장소야 알고 있지만 그 위치가 맞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던전이 대책 없이 넓은 것도 아니니 핵은 금방 눈에 띄었다. 우르르 모여 있는 지네를 한 번 더 정리하고, 걸음을 옮겼다. 핵을 없애기 전 던전을 샅샅이 살펴볼 생각이었다.
홍석영은 여전히 지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들의 먹이가 썩은 고기라고 가정한다면….”
홍석영은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는 숲을 둘러보았다. 나도 홍석영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자네 말대로 그 정도 크기로 자란 건 역시.”
홍석영이 이 던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누군가 이곳에 시체를 버려 두었다. 부패를 빠르게 일으키는 룬과 함께.
시체를 은폐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소리도 잠시 나왔다. 하지만 더 간편한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런 수고를? 아무리 D급 던전이라고 해도 서울 중심부에 있는 던전이다. 다선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누군가 확인차 들어가 보았을 거다.
원래대로 흘러갔다면 명동 이후로 훨씬 정신없었을 테니 시간적 여유가 더 있었을 거고, 그럼 지금처럼 룬에도 불구하고 거의 썩지 않은 시신이 발견되지도 않았을 테다.
이걸 그 거대한 지네와 연결하면… 답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하다.
“누가 계속 들어와서 먹이라도 줬나 보죠.”
“오….”
홍석영은 진저리 쳤다.
“다행인 건 그렇게 큰 놈이 한 마리뿐이라는 거죠.”
“다행인가?”
“수백 마리의 거대 지네가 서울을 기어 다니는 건 미관상으로도 안 좋잖습니까.”
“미관상의 문제인가….”
그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사람은 좋은 걸 보고 살아야 성격이 덜 나빠진다.
“안 좋은 소식이라면 이 지네가 그만한 크기까지 자란다는 거고요.”
“역시 해충은 박멸하는 게 제일이지.”
방주는 그 뒤로 이 던전을 건드리지 않았다. 홍석영과 다선에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었으니 도저히 어떻게 할 틈이 없었을 수도 있다.
방주에서 정말 작정하고 먹이를 줘서 키운 거라면 놈들은 그 지네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었던 걸까. 홍석영은 꼭 요정이 아니더라도 기이할 정도로 강하고 자길 죽이려고 하는 몬스터를 종종 만나 왔다고 했다. 그 거대한 지네도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왔….
아니. 그 시계처럼 생긴 아이템이 지네 사체가 사라지고 나타난 건 맞지만, 그게 지네가 미래에서 왔다는 증거가 되나?
애초에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서 어려지는 것도 아니고, 본인의 몸 그대로 넘어오는 건데. 먹이를 줘서 키울 필요도 없잖아?
그냥 가지고 다녔을 수도 있잖아. 원래 던전 아이템은 던전 부속품이지 게임처럼 몬스터를 죽이면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아니면….
그 아이템만 다른가?
죽은 걸로 소유권이 박탈되고 발견자에게 넘어간다거나?
“어허.”
딱.
홍석영은 내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네?”
“여기까지 와서 또 얘기 안 한 게 뭐가 있나.”
“어….”
“생각해 보니 억울하네. 자네는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다 알던데 난 하나도 모르잖나!”
그거야.
“제가 얘기 안 했으니까요.”
“그래! 그게 억울하단 거지!”
홍석영은 거칠게 손을 움직였다. 이런 던전에서 창을 쓰는 건 아깝다며 대련용 목검이 들려있었다. 그걸로 충분하기는 했다.
홍석영의 손짓에 따라 나무 몇 그루가 그대로 박살이 났다. 그대로 숲을 날려 버릴 것처럼 굴었던 것과는 달리 겨우 두어 그루가 부서지고 끝났다.
시위하고 있다.
…내 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다.
여기까지 와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이록이나 홍석영이나 다루는 방법이 똑같다. 한쪽은 열 살이니 정상 참작이 된다지만 반백 살 먹은 노인을 위한 변명은 없다.
그래도 여기서 더 말을 붙이면 나만 귀찮아질 거란 점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안 그래도 얘기하려고 했습니다.”
“정말인가?”
“속고만 사셨습니까?”
“생각도 많고 비밀도 많은 아들을 키우려면 이 정도 마음고생은 어쩔 수 없지. 각오했네. 아니, 잠시만.”
홍석영은 관자놀이를 짚는 척하며 시름에 잠긴 흉내를 냈다.
“좋아. 각오하고 왔네. 사람 죽인 것만 아니라면…. 음. 목격자만 없다면 내가 어떻게 무마해 볼 수도 있을 거야.”
“아, 진짜! 그딴 소리 할 거면 다 관두고요!”
“하하하!”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니까 도와주질 않는다.
뭐… 차라리 이렇게 가벼운 분위기에서 이야기하는 편이 나으려나. 그럴지도 모르지.
이번에는 내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홍석영과 달리 나는 진심이다.
“됐고요. 여기서 기어 나온 지네가 나중에… 세계를 멸망시켰다고 하기엔 너무 과하지만, 그래도 서울만큼은 확실하게 끝장냈습니다.”
“불태운 놈도 있댔지 않나? 걔가 끝장낸 게 아니라?”
“…사실 직접적으로 끝장냈다고 하긴 그렇죠. 어차피 던전이 모조리 터져 버렸는데 지네고 뭐고 없다고 크게 차이가 있었을 것 같진 않거든요.”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처음부터 말했다.
“그러니까, 휴가를 갔거든요.”
처음이라고 해 봤자 별건 없었다.
“아. 그 전에 유지은이 여길 공략하자고 하긴 했죠.”
“지은이가?”
“왜 공략해야 하냐고 물으니까 제대로 이유를 못 대긴 했지만…. 그래서 결국 공략 허가는 안 내 주고 휴가를 갔죠. 근데 이거 하나 공략했다고 그게 바뀔 것 같진 않습니다.”
“던전이 전부 터졌다고 했지.”
“네. 휴가 중에요. 제일 처음 터진 던전이 여깁니다.”
그날 있었던 일은 잊을 수 없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돈을 모으기만 하면 뭐 하냐고 타박을 들은 적이 있다. 유지은이 그랬는지, 한태경이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둘 다 그랬던가? 불쌍하게 관리청 따위에 청춘을 꼬라박지 말고 청춘을 즐기라고 했던가.
그런 말을 하는 본인이야말로 던전에 한평생을 바치지 않았나 하는 반항 심리가 들었던 기억이 있는 걸 봐서는 유지은이다. 항상 입만 살았지. …주먹도 살아 있긴 했다.
무작정 호텔에 가서 비싼 방을 잡고, 바에 가서 칵테일을 주문했던 것도 유지은의 그 말 때문이었을 거다. 유지은이 던전에서 나오거든 이런 칵테일을 주문할 줄은 아냐고 놀릴 마음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 하나 제대로 없는 유지은보다는 내가 낫지. 난 그래도 대학교 동창들과도 꾸준히 모임을 가진다고.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게 됐기는 하다. 지금, 여기서의 유지은을 붙잡고는… 무슨 말을 하랴. 걔 요즘도 사이비에 혹해 있는 건 아니겠지.
“나오자마자 송파구 절반을 날려 버렸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절반.”
“그 난리가 났는데 휴가를 즐기겠습니까. 휴가는 그대로 끝났죠. 경찰 헬기로 서울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울릴 리 없는 손목이 징징, 하고 흔들린다. 진동.
헬기 안에서는 휴대폰 알림이 요란하게 울렸다. 내 것과 조종사의 것이었다. 도로에서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던전이 다 똑같은 꼴이더라고요.”
매초 갱신되던 뉴스는 어느 순간 띄엄띄엄해졌다. 서울에 도착하던 그 순간에도 인터넷 기사가 한두 개 올라오긴 했지만 제대로 된 기사는 아니었다. 일본 기자는 신을 찾았다. 영국의 기자는 무운을 빌었다. 어디였지. 베트남이었나, 태국이었나. 어떤 기자는 아름다운 바다 사진을 올렸다.
세상은 빠르게 죽었다.
“제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가망이 없었습니다. 도중에 비행 몬스터를 만나지 않은 게 천운이었죠.”
“…….”
“아. 지네 얘기 하고 있었죠. 지금은 독성이 없는데, 몸집이 커지니까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놈이 한강을 건넜는데… 한강이 오염됐습니다. 다른 던전이 터지지 않았더라도 서울은 끝났어요.”
“…그렇군.”
“그리고, 음. 그 지네 사체에서… 정확히는 그게 사라진 뒤에 시계처럼 생긴 아이템을 주웠거든요.”
“시계?”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네. 그리고 그게 저를 과거로 보냈습니다.”
“…….”
홍석영은 눈을 깜빡였다.
“왜 하필 그날로 돌아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던전이 열리기 하루 전이더라고요.”
“음.”
“처음엔 그래서 이 던전과 관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하필 그날이었던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 가설에 불과했지만.
에러 코드를 잔뜩 띄우던 아이템. 자격이 어쩌고 시끄럽게 떠들어 댔었다. 무슨 자격을 말하는 것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생존 가능성을 말해 주거나, 임의의 시간으로 이동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정말 어쩌면… 내가 너무 내 편의대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미래를 바꾸기에 가장 적합한 날짜를 찾아 준 게 아닐까?
명동에서 내가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홍석영이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이들이 죽지 않아서 원래 아버지를 괴롭혔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 좀 더 여유롭게 방주를 추적할 수 있게 되었잖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그렇다고요. 그래서 확인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템이라…. 호프에게 물어볼까?”
“뭐라고 물어보게요?”
“왜 나를 그렇게 죽이고 싶어 하는지? 던전끼리 소통할 수단은 없는데 하나같이 나한테 덤벼들잖아.”
“그거 이미 물어본 거 아니었습니까?”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아니. 노아 미셀이 왜 그렇게 나를 노리고 있는지를 물어봤었지. 호프가 대답해 준 것도 그거였고. 몬스터가 아냐.”
“물어보는 건 문제없지만…. 제가 미래에서 왔다는 얘기는 하지 말고요.”
“아, 물론이지. 날 뭘로 보고!”
뭘로 보기는. 홍석영으로 보고 있다.
내 불손한 눈빛이 읽혔는지 홍석영이 또다시 발끈했다. 정말 화가 나거나 짜증 난 건 아니지만, 이러는 게 나와 노는 거다. 나는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려다가….
“……!”
발밑을 보았다.
무언가 꿈틀거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