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10)
지네(1)
“야. 우희재.”
“…뭔데.”
“너 헌터가 공략할 던전에 들어갈 때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게 뭐라고 생각하냐?”
유지은은 잔뜩 인상을 쓴 채 소파에 앉았다. 머리는 질끈 묶었고, 옷은 기능성 반팔 티셔츠와 검은색 조거팬츠다. 둘 다 촌스러운 이능관리청 로고가 박혀 있다.
유지은은 그런 티를 안 내도 저 로고를 혐오한다. 관리청에서 째깍째깍 갈아입고 나오는 여자가 저걸 입고 우리 집까지 온 걸 보면….
“야.”
심기가 어마어마하게 불편하다고 시위하고 있는 거다.
소파 앞에 있는 낮은 테이블 위로 유지은의 발이 올라온다. 발목을 교차해서 발을 올린 다음 소파에 등을 기대는 꼴이… 사실 행동거지가 아니라 목소리에서부터 티가 난다. 관리청 신입이 또 열받는 짓 했나 보네.
“야. 야야야야야….”
“발 치워. 냄새난다고.”
나는 유지은의 발에 깔린 내 노트를 빼냈다. 유지은이 발끈해서 내 얼굴에 발바닥을 들이밀었다.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발 씻고 왔거든?!”
“알 게 뭐야.”
“아오, 귀염성 없는 녀석. 옛날에는 좀 더 이렇게… 작고 귀여웠는데. 징그럽게 키만 커서는.”
“누나가 작은 게 아니라?”
“좀 더 귀엽게 굴어 봐라. 누나가 용돈이라도 줄지 누가 아냐.”
“용돈은 충분하거든.”
“…하. 재수 없네. 이래서 있는 집 자식이란.”
유지은은 혀를 끌끌 차며 발을 내렸다. 그래 봤자 테이블 위에 올라간 건 여전하다.
“…….”
“…….”
“…내 거라고.”
“있는 집 자식 티 내지 마라. 다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 거야.”
“아, 커피 한 잔에 무슨 있는 집 타령이야! 믹스니까 가서 타 먹어! 부엌에 널려 있는 게 믹스인데!!”
“누나가 오늘 많이 피곤하거든. 가서 타 와라.”
“내 커피 그만 마시라고!!!”
결국 유지은은 내 커피를 모두 마셨다.
아니, 짜증 나는 일이 있으면 짜증 나게 만든 헌터를 괴롭히든가. 왜 나한테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유지은은 이제 내 노트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뭐 하냐? 과제?”
“아니.”
“아냐? 그럼…. 뭐야. 시나리오? 이거 시나리오 맞지? 아. 그거냐? 친구들이랑 만든다고 했던 거? 영화?”
“아, 신경 끄라고.”
“뭐가 부끄럽다고 숨기냐.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가 뭔데.”
“야….”
유지은은 안쓰러운 얼굴로 나를 보았다. 대놓고 발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게 얄밉기 그지없다.
“너, 네 여친한테도 그런 말 하는 건 아니지?”
“신경 끄라고 했지.”
“여친은 있냐? 하긴 맨날 방구석에서 영화나 보고 다니는 애가 여친은 무슨….”
진짜 왜 여기 와서 화풀이냐고.
결국 나는 노트를 옆으로 치웠다. 유지은은 여전히 발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뭔데. 뭐가 문제냐고.”
“하. 희재야….”
“괜히 꼴값 떨지 말고.”
“누나한테 꼴값이 뭐냐, 꼴값이.”
“누나다운 짓을 해야 누나라고 부르… 발 치우라고!!”
유지은은 히죽 웃으며 발을 내렸다. 누가 그 스승에 그 제자가 아니랄까 봐 똑같은 웃음이다.
“야, 넌 헌터가 공략할 던전에 들어갈 때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게 뭐라고 생각하냐?”
“갑자기?”
“대답해 봐. 너도 라이센스는 있잖냐.”
“…마음에 안 차는 대답 하면 짜증 낼 거잖아.”
“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님한테 배웠는데 니가 대답을 못 하면 쓰냐고.”
“난 헌터 아니라고.”
이렇게 대답해 봤자 유지은이 매번 하는 대답은 똑같았다.
“라이센스 있으면 헌터랍니다, 우희재 군.”
“무슨 헛소리냐고….”
“자, 귓구멍 잘 열고 들어라.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듣는 관리청 에이스의 조언이니까.”
하지만 유지은은 이번에는 나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오답이어도 내가 제대로 생각하고 대답하길 기다렸을 텐데.
이번에는 신입이 제법 심각한 사고를 쳤나 싶어서 나도 더 뭐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 좋을 대로 떠들다가 마음이 풀리면 용돈을 쥐여 주고 간다. 그게 유지은이다. 이상한 구석에서 아저씨 같다. 역시 아저씨 제자라서 그런가….
“자기 주제를 아는 거다.”
유지은은 입술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렇겠지. 자기 실력에 맞춰서 던전에 들어가야 하니까.”
“아니. 그건 기본이고. 그것도 못 하면 라이센스 반납해야지.”
유지은은 내 커피를 홀짝거리며 입을 열었다.
“헌터가 마법사처럼 상성을 거하게 타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력 분야는 있잖냐. 덩치가 큰 놈을 잘 잡는다거나, 쬐깐한 놈을 잘 잡는다거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냥 빨리 말하고 꺼져, 좀.”
“자기가 못 잡는 게 무엇인지 아는 거다.”
유지은은 빈 컵을 내려놓았다. 아저씨가 남았다며 집에 챙겨 온 머그컵이다. 유지은의 옷과 마찬가지로 촌스러운 관리청 로고가 투박하게 프린팅되어 있다.
“헌터도 사람인 이상 싫어하는 게 있거든.”
“그렇겠지.”
“예를 들면… 그래. 벌레를 싫어하는 헌터가 있을 수도 있지.”
아. 슬슬 유지은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 깨달았다.
또 벌레 못 잡는다고 찡찡거리는 신입이 나왔군. 매번 같은 패턴이다.
“나도 이해해. 아니, 사실 왜 못 잡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이해하는 시늉은 할 수 있어. 어린애 몸뚱이만 한 벌레가 막… 그래. 날아다니면 징그러울 수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내가 신입 들어올 때마다 묻는다고. 너 벌레 잡을 수 있냐, 인간형 몬스터 잡아 봤냐,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귀엽게 생긴 몬스터래도 다 죽일 수 있냐.”
아저씨도 누누이 내게 강조했던 일이다.
실력은 둘째 치고 자기가 잡을 수 없는 몬스터가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곤충형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 공략이 종종 난항을 겪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헌터도 인간인 이상 그러한 종류의 혐오를 견딜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보통 던전에서 나오는 벌레… 곤충형 몬스터는 크기가 큰 게 많다. 그냥 큰 것도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크다. 유지은의 말대로 어린애 몸뚱이만 한 것은 물론, 성인보다 큰 것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내로라하는 헌터들 중에도 벌레를 싫어해서 곤충형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 이들이 많다.
“아니, 못 잡는다고 하면 내가 뭐라고 해? 못 잡으니까 그런 던전 공략에서 빼 주려고 물어보는 거라고!”
“이번엔 어땠는데? 저번처럼 토하고 난리 났어?”
“신입 괴롭히는 거라면서 노동청에 신고하겠다는데.”
“오….”
꽤 열정적인 신입이 들어왔다. 유지은이 저러고 앉아 있는 꼴이 이해가 되었다.
유지은은 이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서 물었잖아! 물었는데!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해 놓고서는!! 내가 그 토하고 기절하고 난리 난 새끼 때문에 시청각 자료까지 만들었다고!”
“그거 엄밀히 말하면 내가 만들었는데.”
“지가 못 잡는 몬스터는 없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아, 물론 난 신입들이 하는 말은 믿지 않아. 그래서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 한 마리 잡아 놓고도 확인했다고. 못 잡겠는 놈은 나가라고.”
“나가면 불이익 있다고 생각했나 본데.”
“그래서 예시도 들어 줬다고! 야, 이미선 헌터도 벌레 못 잡는 거 아냐?”
“…이미선? 다선의 그 아줌마?”
“그래!”
오늘은 오래가겠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 만한 핑계가 없나 싶어서.
유지은은 한참을 씩씩거리며 허공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소파에 널브러졌다.
“야. 우희재야.”
“이름 닳는다. 그만 불러.”
“싸가지 없는 새끼가…. 너 벌레 잘 잡지?”
“몬스터 말하는 거야, 아니면 그냥 벌레 말하는 거야.”
“둘 다.”
“둘 다 잡아지던데.”
“너 벌레 나오는 던전도 들어가 본 적 있었나?”
“등급 갱신하면서 들어가 봤어. 그 모기처럼 생긴 놈 나오는 곳 있잖아.”
“아. 맞다. 그랬었지.”
유지은은 또 한참을 말이 없었다.
이제 다 끝났나?
안심하려던 찰나, 유지은이 툭 내뱉었다.
“날아다니는 벌레가 괜찮다고 방심하지 마라…. 기어 다니는 놈은 또 다르거든.”
“저주야 뭐야.”
“다리 많은 놈은 나도 좀… 그럴 때가 있거든? 너도 잘 생각해 봐라.”
“나 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나름 날 생각해서 말해 주는 것 같아서 대충 알겠다고 대답했다.
“넌 잡기 힘든 몬스터 없냐? 너 어릴 때 고양이 좋아했잖.”
“시끄러워.”
“고양이처럼 생긴 네발짐승 몬스터도 있는데…. 그런 애들은 괜찮고?”
“몸집이 작아서 창으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거 말고는 문제없어.”
“그러냐…. 씩씩하기도 해라. 우리 신입이 널 반이라도 닮으면 좋겠는데.”
“날 반이라도 닮았으면 노동청에 신고하는 게 아니라 기자한테 찔렀을걸. 관리청의 악독한 텃세 뭐 이딴 걸로.”
“미친….”
유지은은 나를 노려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히죽 웃었다. 내 커피를 훔쳐 먹은 대가다.
어쨌든 유지은의 분위기는 한결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 널려 있는 종이들을 정리했다. 유지은에게는 과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과제도 섞여 있긴 했다. 어차피 오늘 더 작성하기에는 글러 먹은 것 같고….
“누나는 뭐, 싫어하는 던전 없어?”
“싫어하는 던전?”
“다리 많은 벌레?”
“아. 징그럽긴 한데… 잡을 순 있어. 난 걔넬 잡고 몸에 체액 묻는 게 더 싫어. 씻는 거 힘들다고.”
“깔끔떨기는.”
“네가 더러운 거고. 이래서 사내새끼들은 안 된다니까….”
유지은은 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제 기분은 완전히 풀린 모양이었다.
유지은은 소파에 반쯤 드러누운 채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까 쥐어뜯는다고 이미 머리는 엉망이다. 곧 그게 거슬렸는지 유지은은 묶었던 머리를 아예 풀어 버렸다. 손가락으로 슥슥 빗어서 정리하다가 다시 헝클기를 반복한다.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아저씨한테는 안된 일이다. 그렇게 아끼던 제자가 미치다니. 이 불행한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너 또 건방진 생각 하지.”
“아니.”
“까분다.”
유지은은 가볍게 혀를 쯧 차다가 입을 열었다.
“난 벌레보다는….”
“벌레보다는?”
“…….”
유지은은 복잡한 얼굴로 웃었다.
* * *
성인 몸집만 한 지네를 눈앞에 두고 나는 잠시 유지은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땐 유난이라고 생각했지. 벌레가 뭐, 날아다니는 놈과 기어 다니는 놈에게 차이가 있겠나. 몬스터라면 어떻게 생겼든 박멸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거대 지네는 이미 본 적이 있다. 비록 죽어 있는 놈이긴 했지만.
“…….”
하지만, 뭐랄까. 어지간한 건물보다 더 큰 지네는 차라리 현실감이 없기라도 하지. 애매하게 현실감 있는 사람과 비슷한… 약 2m의 지네는 그 현실감 때문에 생리적인 혐오감이 들었다.
나는 유지은의 검을 보았다. 너무 짧다. 이걸로 지네를 잡으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
창 꺼낼까? 조금이라도 멀어질 수 있게?
아니지.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할 순 없다. 유지은에게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었는데.
나는 굳게 다짐한 얼굴로 홍석영을 보았다.
“핵을 부수겠습니다.”
“음?”
“금방 오겠습니다!”
“잠깐, 희재 군!”
안 들린다, 안 들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