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12)
지네(3)
따악. 딱!
“……!!!!”
지네의 움직임이 격하다.
내가 몬스터의 생태에 대해 아는 바는 많지 않지만 저게 기분 좋아서 하는 행동이 아닌 건 안다.
지네는 나를 쫓아 빠르게 기어 왔다. 이번에는 뇌가 없는 것처럼 나무에 붙어 있던 작은 놈들마저 섞여 있다. 더 징그러운 광경이 되었다. 이대로 게이트를 나갈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핵을 부쉈으니까 못 따라 나올 텐데!
그나마 홍석영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참았다. 얼른 나가자고 해야지.
그러나 홍석영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뭐라고요?”
“미래에서 온 몬스터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려 주겠다고.”
“…네?”
아니, 난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을 떠넘기려고 온 거지, 그런 거창한 배움을 얻고 싶어서 온 게 아닌데.
그러나 얌전히 홍석영의 옆에 멈췄다. 홍석영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하진 않았을 거다. 아버지는 교본이 있는 걸 좋아하는 교사였으니까 뻔하지. 아마 저 지네가….
뭐. 그렇겠지.
“자, 첫 번째.”
홍석영은 느릿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평소 사납게 웃던 것과 달리 서글서글하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속을 정도로 나는 어리숙하지 않다. 딱 봐도 부글거리는 걸 참고 있는 목소리다.
“인간의 말을 아는 놈이라면 구분하는 게 어렵지 않아. 적당히 싸우다 보면 자기가 먼저 이실직고하거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느긋한 말투가 조금씩 험악해진다.
“두 번째. 인간의 말을 모르는 놈이라도 소리를 낼 줄 안다면 성조를 관찰하면 돼. 사람들 말하는 걸 흉내 낸다고 높낮이가 비슷하거든. 특히 사람 이름이라면 알아듣기 쉬워. 생각보다 잘 따라 해.”
홍석영은 낮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읊조렸다. 홍석영.
그다음에는 입만 벌려 어설픈 발음으로 소리를 냈다. 갓 말을 배운 아기가 웅얼거리는 것처럼. 난생처음 들어 보는 외국어의 발음을 따라 하는 것처럼.
그 소리는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홍석영이라고 알아차리기는 어려울 테지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절대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홍석영에게는 그게 자신의 이름이라고 확신을 할 수 있을 만큼 수도 없이 들어야만 했던 소리였을 것이다.
“세 번째. 인간의 말도 모르고 소리도 못 내는 타입. 사실 이런 놈들이 제일 쉬워.”
지네는 홍석영을 중심으로 맴돌았다. 잔뜩 경계하고 있다. 공격할 낌새가 보이지만 쉽사리 덤비지는 못하고 있다.
왜? 난 바로 공격하려고 했으면서?
…눈앞에 있는 게 홍석영이라서? 다른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그런 놈들은 보통 지능도 떨어지는지 나만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기 바쁘거든. 얼마나 편해.”
가만히 지네와의 거리를 재 보았다.
묘한 거리다. 멀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가깝고, 가깝다고 하기에는 손이 닿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는 익숙한 거리감이었다. 내가 창을 들었을 때 딱 저기까지가 발을 떼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범위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에게서 창을 배웠다. 아버지와 나의 창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크기였고, 따라서 홍석영에게도 딱 이만큼의 거리가….
홍석영의 기분이 나빠진 이유를 알겠다. 나 같아도 처음 들어간 던전에서, 처음 보는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몬스터가 나를 잘 알고 있는 티를 낸다면….
단순히 기분이 나빠지는 걸로 끝나진 않을 거다.
“네 번째는… 얘네가 제일 까다로워.”
“말은 알아듣고, 소리는 못 내는 놈이요?”
“그래. 척하면 척이지? 역시 내 아들이라니까.”
“남은 게 하나밖에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내 아들이지.”
홍석영은 끝이 갈라진 목소리로 웃었다. 나는 그걸 모른 척하며 물었다.
“그래서 왜 제일 까다로운데요?”
“음. 눈치가 빠르거든.”
“눈치가요.”
“머리도 좋아.”
“머리가요.”
지네들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우습게도 그 모습이 마치 우리의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나 내가 던전에 대해 그 무엇보다도 확신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던전 안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없다는 사실이다.
던전에서 상식을 찾으면 안 된다.
홍석영은 내 얼굴을 보더니 뿌듯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마치 정답을 알아냈다고 칭찬하는 것처럼.
홍석영은 친절하게 덧붙였다.
“요놈들, 그렇게 꼭꼭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왔잖아. 왜일까?”
“…….”
“응?”
아버지와의 수업이 생각난다.
아버지도, 유지은도 항상 나한테 물어봤다. 그게 정답이든 오답이든 상관없이 내가 먼저 생각해 보라고.
좋은 교육방식이라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걸 여기서까지?
“응? 왤까?”
홍석영은 어쩐지 신이 나서 대답을 종용했다.
왠지 곧이곧대로 말해 주기 싫어진다.
“알 게 뭡니까.”
저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그러나 홍석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틀려도 좋으니까 얘기해 보게.”
아, 젠장.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안 끝나겠군.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나 보죠.”
“왜?”
“…….”
직전까지 홍석영과의 대화를 되새길 필요도 없다.
저 지네들이 우리가 했던 말을 알아들었다면.
“핵을 부수겠다고 했으니까요.”
홍석영은 활짝 웃었다.
“그렇지.”
신이 난 얼굴을 보니 기운이 빠진다. 난 그냥 한시라도 빨리 여길 빠져나가고 싶을 뿐인데.
“결국 좀 더 약아빠졌을 뿐 다 똑같아.”
홍석영은 천천히 허리를 낮추었다.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자 그만큼 지네들이 뒤로 물러났다.
“가만히 있다가 살살 눈치 보면서 습격하지. 인간 말을 모른다는 게 알아듣지 못한다는 건 아니잖아?”
“그렇겠죠.”
“가장 최적의 순간에 내 목을 노리는 거야. 아, 지금은 급했겠지만.”
“네.”
시큰둥하게 홍석영의 말에 동조해 주었다. 난 여기서 빨리 나가고 싶다고.
“아마 이 아래….”
홍석영은 발바닥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이놈들의 머리가 있을 거야. 어떻게 명령을 내리는지는 관심 없고. 그놈이 미래에서 왔을 거야. 크기는 아직 작을지도? 아직 먹이 주는 놈이 없으니까.”
“…….”
“우리가 대놓고 미래가 어쩌고 했으니 깨달았겠지. 과거로 온 건 던전 안에 갇힌 몬스터뿐만이 아니라는 걸. 뭐, 그걸 알아 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홍석영은 껄껄 웃기 시작했다. 천천히 홍석영의 발밑으로 마력이 움직인다.
“다 똑같다니까. 상대하는 법도.”
웃음이 그친다. 마력도 멈춘다.
“희재 군, 항상 명심하게.”
마치 폭풍 전의 고요한 날씨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언제 어디서나 수상한 움직임의 몬스터를 발견하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이게. 죽이는 게 어렵다면 던전을 닫아.”
온몸을 짓누르는 마력의 돌풍.
“…만약 제 실력으로는 안 된다면요?”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땐 아빠 불러.”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대답을 듣자 왜인지 안심이 되었다.
미래에 김채민을 죽였던 세이렌 던전이 사라진 것처럼, 이십 년 뒤 아버지와 유지은을 죽였던 지네 던전이 사라지기 때문일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말했듯이, 던전에서는 온갖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 * *
“어때. 아빠 멋지지?”
“뭔 개소리입니까.”
“희재 군이 못 잡은 몬스터를 이렇게, 저렇게!”
“못 잡은 게 아니라 안 잡은 겁니다.”
“어허.”
“제가 선생님 화풀이에 어울려 준 거죠. 착각하지 마세요.”
“어허….”
“그 경력에 고작 D급 던전 하나 공략 못 하면 나가 죽어야죠.”
회수한 검을 쥐고 불길을 살짝 일으켰다. 홍석영이 의아한 듯 쳐다보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소독이요.”
“……혹시 들어가기 힘든 던전 있나?”
“아뇨. 없습니다.”
“…벌레?”
“잘 잡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대신 잡을 사람이 있는데 제가 잡을 필요가 있습니까.”
정말 다행히 곤충형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은 수가 많지 않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지네가 나오는 던전도….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국내에 이곳 말고는 없다. 다른 곤충형 몬스터는 있긴 해도.
홍석영이 한바탕하고, 내가 놓은 불이 아직 활활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네는 남아 있었다. 곧 닫힐 던전, 굳이 다 죽일 필요는 없다. 그냥 돌아서서 던전을 나서면 끝이다.
마지막을 깨달은 지네들은 도중에 공격 의사를 잃었다.
“지능이 있다는 마지막 증거지.”
“…이게요?”
“희망의 개념을 알고 있잖나.”
활활 타오르고 있는 숲. 죽은 지네들. 부서지는 유리 천장.
게이트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 거대 지네가 이렇게나 일찍부터 이 던전에 숨어 있었던 거라면, 그때 유지은의 말대로 던전을 공략했어도 이미 몸집을 키운 지네가 튀어나와 방해했을 것이다. 아버지를 비롯한 수많은 헌터들이 달라붙어 겨우 죽였을 그놈이 말이다.
어쩌면 유지은은 던전에 숨어 있던 놈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유는 말하지 못했던 거지.
그럼 이미 늦은 거잖아. 공략을 하러 들어갔어도 전멸이다.
멍청한 아줌마.
누나.
던전 하나 공략 안 했다고 망할 세상이었으면 진작 망했겠지.
무너져 내리는 던전을 보며 마지막으로 보았던 유지은의, 내 하나뿐인 누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희재 군?”
“…나가죠.”
씨발.
눈이라도 감겨 줄걸.
나는 누나의 유품을 손에 든 채 뒤늦게 후회했다.
* * *
“그래서….”
유지은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시선을 따라가자 TV 리모컨이 있었다. 아, 젠장. 관리청 헌터들이 저 여자가 저러는 꼴을 알아야 하는데.
리모컨을 주워 던지자 유지은은 재수 없게 웃었다.
“누나는 못 들어가는 던전이 없다고?”
“그럼.”
유지은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내가 누구냐. 관리청 에이스 아니냐.”
“에이스는 한태경 아니었어?”
“그 아저씨는 관리청 에이스 또라이고. 이번에 결국 라이센스 정지 먹었더라.”
“이제야?”
“그동안 협회랑 정부에서 선생님 얼굴 봐서 많이 봐줬지….”
유지은은 맥없는 얼굴로 껄껄 웃기 시작했다.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이는 꼴을 보니 제아무리 유지은이라 하더라도 그 아저씨와 같이 일하는 건 힘든 일인가 싶었다.
유지은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또라이인데…. 역시 진짜배기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어쨌든 이 누나는 못 들어가는 던전이 없다고 할 수 있지.”
“아, 그래….”
“이제 좀 존경스럽냐?”
“내가 헌터도 아닌데 뭘.”
“귀염성 없기는.”
유지은은 내 컵을 다시 들었다.
아까 다 마셔 놓고서는 뭘 또 마시냐. 유지은은 빈 잔을 보고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어, 싫어하는 던전은 있어.”
“벌레?”
“아니.”
유지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난 소가 싫어.”
“소?”
“음메 하는 소. 뿔 달려 있으면 더 싫고.”
“걔네가 무섭다고?”
“아니. 무서워서가 아니라.”
유지은은 아까 전처럼 복잡한 얼굴로 웃었다.
아저씨한테 처음 유지은을 소개받고 나서, 정확히는 유지은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 무렵, 유지은이 마저 말했다.
“그놈들 목 따고 싶어서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가거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