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13)
선생님과 제자(1)
4월 1일.
만우절!
그냥 4월의 첫째 날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다. 학교에서도 난리고, 언니도 난리고. 진짜 귀찮다니까.
그래도 어른스러운 내가 참아 줘야지. 그래서 언니가 하는 바보 같은 장난에도 속아 넘어가 준 척한 거 아냐. 진짜 이런 동생 어디 없다.
언니가 오늘 한 말 중 거짓말이 아니었던 건 머리 잘랐다는 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겨울 동안 머리 자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댔으니 자른 게 놀랍지는 않은데…. 아니, 누가 여동생 놀리려고 마법까지 써서 대머리 사진을 찍어? 미친 거 아냐? 서현이 언니랑 진우 오빠는 왜 그거 도와주는 거야? 실습 준비하느라 바쁘다면서 거기에 신경 쓸 시간은 있어?
짜증 나서 자른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는 얘기 안 해 줬다. 나도 단발로 잘라 볼까.
4월 2일.
언니가 하루 종일 웃고 다닌다. 왜 그렇게 웃고 다니냐고 물어보니까 빨리 실습 가고 싶어서란다.
던전에 그렇게 들어가고 싶은가?
난 잘 모르겠다. TV를 보면 던전은 엄청 위험한 곳이라던데, 언니나 아저씨 말 들어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아저씨가 너무 강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니까 언니는 양반인 것 같다. 다른 오빠들은 난리도 아니라니까. 남자들이란. 은영이 언니가 질색할 만도 하다.
근데 그 언니는 던전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그냥 연습? 대련하는 것도 안 좋아했다. 던전도 안 좋아하면서 왜 헌터가 되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돈 때문인가? 근데 은영이 언니네 집은 돈 많지 않았나?
이렇게 물으면 은영이 언니는 돈이 정말 많은 건 승연이 오빠랬다. 아니, 그 오빠를 들먹이면 대한민국에 돈 많은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돈 많이 벌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숨 걸고 일하고 싶지도 않다. 일기장이니까 솔직하게 쓰는 건데, 언니가 힐러라서 다행이다. 병원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잖아. 개미도 제대로 못 죽이면서 몬스터는 무슨.
나도 각성했다면 언니랑 같이 던전에 들어갈 수 있었으려나. 각성은 유전 영향이 크다고 했지 않나? 언니가 했으니 나도 하지 않을까?
만약 나도 각성할 거면 언니처럼 힐러나 되고 싶다. 근데 아저씨처럼 싸울 수 있어도 멋질 것 같은데. 나중에 호신술이나 가르쳐 달라고 할까.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가 가르쳐 주는 호신술이라니. 완전 있어 보이잖아.
4월 3일.
서현이 언니가 와서 밥을 해 주고 갔다. 솔직히 그 언니나 나나 요리 실력은 비슷하지 않나? 일부러 해 준 게 고마워서 가만히 있긴 했지만, 그냥 시켜 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홍 아저씨도 왔다. 요즘 바쁘다더니 오랜만에 봤다. 던전에 얼마나 있는 거냐고 물어봤는데 어차피 실습이라 하루면 나올 거라고 했다. 역시 던전을 공략할 거니 마니 했던 현욱이 오빠의 말은 개소리였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던전은 위험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아저씨가 같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아. 아저씨가 들어가는 거였으면 나도 걱정 안 했지.
아저씨는 걱정하지 말라며, 언니랑 같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아저씨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엄청 세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솔직히 아저씨보다 더 센 사람이 한국에 있기는 한가 싶었지만…. 뭐,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는데 괜찮겠지.
4월 4일.
우연히 시계를 봤더니 4시 44분이었다. 일 년 중 4가 제일 많은 시간. 그렇게 말하니까 현욱이 오빠는 오후 4시가 아니라 오전 4시여야지 찐이라고 했다. 잘난 척은. 재수 없어.
언니가 가방 챙기는 걸 옆에서 봤다. 뭘 그렇게 많이 챙기냐고 물어봤더니 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제 아저씨는 실습보다는 체험에 가까워서 잠깐 들어갔다가 하루 안에 바로 나올 거라고 했는데…. 에너지바가 필요한 이유가 뭔데? 몬스터한테 먹이라도 줄 생각인가?
움. 으으으으음.
그래. 배가 고플 수도 있지. 돼지. 위험한 던전이면 던전에 막 한 달씩 들어가 있고 하던데. 아저씨도 한 번씩 길게 던전에 들어갔다가 나오니까.
물론 언니가 실습으로 들어가는 던전이 그런 던전인 건 아니지만 기분은 내고 싶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말했더니 언니가 날 때렸다. 그러면서 자기가 진심으로 나를 때리면 내가 죽을 거니까 봐줬다고 했다. 힐러는 별로 세지도 않잖아.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진짜 내가 짜증 나서라도 각성을 하고 만다.
어쨌든 실습이든 체험이든 던전에 들어가는 건 던전에 들어가는 거니까 언니가 잘하고 오면 좋겠다. 나오거든 치킨 시켜 먹자고 해야지.
떡볶이도 먹고 싶은데.
족발도.
우동도 먹고 싶다.
탕수육이랑.
언니보고 사 달라고 해야지.
4월 5일.
4월 6일.
4월 7일.
4월 8일.
아저씨가 꼭 장례식을 치를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4월 9일.
왜
4월 10일.
우리 언니.
우리 언니 어떡해.
4월 11일.
언니 보고 싶어.
4월 12일.
언니언니언니.
언니.
너무 고생 많았어.
무서웠었지.
불쌍한 우리 언니.
잘 가.
* * *
“…지은아.”
“아뇨.”
“…….”
“미안하다고 하지 마세요.”
“…….”
“아저씨가 잘못한 거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거지. 우리 언니는 그냥 운이 나빴던 거예요.”
손이 다가온다. 두껍고 투박한 손은 망설이다가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유지은은 눈물을 겨우 참아 내고 고개를 들었다. 언니가 등 뒤에 있다. 이제 언니가 없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은 바깥의 소란스러움과 달리 고요하다. 그 모든 것을 유지은은 눈에 담았다. 어깨 위의 따스한 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아저씨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면, 나 아저씨 원망해야 해요. 그러니까 안 돼요. 난 아저씨한테 고마운 일만 있었다구요. 언니랑 내가 아빠랑 같이 안 살아도 되었던 건 전부 아저씨 덕분이잖아요.”
“지은아….”
“난 아저씨 미워하기 싫어요.”
“…….”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는 대신, 나랑 약속해 줘요.”
“…뭘?”
“우리 언니. 우리 언니랑, 승연이 오빠랑 진우 오빠.”
“…….”
“그렇게 만든 사람 죽여 주세요.”
그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유지은은 알지 못했다. 언니가 들어갔던 던전을 관리하던 길드에서 등급을 속였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던전 브레이크에 함께 휩쓸렸으니 대부분 죽었다는 소식도 같이.
그래도 유지은은 그렇게 말했다.
순전히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저씨도 아저씨 대신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해서.
그 말에 제자를 잃은 홍석영은.
“…….”
유지은은 고개를 들었다. 언니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등을 돌리고 있는 자신과는 달리, 홍석영은 한 번도 피하지 않았다.
마치 자기 죗값을 두 눈에 똑똑히 새기고 있는 것처럼.
유지은은 고개를 바로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장례식장의 손님을 기다리는 채로.
“고맙습니다.”
유지은은 이를 악물었다.
* * *
찰칵.
찰칵. 찰칵.
찰칵찰칵찰칵찰칵…….
“유지은 학생!”
“여기 잠깐 봐 주세요!!”
“홍석영 헌터, 이번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을 질 생각입니까!”
“시범고는 계속 운영합니까?!”
“유지은 학생!!”
“여기 보라고!!!”
도떼기시장처럼 욕설과 고함이 오간다. 아니, 차라리 시장 바닥이 이곳보다 더 점잖았을 것이다.
눈이 아플 정도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어딜 보아도 기자가 있다. 살기를 머금고 노려보아도 그때만 겁을 먹을 뿐 물러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기절이라도 시키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더욱 시끄러워지고 말 것이다. 그러잖아도 받지 말아야 할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그저 어린아이가 가는 길이니 인간 된 도리로 적정 수준의 예의만 지켜 주길 바랐다. 그러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어느 누구도 조용히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홍석영 헌터! 홍석영 헌터 때문에 죄 없는 시민들이….”
마침내 간 큰 기자 하나가 마이크와 함께 카메라를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기자의 얼굴이 번들거린다. 입술은 딱딱하게 굳어 있지만, 눈은 특종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주름을 짓고 있다.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억!”
홍석영은 손을 쭉 뻗어 카메라를 쥐었다. 기자는 반사적으로 촬영 버튼을 눌렀지만, 찍은 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카메라를 쥔 손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카메라를 부수었다.
“이건…!”
기자는 벌컥 화를 낼 요량으로 입을 벌렸다. 하지만 문장은 완성되지 못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벌벌 떨렸다. 뒤늦게 기자는 눈앞에 있는 인간이 대한민국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헌터 중 하나임을 떠올렸다.
이번 명동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에서도 S급으로 분류되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헌터 중 하나였다.
꿀꺽.
귀를 따갑게 하는 셔터 소리가 뜸해지더니 이윽고 모두 멈췄다. 기자들은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물러났다. 홍석영은 그제야 손을 펼쳤다. 산산조각이 난 카메라가 우수수 떨어졌다.
“보상을 원하면 길드 다선으로 연락하시길 바랍니다.”
“……포, 폭력!”
그러나 기자는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그간 틈이라곤 하나도 내보이지 않았던 그 홍석영의 허점이다. 홍석영의 죽은 가족에 대해서도 유명하지만, 그쪽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건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원래도 헌터 양성 시범고등학교에 대한 평판은 좋다고 할 수 없었고, 함께 죽은 이들은 무고한 시민들이다. 사람들은 비극에 환호하는 법이고, 조회수는 곧 돈을 말한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홍석영은 이번엔 기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흉터가 가득한 손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기자는 가까스로 비명을 억눌렀다.
뿌드득.
기자는 허옇게 질린 몰골로 자신의 어깨에 올라간 손을 보았다. 핏줄이 흉하게 서 있는 것과는 달리, 어깨에 느껴지는 힘은 없다. 삐끗 잘못했다가는 저 손이 붙잡을 게 자신의 어깨라는 사실을 깨달은 기자는 입을 다물었다.
“길드, 다선에.”
기자의 머리가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연락을 하라고.”
일순 제어하지 못한 살기가 퍼진다.
민간인들이야 각성자처럼 마력에 민감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칼날처럼 서늘한 마력을 아주 감지하지 못하지는 않는다.
“…….”
입 안이 바짝 마른다.
“알겠습니까?”
새끼를 잃은 짐승처럼 흉포하게 가라앉은 눈과 마주쳤다.
기자는 침을 삼키지도 못하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궁금한 게 있다면.”
홍석영은 그 꼴을 보면서 낮게 읊조렸다.
“다선의, 마스터, 이미선 헌터에게.”
다선과 이미선의 이름이 나오자 홍석영에게 붙잡힌 기자는 물론, 다른 이들의 머리에도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죽은 헌터 중에는 다연 회장의 막냇손자도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죽은 언니의 영정을 들고 있는 여자아이의 뒤로 검은 양복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평소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아무 표정 없이 서 있는 여자에게서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연락하라고.”
“…….”
“…….”
“아저씨.”
영정을 든 여자아이가 홍석영을 불렀다.
홍석영은 가만히 기자들과 시선을 맞추더니 손을 뗐다.
“지은아, 가자.”
“네.”
유지은은 지금 이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의 얼굴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검은 한복이 다시 움직인다.
유지은은 가슴에 안은 언니의 사진을 꽉 쥐었다.
시체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장례식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