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14)
선생님과 제자(2)
털썩.
유지은은 퀭한 눈으로 눈앞에 떨어진 신문을 보았다.
“…뭐야?”
“신문.”
“내가 몰라서 묻나? 요즘 세상에 무슨 종이 신문이야?”
그래도 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유지은은 반으로 접힌 신문을 펼쳤다.
왜 신문을 가져왔는지는 헤드라인을 읽거나 다른 장을 들추지 않고 1면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아, 이거….”
제일 첫 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진이 있다. 그나마도 사진의 절반은 초점이 나가 반절은 가려졌다. 홍석영의 험악한 얼굴과 카메라를 붙잡는 손 사이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품에 안고 있는 언니의 사진마저 제대로 나왔다.
“아저씨가 카메라 부쉈는데 어떻게 잘도 찍었네. 잘 나왔다.”
“지금 그게 할 소리니?”
“나 같아도 이거 찍었음 1면에 실었어.”
“미친 거 아냐?”
유지은은 신문에 인쇄된 사진을 매만졌다.
“언니 머리 자르고 사진 찍자고 할 걸 그랬어.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만우절 장난 사진이잖아. 완전 어이없어.”
“…….”
“영정 사진으로 썼던 것도 작년에 찍은 사진이고. 이거 언니가 자기 나이 들어 보이게 나왔다고 싫어했는데.”
“…지은아.”
“응?”
유지은은 고개를 들었다. 작은 체구의 소녀가 울 듯한 얼굴로 앞에 서 있었다.
유지은은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허둥거리며 양팔을 내저었다.
“나 이런 이야기 하려고 언니 부른 거 아닌데!”
“…나도 사실 이 이야기 하려고 너 찾아온 거 아닌데.”
“그래?”
소녀의 말에 유지은은 짓궂게 웃었다.
“그래도 나부터 하자. 잠깐만!”
유지은은 방 안으로 냉큼 들어갔다.
거실에 혼자 남은 소녀는 집을 둘러보았다. 조용하다. 소파도, 테이블도, 다른 가구도 모든 것은 바뀌지 않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종종 놀러 왔던 친구의 집.
집을 옮기는 게 낫지 않냐고 교장 선생님이 물어봤다고 했던가. 저 애가 거절해서 그렇지.
이사하지 않겠냐고 물어본 교장 선생님의 마음도, 남아 있겠다고 한 유지은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됐다.
“언니!”
유지은은 방 안에서 커다란 포장 꾸러미를 들고나왔다. 귀여운 판다 캐릭터가 그려진 포장지에, 핑크색 리본까지 꼼꼼하게 달려 있었다.
“생일 축하해!”
“…응?”
부피가 큰 것에 비해 무게는 가볍다.
소녀는 얼결에 선물을 받은 채 눈을 깜빡였다. 이걸… 예상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말했다.
“나 아직 생일 아닌데.”
“알아.”
유지은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곧 언니 생일이잖아. 울 언니가 미리 사 뒀어.”
“아….”
“포장은 내가 했어! 언니가 사 놓기만 하고 안 했거든? 열어 봐, 열어 봐.”
“…….”
“노래 불러 줄까?”
“…아니! 괜찮.”
“생일 축하합니다!”
유지은은 박수를 치며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사랑하는 순진 언니의! 생일 축하합니다!! 와아!”
“…….”
“케이크가 없네. 내 선물도… 없어. 미안. 나중에 내가 꼭 사 줄게. 내가 지금 밖에 나가기가 좀 그래서. 사실 생필품이나 이런 것도 아저씨한테 부탁하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있거든.”
순순진은 뭐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냐…. 괜찮아.”
“그래도 포장은 내가 했다니까? 사실 포장지도 언니가 사다 뒀던 거야. 그래도 노동력이 있으니까 쫌만 봐주라.”
“괜찮다니까. 고마워.”
“자! 얼른 열어 봐.”
순순진은 잠깐 망설이다가 리본부터 풀었다.
포장 안쪽에 무엇이 있을지는 대충 예상이 갔다. 가볍고, 푹신푹신한 것. 이만한 크기라면 인형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포장지를 풀어 헤치자 털이 복슬복슬한 인형이 나왔다. 곰 인형인가 했는데….
“언니 판다 좋아하잖아!”
오른손에 대나무를 든 판다 인형.
“언니가 이거 보더니 딱 언니 선물이라면서 바로 샀거든? 어때, 마음에 들어?”
“…귀엽다.”
순순진은 인형을 꼭 안았다.
‘순진아! 나중에 봐!’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지. 아무도 몰랐을 거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인형에 얼굴을 묻는 것으로 참았다. 지은이는 은근히 눈치가 빠르니까 울면 바로 티가 날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은이 앞에서만큼은 울 수 없다.
“맘에 들어. 고마워.”
“난 한 거 없다니까.”
“포장해 줬잖아.”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대단하지.”
“…진심?”
“그럼. 날 위해 해 준 거잖아.”
순순진은 갈라진 목소리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더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난 손재주가 없어서 리본도 잘 못 묶는다구.”
“나도 잘 못 묶어….”
두 여자아이는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갈라진 목소리도, 벌건 눈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했다.
“지은아.”
“응?”
웃음이 잦아들자 순순진은 내내 신경 쓰였던 것을 물었다.
“요즘 선생님 많이 바쁘실 텐데…. 자주 오셔?”
“어….”
유지은은 대답을 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였다. 예상했던 대답이라 순순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선생님 바쁘신 거야 순순진도 잘 알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유지은을 절대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것도.
“한동안 나랑 있을래?”
“……언니랑?”
“그냥, 너 혼자 두기도 그렇고. 마스터도 있으니까 낫지 않나 싶어서.”
“아냐. 괜찮아.”
유지은은 단호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도 몇 번 더 얘기를 해 보려던 순순진은 유지은의 얼굴을 보고선 바로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얼굴이었다. 순순진은 판다 인형을 꼭 껴안은 채 말을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억지로라도 데리고 가고 싶은데, 그게 유지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아. 맞아. 그리고.”
“응?”
“신문. 이거 마스터가 고소할 거라고 했어. 너한테 허락받으려고 올걸?”
유지은은 묘한 얼굴로 신문을 보았다.
“자꾸 신세 지는 일만 늘어나네. 안 해도 되는데.”
“무슨 소리야. 고소해. 싹 다 해 버려.”
“…….”
“마스터가 해 주는 거니까 넌 신경 쓸 거 하나도 없어.”
“…괜찮으셔?”
“고소할 기자 찾으시는 거 보면, 뭐. 그걸로 기분을 풀고 계시는 걸지도.”
일부러 가볍게 말하긴 했지만, 길드 사무실은 찬바람만 불었다. 모두가 숨 쉬는 것마저 조심히 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마스터를 보았으니 유지은도 알 거다. 그래도 애써 무거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순순진의 노력을 알았는지 유지은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순순진은 쓰게 웃었다. 장례식이 끝난 이후로 마스터는 무서운 얼굴로 책상에 앉아 예전에 찍은 사진만 보고 있었다. 시범고 교복을 입고서 입학식이랍시고 다 같이 찍었던 사진이었다.
‘야! 이승연!!’
‘왜!! 순순진!’
‘어유, 아침부터 기운도 좋다. 너희들, 잠깐 여기 서 봐. 사진 한 장 찍자. 나중에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요.’
‘와, 고모. 완전 나이 든 사람처럼 말한다.’
‘요게 고모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너희도 다 내 나이 들어 봐! 남는 건 진짜 사진뿐이라니까!’
일 년도 되지 않은 일인데, 너무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지은아.”
순순진은 조금 이른 생일 선물을 안은 채 친구의 동생을 보았다. 마스터나 유지은이나 가족을 잃었다. 특히 유지은은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거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자신이 하는 말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괜한 말을 해서 상처를 줄 바에는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웃는 게 나아 보였다.
순순진은 눈을 감았다 떴다.
아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어.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왜 불러 놓고 말을 안 해?”
유지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순진은 여전히 말을 고르는 중이었다. 유지은이 불러서 오긴 했지만, 아니어도 찾아오긴 했을 거다. 마지막 작별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작별 인사.
“나 시범고 그만둬.”
순순진은 최대한 평온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유지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그만둔다고.”
“왜?”
유지은은 벌떡 일어나다가 입을 합, 다물었다.
이유야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순순진은 쓰게 웃었다.
“나랑 한성이는 학교 그만두고 마스터 밑에서 일하기로 했어.”
“…다선?”
“다선은 다선인데…. 뭐, 이것저것 할 거야. 그래도 몇 년은 시범고 때 이상으로 구르겠지만.”
“…….”
“앞으로 시간이 언제 날지 잘 모르겠어. 그래도 최대한 너 보러 올게. 응?”
유지은은 순순진의 얼굴올 똑바로 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요 며칠 동안 부쩍 어른이 된 얼굴이었다.
“다른 언니, 오빠들은? 다들 그만둬?”
“…은영이가 제일 먼저 그만뒀고.”
순순진은 평소의 새침함은 온데간데없이 펑펑 울면서 자신을 끌어안던 친구를 떠올리며 말했다.
“헌터도 그만둔다고 하더라. 원래 그렇게 헌터를 하고 싶어 하던 애는 아니었으니까….”
“은영이 언니는 공부도 잘했어.”
“네 공부도 봐줬었지?”
유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현이랑 현욱이는 계속 남아 있는다고 했어.”
“…둘 다 괜찮아? 장례식 때도 못 봤어.”
“아직 병원에 있어.”
“많이 다쳤어?!”
“아, 아니.”
순순진은 손을 저었다. 사실대로 말해 줄 순 없다.
“지금 나와 봤자 기자들한테 시달릴 게 뻔하니까 계속 입원 중이야. 조금 잠잠해지면 나온대.”
“아…. 그건 그렇겠다.”
다행히 유지은은 그 설명에 납득했다.
“나도 시끄러웠는데 그 두 사람이면….”
“너 잘 지내고 있는지 현욱이가 많이 걱정하더라. 나중에 전화라도 한번 해 줘.”
“응.”
“나한테도 계속 연락해. 알았지? 내가 해외에 나갈 수도 있어서 바로 답장 못 해 줄 수도 있는데, 최대한 빨리 확인할게.”
“다선에서는 해외 연수도 보내 줘?”
순순진은 애매하게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어쨌든 무슨 일 있으면 꼭 교장 선생님이나 우리 마스터한테 얘기하구. 알았지?”
“내가 무슨 애인가.”
“아직 애지.”
“…으.”
“애.”
순순진은 유지은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원래라면 어린애 취급 하지 말라고 왈칵 짜증을 냈을 텐데 가만히 있는 모습이 더 발걸음을 떨어지지 않게 했다.
“그럼 언니 갈 테니까… 연락해.”
“응.”
유지은은 현관까지 나와서 순순진을 배웅했다.
달칵.
문이 닫히자 그나마 온기가 돌았던 집 안이 적막해졌다. 유지은은 가만히 현관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언니가 문을 열고 돌아올 것만 같았다.
작게 미소를 짓고 있던 입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아무렇지 않게 웃던 눈도 날카로워진다.
까드득.
턱에 힘을 주었다. 이 가는 소리가 외롭게 울려 퍼진다.
열여섯 살의 소녀는 그저 가만히, 그렇게 언니와 살던 집에 홀로 서 있었다.
* * *
“나 학교 그만뒀어요.”
“…….”
“어차피 출석 일수도 부족하다고요. 지금 학교 다닐 상황이 아니니까.”
달칵.
조용히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홍석영은 접시를 싱크대에 넣으며 유지은의 말을 들었다.
“나중에 검정고시나 치려고요.”
“…그러냐.”
“네. 그래서 그런데, 내년에 저 시범고 들어갈 거예요.”
고무장갑을 끼던 손이 멈춘다. 유지은은 그걸 모른 척하며 말을 이어 갔다.
“오늘 아침에 각성했어요.”
“…….”
“아저씨 제자로… 이제 아저씨라고 부르면 안 되려나. 여튼 나 제자로 받아 주세요.”
“지은아.”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요.”
홍석영은 눈을 감았다. 식탁에 앉아 있는 작은 소녀가 이렇게까지 두려워지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홍석영은, 일어난 일을 피하는 법 없는 홍석영은 천천히 몸을 돌려 유지은을 마주했다. 그만두게 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다.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네 언니가 그런 걸 원했겠냐는 말을 할 각오도 있었다.
그러나 홍석영은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
한때의 자신과 똑같은 눈빛을 한 소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저 아이의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