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15)
온실(1)
“나 보고 싶었어요?”
김채민은 활짝 웃었다.
“안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죠? 안 그래요? 보고 싶었잖아요!”
“아, 네…. 보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대마법사 김채민은 반질반질 윤이 나는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어찌나 잘 웃고 있는지 괜히 얄미워질 정도였다.
그렇게 두문불출한 것치고는 너무 잘 지낸 얼굴이지 않나.
“뭐예요! 완전 영혼 없잖아요! 좀 더 영혼을 담아서 말해 줘요.”
반갑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반가워해 줄 의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귀한 대마법사이다. 헌터라고 하더라도 살면서 만나기가 산삼과도 같다는 그 대마법사.
그리고 무급 봉사자….
아니, 뭐. 정말 홍석영이 내 룬을 대가로 김채민을 무급으로 부려 먹은 건 아니고, 김채민에게도 딱 최저임금만큼의 월급을 줬다. 그리고 김채민이 영역이 어쩌고 하며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때는 무급 휴가 처리를 했다. 이런 부분에서는 확실히 해야 하는 법이다.
“오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김 선생님이 없으니까 아쉬운 순간이 있더라고요.”
“…아닌 것 같은데요?”
“진짠데요.”
“여전히 영혼이 없는데요.”
“착각입니다.”
“…….”
김채민은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날 의심해서 뭘 어쩔 건가. 직장 동료한테 뭘 바라는 거냐고. 그리고 저 말은 진심이긴 했다. 김채민이 있었으면 편했을 순간이 하나둘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방이동 던전 때라든가….
하지만 나는 어른이다. 그런 아쉬움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줄 수 있다.
사람 사는 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사정이 생기면 몇 달 동안 일도 다른 동료에게 떠넘기고 쉴 수도 있고 하는 거지. 다 그렇게 돕고 사는 거다. 물론 나는 저렇게 쉴 수 없겠지만.
그마저도 사람 사는 일이지.
“…일단은 넘어갈게요.”
“그냥 넘어가죠?”
“방금 영혼이 없었다고 인정하는 거죠?”
“아뇨.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김채민은 뚱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곧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듣는 맑은 목소리다. 그동안 들었던 웃음소리에 어떤 게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라.
기껏해야 우이록이나 홍석영이 킬킬거리며 웃는 걸 지켜보는 게 다였다. 거기서 더해 봤자 갬블이 조용히 웃는 거였고, 김채민처럼 눈치 보지 않고 높게 웃는 건….
‘아하하!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 줄까? 방주는 생각보다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어!’
그 몬스터인지 인간인지 모를 얼굴을 떠올리니 기분이 나빠졌다.
김채민이 무단 무급 휴가를 즐긴다고 그 귀찮은 일들을 모두 피했다. 솔직히 그게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라면 고통을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제가 없어서 아쉬운 순간이 있었다는 건 제가 보고 싶었다는 소리가 아니잖아요?”
“보고 싶었다는 소리죠.”
“편리한 대마법사님이 없어서 불편했던 게 아니라요?”
“대마법사님께 어떻게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하겠습니까.”
김채민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더 말을 하진 않았다.
대신 김채민은 내 팔을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
“제가 놀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억울하거든요!”
“놀고 있었다곤 안 했는데요.”
“딱 보면 알죠.”
“대마법사님께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다니. 전 그런 놈 아닙니다.”
김채민이 잡아끄는 대로 걸어가며 주위를 살폈다.
현대 마력 공학의 발달로 인하여 건축 속도는 무지막지하게 빨라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과학적인 영향보다는 이미선이 보인 현대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어쨌든 황량한 갈대밭 사이에 덩그러니 있던 컨테이너 세 개는 이제 그럴싸한 1층짜리 건물이 되었다.
건물. 정확히는 학교.
그러니까 헌터 양성 시범학교의 건물이다. 훗날 헌터 아카데미라고 불리게 될 교육 기관의 전신이기도 하고.
교실로 사용했던 컨테이너가 세 개였다고, 학교도 세 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업에 사용하는 교실이 있는 본관. 학생들이 머무를 기숙사. 이사장실과 교사들이 지내는 숙소.
아직 학생 수도 많지 않고, 교사 수도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니 건물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그래도 헌터 아카데미 1관 1층과 똑같이 생겼기는 하다. 나중에 재학생이 늘어난다면 여기서 증축을 할 것이다. 당장은 이미선이 바로 사용할 생각으로 필수 시설만 세웠다. 덕분에 건물 규모에 비하면 수상할 정도로 큰 운동장이 유독 눈에 튀었다.
“우 선생님이 준 룬을 여기에 버무린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대마법사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는 존재이다.
“뭘 고생했습니까. 제가 다 해서 넘겼는데.”
기존에 있던 설계도에서 뽑아서 넘긴 것뿐이었다. 검증된 전문가가 심혈을 기울여서 작성한 설계도다. 손을 댈 곳은 없었을 거다.
“……그건! 부정할 수 없지만.”
김채민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냥 한 번쯤 져 주라고요.”
“공적은 확실하게 나눠야 하는 법이니까요.”
“정말, 맞는 말만 하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네요.”
투덜거리긴 했지만 김채민이 진심으로 짜증 내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일이 궁금해서 설레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누가 이유도 없이 즐거워하면 불안해지는 사람이다.
헌터도 헌터지만, 특히 마법사가 저렇게 즐거워할 때면 꼭 안 좋은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진짜 놀고 있었던 게 아니거든요.”
“김 선생님이 놀고 있었다고 안 했다니까요.”
“이거 아직 아무한테도 안 보여 줬어요! 이 헌터한테도요!”
김채민의 얼굴이 더욱 반질반질 빛난다. 뭐지, 도대체. 대마법사를 이렇게 흥분시킬 만한 일이 도대체 뭐가 있을까.
이미선은 임시로 2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사장실과 교사실 건물 뒤로 향했다. 아직도 학교 주위에는 끝없는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학교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갈대밭 안쪽. 작은… 통나무집이 있다.
크기는 작다. 학교 건물과 마찬가지로 1층에, 단순한 직사각형 모양이다. 창문도 작게 있었지만 전체적인 모양새를 보자면 사람이 거주하려고 만들었다기보다는 창고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말 창고였다면 김채민이 이렇게 자랑스럽게 보여 주진 않을 것이다.
울퉁불퉁한 통나무를 따라 넝쿨이 뒤덮여 있다. 잎사귀가 익숙한 모양이다. 김채민의 마법.
지붕을 빼곡히 덮고 있는 장미가 아니더라도 저게 무엇인지 알 수밖에 없었다.
“…영역입니까?”
김채민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걸… 저한테 보여 주시는 이유가?”
“왜겠어요?”
김채민은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내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했잖아.
“아뇨.”
“당연, 네?”
“뭐가 됐든 아뇨.”
“아니…. 못 보던 사이에 우 선생님 단호해지셨네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제대로 말해야 인생이 제대로 굴러가더라고요.”
그러나 김채민은 여전히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오늘 못 오셨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니까 선생님이라도 봐야 해요.”
김채민은 팔을 붙잡은 손을 놓았다. 오른손. 김채민이 주로 쓰는 손.
“…뭐를요?”
오른손을 활짝 펴 내게 다시 손을 뻗었다. 화사한 핑크빛과 싱그러운 연두색이 섞인 마력이 내 주위를 부드럽게 휘감았다가 사라졌다.
“제 희대의 역작!”
* * *
“솔직히 이거면 인류의 위대한 발견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쩌면 노아 미셀보다도 더 뛰어난 마법사로 평가될지도 몰라요. 어때요, 짜릿하지 않아요?”
“김 선생님의 업적이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그렇게 퉁명스럽게 굴지 말고요. 노아 미셀을 타도해야 하는 처지잖아요. 제가 미셀보다 더 유명해지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건 선생님의 경력이지 방주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요.”
“정말 그럴까요?”
김채민은 음흉하게 웃었다.
이렇게 기대를 높이는 발언을 해 봤자 저작 별거 아닐 가능성만 커진다. 이런 것도 많이 보았다. 보통 사기꾼이 이러는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김채민을 보았다. 대마법사라고 해서 사기에 안 걸리는 게 아니다. 아니, 이 경우에는 대마법사가 사기를 치는 건가. 그것도 없는 일은 아니었다.
내 미적지근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김채민은 즐거운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보안은 최고로 설정했어요. 제가 허락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게요.”
김채민은 나를 훑었다.
“그것도 일회성이니까 다음에 또 오고 싶으면 저랑 같이 와야 해요.”
“아, 네….”
“허락 안 받은 사람이 들어오면 터지거든요.”
“아, 네…. 네?”
“애들한테도 주의시키고요. 착한 애들이라서 멋대로 들어올 것 같진 않지만.”
“잠깐, 터진다고요?”
김채민은 여상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학교에 피해가 안 가게 방어 마법도 삼중으로 둘렀고, 불이 날 수도 있으니까 갈대에도 마찬가지예요. 저 그렇게 생각 없지 않아요.”
“그런 말이 아닌… 아뇨, 됐습니다. 그냥 얼른 들어가죠.”
그래. 김채민의 말대로 뭐라도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정말 단순하게 자기가 만든 영역을 자랑하려고 나를 부른 거라면.
홍석영에게 말해서 잘라야지.
…겨우 이런 이유로 대마법사를 자르기엔 아깝나? 하긴, 한태경도 데리고 있는데.
애들한테 이상한 걸 가르치지 않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김채민은 천천히 통나무집의 문을 열었다.
아무런 특색 없는 투박한 문이다. 그러나 문은 물론, 이 집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자재에 마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거미줄처럼 섬세하고 그물처럼 복잡하다. 그리고 빈 틈새에 김채민의 마력이 열쇠처럼 딱 맞게 맞물린다.
허락받지 않은 자가 들어오면 폭발한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닐 거다. 김채민의 5월 봄바람처럼 따스한 마력이 단단하게 날이 서 있다.
차갑게 나를 훑는 마력은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김채민의 마력에 주춤거렸다. 날카롭던 바람이 잠잠해졌다. 김채민은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내부는 의외로 편안한 분위기였다. 분명 창문은 크지 않았는데 따스한 햇볕으로 가득 차 있다.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공간이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마법이란 게 다 그렇다.
코끝에는 싱그러운 풀냄새가 가득하다. 실제로도 온갖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색색의 장미는 물론, 잘 알지 못하는 꽃과 식물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어때요?”
김채민은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영역 한가운데. 투박한 나무 탁자 위에는 장식품처럼 유리로 된 케이스가 있다. 작은 온실로 사용하는 모양인데 그 안에는 꽃이 자라고 있었다.
“이거….”
나는 홀린 듯 탁자로 다가갔다.
유리 케이스 안에는 푸른색 꽃이 자라고 있었다. 던전 안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앙증맞은 크기기는 하지만 꽃가루를 흩날리듯 마력을 폴폴 날리고 있는… 푸른색 꽃.
안개꽃처럼 작은 꽃들이 풍성하게 매달려 있다. 줄기에 비해 무성한 꽃의 무게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이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갈대와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더 말을 못 잇고 있자 김채민이 확실하게 말했다.
“마력초예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