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18)
오빠(1)
헌터도 인간인 이상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다.
의와 식, 주는 기본이요 그 이상의 것도 제때제때 충족시켜 주지 않으면 개판 나기 마련이다.
물론 헌터가 어린애도 아닌 이상 대부분은 알아서 해결해 오곤 한다.
하지만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누나는 그에 대해서는 꽤 각박한 평가를 내렸다.
‘개새끼들과 같은 거야. 사회화가 덜 된 거지.’
헌터는 결국 팀 작업이다. 아무리 잘난 헌터라고 해도 혼자서는 던전을 공략하지 못한다.
결국 헌터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직업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뭐, 홍석영 정도의 실력자라면 다소 괴악한 성격이라고 해도 맞춰 줄 거고, 없어서 못 모셔 가는 대마법사라도 심각한 사이코패스만 아니라면 다들 모른 척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능력이 안 되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한다.
내가 헌터 인성 교육에 힘쓴 이유가 무엇인가. 일단 성격이 좋으면 반은 간다.
이런 경향은 아직 라이센스만 있을 뿐, 제대로 된 헌터라고 할 수 없는…. 사실 실력만 따지면 그럭저럭 써먹을 정도는 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홍석영과 나에게 배웠는데. 심지어 대마법사에게 배우기도 했지. 그랬는데도 실력이 그대로면 포기해야지. 자긴 재능이 없다며 질질 짰던 이승연조차도 단순한 성취만 놓고 평가하면 아직까지는 잘하고 있다.
어쨌든 잘 배워 가고는 있지만, 주관적인 평에 의하면 헌터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은 시범, 아니 헌터고 학생들에게도 인성과 사회화, 그리고 인간관계는 민감하기 그지없는 사항이다. 특히 걔넬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잊지 말자. 지금은 사라진 관리청의 모 팀에 대한 추억을.
“진우야. 여기 이걸 봐. 채민 쌤한테 물어봤는데 여기서 이렇게 하면….”
“와! 이렇게 해도 되네? 그럼 내가 내 마법을 더하면 되는 거지?”
“응. 타이밍 잘 맞춰야 해.”
“나도 알아! 걱정 마.”
혹시 모를 폭발을 대비하여 가장 구석진 곳에 마법 실습실이 있다. 학교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만, 여기는 유독 심혈을 기울여 설계했다. 내화성 자재로 교실을 짓고 그러고도 혹시 몰라서 내구성과 내화성을 올려 주는 룬을 빼곡히 박았다. 아카데미 초반에 마법 실험으로 건물 하나를 다 태워 먹었다는 아버지의 증언이 생각나서였다….
어쨌든 마법 실습실에서 두 어린 마법사는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실습실이 저렇게 넓은데 왜 제일 구석진 곳에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대화를 엿들었다.
“먼저 마력을 풀고….”
“어? 서현아, 여기 잠깐 볼래?”
“으응?”
“여기. 마력 흐름이 조금 이상한데.”
“어어? 그러네. 왜지? 채민 쌤이 말한 대로 다 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순수한 마법 토론처럼 보이지만 또 모르는 법이다.
그나마 얘넨 스승과 제자라는 계약으로 얽매인 관계다. 쟤네도 생각이 있으면 어린애 장난처럼 사귀고 헤어지거나 하진 않겠지.
…계약할 때 설명해 줬어야 했는데. 스승과 제자에서 부부 사이로 발전했다가 망해 버린 수많은 마법사에 대해.
“…….”
뭐, 내가 간섭하는 것도 웃기기는 하다. 사람 마음이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애들이다. 사랑이니 뭐니 하면서 걱정하는 것도 우습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운동장으로 나왔다.
일반 교과목을 공부하는 오전 수업은 이미선이 외부에서 데려온 교사가 담당한다. 그전까지는 과외를 시켰다고 하지만 지금은 정식 학교. 제대로 된 교원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불렀다고 했다.
어련히 알아서 신원이 확실한 사람을 불렀겠거니 싶었다.
“어, 현욱아!”
오후는 시범고 시절과 똑같다. 굳이 달라진 점을 찾자면 자율 학습이 늘었다. 언제까지고 나나 홍석영이 봐줄 수는 없잖은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 준다. 그러면 이 말 잘 듣는 아이들은 착하게도 가르쳐 준 대로 열심히 훈련한다. 가끔 운동장에 나가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너 다쳤지! 상처 얼른 보여 줘.”
유혜은은 오현욱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오현욱은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유혜은은 끈질겼다.
“야! 난 연습하려면 상처를 많이 치료해 봐야 한단 말이야. 빨리 내놔.”
“아, 그냥 긁힌 거라고!”
“빨리 달라니까.”
유혜은은 엄한 얼굴로 오현욱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현욱은 뻘쭘한 표정으로 문제의 긁힌 팔을 주었다.
…얼씨구.
“또 다친 애 없어?”
상처가 크지 않은 만큼 치료는 금방 끝났다. 다른 아이들을 찾는 유혜은의 옆구리에는 두꺼운 문제집이 있다.
모든 치료사가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큰 병원에서 일하고 싶으면 치료사도 의대를 나오는 게 좋긴 하다.
작은 유지은이 언니에 대해 자랑하던 걸 생각하면 원래도 공부를 잘했던 모양이던데…. 그러면 굳이 시범고에 들어올 이유는 없지 않았나? 길드 전속이 되려는 거면 몰라도 공부를 하는 거 보면 의대 진학에 욕심이 있는 것 같은데.
유혜은과도 진료 상담을 해 봐야겠다. 하는 김에 학교생활은 어떤지, 교우 관계에 문제가 없는지도 확인해 보고.
나는 순순진의 다리를 확인하고 있는 유혜은에게서 눈을 뗐다. 그거 말고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애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쪽은.
“……?”
운동장을 살폈지만 내가 찾는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애들이 오후 연습을 빼먹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아까 교실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잠깐 인상을 찌푸리다가 강당으로 향했다.
‘아니, 도대체 강당은 왜 필요합니까?’
‘학교에 강당이 있어야죠. 운동장을 못 쓸 일이 생길 수 있잖아요.’
‘운동장을 왜 못 써요?’
‘날씨가 안 좋을 수도 있고….’
‘헌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몸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 선생님도 홍 헌터님과 똑같은 말씀 하시네….’
아직도 강당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갔단 말이다. 던전 안이라고 화창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기어이 이미선은 강당을 만들었다. 헌터 아카데미에도 강당이 었었던가. 강당 겸 시뮬레이터실이 있기는 했었지.
리모델링이야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나는 조심스럽게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에 없던 아이들은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힘들지 않을까?”
“아냐. 오히려 처음에 제대로 해 놔야 나중이 안 힘들어.”
“그런가?”
“형 그냥 이거 대충 하고 치울 거 아니잖아.”
“그렇지….”
“관리할 게 늘수록 이런 건 미리미리 정리해 놔야지. 직급에 따라서 할 수 있는 거랑 책임을 분명히 그어 놔야 나중에 딴소리 안 나와.”
이승연은 강태우의 말에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럼 이건 이렇게 하고….”
처음 동아리가 어쩌고 했을 때는 저 마음이 얼마나 가겠느냐 하는 생각이 없었다고는 하지 않겠다.
이승연은 제법 진지한 눈으로 말해 왔지만, 저 나이 때의 아이들이 변덕이 심한지는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실제로 아이들이 명절을 쇠고 펜션에서 나가서 지내는 동안 동아리는 반쯤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이승연과 강태우는 강당 바닥에 노트북을 놓고 수상쩍은 말들을 속삭이고 있었다.
솔직히 다른 것보다도 쟤네 둘이 저렇게 친해졌다는 게 제일 놀라웠다.
“그리고… 선생님?”
강태우가 내 존재를 먼저 눈치챘다.
은근히 시야가 넓다니까. 연구소 생활 때문이겠지.
“무슨 일이세요?”
강태우는 벌떡 일어났다. 아직 바닥에 앉아서 순진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고 있는 이승연과는 태도 차이가 확연하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운동장에 없길래.”
“아…. 정리할 게 좀 있어서요.”
“의외로 동아리 신경 쓰고 있네.”
“그야 당연하죠!”
이승연이 자존심 상하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제가 시작하자고 했는데.”
“그렇지. 시작한 애가 먼저 그만두면 쪽팔리잖아.”
“아, 그만 안 둘 거예요.”
이승연은 내가 다가가자 노트북을 덮었다. 요것 봐라.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자 이승연은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아직 누구 보여 줄 만한 게 아니어서요.”
“됐어, 인마. 숙제도 아니고 검사할 생각도 없어.”
“…그럼 왜 왔어요?”
“말했잖아. 운동장에 없어서 찾으러 왔다고. 놀고 있으면 혼이나 내려고 했더니.”
“안 놀고 있어요!”
“그래, 그래. 열심히 해 봐라. 그래도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나나 이 헌터님한테 물어보고.”
열심히 하는 애를 혼내는 건 어불성설이다.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넘어가 주자 도리어 이승연은 찝찝한 얼굴로 나를 살폈다.
“불만이냐?”
“네?”
“얼굴이 불만인데. 불만이면 나랑 대련 한번 할까? 실력 늘었나 보게?”
“아뇨!! 불만이라니, 하늘 같은 스승에게 어떻게 그런 불손한 마음을 품겠습니까!”
“그래도 한번 너희 실력 얼마나 늘었나 제대로 평가는 해야지. 학교 오고 나서는 한 번도 안 해 봤으니까….”
애들끼리 대련시켜 봤자 익숙한 상대라 그런지 실력 확인이 만족스러울 만큼 되지는 않았다.
“월요일에 한 명씩 한다. 애들한테 전해.”
“…네.”
“싫어?”
“……아뇨! 완전 좋아요!”
“그래. 그 자세지.”
그리고 나는 학교를 돌아다니다가 강당까지 온 이유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강태우 학생?”
“…네?”
“잠깐… 선생님 좀 볼래?”
강태우의 눈빛이 오묘해진다.
강태우는 내가 우이록의 곁에 있던 청소부라고 알고 있다. 대놓고 이야기할 만한 거리는 아니라서 둘 다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래도 워낙에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녀석이니 내가 전국새마음정신협회와 접촉한 이유는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내게 접근했을 때 우리가 이미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것까지.
어린 시절의 나는 3호가 방주를 따른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강태우는.
“네.”
수많은 감정이 강태우의 얼굴에 스친다. 열일곱 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척하지는 않았다. 어린애가 열심히 숨기고 있는 감정을 억지로 들쑤시는 건 안 될 말이지. 그리고 이 대화가 끝나면… 또 상황은 달라질 테니까.
강태우는 이승연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를 따라 나왔다.
* * *
상담실.
이 학교 시설에서 강당만큼이나 어색한 공간은 상담실이었다. 아니, 없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 맞긴 하지. 비록 제대로 된 상담 교사는 없지만.
“저….”
강태우는 소파에 엉덩이만 겨우 걸터앉은 채 내 눈치만 보았다.
“왜 그렇게 겁먹었어?”
“…….”
“음… 커피? 차? 이것저것 다 가져다 놓았네.”
포트에 물을 올렸다. 종이컵에 믹스 하나를 부으며 묻자 강태우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럼 차로….”
“녹차면 괜찮아?”
“네.”
겨우 티백일 뿐이지만 녹차 향은 꽤 강했다. 종이컵을 강태우에게 쥐여 주려다가 테이블 위에 놓았다.
쏟으면 안 되지.
“그래서.”
“…….”
“뭐 때문에 널 불렀냐면.”
“…네.”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강태우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네 여동생 말이다. 살아 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