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2)
상도덕의 문제(1)
[이미선 – A급] [주 무기 – 검] [길드 다선의 마스터] [헌터 아카데미 이사] [승연 장학재단 이사장] [태평양던전공동대책위원회 상임위원] [헌터재활의료원 이사장]……
…
* * *
“자, 오늘은….”
세 명의 마법사가 눈을 반짝 빛냈다.
…솔직히 박서현은 눈이 잘 안 보인다. 가끔 앞머리를 걷는 날이 있긴 한데, 오늘은 아닌가 보다.
그에 반해 김채민은 온몸으로 당장 룬을 내놓으라고 티를 내고 있다. 홍석영에게 하던 짓을 생각하면 내 멱살을 잡지 않고 있는 것에 고마워해야 한다.
“…세 명 모두 가림막 룬과 보조 룬에 익숙해졌으니 새 룬을 가르쳐 볼까 하는데.”
“네, 선생님!”
김채민은 손을 번쩍 들었다.
“…뭐가 궁금하죠, 김 선생님?”
“알고 있는 룬이 얼마나 되나요?”
“그게 왜 궁금합니까?”
“제자로서 스승님의 실력이 궁금할 수도 있죠!”
“스승이라니.”
나는 질색했다.
“무서운 소리 하지 마세요. 저는 마법사가 아니라서 김 선생님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내 말에 김채민은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눈은 웃고 있으면서. 이래서 마법사란….
마법사의 스승과 제자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이다. 괜히 마법사들이 친인척 사이에서 제자를 찾는 유행이 온 게 아니다.
“그리고 계속 말하지만 저는 룬의 원리 같은 거 모릅니다. 알고 있는 걸 알려 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어딘가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교실 뒤쪽을 보았다.
룬 수업이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들은 첫 수업 이후로는 대부분 도망갔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칠판에 그린 룬을 마법사들이 따라 그리는 게 전부이다.
이승연은 그래도 몇 번 더 얼굴을 내밀었지만 그것도 세 번까지였다.
의외였던 건 오현욱이다. 룬 수업에 흥미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도 아닌데 꼬박꼬박 얼굴을 내밀고 있다. 몇 번 말을 붙여보아도 단답으로만 겨우 대답하고 가 버려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하…. 사춘기 고등학생이란.
나도 저랬나? 난 안 저랬는데.
어쨌든 오늘도 오현욱은 룬 수업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오현욱의 옆에는 홍석영이 앉아 있다. 김채민이 합류한 뒤로는 내내 감시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는지 수업을 지켜보지 않는 날도 생겼다. 아무래도 홍석영까지 여기에 앉아 있으면 다른 수업이 모두 중단되기 때문이겠지. 오늘은 모처럼 내 수업에 나왔다.
아마도…. 나는 홍석영에게서 시선을 옮겼다.
딱.
경박하기 짝이 없는 껌 씹는 소리.
딱.
“…….”
이미선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껌을 꿀꺽 삼켰다.
“미안해요. 버릇이라. 방해 안 할게요.”
아, 네….
팔자에도 없는 선생 노릇을 하려니 위가 뒤틀린다. 각성자 의무 교육도 겨우 했는데.
아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진다.
좋은 생각을 하자. 처음 목표를 생각해 봐라. 순조롭게 잘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 빌어먹을 방이동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
“…선생님?”
“크흠.”
정신 차리고 수업이나 하자.
“오늘 알려 줄 룬은… 난 그림자 룬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나는 슬쩍 박서현을 보았다. 이건 박서현이 개발한 룬이다. 어떻게 룬도 딱 자기 같은 걸 만들었는지.
“일단 그려 볼까.”
* * *
‘이 남자라고?’
늦은 밤.
폐쇄된 수련원에서 그 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 이미선이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무엇이었냐 하면,
‘…잘생겼네?’
요즘 들어 남자 좀 만나 보라는 아버지의 잔소리 때문인가? 업무만으로도 바쁜데 남자는 무슨. 게다가 아버지나 어머니가 들고 오는 선 자리는 죄다 상대가 기업가이지 않은가. 이미선은 자신보다 약한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이게 아니라.’
귀여운 조카가 매일같이 떠들어 대던 남자이다 보니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목숨을 구해 주었다. 어린 조카가 푹 빠진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래도 경계심은 가져 줬으면 했는데. 오빠랑 새언니가 오냐오냐 키웠던 게 이런 데서 티가 난다.
조카를 구해 줘서 고맙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홍석영은 방주에서 도망쳐 나오는 와중에도 학생들을 구했다며, 인성이 된 놈이라며 칭찬을 했지만…. 그 아저씨는 워낙 칭찬이 후한 사람이라 믿을 수가 없다.
그 조직에 있던 놈이 인성이 되었다고? 학생들을 구해?
‘누가 봐도 의심스럽잖아!’
솔직히 홍석영이 남을 잘 믿는 이유에는 그 실력 때문도 있다. 감히 누가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를 등쳐 먹을 생각을 하겠는가? 이미선이라도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아. 그래도 동생 이야기는 의외였다. 홍석영이 거기까지는 이미선에게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서 수련원 지하에서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불법 조직에서 행동대원으로 굴렀던 애가 아무 이유 없이 아이들을 구했다고 하면 의심스럽지만, 동기가 있다면 이해가 간다.
심지어 어린 동생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게 단번에 이해되는 동기다. 너무 단번에 납득되어서 여전히 의심이 가시질 않지만.
‘미선아.’
‘뭐.’
‘넌 너무 사람들을 의심해. 가끔은 정말 선의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있다니까?’
‘누가 뭐래?’
‘사람을 믿으라는 얘기야.’
오빠도 한번은 그런 말을 했었지.
이미선은 소리 내어 껌을 씹다가 문제의 남자, 우희재와 눈이 마주쳤다.
‘……뭐야?’
지금 시비 거는 건가?
인상을 찌푸리던 이미선은 책상에 앉아 있던 어린 마법사 두 명과 김채민마저 자신을 보고 있자 자기 잘못을 깨달았다.
이미선은 당황한 마음에 껌을 꿀꺽 삼켰다.
“미안해요. 버릇이라. 방해 안 할게요.”
자신에게 향하던 눈이 그제야 사라졌다.
‘그나저나 룬이라.’
방주 때문에 이 구석진 곳까지 왔다. 그렇잖아도 바빠 죽겠는데 겨우 그까짓 것 때문에 사람을 여기까지 부르다니. 짜증이 울컥 솟았다.
‘룬이 뭐라고?’
방주 관계자까지 억지로 빼내서? 홍석영의 고집 때문에 뒤처리는 또 자신의 몫이 되었다.
그래도 김채민이 수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선의 발을 붙잡았다. 대마법사가 저러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있긴 한가 본데.
“오늘 알려 줄 룬은… 난 그림자 룬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우희재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흔히들 말하는 조각 같은 미남은 아니어도 길거리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외모는 아니다. 지금은 시장에서 대충 산 듯한 허름한 추리닝을 입고 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검보다는 책상 앞에서 펜이나 굴릴 인상이다. 옷 좀 그럴싸하게 입혀 놓고 비서랍시고 세워 두면 위화감 없이 잘 어울릴 것이다.
길드에 있는 헌터들도 외모를 잘 관리시켰지만 몸 쓰는 놈들이라 그런지 눈에 안 차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조카가 우희재에 대해 한 말이 절반이라도 사실이라면 길드에 스카우트하고 싶을 지경….
‘……아니, 자꾸 딴 길로 세내.’
마음에 차는 인재가 없어 길드에 새 인원이 충당되지 않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홍석영의 시범고 사업을 지원하게 된 것도 사실 그 때문이다. 조카의 교육도 교육이었지만, 안정적으로 인재를 키워 내고 싶었다. 순순진도 요만할 때부터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키웠던 아이였다.
‘집중하자, 집중.’
마지막으로 교실에 앉았던 게 언제더라. 십 년도 더 되었으니 기억이 안 날 만도 하다. 그때도 공부와는 담을 쌓았는데, 이제 와서 수업을….
우희재는 칠판에 도형과 기호로 이루어진 복잡한 그림을 그렸다.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저게 룬이라고? 되는대로 그리는 낙서가 아니라?
그러나 우희재는 가볍게 말했다.
“쉽지?”
“그거 재수 없게 들리는 거 알죠.”
“원래 쉽고 어려움은 상대적인 겁니다.”
우희재는 김채민의 불만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가림막 룬과 보조 룬에 비하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그렇긴 한데.”
“그려 보면 생각보다 쉬울걸요.”
“이건 무슨 효과인데요?”
“그려 보세요.”
“무슨 효과인데요?”
“그려 보라니까요.”
“그냥 말해 주면 안 돼요?”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우희재는 태연하게 김채민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린 마법사들에게도 말했다.
“너희도 뭘 멀뚱히 있어? 얼른 그려.”
“네, 넵!”
“네!”
묘하게 바짝 군기가 들어 있는 목소리다. 의외로 엄한 교사인가.
우희재는 힐긋 뒤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저 남자, 불법 각성자였지.’
제대로 된 신분조차 없었으니 당연하다. 그렇다면.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조카에게서 들은 증언을 떠올리던 이미선은 고개를 저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조카지만 없는 말도 지어내는 나이다.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의 활약상은 배로 뻥튀기가 될 것이다.
기억해 둘 만한 실력이라면 홍석영이 말하지 않았겠나.
물론 이미선은 설마하니 홍석영이 그런 기본적인 사항조차 확인하지 않았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때? 그릴 만하지?”
“어… 네.”
최진우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간단한 룬이니까 이 정도는 한 번에 그릴 줄 알아야지.”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어린 마법사들의 등이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 배울 룬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몇 날 며칠을 걸려서 연습하게? 이제 룬 그리는 건 익숙해졌잖아? 그럼 손을 빨리하는 연습을 해야지.”
“네….”
“보조 룬도 그 위에 그려. 그게 모든 룬의 마지막 단계다.”
마법사들은 끙끙거리며 룬을 그렸다. 이미선에게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마법사들이 룬을 저렇게 열심히 그리고 있다니. 슬슬 이쯤 되니 뭘 보여 주려나 싶어 기대되었다.
룬이 완성되자 우희재는 박서현을 일으켰다.
“룬을 작동시켜.”
“……네.”
우희재는 이 룬이 그림자 룬이라고 했다. 이미선은 팔짱을 끼며 차분하게 보았다. 큰 기대가 없는 건 사실이었지만 홍석영이 굳이 여기 자신을 앉혀 둔 이유가 있긴 할 거다.
그러니까….
“어때? 무슨 효과인지 알겠어?”
이미선은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박서현만 주위에 비해 화질이 떨어진 느낌이다. A등급 헌터의 눈이다. 이상하게 박서현만 어두워 보이는 게 맞았다.
우희재는 교실 불을 끄더니 창문으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내렸다. 컨테이너 교실에는 창문 말고는 빛 들어올 구석이 없었다. 교실은 금방 어두워졌다.
“아직도 모르겠어?”
우희재는 어쩐지 즐거워했다. 이미선은 눈을 비볐다. 시야가 이상하다. 해 지기 직전의 시간처럼 시야가 기이하게 어둡다. 특히 룬을 손에 쥐고 있는 박서현은 테두리가 지워진 것처럼 주변에 동화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이 룬은 본인의 그림자와 동화시켜 준다.”
“그림자… 요?”
최진우는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말했다.
“밝은 곳에서는 크게 티 나지 않지만…. 주위가 어두워지면 효과가 극적이지.”
우희재는 블라인드를 걷었다. 박서현이 다시 보였다.
우희재가 박서현이 쥐고 있는 룬을 가져와 찢어 버리자 변화는 더욱 극명해졌다. 박서현은 자신의 손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이 룬을 어떻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음….”
“김채민 선생님? 선생님은 알겠죠?”
“어….”
“박서현?”
“……죄, 죄송해요.”
“아니, 모를 수도 있지. 그래서 교사가 있는 건데. 앞으로 차차 배워 나가면 되지.”
“죄송해요….”
“괜찮다니까?”
이미선은 우희재의 말을 곱씹었다. 자신의 그림자에 동화된다고? 언뜻 쓸모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핵심은 밝을 때가 아니라 어두울 때. 빛이 없는 던전이라면….
손톱을 잘근잘근 씹던 이미선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신경 쓰이는 말이 있었다.
“저기, 우희재 씨.”
“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아까 말한 가림막 룬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마력 가림막 룬입니다만.”
“마력 가림막 룬이요? 혹시… 마력을.”
“네. 이름 그대로 마력을 가려 주죠.”
우희재는 오히려 이미선에게 되물었다.
“승연 학생에게 못 들었습니까? 명동에서 걔네 구한다고 사용했던 건데.”
“…….”
이미선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명동에서 있었던 일을 말할 때마다 어색하게 말을 돌리던 조카의 얼굴이 떠올랐다. 트라우마라도 생겼나 싶어 헌터를 진료해 주는 의사를 수소문하고 있었는데…!
이미선은 벌떡 일어나 홍석영의 멱살을 잡았다.
“벌써부터 내 조카 입단속을 시켜?! 이 아저씨가 상도덕도 없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