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24)
남겨진(2)
유화?
유화가 누구야?
아는 사람?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홍석영을 살폈다. 이 아저씨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 본다.
“어쩌다 네가 이런 꼴이 되었냐….”
유화. 유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유화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없는데.
하지만 묘하게 입에 붙는 이름이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답답하다. 어디서 들어 본 거지? 내가 이렇게 찝찝한 걸 보면 분명 무언가 있는 이름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니다. 네 잘못은 아니지, 유화야.”
시체의 부패에 대한 지식은 없고, 던전 내부의 환경이 그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도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저런 상태가 되기까지 겨우 하루 이틀로는 부족하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에서 제법 오랜 시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네가 살아만 있었으면 했는데.”
홍석영은 빈말로라도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없는 시신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
유화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났다.
김유화.
그 김유화잖아.
홍석영의 후배. 경찰. 방주에 잠입했던.
그리고 끝내 소식이 끊겨 실종된.
홍석영은 차마 죽은 후배를 만지지 못하고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어쩐지 보고 있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떨어진 손전등을 주워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단서라도 있을까 싶어서.
“…….”
바닥에 얼룩이 있다.
바보도 저게 평범한 얼룩이 아닌 걸 알 수 있을 거다. 일정한 간격으로 얼룩이 있다. 아마 발자국이겠지.
김유화의 시신에 다른 눈에 띄는 상처가 있지는 않다. 주변이 어둡고, 옷도 검은색 일색이라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전투한 흔적이 있었다면 바로 알아보았을 거다.
…있나? 홍석영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살펴보기가 힘들다.
바닥에 있는 시커먼 얼룩을 제외하곤 바로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발자국도 나와 홍석영이 다급히 걸어 들어오면서 만든 것 말곤 없었고….
나는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보았다. 저 안에는 뭔가 더 있으려나.
이 던전이, 이 통로가 누나가 검을 주웠다는 곳이 맞다.
누나가 내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자네는… 크흠.”
홍석영은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다가 목을 가다듬었다.
“미안하네. 이렇게 찾게 될 줄이라곤 생각도 못 해서.”
“…아뇨. 뭐. 저도, 몰랐습니다.”
“지은이가 안 알려 줬어?”
“네.”
누나가 거짓말을 한 건가?
이건 알 수 없다. 나한테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기에는 하도 말을 많이 하고 다녔다. 유지은의 검, 하면 유명하다니까? 가끔 해외에 나갔을 때도 누나는 그 더러운 악어 새끼 똥통에서 보물을 주워 왔다며 자랑하곤 했다. 그 고생한 대가가 이런 보물이라면 똑같은 던전에 들어가 보라고 해도 한 번 정도는 고민해 볼 거라고.
그러면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 보자.
누나가 정말 이곳에서 검을 얻었다고.
아까 여기 입구를 찾느라 헤집었을 때 다른 곳은 찾지 못했다.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다느니 하는 말을 하기엔 이쪽은 베테랑 헌터만 두 명이다. 나는 둘째 치고 홍석영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누나가 여기서 검을 얻었다고 하면, 두 가지다.
누나가 시체 이야기를 숨겼거나,
누나가 들어왔을 때 시체는 없었거나.
“내 생각에는 후자일 거네.”
그런 추측을 솔직하게 말하자 홍석영은 대뜸 그렇게 말했다.
“왜요?”
아무 근거 없이 말하진 않았겠지.
홍석영은 아까 지갑에서 꺼낸 명함을 내게 주었다.
“이게 뭡니까?”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신원을 알 수 있도록 가지고 다니는 거.”
“…대리운전?”
나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명함을 확인하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니, 현명한 방법이다. 대리기사 명함이라면 들고 다녀도 크게 의심받진 않겠지.
방주의 청소부가… 술에 취해서 대리운전을 부를 일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안전운전! 왕처럼 모십니다] [홍씨 대리운전]전화번호도 있다.
혹시나 해서 물었다.
“여기로 전화하면 누가 받습니까?”
설마 이 아저씨 번호는 아니겠지. 내가 아는 번호는 아니긴 한데.
“각성자범죄수사실.”
“…선생님이 아니라요?”
“유화는 경찰이네.”
“아.”
그랬었지.
홍석영은 복잡한 눈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각오하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 있었으면 했네.”
“…네.”
“그리고 뒷면을 보게.”
“뒷면요?”
명함을 뒤집었다. 역시 촌스러운 디자인의 대리운전 홍보 문구가 있는… 그러나 그보다 먼저 파란색 볼펜으로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급하게 썼는지 글씨는 마구 떨리고 미끄러졌다.
“…이걸 쓴 사람이 돌아왔다고요?”
홍석영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마 유화와 접촉했던 방주 사람이 아닐까 싶네.”
“…….”
“지은이가 원래 여길 공략하기까지는 시간 차이가 있지 않은가. 몇 년 되지?”
“…네.”
“그사이에 와서 수습했거나….”
내가 홍석영의 말을 곱씹는 동안 홍석영은 내 손에서 손전등을 가져간 다음 시신을 다시 살펴보았다.
“옷이 이래서 보는 게 영 어렵군. 머리에는 상처가 없고, 으음….”
홍석영은 살짝 조끼를 들추었다.
“옆구리 쪽에 자상. 옷은… 이건 피겠지. 하지만 여기에는 피를 흘린 자국이 없으니 여기서 당하진 않았을 거야.”
“…….”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남아 있는 발자국도 없었으니 그건 동행자가 지웠을 거고.”
나는 차분하게 홍석영의 말을 들었다.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다른 눈에 띄는 부상은 없는 것 같고.”
홍석영이 벗긴 까마귀 가면은 김유화의 무릎에 얌전히 놓여 있다. 저 여자는 마지막까지 무슨 생각을 하며 죽어 갔을까. 뭐가 좋다고 그런 조직에 잠입했을까. 기꺼이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내부자를 만났을 때 기뻐했을까?
드디어 이 거지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있다고?
까마귀 가면.
“…저기, 선생님.”
“그리고, 음?”
“그, 저 사람과 접촉한 방주 내부자의 정체를… 알 순 없지만 말입니다.”
“음.”
“의심 가는 사람은 있잖습니까.”
홍석영도 나도 알고 있지만 애써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사람.
나와 성씨가 같고, 동생을 구하고 싶다던 남성.
“제가 아는 그 사람이라면… 아무, 그.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여기 이렇게.”
나는 김유화를 가리켰다.
“두고 가지는 않을 거거든요.”
“……그러면?”
“그러니까.”
홍석영은 천천히 김유화를 보았다. 잠깐 멈칫거리던 손이 조끼로 향한다. 앞을 여미고 있는 지퍼를 내린다.
툭.
고요한 공간에 지퍼 내리는 소리와는 명백히 이질적인 소리가 들린다.
마치 실이 끊어진 것 같은.
홍석영은 지퍼를 활짝 열어젖혔다.
조끼에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성능 하나는 끝내준다.
마력을 가려 주는 성능.
씨발.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가 움직이는 걸 보곤 홍석영도 내가 뭐라고 하기 전, 본능적으로 나에게 움직임을 맞추었다.
콰앙!!!
모퉁이 뒤로 몸을 날리자마자 푸른색 불꽃이 타올랐다. 뜨거운 열기가 덮쳤다.
* * *
‘잘 들어, 이록아.’
‘엉?’
‘형이 없는데 저 아줌마가 널 괴롭히잖아.’
‘형 또 나가?’
‘응. 이번에는 조금 오래 걸릴 거야. 멀리 나가거든. 형이 선물 사 올게.’
‘좋아.’
‘어쨌든, 저 아줌마가 널 괴롭히거든….’
‘형한테 말해?’
‘형이 돌아오면 말해. 근데 형이 바로 못 와 주잖아.’
‘응.’
‘그럼 일단….’
‘일단?’
‘울어.’
‘…울어?’
‘꼭 울 필요는 없지만, 우는 것처럼 소리 내면서 쓰러지는 거야. 알았지?’
‘흐응.’
‘비명도 질러. 너 저번에 7호 기억나?’
‘아. 걔처럼?’
‘그래. 그렇게 비명 질러. 아줌마가 너한테 약이나 주사 줄 때면 좋겠다. 비명 지르면서 저 아줌마가 너 꼬집었다고 그래. 알았지?’
‘…아. 알았어. 이해했어. 그러면 되는 거지?’
‘그래. 그러면 저 아줌마 더 안 볼 수 있을 거야.’
“…….”
뭐, 형은 동생을 위해 뭐든 희생하는 천사같이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한테야 좋은 형이었지. 하지만 그게 좋은 사람이라는 뜻인 건 아니잖아. 난 형이 청소부로서 어떤 작업을 했는지도 잘 모르고.
“크…. 화력 좋군.”
홍석영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나는 웃진 않았지만 똑같이 어깨를 으쓱이기는 했다.
“그 명함도 미끼였을걸요.”
“더 살펴보라고?”
“아뇨. 높은 확률로 타이머도 있었을 거거든요.”
“워우. 맘에 드는 친구군.”
홍석영은 짧게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형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형이 단순한 말단 청소부가 아닌 건 안다. 형 정도의 위치라면 방주에서 도망쳐 나올 때도… 아니지, 애초에 들고 있던 아이템들이 꽤 많았을 거다. 마법사가 제작한 물건도.
나는 폭발 직전 챙겨 온 물건을 확인했다.
“가면?”
손전등이 폭발에 휘말렸기 때문에 형광봉을 하나 꺼냈다. 가면 안쪽을 비추자 열세 자리 숫자가 새겨진 게 보였다.
“일련번호입니다.”
“그래?”
나는 숫자를 매만졌다.
“김 군의 숫자는 아닙니다.”
누구의 숫자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홍석영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마력으로 폭발만 일으킨 것이라서 불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열기가 사라지자 홍석영와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되면 추측이 하나 더 생기는데.”
홍석영은 그을음이 남은 벽과 바닥을 살피다가 김유화가 앉아 있던 곳을 보았다.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돌아오지 않았다.”
“…….”
“그래. 자기가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생각했어야겠지. 추적이 있을 수도 있고.”
“시신을 건들면… 작동하거나.”
“타이머를 얼마나 길게 지정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방주에서 쓰던 거라면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면 일 년 정도 가능합니다.”
“…룬으로?”
“네? 아뇨. 마법사가 제작한 물건입니다. 연구 자료 폐기할 때 쓰던 거예요. 마력만 충전해 주면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데…. 마력이 바닥나면 불이 붙는 구조입니다. 오래된 자료를 하나하나 관리하기 힘드니 그렇게 폐기하는 거죠.”
“효율적이라면 효율적이군.”
홍석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지은이가 들어왔을 때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이렇게… 타 버렸다면.”
홍석영은 작게 중얼거렸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망설이다가 결국 사과했다.
“그, 죄송합니다.”
“뭐? 자네 형이 했다고?”
“……어쨌든요.”
“자네 형이든 누구든 오히려 감사한 마음뿐이네.”
“네?”
“최소한 유화가 방주 손에 붙들린 게 아니라는 거잖나. 나는 그걸로 족해. 그 녀석이 마지막에 방주 놈들한테 고문당하지 않았다는 거니까.”
“…….”
“운이 좋으면 길동무 삼았을 수도 있고. 자네, 유화는 만난 적 없지?”
“…네.”
“그 녀석이라면 지금 엄청 아까워했을걸. 선배님이 괜히 자길 건드려서 좋은 기회를 날려 먹었다고.”
홍석영은 껄껄 웃었다.
“살아 있었으면 좋았겠지. 좋았을 거야…. 하지만 유화의 시신이 못된 놈들 손에 들어가지 않게끔 해 준 동료가 있었다는 걸 알았으니 족해.”
홍석영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형광봉 남았지? 두 개만 줘 보게.”
“…어디에 쓰시게요?”
“그래도 고생한 후배 녀석이잖은가.”
홍석영은 형광봉을 빛나게 한 다음 김유화가 있던 자리에 두 개를 겹쳐 놓았다.
“일요일마다 교회 나가던 친구였거든.”
홍석영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보았다. 내 손을 보았다. 까마귀 가면이 들려 있다.
조용히 가면과 형광봉을 내려놓고 두 손을 맞잡았다.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었을 경찰은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