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26)
진로 상담(1)
불행한 일이다.
그 검이 어떤 던전에서 나왔든 간에 전 세계의 헌터가 침을 흘리던 성능 좋은 검이 하나 더 생기는 건 좋은 일이었을 거다.
원래 내 계획은, 그 검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유지은에게 그걸 들려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주인이 아직 열여섯 살인 관계로, 그 일은 훨씬 나중의 일이 될 예정이긴 했다. 작은 유지은이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많이 배우고 나면 검을 줄 생각이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로 인해서 요원한 일이 되었다.
진흙 던전을 샅샅이 뒤져도 검은 나오지 않았다.
홍석영은 악어가 있는 진흙 속에 파묻혀 있는 거 아니냐고 농담했지만, 석연치 않은 얼굴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홍석영의 농담처럼 누나는 저 안에서 검을 얻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홍석영이 알지 못하는 누나를 안다. 성능 좋은 검이니 쓰긴 했을 테지만, 정말 그곳에서 나왔다면 누나는 이 검을 그렇게 애지중지 여기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역시 홍석영의 말대로겠지.
홍석영이 말한 대로, 김유화의 시신을 불태워 없애 버린 푸른색 불. 누나의 검을 사용하는 이가 따로 있다는 것.
현재 김유화의 마지막을 함께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는… 형.
사실 형이 이 검의 원주인이었고, 그게 누나에게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걸 지금 내가 쓰고 있고?
이게 무슨 거지 같은 말인가.
더 이상의 사고를 멈췄다. 명쾌하게 답을 내리는 게 불가능한 일이다.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해 봤자 나만 손해지. 그냥 머리 한구석에 대충 치워 두고 다음 일을 처리해 가는 거다.
형에 대한 추측이야 둘째 치고, 검은… 뭐. 정 안되면 몇 년 기다리면 되겠지. 누나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던전 안에 검이 뿅 하고 솟아나기라도 하지 않겠나.
“그래서….”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 나는 다음 일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냐?”
나는 맞은편에 앉은 남학생을 보았다.
요즘 오현욱이 부쩍 크는 바람에 헌터고 최장신의 타이틀을 위협받고 있는 서한성이다. 그래도 이 녀석도 봄에 비해서는 크긴 했다. 성장기라면 당연히 이래야지.
“그게….”
서한성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오현욱처럼 길드의 불공정 계약에 많이 고생했다고 들었는데, 저 멀끔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냥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목 끝까지 단추를 채워 단정하게 입고 있는 교복 때문일 수도 있다. 헌터고 학생 중에선 유일하게 유혜은과 서한성만이 교복을 모두 챙겨 입고 다닌다.
“음, 그게, 저도 이제 3학년이 되잖아요.”
괜히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는 손.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마치… 뭐라고 해야 하지. 사직서를 제출하기 직전의 부하 직원에게서 느껴지는 결연함이 있다고나 할까.
……설마 인제 와서 자퇴하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그동안 잠잠했다. 이제 그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끝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음. 그렇지.”
별일 아닐 수도 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한성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이어 말했다.
“그래서 저도 제 진로에 대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진로?
걱정한 것보다는 멀쩡한 단어가 나왔다. 그래. 슬슬 그걸 고민할 시기이긴 하지. 오히려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서한성이 어떤 애더라.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동안 지켜본 서한성에 대해 떠올렸다.
정말 미안하지만, 솔직히 다른 애들처럼 딱 하고 떠오르는 특징은 없었다.
항상 한 걸음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어른스러운 아이. 딱 그 정도의 인상이다.
교사로서 본 학생 서한성? 관리청 직원으로서 본 헌터 서한성?
마찬가지다.
오현욱이나 박서현처럼 화려하게 꽃피우는 재능은 없다. 이승연처럼 요란하지도 않고, 유혜은과 최진우처럼 보기 드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한은영처럼 던전 공략을 잘하지도 않는다.
원래 서한성은 명동에서의 일이 있고 나서 학교를 그만둔 학생 중 하나다. 애초에 시범고 1기 학생에 대한 기록은 졸업생 두 명과 이승연 말고는 남아 있는 게 없다시피 하지만….
그런고로 시범고를 그만둔 뒤로 서한성의 행방은 묘연하다. 심지어 마력 시계에 저장된 데이터베이스에도 남아 있는 게 없다. 아마 라이센스를 갱신하지 않아서 취소된 거겠지.
비록 원인은 비극일지라도 원래 시간대의 서한성은 헌터나 던전, 몬스터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평범하게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헌터로 남아 있는 게 얘한테 좋은 일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어, 선생님이 할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오라고 하셔서. 진로에, 대해서도….”
“왜 눈치를 봐?”
“…말해도 돼요?”
기껏 여기까지 찾아와 놓고서는 뭘 망설이고 있나.
나는 서한성에게 믹스커피를 타서 주었다. 녹차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다.
내 몫의 커피도 당연히 타 왔다.
“…….”
쟤가 놀라는 일보다는 내가 놀랄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커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럼. 말하라고 상담실도 만들어 놓은 건데. 생각해 둔 게 있어?”
“…저, 일단 대학을 가 볼까 싶어서요.”
“좋지.”
정말 좋다.
자퇴한다는 얘기도 아니고, 자긴 능력이 없는 것 같다고 울지도 않는다.
오히려 대학 이야기를 하면서 내 눈을 똑바로 보는 게, 자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어 보인다.
서한성에 대한 평가를 조금 높였다.
미래 계획이 있는 녀석은 좀 더 쳐줘도 된다.
“…대학 가는데요?”
“내가 너희한테 검정고시 준비하라고 하면서 한 말 기억해?”
“네.”
“뭐, 다행히 여기가 제대로 된 학교로 인정받게 되어서 검정고시는 치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꼭 헌터가 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네가 헌터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면 던전에 들어가 봤던 건 경험이 된다.”
“그런 경험은 헌터가 안 되면 쓸모없잖아요.”
“무슨 소리야?”
어른스러운 척 앉아 있지만 아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그 나이 아이였다.
아카데미 졸업생들도 모두 헌터가 되진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 헌터 라이센스를 유지하는 졸업생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뭐, 그런 사람들 있잖은가. 헌터 인권 변호사라든지, 헌터를 위한 정신과 의사라든지.
결국 헌터를 잘 아는 건 헌터뿐이다.
“저번에 내가 했던 얘기 기억 안 나? 변호사나 의사까지 갈 필요 없이 길드 운영하는 데에도 대학 졸업장 있으면 편하다니까?”
“……네.”
서한성은 내 말에 놀라긴 했지만 금방 차분해졌다.
“대학 가고 싶다고 했지? 가고 싶은 과라도 있어?”
“그게….”
서한성은 이제야 묘하게 망설이기 시작했다.
빨리 말하라고 윽박질러서 될 일도 아니고, 그냥 차분하게 기다려 주었다. 최소한 서한성은 울면서 학교를 관두겠다고 말하지는 않잖은가. 그걸로 나는 만족한다.
서한성은 따뜻하다기보다는 아직 뜨거운 커피를 한참을 홀짝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게 제 고민인데요.”
“무슨 과를 갈지?”
“…네.”
정말 이 나이대 학생다운 고민이다.
그래.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를 수도 있지. 난 비교적 진로를 빠르게 결정한 편이지만…. 내 계획대로 흘러간 건 하나도 없긴 했다. 난 원래 헌터가 될 생각이 없었고, 관리청에서 일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 인생의 깨달음을 앞날 창창한 열여덟 살짜리에게 말하지는 않을 거다. 미래에 대한 꿈은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고 있는 편이 좋잖은가.
“관심 있는 분야는 없어?”
“어…. 그게.”
“그것부터 추려 봐. 네가 뭘 하고 싶은지가 어렵다면 뭘 좋아하는지부터 알아야지.”
“네. 그런데.”
“특히 네가 헌터가 될 게 아니라면….”
“아, 아뇨! 저 헌터는 할 건데요!”
서한성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헌터 할 거야?”
“네! 대학은 그냥, 뭐라고 해야 하지. 스펙업?”
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가 서한성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스펙업?
뭘 하려고?
“…뭘 위한?”
그래서 물었다.
서한성의 차분한 얼굴에 초조함이 깃들었다. 서한성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말했다.
“저, 그, 이 헌터님 아래서 일하고 싶거든요…. 승연이 고모요.”
“다선?”
다선이라.
들어갈 수만 있다면 나쁜 선택은 아니지. 헌터고를 오가는 다선의 헌터들은 이미선의 수족이다. 다선에 입사한 게 먼저인지, 협회에서 일한 게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겸업하느라 죽어 가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빈말로라도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직장은 아니지만….
협회가 아니라 길드 다선으로 제한한다면 나쁜 선택은커녕, 좋다. 아주 좋다. 다연의 돈으로 세운 길드라느니, 돈만 많은 길드라느니 뭐라고 하는 놈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그냥 질투에 미친놈들이 지껄이는 소리다. 다선으로 들어가는 다연의 지원금이 얼마인데.
오히려 국외에서는 그 다연이 후원하는 곳이라며 인지도가 높다. 이미선은 길드 운영을 잘했고, 다연과는 별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멀리 보지 않아도 십 년 뒤라면 국내에서도 굴지의 길드 중 하나가 된다.
“다선도 좋지. 들어가는 건 까다롭지만….”
나는 서한성을 보았다. 못 쓸 재능은 아니다. 적당한 훈련을 가미한다면 괜찮은 헌터가 될 거다.
물론 이미선은 인재에 대한 기준이 확고한 사람이다. 서한성이 그 기준에 들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친구 좋은 게 뭔가. 이미선은 사랑하는 조카의 친구에게 험한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면 나 말고 이 헌터님과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겠냐. 이 헌터님한테 이야기하는 게 어려우면 내가 대신 말해 줘?”
“아, 아뇨. 그게… 그러니까요.”
서한성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이 헌터님 밑에서 일하고 싶긴 한데….”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서한성을 기다렸다.
다행히 서한성은 더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
날 보고 있는 눈이 똑바르다. 저런 눈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명확히 있는 놈만 한다.
“다선이 아니라… 협회요. 이능협회.”
이능… 뭐?
내가 아는 거기? 그거?
서한성의 입에서 녀석이 알면 안 되는 이미선의 소속이 튀어나왔다.
서한성은 어째서인지 수줍어하며 말했다.
“이 헌터님한테 가서 무작정 일하게 해 달라고 하긴 그러니까, 저도 제 능력을 어필해서….”
“……뭐?”
순간 당황하여 서한성의 말을 따라가지 못했다. 동시에 서한성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헉, 어어… 혹시 선생님 모르고 계셨어요?”
아니, 아는데…. 얘가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지?
이미선은 얘가 알고 있는 걸 아나? 알고 있다면 나한테 언급이라도 했을 텐데?
“선생님, 교장 쌤 길드라길래 당연히 아시고 계실 줄 알았는데!”
서한성은 벌떡 일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제 말 그냥 잊어 주세요!”
서한성은 벌떡 일어나 상담실을 뛰쳐나갔다.
“…….”
쾅!
문이 거세게 닫혔다.
달칵.
서한성은 다시 문을 열고 머리만 내밀었다.
“그, 제가 세게 닫은 거 아니에요. 바람이.”
달칵.
문이 조심스럽게 닫힌다.
“…….”
뭘… 어쩌란 건지, 진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