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28)
진로 상담(3)
“잠깐… 잠깐잠깐잠깐!”
홍석영은 당황했다.
“자, 잠깐, 그러니까… 잠깐!!”
그냥 당황한 것도 아니라 엄청나게 당황했다.
“…잠깐?”
이 아저씨가 이렇게 당황하는 걸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언제였더라. 내가 중학생 때도….
…….
아버지는 참 별거 아닌 것에도 잘 놀라곤 했지. 중학생이 뭘 했다고 그렇게 놀라나. 실력에 걸맞지 않게 소심한 구석이 있다니까.
“잠깐만 몇 번을 외치는 겁니까.”
“잠깐…. 한성이가?”
“네. 서한성 학생이요.”
“안다고?”
“네. 그렇다네요.”
“이 헌터가….”
“…….”
중간부터는 홍석영이 일부러 과장하면서 말을 하긴 했다. 대답을 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자 홍석영은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도 놀란 건 진짜여서 홍석영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연신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진짜로?”
“그렇다니까요. 몇 번을 말합니까.”
“이 헌터가 협회 사람인 걸?”
“네!”
“걔가 그걸 어떻게 안대?”
“그거 물으려고 제가 온 거 아닙니까.”
홍석영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몇 번 쓸다가 물었다.
“그래서… 한성이가 그냥 그걸 알고 있다고 말한 건가?”
“졸업하고 이 헌터님 밑에서 일하고 싶다던데요. 정확하게 협회를 말하면서.”
“허….”
홍석영은 탄식인지 감탄인지 모를 얼굴로 혀를 찼다.
“그러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더라고요. 그냥 일하게 해 달라고 하면 안 될 테니 대학이든 뭐든 스펙을 올리고 싶다고.”
“뭐라고 말했나?”
나는 화들짝 놀라서 상담실을 뛰쳐나가던 서한성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뭐라고 말하고 자시고 간에, 저도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더니 죄송하다고 도망가던데요.”
홍석영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도망갔다고?”
“제가 몰랐다고 생각했나 보더라고요.”
“허허….”
홍석영은 여전히 난감한 얼굴로 웃었다.
“이 헌터한테는…. 아니지, 이 헌터 오늘 학교 안 나왔던 걸로 아는데.”
“네. 여기 오기 전에 이사장실에 들렀는데, 없다고 하더군요.”
“으으음….”
“보아하니 서한성이 알 만한 일은 없었나 봅니다?”
홍석영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등을 기댔다. 덩치에 비해 작아 보이는 의자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삐걱거렸다.
홍석영은 슬쩍 허리를 바로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굳이 따져 보면… 의심 가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영 시원찮은 얼굴이다.
“그게? 그건가? 아닌데. 그것보단. 음.”
홍석영은 다시 머리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홍석영이 제정신을 차리길 기다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일단….”
홍석영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한성이와는 내가 먼저 얘기해 보겠네.”
* * *
그래.
물론 다른 사람의 과거를 당사자가 아닌 타인에게서 멋대로 듣는 건 썩 좋지 못한 방법이다. 특히나 그 당사자가 항상 예민할 시기의 청소년이라면. 거기에 더해서 그 과거가 학대… 라고 할 법한 일과 관련 있다면.
그러니까 이해할 수 있다. 홍석영이 나를 거치지 않고 서한성과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도 그런 민감한 이야기를 당사자의 허락 없이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말이다.
서한성은 나를 찾아왔잖은가. 홍석영이 상담실에 가 본 적이나 있을까? 그놈의 상담실 문에는 동글동글한 폰트로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문구가 쓰여 있지만, 그 모두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강태우는 내가 데려왔고, 서한성은 제 발로 찾아왔지만, 그사이에 아무도 안 왔을까?
이승연은 고모의 잔소리를 피해 상담실로 도망쳐 왔었고, 순순진은 그런 이승연을 비웃기 위해 따라왔다. 박서현과 최진우는 룬 연습을 확인받고 싶어서 상담실로 왔고, 유혜은은 작은 유지은의 성적이 걱정된다며 날 찾아왔다. 한은영은 오빠가 다시 죽을병에 걸리면 안 되겠냐고 묻기 위해 상담실에 왔다. 솔직히 얘가 제일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 심지어 오현욱마저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키가 갑자기 커서…. 이거 익숙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차마 아이들이 빈 상담실을 찾아오게 둘 수 없어서 반강제로 내가 여길 지키고 있는 동안 홍석영은 뭘 하고 있었는가!
그런 주제에 서한성을 홀라당 채 가다니!
“…….”
아동심리학 학위나 딸까.
대학을 다니는 건 힘들지만 온라인으로 어떻게 하면…. 잠깐. 이미선이 만들어 준 내 신원이 어떻더라? 고등학교는 졸업했던가?
똑. 똑. 똑.
상담실이 아니라 우희재 사무실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예의 바르게 문을 두드리는 방문자는 몇 없는데.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우리 아까 수업한 거 기억하지?”
“…….”
서한성은 멋쩍게 웃었다.
“어이구, 얼른 들어가자.”
그런 서한성을 대신해서 문고리를 잡고 있던 건 홍석영이었다. 홍석영은 서한성의 등을 밀며 상담실 안으로 들어왔다.
뭐 하냐는 소리가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쭈뼛거리는 서한성을 봐서 겨우 삼켰다.
“한성이와 얘기를 해 봤는데.”
홍석영은 상담실을 둘러보았다.
“음. 여긴 처음 오는데 왜 이렇게 삭막해? 화분이라도 좀 둬 보게. 옆집에 대마법사가 사는데…. 물 안 줘도 잘 자라는 식물로 달라고 해 봐.”
“김 선생님은 꽃집이 아닌데요….”
“김 선생이라면 좋아할 거야. 오늘도 학교가 너무 삭막하다며 주위에 꽃 심고 다니던데.”
홍석영이 시답잖은 이야기를 꺼내는 동안 서한성은 조심스럽게 소파 끝에 걸터앉았다. 금방이라도 도망갈 것처럼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다.
홍석영도 그걸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홍석영의 장단에 맞춰 주었다. 애 하나 긴장 풀게 한다고 별짓을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었지만….
이러라고 있는 상담실이지.
“겨울이니 삭막한 것도 당연한 거 아닌가? 아니면 김 선생, 할 일이 없던가?”
“학생이 두 명밖에 없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홍석영은 커피포트와 커피 믹스, 티백이 있는 곳을 두리번거렸다. 결국 선택한 건 녹차였다.
저 녹차. 치워 버려야지.
“어쨌든 한성이가 희, 우 선생에게 상담받고 싶은 게 있다고 하더군.”
“…그래?”
“네.”
서한성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종이컵을 꼭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잔뜩 긴장한 채다. 그래도 이젠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다. 저번처럼 도망칠 것 같진 않았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고.”
홍석영은 서한성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본인 기준에나 ‘부드럽게’였지, 홍석영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서한성의 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저러다 녹차를 쏟지.
“우 선생님도 너와 똑같은 고민 했었어. 내가 말했지?”
…뭐지?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다.”
뭐야?
홍석영의 의미심장한 말에 눈을 찌푸렸다. 홍석영은 나를 똑바로 보며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뭔가 신호를 보내려고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 선생님도 솔직하게 말해 주실 거야.”
홍석영은 유난히 ‘솔직하게’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바보라도 저게 신호라는 걸 알 수 있다.
…진짜 뭐지? 뭘 솔직하게 말하라는 거야?
“우 선생. 한성이를 부탁하지.”
뭘 부탁하는 건데?
이 아저씨, 지금 나한테 너무 떠맡기는 거 아닌가?
아니, 서한성을 낚아챘다고 내가 투덜거리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지! 이렇게 떠넘기지 말라고!
떠넘기려면 제대로 설명을 하든지!
황당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홍석영을 보았다. 멋대로 손을 흔들고 떠나려는 인간을 붙잡아 욕이라도 퍼부어 주고 싶은데 서한성이 묘하게 기대감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그러지도 못했다.
젠장. 이젠 돈 적게 준다고 투덜거릴 수도 없는데.
차라리 월급 반납할 테니까 상담실 가져가라고 할까.
“그럼.”
달칵.
홍석영은 문을 닫고 나갔다.
“……?”
나가기 전 홍석영은 내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입 모양을 읽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안. 어쩔 수 없었어.’
…뭐가? 미친 듯이 불안해졌다.
“…….”
“……크흠.”
나는 서한성을 보았다. 서한성도 나를 보았다.
기묘한 대치가 계속되던 중, 결국 내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
“…무슨 일이니?”
“…….”
서한성은 또 입을 딱 다물었다.
내가 말했잖은가. 민감한 과거를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듣는 일은 좋지 않다고.
하지만 나도 눈치란 게 있다. 그 민감한 과거를 당사자가 지금 말하려고 하고 있다. 어른 된 도리로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기다려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홍석영의 기괴한 신호가 걱정되기도 했고.
서한성이 쥐고 있는 녹차가 미지근하게 식을 무렵에야, 녀석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선생님도… 아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걸 말하니?”
내가 알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아! 네, 이 헌터님의 그….”
“협회에서 일하시는 거? 그래. 알고 있어. 저번에 네가 얘기했을 땐 네가 알고 있을 줄 몰라서….”
“네…. 교장 선생님한테 들었어요.”
서한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저. 으음….”
마음의 준비를 다 한 줄 알았는데 서한성은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이러다 해 떨어지게 생겼다.
“혹시 말하기 힘든 거라면 무리해서 나한테 말할 필요는 없어.”
“아뇨, 제가 말하고 싶어요…. 선생님도 저랑 비슷한 환경이라고 들어서.”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
홍석영이 도대체 얘한테 나를 뭐라고 설명한 거지.
“그, 선생님 부모님이요.”
“…응?”
“선생님이랑 이록이… 부모님?”
…홍석영 말하는 거 아니겠지?
나는 이번엔 다른 의미로 눈을 찌푸렸다. 홍석영의 사과.
“선생님한테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닌데…. 교장 선생님이 자긴 그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해 줘도 제게 와닿지 않을 거라고 했거든요. 선생님이 더 잘 말해 줄 거라고.”
“…교장 선생님이 그랬어? 뭐라고 하셨는데?”
“선생님 부모님도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고요.”
서한성의 말이 거슬렸다.
…도?
“범죄자… 라고.”
“…그것만 들었어?”
서한성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한 거였군.
뭐, 연구소 이야기를 들먹였다면 좀 짜증 났겠지만, 이 정도라면 상관없다. 내 친부모가 범죄자인 건 사실이니까. 그게 나라는 인간의 가치에 흠집을 낼 순 없다.
서한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제 부모도… 그렇거든요.”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그 말을 듣자 홍석영이 내게 얠 데리고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아저씨가 감당 못 할 이야기긴 했군.
자세한 사정은 들어 봐야 알겠지만, 어쩐지 서한성이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대충 느낌이 왔다. 왜 이미선 밑으로 들어가려고 했는지, 정확히는 협회에서 일하려고 했는지도.
“선생님은… 선생님처럼 어떻게 될 수 있어요?”
결국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고 사랑을 주는 절대적인 울타리.
세상에는 그 울타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았다. 내 것도 그랬고, 서한성의 것도 그렇다.
그래도 나에게는 다소 늦게나마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생겼었지만.
“그런 인간 밑에서 자란 저라도, 선생님처럼 될 수 있어요?”
“나처럼?”
“막… 범죄자들 잡고. 선생님, 잠입 요원이었다면서요?”
그 인간, 도대체 애한테 날 뭐라고 설명한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