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29)
부모의 죄(1)
서한성이 풀어놓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모든 일의 시작은… 서한성이 태어나기 오 년 전.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땐 지금처럼 막… 헌터가 있고 그런 게 아니거든요.”
2021년의 대한민국도 던전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의 대한민국은… 아니, 한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던전과 헌터 관리는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었다.
“아. 선생님은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저보다 잘 아시려나?”
“…나도 어릴 때라. 그래도 대충 아니까 계속 말하렴.”
“네. 그러니까 그땐….”
각성자나 헌터의 경계가 모호했고, 그러니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각성자 범죄가 일어나도 파악하기가 힘든데, 던전 브레이크는 빈번히 발생하고 헌터들은 던전 공략마저 내팽개치기 일쑤였다. 괜히 그 시기가 암흑기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물론 그때도 길드는 있었다. 서한성의 부친 서 씨는 소규모 길드를 전전하는 각성자였다. 정확히는 도둑이었다. 던전에 들어간 각성자의 소지품을 훔치는.
“서 씨가 이때도 각성자들을 죽이고 다녔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서 씨는 임 씨와 어떻게 만났는지 얘기하는 걸 더 좋아했거든요.”
임 씨.
서한성의 모친 임 씨는 당시 종로에 있던 암시장의 모 전당포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당연히 이 전당포도 제대로 된 곳은 아니었다. 전당포라는 이름에 걸맞은 일도 하긴 했지만, 본업은 따로 있었다. 임 씨가 일하는 전당포는 장물을 취급하는 곳이었다. 서 씨의 이야기가 먼저 나온 것에서 짐작을 했겠지만, 이 전당포에서 취급하는 장물은 던전 안에서 죽은 각성자의 소지품이었다. 몬스터에게 죽거나, 혹은 같은 각성자에게 살해당한 이들의 소지품 말이다.
도둑 서 씨와 전당포의 임 씨는 임 씨가 일하는 전당포 앞 빵집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임 씨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당포에서 일하던 선량한 시민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 임 씨는 실질적으로 전당포를 운영하는 팀장이었고, 서 씨와는 모든 면에서 천생연분이었다.
“그렇게 서 씨와 임 씨는 손잡고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어요.”
오 년의 불같은 연애. 서한성은 그렇게 말했다.
그 불같은 연애는 결혼으로 이어졌다. 임 씨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 씨는 죽은 헌터의 품에서 훔쳐 온 반지로 프러포즈했다.
서한성은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그다음에 제가 태어났어요.”
서한성은 끈질기게 자신의 친부모를 서 씨와 임 씨라고만 지칭했다.
그런 인간들을 부모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고, 내게 이름까지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도 알겠다.
사실 이렇게까지 행적을 말한다면 나도 한 시대를 풍미한 소름 끼치는 범죄자 부부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고는 해도 그만한 짓을 저질렀다면 유명하다고. 그 최후도.
하지만 어렵사리 말을 이어 가고 있는 서한성을 위해 내가 떠올린 이름을 지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한성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저는, 그러니까.”
서한성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어릴 때부터… 그런 서 씨의 길드에서 일했어요.”
“…너 몇 살이더라?”
“열여덟 살 맞아요. 진짜 웃기긴 한데,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도, 꼴에 부모라고 서 씨와 임 씨는 절 많이 아꼈거든요. 진짜… 어이없지 않아요?”
서한성은 힘없이 웃었다.
“제가 거기서 대단한 역할을 한 건 아니에요. 저 아꼈다고 했잖아요. 현욱이처럼… 그러지는 않았어요.”
미성년자 각성자를 착취하는 일이 그들 길드에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서 씨와 임 씨는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을 그런 위험에 내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한성이 뭘 했느냐, 하면.
“제가 한 건, 일종의… 후계자 교육이었어요.”
길드를 운영하는 법을 배웠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어린 아이들이 몬스터에게 죽도록 내모는 법을. 던전 안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른 헌터를 사냥하는 법을. 경찰이나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협박하는 법을. 그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을.
“그러다가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뚝 떨어졌어요.”
그건 서 씨와 임 씨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거다. 천벌이라는 의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가 서한성 나이, 열여섯이었다.
서한성은 그때도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하기에는 심성이 너무나 착했다.
홍석영은 고민하다가 그런 서한성을 구제해 주었다.
물론 서한성은 이렇게 표현하진 않았다.
“어, 교장 선생님 도와드린 것도 있고…. 사실 제가 미성년자인 탓이 클걸요.”
아닐걸.
홍석영이 어린애들에게 비교적 약한 건 사실이지만, 자기 잘못도 모르고 날뛰는 어린애들까지 신경 쓸 정도로 성인군자는 아니다.
어차피 미성년자라서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면 홍석영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서한성을 돌보긴 했을 거다. 소년원에 갔든 어쨌든. 홍석영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거다. 홍석영이 뭐, 진짜 경찰이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 아저씨가 각성자범죄수사실과 공조하는 건 봉사 활동에 가까운 거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석영이 서한성을 데려와서 관련된 기록을 말소시키고, 시범고에 입학시킨 이유?
지금 서한성이 벌벌 떨며 서 씨와 임 씨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와 같겠지.
“그래서….”
난 부모라고 이야기하려다가 고쳐 말했다.
“서 씨와 임 씨 같은 자들을 잡고 싶어?”
“어… 비슷해요.”
서한성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단순히 상종도 못 할 범죄자를 부모로 둔 아이의 고뇌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보다는.
“…….”
이것 때문이구나. 다른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게 홍석영이 서한성을 내게 보낸 진정한 이유다.
얠 보내기 전에 말해 줬으면 나도 어느 정도 준비를 했을 텐데…. 하지만 홍석영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저는, 그러니까….”
이런 거라면 나한테 미리 말을 못 한 것도 당연하지. 홍석영이 유일하게 할 수 없는 일을 인정해야만 하는 거니까.
“…예전에 서 씨가 저한테 말한 적이 있거든요.”
“뭐라고 했는데?”
“만약, 엄마랑 아빠를.”
엄마와 아빠.
거의 들리지 않게끔 빠르게 읊조리는 말에서 느껴지는 서한성이 원한 것만큼 숨겨지지 않았다.
“괴롭히는 사람이… 오면.”
그리움.
사랑하면 안 된다는 강박.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망.
“저는 그걸 교장 선생님께 말했어요.”
* * *
홍석영은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태어나서, 하나도 가지지 못한 채 시작했다가 결국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힘과 권력. 명성. 명예.
가족.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양아들. 딸이나 다름없던 제자까지.
그러나 홍석영이 끝내 가지지 못한 것도 있다.
보육원 출신의 아이가 자라서 성공하면 친부모가 나타나서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도 꽤 있는 경우였다.
홍석영에게는 없었다. 그게 다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의 얼굴을 모르고, 나처럼 형이나 양아버지의 돌봄을 받지 못한 아버지는 그렇게라도 자신을 낳아 준 사람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홍석영은 대부분의 사람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홍석영은 나와 누나에게, 그리고 죽은 아들에게는 훌륭한 아버지였지만, 한 번도 누군가의 아들이 되어 본 적이 없다.
부모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과 자식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다르지.
“킁.”
결국 서한성은 말하는 도중 울기 시작했다.
나는 포기했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서한성은 울어도 된다. 얜 그럴 자격이 있다. 어디 보자. 그나마 재별가 막둥이 정도가 이 학교 학생들 중 제일 평범한 과거사인가.
“죄,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니…. 진정했니?”
“네.”
서한성은 눈가가 벌게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 씨와 임 씨가 하는 일에 동의는 하지 않고, 정보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서한성은 부모를 그리워했다. 그런 인간들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만큼은 사랑했다는 증거.
내 부모와는 다르다. 하지만 나는 내 친부모가 아닌, 형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형은 서 씨와 임 씨처럼 악독한 범죄자겠지. 하지만 내게는….
“크흥.”
서한성은 티슈에 대고 코를 풀었다.
“그래서… 협회에 들어가려고 한 거니?”
“…네. 선생님도 원래는 그런 데에… 잠입하셨다면서요. 그래서 헌터로서의 기록이 없다고 하셨는데.”
“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다른 애들이라면 몰라도 이런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서한성은 내 이력이 이상하다는 걸 바로 눈치챘겠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수상할 정도로 실력이 좋은… 내가 몇 급으로 시작했더라? D급이었나? 실력 좋은 헌터? 말도 안 되지.
“솔직하게 말해도 돼.”
“…네?!”
서한성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보았다.
“네가 솔직하게 말해야 나도 너한테 맞는 조언을 해 주지.”
“…….”
서한성은 입을 우물거렸다. 역시 어린애들이라니까. 속마음을 너무 쉽게 들킨다.
아버지는 좀… 평범한 애들을 데리고 학교를 시작할 순 없었던 걸까. 놀라울 정도로 순하고 착한 애들인 건 아는데, 하나같이 성장 과정이 그렇잖은가.
유혜은, 유지은 자매도 가정 환경이 복잡해 보였고. 순순진과 이승연은… 가정 문제라기보다는 배경이 평범하지 않고. 한은영은 가족 구성원에게 문제가 있다.
희망은 최진우뿐이다. 여기서 갑자기 최진우마저 머리 아픈 이야기를 꺼내 오진 않겠지.
“부모님이… 서 씨와 임 씨가 범죄자이기 때문에? 그걸 속죄하고 싶어?”
“네.”
“아니잖아.”
“…….”
겉으로 얌전하고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말은 생각이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한성도 헌터다.
내가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는가.
헌터는 생각을 많이 하면 이상한 결론을 낸다.
다행히 서한성은 금방 입을 열었다. 나한테 올 때 이미 결심을 끝냈겠지.
“범죄자를 잡아야 해요.”
“왜?”
“그래야 저는 정의로운 인간이 되니까요.”
아.
이상한 말이 나왔다.
봐라. 생각을 많이 하면 안 된다니까.
“그건 범죄자를 잡지 않아도 될 수 있는데.”
“아뇨!”
서한성은 격하게 내 말을 부정했다.
“경범죄로는 안 돼요!!”
서한성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왜 안 돼?”
“엄마나 아빠 같은 사람들을 잡아야 해요. 그래야 저는!”
서한성에게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순간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할 만큼 정제되지 않은 난폭한 마력이었다.
얘 봐라?
홍석영이 서한성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장될 원석이 아까워서 주워 온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그래야 엄마 아빠를 잡아넣은 개새끼가 아니라 범죄자를 잡아넣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요!!”
콰앙!!
상담실의 테이블이 박살 났다. 바닥이 부서지는 걸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래 쓰지도 못했는데. 수리하려면 누구한테 말해야 하지? 이미선?
끼이익.
창문까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유리창이 깨지면 청소하기 귀찮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춘기는 쉬운 게 하나도 없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