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30)
부모의 죄(2)
그러니까….
“…….”
서한성이 말하려고 하는 건 이렇다.
비록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아들에게만큼은 사랑을 아끼지 않은 부모였다. 세상에 부모 같지도 않은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한성이 딱히 남들보다 더 높은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신고 정신이 투철한 것과는 상관없다. 그냥 평범한 사람일수록 더 고민하게 되는 일이다.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게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인 경우.
평범한 사람이라 못 본 척하지 못하고 신고할 수도 있고, 평범한 사람이라 정에 넘어가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그만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놈이라도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서한성은 그러지 않았다. 부모의 범죄를 가장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에 더욱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고,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런 범죄에 진저리를 쳤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서한성에게는 사랑하는 부모라는 점이 크게 상처로 남았을 거다. 그걸 외면하는 건 어른이라도 어렵다. 하물며 겨우 중학생 되는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뭐라고 해야 하나. 패륜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그래서 합리화하는 거다.
부모를 배신한 게 아니라 범죄자를 잡아넣은 것뿐이라고.
그러한 사고 과정은 이해할 수 있다.
비록 단어 선택은…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지만.
“좋아.”
“…좋다고요?”
서한성은 나를 노려보았다.
까칠하기는.
마력이 아직도 통통 튀고 있다. 원래 조용한 애들이 한 번씩 사고를 크게 치는 법이다. 나도 고등학교 때는 비교적 얌전했었다고. 그러다가 한 번…. 크흠.
원래 애들은 다 사고 치면서 크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서한성은 얌전하지. 그만한 과거사를 털어놓으면서 부순 게 테이블 하나?
굉장한 자제력이지….
“네가 왜 그런 협회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지는 알겠어.”
나는 서한성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문득 묘한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다.
상담실 문은 서한성의 등 뒤에 있다. 교실 문이 그렇듯, 상담실 문에도 작은 창이 있다. 서한성의 폭발로 금이 살짝 가 있는 창을 통해 홍석영과 눈이 마주쳤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사람이다.
몰래 듣고 있는 것 같진 않고, 서한성의 폭발에 깜짝 놀라 다시 튀어 온 눈치다. 눈이 마주치자 홍석영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홍석영에게 대충 이해했다는 의미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홍석영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조금 더 서성거리다가 문가를 떠났다.
…하긴. 홍석영이 서 씨와 임 씨의 수사에 관여했다면 더욱 서한성에게 조언해 주기 애매한 위치였겠군.
“…그래서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생각하세요? 괜찮아요?”
“괜찮고 자시고 간에….”
서한성은 날카롭게 반응한 것치고는 금방 조용해져서는 내 눈치를 보았다.
왜 그런지는 알겠다. 알겠다고. 내가 눈치 보지 말라고 얘기해도 들어 먹지 않을 거고. 지금 이곳에서 서한성에게 뭔가 조언 비스름한 걸 할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인 것도 알겠다.
그럼 이제 문제는 이거다.
이걸 어떻게 평화롭게 해결하나.
싹 무시하고 협회 취직 얘기를 해?
그것도 하나의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 서한성이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내린 상태만 아니었더라면.
지금 상황에서 그랬다가는 서한성은 자기 상황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런 질풍노도의 시기인 아이들에게는 도움을 요청할 창구를 항상 열어 두어야 한다. 자신이 거절당했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어른을 찾지 않는 법이며,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해결하겠다고 결심할수록 일은 엉망이 되기 마련이다.
접근은 조심스럽게. 내가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는 분명하게. 하지만 잘못된 생각만큼은 확실하게 고쳐야 한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네가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는데.”
지금 이 대화는 서한성의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지을 거다.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으니까….
아니, 아니. 비슷한 상황이라고 해도 나와 얠 자꾸 동일시하면 안 되지.
근본적으로는 결국 다르니까.
“넌 네가 잘못한 게 뭐라고 생각하냐?”
“…네?”
내 질문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서한성의 마력이 잠잠해졌다.
아무리 놀랐다고는 해도 가라앉는 게 빠른데.
서한성의 훈련 계획을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좀 더…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은데.
폭발적인 마력과 안정. 단순하게 생각하면 성질머리가 대단하고 속에 화가 많다는 뜻이지만, 잘만 다루면 좋은 재능이다.
유지은이 탐낼 만한….
“……선생님?”
“음. 나도 너와 비슷한 처지였기는 했는데.”
나는 턱을 매만졌다.
“교장 선생님이 뭐라고 했다고? 내 부모가 범죄자고, 나는 그런 범죄자를 잡고 다녔다고?”
“…….”
서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다시 기이한 빛으로 번들거린다. 한숨을 내쉬었다. 관리청에서 범죄자를 잡고 다닌 건 아니지만, 대충 그렇다고 치고.
“난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내 전공은 그쪽도 아니고. 어찌 되었든, 너 말이다.”
“네.”
“그러니까 네 잘못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아까 물었잖냐.”
“…….”
서 씨와 임 씨는 세월에 잊혔다고는 하나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는 사람은 알고 있을 만큼 악명 높은 범죄자였다. 아무리 서한성에 대한 기록을 없앴다고는 해도 그런 두 사람에게 자식이 있었다고 증언한 사람이 없었을 것 같진 않았다.
서한성의 말대로 후계자 교육을 받고 있었다면 더 알려졌겠지. 세상 사람들은 그런 소식에 열광하는 편이다. 엘리트 범죄 교육이라든지, 어린 자식마저 범죄에 내모는 냉혈한 사이코패스 부부라든지.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서한성에 대한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그만큼 철저하게 숨겼다는 말이겠지.
뭐, 사실 서한성만 그랬던 건 아니다. 아버지는 내 어린 시절도 숨겼다. 나는 어디까지나 보육원에서 입양된 운 좋은 꼬마애에 불과했다. 미친 부모 아래서 태어나 출생 신고도 하지 않은 연구소 출신의 실험체가 아니라.
“대답 못 하겠어?”
“…….”
“당연하지. 넌 잘못한 거 없거든.”
“하지만!”
“아. 뭐. 그래…. 네 부, 서 씨와 임 씨 밑에서 한 거? 그건 예외로 둬야지. 미성년자였잖아. 어른이 시키는 거 거부하기도 힘들고. 관련된 용어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건 내 전문이 아니라 잘 모르겠고.”
서한성은 다소 멍청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잘못은 잘못이다, 범죄는 범죄다… 라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순 없지.”
“…….”
“알겠냐?”
“…네?”
“네가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면 여기서 느껴야 한다고. 서 씨와 임 씨를 밀고한 부분이 아니라.”
“…….”
민감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너무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도 없다.
가끔은 거친 방법을 쓰더라도 현실을 일깨워야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튀게 되거든. 말했잖은가.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내게는 본받을 만한 보호자가 있었다.
꼭 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도 내게는.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상하지만 누나도.
형은 그 뒤로 본 적이 없어서 무어라 말하긴 힘들지만, 아버지와 누나는 내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반대로 나도 두 사람을 자주 괴롭히긴 했다. 특히 누나를.
어쨌든, 이 나이 때의 청소년에게는 일종의 통과 의례라는 거다.
“네가 말한 것 때문에 서 씨와 임 씨가 잡혔을까?”
모든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 때론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 마련이며, 거기에 대한 나의 기여도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미약하다.
이걸 알아야만 어른이 될 수 있다.
서한성도 예외는 아니다.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며.”
“…네.”
“그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교장 선생님이 뭐, 네 신고를 듣고 나타났니?”
“어….”
“아니지?”
서한성은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바로 알아보긴 했어?”
“TV에 많이… 나왔으니까.”
“아, 그렇지. 홍석영 그 인간 유명하니까.”
아마 대한민국에서 얼굴이 제일 많이 팔린 헌터 중 하나일 거다.
“근데 그 사람 만난 게 어디였을까?”
“…….”
서한성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봐라. 평범하게 생각하면 금방 깨달을 수 있는 거잖아. 그걸 지금 몇 년째 모르고 있었냐고.
그만큼 서한성이 부모의 일에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었겠지.
이게 나와 서한성이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다. 나는 내 부모를 그렇게 애틋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형을 대입한다면 조금 다를지 모르겠지만…. 글쎄. 형은 내가 나 살겠다고 형을 밀고하면 오히려 좋아했을 인간이라.
형을 팔았다는 죄책감을 느낄지언정 그 점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엄, 아니, 임 씨 사무실, 창고요.”
“너랑 이야기했다면, 보자. 다른 사람들은 몰랐겠지?”
“…….”
“그 정도 되는 인간이 열 살짜리 어린애한테 들켜?”
“…열 살 아니었어요.”
“어쨌든.”
나는 가볍게 느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했다.
이건 심각한 일이다. 심각한 일. 서한성은 진지하니까 나도 진지하게 나와야 한다. 내가 비웃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홍석영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네 앞에 나타났을까? 지나가다가? 실수로?”
“…….”
“네가 아니었어도 교장 선생님은 그 사람들을 잡아넣었을 거다.”
나는 서한성이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분명하게 말했다.
“넌 네 부모를 팔지 않았어.”
* * *
서한성은 꽤 오랫동안 내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애를 놔두고 내가 뭘 하겠는가.
부서진 테이블을 치울 수도 없고, 일을 할 수도 없고,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때울 수도 없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서한성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러고 있으면 관리청에서 일하는 게 몸은 바빠도 부담감은 적었다.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긴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건 헌터였다. 나는 그냥 이런 방법도 있고, 저런 방법도 있다고 제시해 줄 뿐이지.
하지만 교사는 다르다. 아직 세상을 제대로 겪어 보지 않은 아이들은 어른의 말에 일희일비한다. 지금 내가 해 주는 말이 앞으로 이 아이의 인생이 될 수도 있다.
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직업인가.
“저, 선생님.”
“음.”
“그러면, 교장 선생님은 절 가지고 논 건가요?”
“…….”
자, 말했지.
내 말이 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아니.”
나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저 없이도 엄마랑 아빠를 잡을 수단이 있었다면… 왜 저를? 저한테서?”
“그거야.”
좋게 생각하자. 혼자 생각하지 않고 나한테 바로 물어봤잖은가.
“널 위해서지.”
“…저를요?”
“어린애가 있잖아. 힘들어하는 어린애가. 그 사람은 그런 아이를 외면할 정도로 못된 사람이 아냐.”
“…….”
“네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고 구하려고 한 거야.”
나는 조용히 이어 말했다.
“그리고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마 네 부모도… 거래를 했을 거야.”
“거래요?”
“수사에 협조할 테니 자기 아이만큼은 구해 달라고.”
“…….”
“애써 부정하지 않아도 돼.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는 건 아니잖아.”
서한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네 부모가 좋은 부모라고 말하는 건 아니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파리하게 빛나던 형광등. 분주하게 움직이던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
‘2호.’
나를 향하던 냉정한 목소리.
“그냥, 그 사람들은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서한성이 이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무슨 개소리를 하냐며 비웃었을 테니까.
하지만 별거 아닌 몇 마디 말에도 저렇게 어깨를 떨면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는 필요할 거다.
“네 잘못이 아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