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32)
육아(1)
호프가 준 던전 리스트 중에는 이미 닫힌 던전도 있었다. 명동 던전 같은 곳.
방이동… 송파구에 있는 지네 던전은 나와 홍석영이 닫았고. 그 외에도 두세 군데 더 공략이 완료되었다.
그런 던전에 대해서는 정보를 더 얻을 방법이 없다. 방이동 던전도 사실 더 알아낼 정보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했지만 위험성이 너무 높아 그대로 닫았던 감도 없잖아 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닫힌 던전을 제외하면….
이십 년 뒤까지 남아 있는 던전은 방이동 던전을 제외하면 없었다.
당연하지만 이미선이 구해 준 현재 시점의 던전 보고서 중에는 내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 없다. 협회 소속인지 다선 소속인지 모를 헌터들이 가능한 던전부터 확인하고 있긴 한데, 솔직히 어느 세월에 되겠는가. 등급이 높은 던전은 허가받는 것부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마력 시계에 남아 있는 자료가 쓸모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쩔 수 없지. 오래된 자료였으니까…. 기껏해야 게이트가 발생한 날이나 출현 몬스터, 공략대의 정보 정도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충 관련된 정보가 있을 법한 카테고리에서 검색을 돌려 봤지만 마땅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마력 시계가 껌뻑이는 걸 달래 가며 필터를 돌렸더니….
[유지은(등록번호 KH-372-21006-19)]왜 이게 나오는 걸까.
아니, 당연히 누나가 공략한 던전은 다 살펴봤지. 관리청의 소답게 공략한 던전도 많았다. 혹시 몰라서 아버지가 공략한 던전도 살펴봤다. 아버지가 명동 던전을 수습했기 때문에 미노타우로스의 명동 던전이 목록에 있긴 했지만, 그 외에는 없었다.
누나의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유지은 – S급] [주 무기 – 검] [이능관리청 던전공략부 제2팀 팀장] [세계미공략던전공략지원협의회 자문위원] [공략 던전(총 709건)▼]달라진 건 없다. 마르고 닳도록 보았다. 이름을 누르면 생년월일이나 헌터 라이센스 갱신일 등 신상 정보도 함께 뜬다.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눈을 찌푸렸다. 마력 시계가 오류를 내는 게 아니라면 있을, 있어야 하는데….
한참 시간을 들여서 어디서 필터에 걸렸는지 알아내기는 했다.
보통 헌터들의 경력과 실력은 공략한 던전의 난이도와 수로 정한다.
그야 당연하잖아. 자기 실력으로는 공략은 꿈도 못 꿀 던전에 억지로 들어갔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는데, 그걸 실력으로 쳐주기에는 조금.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던전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해도 공략하지 않은 이상 헌터의 공적으로 쳐주진 않는다. 헌터 본인도 공략에 성공한 던전 말고는 말하지 않는다. 자기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인데, 들어가 보기만 한 던전을 어떻게 말하고 다니겠는가?
물론 헌터가 던전에 몰래 들어갔다가 죽어 실종 처리되면 귀찮은 일이니, 던전 공략은 신고제로 관리된다. 공략대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그 뒤에 들어간 공략대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죽은 이들을 수습해 돌아온다. 대부분 남은 건 많지 않지만, 운이 좋으면 유품 몇 가지를 건질 수 있기는 했다.
따라서 헌터가 애써 말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공략에 실패한 던전도 기록에는 남는다.
누나도 마찬가지다.
[던전 진입 기록]마치 본인이 꼭꼭 숨겨 두기라도 한 것처럼 서너 개의 링크를 더 타고 들어간 뒤에야 보이는 문서.
보통은 찾아볼 이유가 없기는 하지.
관리청 공략팀의 팀장이 된 이후로는 그저 들어가기만 하고 나온 던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부분 누나가 들어가는 던전은 공략을 위한 것이다 보니. 가장 최근… 죽기 직전에 들어갔다 나온 던전은 방이동의 던전이었다. 마력초 때문에 한 번씩 확인을 하곤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내가 찾는 던전 이름은 그보다도 더 아래에 있었다. 이십 대 초반의 유지은이 들어가 보았던 던전. 체류 시간은 불과 다섯 시간. 애초에 공략을 위해 들어갔던 던전도 아니고,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던전의 확인을 위해 짧게 들어갔다 나온 것이었다.
…던전이 공략되기 전 시점이다.
던전에서 나온 누나는 던전에 변화가 없다고 보고했다. 던전 등급은 B. 위협적인 몬스터가 존재하지만, 수가 많지 않고, 던전 핵 주위에는 없다. 공략은 손쉽게 가능.
누나의 보고가 있고 난 뒤, 던전은 그대로 공략되었다.
[경남지리산-20150123-0002호] [출현 몬스터 타입 – 식물 및 거목(巨木)]보고서에 적힌 대로 누나는 단순히 던전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오기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땅한 단서가 없는 지금, 이거라도 확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 * *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한 살 더 나이 들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 말고 더 있나. 매년 연말을 챙기고 어쩌고 하는 것도 귀찮기만 한 짓이다.
그러나 불행히 우리 집에는 이런 이벤트에 열광하는 나이인 꼬맹이가 있다.
더불어 나잇값 못하는 노인네 하나도.
“으하하하!!!”
“아, 놓으라고!!!”
딱히 새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진 않지만.
나는 정신 연령이 비슷해 보이는 두 사람을 보았다. 한쪽은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할 나이였고, 하나는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애다. 나이를 떠나서 저렇게 즐거워하는 게 참….
“일하고 있다고요.”
“누가 휴일에도 일하래?”
“차라리 데리고 나가세요.”
“누가 일하래?”
우이록이 홍석영에게 대드는 것도 잊은 채 따라 말했다. 저, 저저…. 기껏 키워 놨더니 형한테 하는 거 봐라.
“그래! 이록이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거 놔!!”
“으하하!!”
홍석영은 우이록을 거꾸로 든 채 짓궂게 웃었다. 우이록이 버둥거리기 시작했지만 현역 헌터의 손아귀를 벗어나기에는 한참 멀었다. 거꾸로 뒤집힌 채 얼굴이 벌겋게 된 우이록은 내려놓으라며 고함치고 있지만, 입은 웃고 있다.
나도 어렸을 땐 저런 몰골이었나. 아버지가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던 이유도 알겠다….
우이록을 키우는 일은 내 부끄러운 과거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아니, 물론 다 똑같지는 않지.
“야아옹.”
혼자서 널찍한 소파를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는 얄미운 소리를 내며 자기 털을 고르고 있었다. 우이록이 데려왔을 때만 해도 굴러다니는 먼지 덩어리에 가까웠던 고양이는 이제 자기 싫은 일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훌륭한 고양이로 성장했다.
우이록은 나와 다르다. 그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말은 아니다. 우이록이 내 눈을 피해서 하려던 일은 전부 내가 해 봤던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우이록이 뭔가 거창한 반항기라도 거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차라리 그랬더라면 홍석영이 날 보며 히죽대지는 않았을 텐데.
“아이고, 우리 이록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아저씨가 나 크는 데 보태 준 게 있어요?!”
아. 그런 말을 해 버리면.
홍석영이 날 보며 더욱 웃어 대기 시작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왜 없겠어?”
“없잖아!!!”
“이록이가 지금 입고 있는 옷 누가 사 줬더라?”
“…형이!”
“아저씨 카드로 계산한 거 똑똑히 봤으면서?!”
“악! 나 내려놔!!”
우이록은 여전히 홍석영에게 들린 채 꽥꽥 고함을 내질렀다.
“형아! 나 살려 줘!!”
즐거워 보이니 되었다.
헌터고에서 차로 3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작은 아파트.
주거지가 안정되고, 학교나 태권도장에 다니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우이록은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안정되었다.
“야옹.”
…애니멀 테라피?
이래서 사람들이 동물을 키우는 건가.
“캬악!”
나와 눈이 마주친 고양이는 쇳소리를 내며 털을 곤두세웠다. 친해질 일은 요원해 보인다….
어쨌든 우이록이 안정되는 건 좋다. 좋고말고. 이대로 잘 큰다면 아버지를 속 썩였던 몇 가지 사건 사고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 친구는 언제 소개시켜 줄 거야?”
“…….”
“여자 친구 아냐!!”
“아이고, 그래. 아직 짝사랑이랬나?”
“…짝사랑 아냐!”
“짝사랑도 아냐?”
허공과 사투를 벌이던 우이록의 움직임이 점차 잦아든다.
여전히 우이록을 거꾸로 들고 있던 홍석영이 살짝 흔들며 대답을 채근하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걔도 나 좋댔어….”
“그으래? 그럼 여자 친구네!”
“…….”
이번에 우이록은 부정하지 않았다.
“…….”
젠장.
우이록을 키우는 일은 내 부끄러운 과거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과정에 가까운 게 아니라, 그냥 그거였다.
홍석영에게 투덜거리면서 아닌 척 좋아하는 티를 내는 건 양반이었다. 빤히 보이는데 아니라고 잡아떼는 게 웃기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건 귀엽다고 넘어갈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이거? 차라리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의 문제라면 모를까, 초등학생의?
차라리 날 죽여라.
“아이고, 귀여워라!”
홍석영은 즐거운 기색을 숨기지도 않았다. 진짜 짜증 난다….
“같은 반 친구야? 아니면?”
“…같이 태권도장 다니는 애인데.”
“그래? 이록이보다 태권도 잘해?”
“걔가 나보다 오래 다녔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참고로 말하는데 나는 태권도장을 다니지 않았다. 그러니 우이록이 말하는 저 여자애도 누군지 모르고, 저렇게 얼굴을 붉힐 일도 없었다.
근본적으로 같다고 해도, 성장 과정은 달라졌으니까.
그렇다고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다.
이제 저 꼬맹이가 내 동생이고, 나로 자라나지 않는다고 해도… 한때 저게 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우이록를 살살 꼬드겨 입을 열게 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도대체 진짜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거냐고. 우이록 쟤는 왜 나한테 얘길 안 하고 홍석영한테 얘기하고 있는 건데? 젠장, 부끄러워해야 할 애는 우이록인데 왜 내가 더 부끄러워하고 있냐고!
“…다음에 조커 보러 오기로 했어.”
“뭐! 벌써 집에 초대도 했어?”
“걔는 자기가 키운다는 강아지 보여 준댔는데.”
“뭐? 벌써 집에 초대도 받아?!”
홍석영은 잔뜩 호들갑을 떨었다.
“이록아. 여자 친구를 집에 초대할 때는 말이다.”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여자 친구한테 선물을 줘야 해.”
“야. 우이록. 듣지 마.”
그러나 이미 늦었다. 우이록은 혹한 얼굴로 홍석영을 보았다. 홍석영은 우이록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꽃 같은 건 어떨까?”
“꽃….”
“아니면.”
“아, 애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니까요.”
“어허. 이상한 소리라니.”
홍석영은 짐짓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깨를 으쓱이곤 넘어갔다. 이미 충분히 만족한 얼굴이다. 그렇겠지.
우이록이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안 홍석영은 평소처럼 우이록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어떠냐. 아저씨 아들 되면 더 많은 거 가르쳐 줄 수 있는데.”
“…….”
우이록이 저렇게 혹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어쩐지 내가 진 기분이 들었다.
“…아냐! 싫어요.”
그리고 우이록이 고민 끝에 그 제안을 거절했을 때 안도감과 더불어 묘한 감정을 느낀 것에도.
“그래?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그러냐. 아, 혹시 희재 군도 내 조언이 필요한가?”
“필요 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