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37)
보석의 룬(3)
열한 명의 마법사 중 노아 미셀의 광신도라고도 불리는 낭트 마법 학회 소속 마법사는 세 명.
[피에르 밀레] [자크 마티스] [앙리 세잔]마력 시계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정보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이름과 국적, 소속 및 간단한 약력뿐이다. 국내 마법사라면 좀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을 텐데 해외라면 그것도 어려워진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다. 다행히 관리청 직원들이 남긴 보고서는 남아 있다. 알렉스 호프 같은 무명 헌터는 없지만, 노아 미셀의 제자 혹은 그 아래에서 일하는 마법사라면 언젠가 함께 일할 수 있으니 유의할 점을 기록했다. 마법 사회란 복잡하기 짝이 없어서 사이 나쁜 마법사를 기용했다고 협업을 거부하는 일도 수두룩하게 일어난다.
솔직히 우리가 그런 어린애 감정싸움 같은 일을 신경 써 줘야 하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어쩌겠는가. 마법사는 항상 부족하다. 유능한 마법사라면 더더욱. 게다가 노아 미셀 아래에 있는 마법사와 척지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우리로서도 이것저것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긴 기록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역시 뭐든 적고 볼 일이다.
문제의 세 마법사는 당연하지만 프랑스 국적이다. 노아 미셀은 딱히 국적을 가리진 않았지만, 본인이 프랑스인이니만큼 프랑스 내에서 유독 인기가 많았다.
세 마법사는 딱히 눈에 띄는 행적은 없었다. 각자의 이름으로 등록된 룬도 세 개 미만이었고, 하나같이 애매한 성능이었다. 당연히 마법사로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시아 나라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지도 못했다.
관리청에 이 사람들의 이름이 남아 있는 건 순전히 노아 미셀 때문이다.
나라면 자존심 상할 상황인데, 이 광신도들은 기뻐할 것이다…. 뭐, 별거 아니라고는 해도 타국의 마법사에 대해 적어 놓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으음…. 룬 효과를 다시 보여 줄 수 있나?”
“이거긴 합니다만….”
[룬을 바닥에 놓았을 때, 룬을 중심으로 가로 30cm X 세로 30cm X 높이 30cm 정육면체 공간의 소음을 낮춰 줌]이런 걸 어디에 써먹는데?
심지어 이건 주 사용처마저 적어 놓지 않았다.
룬 협회에서는 매년 헌터가 꼽은 자주 쓰는 룬 TOP 100이라든지, 던전 타입별 유용한 룬을 정리해서 발표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룬 협회에서는 룬을 ‘마법사 혹은 마력펜을 사용하여 그리는 인공적인 효과를 발생시키는 기하학적 도형’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기하학적 도형의 조합이자, 뭔가 유용하진 않더라도 효과가 검증되기만 하면 룬을 등록할 수 있다. 저 세 마법사의 룬도 그렇다.
홍석영의 얼굴도 나를 따라 미묘해진다.
“이런 룬이 쓸모가 있겠습니까?”
“쓸모를 찾으려면 없진 않겠지만….”
홍석영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던전보다는 오히려 실생활에 잘 쓰일 것 같은데?”
“실생활이요?”
홍석영은 내가 보고 있던 자크 마티스의 룬을 가리켰다. 소음을 줄여 준다는 룬. 노아 미셀이 자주 쓴다며 호프가 그려 준 룬이기도 하다.
“잔뜩 그려서 천장에 붙여 놓으면 층간 소음 방지에 좋을 것 같군.”
“음…….”
“다른 것들도. 셈 블룸의 룬도 커피 온도 유지하기에 딱 좋아 보이고.”
“굳이 그걸 룬을 사용해서 한다고요? 제품도 있을 텐데요.”
“전기보단 마력 먹는 게 좋은가 보지. 마법사잖냐.”
“그런 문제인가요….”
“전기가 마력에 안 좋다는 마법사 늙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알다마다.
그렇게 생각하면….
“노아 미셀이 인간을 싫어한다고 했었죠?”
“인간이 만든 건 다 싫어할지도.”
“할 일이 더럽게 없는 모양이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학회니 뭐니 간혹 말을 나눴던 노아 미셀에게서 그런 낌새는 없었는데.
호프의 말을 들어 보면 자기 밑에 있는 놈 하나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얼간이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그런 멍청이이기만 해서는 낭트 마법 학회를 이끄는 프랑스의 자랑이 될 수는 없었겠지. 학회든 협회든, 그도 아니면 공무 기관이라도 사람이 모이는 자리를 책임지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는 법이다. 비록 무늬만 사장이라고 해도 말이지.
결국 노아 미셀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그 여자에게도 비장의 한 수 정도는 있을 수 있다.
나는 세 마법사의 룬 대신 노아 미셀의 이름이 거론된 룬을 불러왔다.
[28% 일치] [22% 일치] [35% 일치]노아 미셀의 룬과 비슷한 일치율을 보이는 다른 룬도 있어서 이게 노아 미셀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쪽은 그래도 어디에 쓸지 좀 더 명확하게 보이는군. 노아 미셀 말고 다른 룬은 어떤 건가? 비슷한 효과를 보이나?”
“아뇨, 그렇진 않고요…. 비슷하다고 하면 비슷한가.”
“음. 뭐, 이렇게 보면 위험한 룬은 아닌데.”
“이것만 빼고요?”
“그것만 빼고.”
홍석영은 내가 폐기한 종이를 노려보았다. 문제가 되는 룬이 그려진 종이다.
[룬에 마력을 저장한다. 저장되는 마력의 양은 룬의 지름에 따라 달라지며 정확한 양을 구하는 수식은 다음과 같다. 저장된 마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법사 혹은 다른 룬이 필요하다.]아직 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면서 홍석영은 날카롭게 꿰뚫어 보았다.
“이거 보조 배터리 같은 거 아닌가? 마법사나 다른 룬이라는 말이 결정적이야. 하다못해 룬이 손상되면? 저장된 마력은 어떻게 되지?”
한참을 의심스러운 점을 지적하던 홍석영은 나를 홱 돌아보았다.
“왜, 왜요?”
“이런 룬을 잘 안 쓴다고?”
“그거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던전에 마법사 없이 들어갑니까?”
“아.”
홍석영은 뒤늦게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옆에 걸어 다니는 발전소가 있는데 보조 배터리를 둬서 뭐 합니까.”
쓸모를 찾으려면 없는 건 아니다. 건물 지을 때 쓰이는 룬은 마법사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마력이 원활히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 중의 마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뭐… 그걸로 부족한 경우가 생기니까.
그런 경우에 이걸 동력원으로 사용하면 편하겠지. 하지만 결국 이것도 마법사가 필요하다. 그럴 바엔 차라리 마법사가 그냥 하는 게 낫지. 룬을 보수하는 것보단 자기 마법을 쓰는 게 더 편할 텐데. 게다가 저장되는 마력의 양은 지름에 따라 달라진다고?
잠깐 수식을 펼쳤다가 닫았다.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문과다. 고등학교 이후로 숫자 놀음을 한 건 경비 계산할 때 말곤 없다.
“이록이 수학 과외를 알아봐야 하나?”
그런 나를 두고 홍석영이 얄밉게 웃었다.
“자기 하고 싶은 거 생기면 알아서 잘 할 겁니다. 신경 안 써도 돼요.”
“하고 싶은 게 수학자 같은 거일 수도 있잖나?”
걔가?
“절대 안 그럴걸요.”
“이록이가 꼭 자네처럼 될 거라고 할 순 없잖은가.”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렇지.
…그렇다.
이제 우이록이 나와 다르게 자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왜 자꾸 나랑 동일시하고 있을까. 난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았고 태권도장에 다닌 적도 없다.
그러니까 걔는 나처럼 영화 쪽을 전공하거나 정치외교학과 복수전공을 하는 대신 과학자가 되겠다며 화학공학과니 뭐니 가겠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 보게. 이제 여자 친구도 사귀고 하던데.”
“그 얘기는 하지 마세요.”
“왜? 자네의 옛 여자 친구가 떠올라?”
“전 그런… 적 없습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홍석영은 숨넘어갈 듯 웃었다.
그래. 재밌겠지. 나도 우이록이 아니었다면 재밌었을 테니까….
꺽꺽거리는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다시 룬을 살폈다. 미셀이 자주 쓴다고 했었지? 호프가 그려 준 다른 룬을 생각하면 삶의 질을 다방면으로 높여 주긴 하겠군. 노아 미셀이 층간 소음에 시달릴 일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다시 그 마력을 저장한다는 룬을 보았다. 다른 룬에 비하면 수상하게 여길 법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홍석영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쓸모가 많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잠깐 홍석영이 했던 말을 되짚었다.
이 아저씨 은근 날카로운 말을 잘 하니까 그냥 넘겨 버리는 것보다는….
‘룬이 손상되면? 저장된 마력은 어떻게 되지?’
물론 나는 마력 공학의 천재도 아니고, 룬 천재도 아니다.
하지만 마력 공학보다는 룬이 알기 쉽고, 귀찮은 마법사들을 상대하다 보면 강제로 배우게 되는 마법 이론들도 있다. 뺀질거리는 마법사들을 부려 먹으려면 이론으로 격파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
그러니까….
룬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룬은 기하학적 도형의 모음이다. 각 도형은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여도 각각 의미가 있고 맡은 역할이 있다.
아예 단서가 없다면 모를까, 지금은 이게 무슨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니 머리를 조금 써서 궁리를 해 보면….
“…폭발.”
“음?”
“폭발할 겁니다.”
“폭발?”
“이 룬이요.”
홍석영은 웃음을 멈췄다.
“마력이 저장된 상태에서 룬이 손상되면 폭발할 겁니다.”
“…안전장치 같은 건 없나?”
“추가로 다른 룬을 사용했다면 모를까, 없습니다. 그대로 펑.”
홍석영은 내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폭발이라. 그럼 미안하네만.”
“네?”
“룬 설명에 있단 마력을 저장한다는 말 있잖아.”
“네.”
“…그 마력 말이네.”
멀뚱히 홍석영을 보았다. 홍석영은 가볍게 혀를 쯧, 차며 이어서 말했다.
“마력의 정의가 뭔가?”
“…….”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그런 고차원적인 마력 공학 질문이요? 마법사와 마력 공학자와 헌터가 말하는 마력의 정의가 다 다른데 어떤 걸 원하세요?”
“이십 년 뒤에도 통일이 안 됐어?”
“될 거였으면 진작 됐겠죠.”
“하여튼 다들 고집만 세서…. 어쨌든!”
홍석영은 잠시 샜던 대화의 방향을 강제로 틀었다.
“내 말은…. 자네가 말한 걸로 생각하면 마법사가 말하는 마력의 정의는 좀 포괄적이지 않은가? 노아 미셀은 마법사고?”
“그렇죠. 보통 마법사는 마법도 마력의 하나로 보니까요.”
“그래. 그럼 이 룬은 마력이 아니라 마법도 저장하지 않을까?”
“…….”
그럼 그건 더 이상 룬이라고… 부를 수 없지 않나?
“이 룬에 마법을 저장할 수 있다면 마법사가 아닌 사람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습니까? 마법사라면 절대 그런 짓은 안 할 텐데요.”
“이 룬이 등록된 게 언제지?”
“…….”
“지금 미셀이 쓰고 있다고 곧바로 발표는 안했을 거 아닌가. 이르게 발표가 되었다면 마법사들이 룬을 뜯어볼 시간이 많았을 텐데.”
나는 룬의 상세 정보를 불러왔다. 룬을 이루는 구조. 룬을 만든 사람. 노아 미셀의 약력. 룬이 작동하는 걸 확인한 사람들. 그리고.
2040년 등록.
아무 의미 없는 숫자의 조합이라고 해도 2040년에는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파로스 사 산드라 갬블의 사망.
그리고 우리는 산드라 갬블의 사망에 어떤 조항이 걸려 있는지 알고 있다.
“게다가 내 기우였으면 하는 말이지만.”
홍석영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네가 그 검으로 만드는 불꽃. 그것도 이 룬에 저장할 수 있을 것 같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