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40)
아버지와 딸(2)
[우리 애들 잘 부탁한다, 홍석영.] [여자애 이름은 홍지은이야. 혹시 자길 유지은이라고 말했을 수도 있는데, 무시해도 돼. 지은이가 그렇게 안 보여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든.] [남자애는 우희재야. 아마 그렇게 빡빡 우길 텐데 나중에 은근슬쩍 홍희재라고 하면 또 가만히 있을 거야. 가끔 약삭빠르게 굴긴 해도 마음은 여린 애야.] [아마 이 글을 볼 시점이라면 이 애들이 어떤 애들인지 이미 알고 있겠지. 애들이 왜 거기에 있는지도.] [원래 내가… 아니, 네가 하려고 했던 일은 실패했어. 성공한 것도 있긴 해. 하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지.] [지은이가 명동에서 있었던 일을 무사히 잘 막았다면 좋겠군. 그 일이 없었다면 내가 관리청 때문에 시간을 그렇게 많이 허비하지 않았을 거고, 놈들이 재정비할 시간을 주지도 않았을 거야.] [보안상의 이유로 여기에는 자세한 내용은 적을 수 없어. 필요한 건 지은이가 다 설명해 줄 거네. 지은이에게는 모두 알려 줬으니까.] [희재… 희재는 지금쯤이면 엄청 짜증 내고 있겠군. 내가 설명을 하나도 해 주지 않은 탓이니 어쩔 수 없지.] [걘 싸우는 걸 그다지 안 좋아하지. 못하지는 않아. 지 한몫 할 수 있게 가르쳐 놨으니까. 싫다고 해도 막상 하면 잘하는 놈이니까 너무 봐주지는 마. 지은이가 걜 안 봐준 적 있냐고 화내겠군.] [하지만 안 그래도 힘들게 큰 애한테 자기 어린 시절을 해부하는 걸 보여 줄 순 없잖나. 그래서 일부러 멀리 떼어 놨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귀띔이라도 해 줄걸 그랬다고 후회가 되는구나.] [걘 자기가 모르는 게 있으면 짜증이 많아지거든. 처음에 까칠하게 굴어도 봐줘. 갑자기 누나 손 붙잡고 과거로 가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그래도 착한 애니까.] [희재야. 아빠가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너무 화내지 마. 아빠가 다 희재 생각해서 한 일이야. 아빠도 좀 더 시간이 있을 줄 알았어.] [모처럼 휴가 갔는데 제대로 놀지 못해서 아쉬워서 어쩌냐. 지은이랑은 잘 만났지? 누나 말 잘 듣고. 지은이는 아빠가 시킨 대로 한 거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도 말고.] [그래도 마지막에 네 얼굴 못 봐서 너무 아쉽네.] [지은아. 아빠는 너한테 미안한 일뿐이다. 그때 널 말리지 못했던 게 네게 그런 고생길을 걷게 할 줄 알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말렸을 거다.] [물론 넌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뭐라고 하겠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어디 뛰쳐나가서 객사했을 거라고.] [그래도 난 네 보호자로서 널 지켜야 했다. 위험으로 내모는 게 아니라.] [지은아. 우리 착한 지은이. 나는 네 언니를 돌려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 선생님을 용서해 줄 수 있다면 그 아이들을… 불쌍한 녀석들을 돌봐 줄 수 있겠니.] [마지막까지 너한테는 짐만 얹어 주는구나.] [하지만 지은아, 너는 항상 내 자랑스러운 딸이다. 이 못난 아빠를 용서해 주렴.] [지은아, 희재야.] [아빠는 너희 둘을 항상 사랑한단다.] [그리고 홍석영. 난 실패했지만 그래도 정말 어렵게 다시 만든 기회다. 세계를 멸망시키면서까지 힘들게 만든 기회라고. 이걸 낭비하지 마.] [자만하지 말고.] [모두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 [넌 그렇게 잘난 인간이 아니니까.]* * *
“아빠는 너희 둘을 항상 사랑한단다….”
홍석영은 나직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편지? 이걸 편지라고 할 수 있을까? 유언장이 아니라?
“이 뒤로는 내 욕이 조금 있고…. 다른 건. 음.”
“…….”
“…….”
홍석영은 입을 다물었다.
조용하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아슬아슬하게 차 안이 완전한 정적으로 물드는 걸 깨 주었다.
하지만 숨이 막히는 건 똑같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유지은 헌터는.”
입을 다물었다가 고쳐 말했다. 이 상황에서 숨겨 봤자 뭐 하나. 그동안 딱히 숨긴다는 자각은 없긴 했지만….
“누나는.”
그냥 외면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지.
“…다 알고 있었을까요?”
“다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지.”
“…….”
홍석영은 얄밉게 정석을 말해 왔다.
“자네가 편한 대로 생각하게.”
“제가 편한 대로요?”
“없는 사람의 의중을 짐작해 보았자 피로해지는 건 우리야. 그렇다면 우리 멋대로 짐작하는 편이 낫네.”
“…….”
“불만 있으면 와서 따지라고 하게.”
설핏 퉁명스러워 보이는 말에 섭섭한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오히려 그 말에 안심이 되었다.
내가 아는 두 사람이라면 내가 말을 꺼내는 순간 똑같은 얼굴로 풉, 하며 웃음을 터뜨리겠지.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럼 아버지는 저랑 누나를 과거로 보내려고 했던 거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네.”
“하지만….”
검을 가져가라고 말하던 누나.
나보고 꼭 살아남으라고 말하던 누나.
피를 토하면서도 나를 향해 웃던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제 누나는 죽었어요.”
“……그래.”
“제가 그 서울에서 발견한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서울을 더 뒤졌다면 생존자가 없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럴 만한 상황은 아니었고, 설사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뭘 할 수 있지도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렸겠지.
그걸 생각하면 누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나마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아버지는 끝내 보지도 못했지 않은가.
마지막까지 눈을 부릅떠 나를 보았던 누나.
“포션을 그렇게 때려 부었는데도 못 살렸어요. 숨만 붙어 있다면 살릴 수 있다고 이미선, 그 여자가 자신만만했었는데. 허위 광고로 다 잡아넣어야 해요.”
홍석영은 묵묵히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랬군.”
사실 누나의 상처는 깊긴 했지만, 포션으로 치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독… 독만 아니었다면 어떻게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럼 누나는, 누나도 여기 올 수 있었겠죠.”
“…….”
나는 기가 차서 웃었다.
“근데 누나는 어떻게 그 상황에서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할 수 있지? 내가 그걸 발견 못 했으면 어쩌려고? 그냥 검만 주면 다가 아니잖아!!!”
울분에 차서 외치긴 했는데, 말하다 보니 점점 짜증 나기 시작했다.
뭐?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짜증이 많아진다고?
그건 당연하잖아!
업무 관련이라고 해도 짜증이 날 판에, 하물며 나와 관련된 사항을 내게 알려 주지도 않고 정해 버리면 짜증이 안 나겠냐고!
생각할수록 그렇다.
서울을 불태우던 몬스터를 피해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어떻게 과거로 올 수 있었는가에 대한 고민은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뒤에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나마도 홍석영과 이야기하기 전에는 단서조차 없었고, 몬스터 중에서도 과거로 넘어온 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뒤에도….
뭔가 아는 게 있어야 고민이라도 하는 시늉을 하지, 아는 건 쥐뿔도 없는데 무슨 고민에 생각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누나와 아버지는 옛날 옛적부터 과거로 넘어갈 계획으로 작당하고 있었다는 거잖아. 이게 어떻게 짜증이 안 날 수가 있지? 심지어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희재 군? 괜찮나?”
호흡을 가다듬었다. 없는 사람의 의중을 짐작해 보았자 피곤해지는 건 우리라고?
그래. 그 말이 맞는다. 죽은 사람에게 화를 내 보았자 나만 답답해지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날 끼워 넣을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일단 저지르고 보겠다는 것처럼 굴지 말고! 이게 뭐, 내 생일 때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 주겠다는 그런 수준도 아니고!!
아니, 서프라이즈 파티도 난 싫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에 대한 작당 모의를 한다니. 제정신인가?
그놈의 서프라이즈 파티도 내가 그렇게 질색했는데도 아버지는 매년 시도하지 않았나. 당시만 해도 음울한 고등학생이었던 유지은이 파리한 안색으로 풍선을 불던 모습은 아직도 충격으로 내 안에 남아 있다….
그 서프라이즈 파티는 매년 하는 바람에 더 이상 서프라이즈 파티도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도 꾸준히 시도하는 게 같잖기도 해서 놔두었었다.
아버지와 누나는 항상 그랬다. 어릴 때부터 달라지는 게 없다. 맨날 ‘희재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너 하고 싶은 거 다 시켜 준다’고 말하면 뭘 하나. 결국 본인들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않냐고! 내가 그 뒤처리를 하면서 무슨 고생을 했는지는 모르면서!!
그 엉망진창이던 관리청을 그럭저럭 번듯한 공무 기관으로 바꿔 놓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동안 감사가 안 나온 걸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홍석영을 잡아들일 순 없으니 나라에서도 알면서도 눈감아 준 거 아니었을까?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었을 텐데 청문회와 기자 회견을 몇 번 거치는 동안 그 이야기는 나오지 않은 걸 보면….
“…….”
“왜, 왜?”
죽은 사람 멱살을 잡을 순 없으니 옆에 있는 살아 있는 홍석영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짜증 나서요.”
홍석영은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아직 닫지 않은 창을 보았다.
“그, 사람이 모든 걸 알 순 없지….”
“그런 게 아니라요.”
젠장.
“어떤 의미로는 그런 게 맞기는 하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치부할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과거로 간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데 그걸 숨긴다고요?!”
“…음.”
“댁도 할 말이 없잖아!”
“뭐….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먹은 내가 한 일이잖나. 뭔가 생각이라도 있었겠지.”
“무슨 생각이요? 아들 엿 먹이기?”
“어허. 아빠한테 말을 그렇게 하면 쓰나….”
“아빠는 개뿔!”
이를 으득으득 갈며 소리쳤다. 홍석영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자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네.”
“저 속이는 거 있습니까?”
“음?”
“저한테 말하지 않은 정보가 있냐고요.”
“어….”
“있으면 당장 말하세요.”
“…….”
홍석영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거, 당장 생각나는 건 없는데…. 혹시라도 기억나거든 말해 주겠네.”
“…….”
“음. 어디 보자, 이것도 수정한 걸로 보이는데?”
나는 홍석영을 노려보았다.
홍석영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나중에라도 생각나거든 말해 준다니까?”
“…그래요. 그렇다고 칩시다. 뭐가 또 수정되었다고요?”
마력 시계의 창을 보자 홍석영이 차마 읊지 못한 나머지 문구가 보였다.
[자만하지 말고.] [모두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 [넌 그렇게 잘난 인간이 아니니까.]못 본 척 아래를 보았다.
수정된 문서라고 했는데. 예전에 작성한 걸 수정했다고 하기에는 마치… 너무나 마지막의 마지막에 작성한 느낌인데.
문서창을 넘기자 뜻밖의 내용이 나왔다.
[몽생미셸의 도서관]여기서 튀어나올 것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밑에 여기서 튀어나오면 안 되는 이름도 있었다.
[유지은 첨삭]“지은이도 여기 들어갔었나?”
“아뇨…. 아닙니다. 안 들어갔어요. 애초에 누나는 해외보다는 국내 던전 위주로 돌아다녔고…. 해외 던전에 안 들어간 건 아니지만 도서관에 들어갔다면 제가 모를 리 없어요.”
“몰래 들어갔다면?”
“해외 던전을요? 아버지도 프랑스 정부의 요청으로 들어갔는데?”
일단 내용을 보고 판단하자 싶어서 창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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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수 있는 게 없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