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41)
아버지와 딸(3)
나는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내 노력의 여하와 관계없이 오로지 부모만으로 나를 평가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로 피는 못 속인다는 말도 싫어한다.
내가 잘나도 그건 부모 덕분이다. 내가 못나면 그것도 당연히 부모 탓이다. 그래, 내가 뭔 병신 같은 짓을 저질렀을 때 누군가를 앞세워 욕먹는 일을 피할 수 있다면 그건 괜찮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정녕 짜증 나는 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를 잘 만나서’라는 말을 피할 수 없을 때다.
그게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는 당해 본 이가 아니면 모를 것이다. 심지어 내 친부모가 개만도 못한 놈들이라면.
물론 내가 양아들이란 사실은 알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내 친부모를 가리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보통 누나가 이렇게 말했다.
‘넌 진짜 선생님 자식이긴 하다.’
난 아직도 그게 욕인지 칭찬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다. 그걸 알고서 누나는 내가 뭐만 해도 그 말을 하곤 했다.
‘어떻게 된 게 선생님이랑 똑같냐?’
역시 욕인가….
하지만 가끔은, 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 있을 때도 있다. 가끔 친구들과 하는 술자리에서는 그게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라며 웃곤 했다.
그때도 짜증을 내긴 했는데….
젠장. 그냥 나라는 인간이 짜증이 많은 건가?
생각지도 못한 진실의 일면에 눈을 찌푸리다가 검열로 가득한 화면에 집중했다.
몽생미셸의 던전은 원체 유명한 곳이다. 던전이 위치한 장소가 장소라서 그런지, 던전에 대해 잘 모르는 민간인 중 일부는 난공불락의 던전이라며 낭만적이니 뭐니 하는 속 터지는 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그 낭만 속에서 수십 년간 얼마나 많은 헌터들이 죽어 갔는데.
하지만 때론 사람들은 그마저도 비극적인 낭만으로 포장하곤 했다….
호프의 입에서 몽생미셸이 나온 이상 당연히 정보를 확인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던전에 들어갔다 나온 뒤 작성했던 보고서는 프랑스 정부 요청으로 많은 부분이 삭제된 다음 한국에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던전 정보는 헌터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공개되었지만, 간혹 그것만 믿고 자기 실력을 넘는 던전에 기어들어 가는 놈들이 있기 때문에, S급 이상 던전은 열람 허가가 있어야만 볼 수 있다. 몽생미셸 같은 던전이라면 해당 국가의 요청으로 검열되어 있어도 아주 이상하진 않다.
“원래 이런 건가?”
“그럴 리가요.”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나는 기존의 몽생미셸 문서를 불러왔다. 몽생미셸 던전. 일명 도서관. 출현 시기. 등장 몬스터. 던전 구조….
물론 최장 시간 동안 공략 실패로 남은 던전답게 모든 설명 뒤에는, ‘확정되지 않음’ 문구가 붙어 있었다.
홍석영은 신중한 눈으로 문서를 읽었다. 사실 크게 도움 되는 건 아니다. 이 정도 수준은 미공략 던전 포럼에서도 졸지 않고 집중하면 들을 수 있는 정도이다.
“나라면 내가 겪은 일을 따로 적어 놨을 텐데.”
“네, 뭐. 적어 놓으셨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방금 봤던 저 문서일 겁니다.”
“자네도 본 적 없나?”
“네.”
나는 다시 문제의 문서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몽생미셸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으니까요. 꼭꼭 숨겨 두셨죠. 어차피 대한민국 헌터가 프랑스까지 얼마나 가겠습니까? 본부장님 정도는 되어야 들어가죠.”
“음….”
홍석영은 턱을 매만지며 마력 시계를 이리저리 살폈다. 그새 몇 번 만져 봤다고 사용법도 대충 익혔는지 손끝으로 홀로그램 창을 몇 번 문질렀다.
뭘 하고 싶어서 그러나 지켜봤더니 검열된 문장을 꾹꾹 눌러 보고 있었다.
“…뭐 합니까?”
“혹시 주석이라도 달아 놓았나 싶어서.”
“주석이 있어도 그것도 저 꼴이겠죠.”
“…….”
홍석영은 마침 떠오른 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 ■ ■■■■■]“그렇군.”
그러나 그 손짓도 의미가 있긴 했다.
[유지은 첨삭] [2041년 6월 2일]누나가 문서에 장난질 쳐 놓은 시간이 나왔다. 아버지가 마지막 편지를 쓴 뒤다.
[21시 19분 43초]시간을 고려하면 나와 만나기 전이다. 방이동 던전이 터진 시간이 이때쯤인 걸로 기억하는데. 유지은이 첨삭했다고? 잠깐.
나는 홍석영의 손을 치우고 홀로그램 창을 확인했다. 수정… 수정을 어디서 한 거지.
관리청 컴퓨터로? 그렇다면 관리청 아이피가 나올 거다. 그게 아니라면.
[HTS-00001]아버지의 마력 시계.
누나가 시계를 차고 있었는지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도 날 똑바로 바라보던 눈만 생각난다. 피가 묻은 입과 창백한 얼굴. 검을 가져가라고 말하며 꺼질 듯 나직하게,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게 ‘살아남으라’고 말하던 목소리도.
씨발. 그 상황에서 손목에 뭘 차고 있는지 알 게 뭐냐고.
마력 시계 시리얼 번호를 노려보고 있으니, 창이 깜빡거리며 또 다른 창이 열렸다.
[우희재 멍청아. 보고 싶으면 내 허락 맡고 봐라.]“…….”
그래.
아까 내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이 무엇이던가.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부모를 잘 만나서라는 말도 싫어하고? 내 가족은 형을 제외하곤 피 한 방울 이어져 있지 않지만 같은 의미로 씨도둑질은 못 한다는 말도 싫어한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나이를 먹고 보니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사람들이 왜 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우희재 멍청아. 보고 싶으면 내 허락 맡고 봐라.]혹시 내가 잘못 보았나 싶어서 눈을 몇 번 깜빡인 다음 보아도 문구는 변하지 않는다.
씨발.
홍석영을 쏙 빼닮아서는, 따라 할 게 없어서 이딴 거나 따라 하고.
도대체, 왜? 보아하니 아버지한테서 마력 시계를 넘겨받은 모양인데, 받아서 제일 먼저 한 짓이 이딴 거야?
씨발, 왜 이딴 걸 해 놔서 못 읽게 만들어 놨냐고.
이걸… 씨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래, 누나도 자기가 죽을 줄은 몰랐겠지. 그건 알겠다. 알겠는데….
죽은 사람을 욕할 수도 없고.
“…….”
홍석영이 옆에서 어깨를 들썩인다.
“…그냥 웃으십쇼.”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왜요. 웃던 거 아니었습니까?”
“지은이, 걔는 나이를 먹어도 그대로구나 싶어져서 말이네.”
“그 성격 어디 가겠습니까.”
이렇게 말해도 막상 지금의 홍석영이 작은 유지은이 아니라 누나를 만나면 알아볼 수나 있으려나. 나도 작은 유지은을 알아보는 건 힘들었는데.
“일단….”
나는 다시 자동차를 출발시켰다.
아버지의 말. 유지은. 혹은 홍지은.
모든 것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였다.
최소한 내가 이곳으로 온 게 적당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소득이 있다.
아버지와 누나가 힘겹게 만들어 낸 기회이다.
날려 먹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더욱 세계 멸망을 막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 두 사람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 * *
“희재 군.”
“네.”
“우희재 군?”
“왜요.”
“희재 군.”
“왜 부르냐고요.”
“우희재.”
“네.”
“홍희재?”
“…….”
“희재 군.”
“그만하세요. 차에서 내려서 뛰어오고 싶지 않으면.”
홍석영은 내 말에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다. 하는 시늉이라도 해 줬으면 기분이 덜 나빴을까.
아니다. 그래도 기분은 나빴을 거다.
“홍희재. 괜찮은 이름인데.”
“누가 뭐랍니까?”
“홍지은…. 이렇게 된 거 지은이와 혜은이도 입양할까? 어차피 지금도 돌봐 주고 있으니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데.”
“그러시든가요.”
“홍혜은과 홍지은이라…. 이록이는 갑자기 누나가 두 명이나 생기는 건데, 괜찮겠지?”
“…걘 왜 나옵니까.”
“갑자기 아들과 딸이 잔뜩 생기는군. 대가족이야. 큰 집을 구해 놓는 게 좋겠지?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나으려나?”
홍석영은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래, 누나가 남의 말을 귓등으로 처듣지도 않는 걸 누구한테 배웠겠나. 다 저런 아버지한테 배웠지.
그런 주제에 정말 중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방이동 던전에 대한 것도. 아버지가 대놓고 자긴 실패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어쩌면 방주에 대해서는 지금보다도 정보가 없을지도 모른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정보를 말해 줬을 누나도 없으니 그냥 짐작만 할 뿐이다.
“아, 그런데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생각이라는 단어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지 않도록 주의했다.
아까는 주변에 다니는 차가 없어서 살았지, 지금은 도심 한가운데다. 여기서 브레이크를 잘못 밟았다가는 대형 사고다. 헌터니까 어지간한 자동차 사고로는 몸에 흠집도 나지 않겠지만, 민간인들이 다치면 곤란하다…. 기껏 무탈하게 양성고를 개교시켰는데 내 손으로 망칠 순 없다.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나?”
“말씀하세요.”
“아니, 자네의 마력 시계로 내가… 그러니까 미래의 내가 작성한 문서를 불러왔잖아?”
“네.”
홍석영은 시계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일부러 마력 패턴이 읽히게 하고 있다.
“즉 미래의 나의 마력 패턴이 나와 동일하다는 소리잖나.”
“마력 패턴은 일종의 지문이니까요. 패턴이 같다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 나이 먹었다고 달라졌다는 사람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지? 그게 아니었다면 마력 패턴을 비밀번호로 사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홍석영은 내 눈을 보지 않으려고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시계를 사용할 수 있다면, 이쪽 지은이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
마음의 준비를 해 두길 잘했지. 하마터면 박을 뻔했다.
“지은이한테 시계를 채우고 그 문서만.”
“안 됩니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정보가 필요한.”
“압니다. 하지만 안 돼요.”
“…이거 꼭 필요한데?”
“어떻게 채우려고요? 선물이라고? 누가 봐도 남성용 시계인데? 그냥 한번 차 봐 달라고 부탁하게요? 아니면, 애가 자고 있는 동안? 뭘 어떻게 해도 수상하다고요.”
홍석영은 내 말에 눈을 찌푸렸다.
“애들은 생각보다 눈치 빨라요. 이상한 점을 바로 알걸요.”
“…….”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설명하려고요?”
“그럼 이건 필요 없나? 정보가 뭐라도 하나 아쉬운 건 우리인데.”
홍석영은 발칵 화를 내지도 않고, 그저 차분한 어조로 내게 물었다.
“정말 방법이 없나?”
“…….”
“정말 없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방법이야 어떻게든 생각해 내면 나오겠지.
안다. 나도 안다.
지금 내가 괜한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도, 결국 내가 작은 유지은의 손목에 시계를 채우게 될 거라는 것도.
하지만.
하지만….
기껏 누나가 언니와 함께,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즐겁게 지내고 있잖아.
이 유지은은 하나뿐인 언니를 잃지도 않고, 홍석영의 애제자가 되지도 않을 것이고, 동시에 유일한 딸도 아닐 것이다. …딸 부분은 애매하지만, 어쨌든 딱 그 나이답게 해맑게 웃을 줄 안다.
그런 애를 비록 시계 하나 채우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이쪽과 연관시키고 싶지 않다.
이번에는 반드시 누나를 지키고 싶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