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43)
민원 접수(2)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사과해야 한다. 대처가 빠를수록 진상… 아니, 상대는 빠르게 전의를 상실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 부분까지는 생각을 미처 못했네요.”
“네?! 아뇨! 저 우 선생님한테 사과받을 생각은 없는데요!”
김채민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그냥 제가 서운하니까…! 설명만 제대로 해 달라고!”
“네. 그러니까 죄송하다고요. 김 선생님이 맞습니다. 너무 저희 편의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무례했습니다.”
“아뇨! 그건, 아니고…. 그, 서로 돕고 살아야죠. 저희, 어. 그 뭐냐. 직장 동료… 같은 거잖아요…. 어려운 일 있으면 돕고 그러는 거죠.”
“동료인 거지, 직원은 아니잖습니까?”
김채민은 내 말에 오히려 당황했다.
이 사람 아무리 봐도 마법사치고는 인성이 괜찮단 말이지. 최진우와 잘 맞는 것도 이유가 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박서현도 요즘은 한결 밝아졌다. 가끔 잘 안되는 게 있으면 머리를 풀어 헤치기는 해도.
“그러니까 김 선생님이 먼저 그렇게 말하게끔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어….”
김채민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내 사과에 당황스러운 건 당황스러운 거고, 이것저것 계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나와 홍석영이 무언가 더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는 건 확실한데, 과연 그걸 자신에게 말해 줄까? 하는 얼굴.
동시에 미안하다면서 앞으로는 신경 안 쓰이게 주의하겠다고 말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스러운 눈.
나는 김채민의 고민을 도와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홍석영은 김채민에게는 말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겠냐고. 내가 연구소 출신이라거나 내 친부모가 어땠다거나, 하다못해 나에게 사실 형이 있었다는 것은 가볍게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런 차원을 넘어선 문제잖은가.
“사실 김채민 선생님께 속사정… 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해야 할지 그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김채민은 믿을 수 있다. 그래. 마법사이고 능력이고, 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 모를 그 감정들을 다 떠나서 제일 확실한 이유가 있잖은가.
원래대로였다면 김채민은 죽었을 거다.
다른 무엇도 아니라 그 점이 김채민을 믿을 수 있게 만든다.
“김 선생님이 괜찮다면 말해 드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하지만?”
“이거 들으면 김 선생님 이제 절대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게?”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저희와 한배를 탄다는 말입니다. 내릴 수 없어요.”
“으음.”
내 말이 제대로 와닿지 않았을 김채민을 위해 한 번 더 확실하게 말했다.
“죽으면 내릴 수 있습니다.”
“…….”
“……어감이 좀 그런가요?”
“네….”
“그만큼 중요한 사항이라서요. 무를 수가 없어요. 도중에 못 하겠다고 하면 진짜 곤란하거든요.”
김채민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만큼 중요한 사항….”
“제 가족의 안전이 걸린 일이라서요.”
“가족….”
이렇게까지 말하면 도리어 김채민이 괜찮다고, 억지로 사정을 캐내고 싶지 않다고 물러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홍석영이 허락했다고는 해도 역시, 다른 사람한테 말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사실 홍석영에게도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 아저씨한테는 들킨 거지.
김채민이 먼저 괜찮다고 말하면 이쪽도 사람 속인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마법사치고 괜찮은 김채민의 인성을 믿어 보자.
“알았어요.”
김채민은 생각을 끝냈는지 한결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지.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라면 안전장치가 있는 게 낫겠죠?”
“……네?”
김채민은 내가 노린 것과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다.
“일주일… 아니. 이틀만 기다려 주세요. 저도 준비할 게 있으니까요.”
“네?”
“룬 실험은… 빨리하는 게 좋죠? 마법 몇 개만 쓰면 되니까 어렵지도 않아요. 금방 해치우죠.”
“자, 잠깐만요. 안전장치라뇨?”
김채민은 까르르 웃었다.
“가족의 안위가 걸려 있는 이야기를 함부로 들을 순 없잖아요! 기밀 계약서라도 준비해서 올게요.”
“…….”
나는 김채민이 농담하는 건가 싶어 빤히 바라보았다. 웃고는 있지만 거짓말인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게….
그래. 인성이 괜찮아도 마법사는 마법사이지. 마법사가 내 뜻대로 움직여 줄 거라 생각한 게 오산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뭘 준비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마법사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다면 이쪽이…
…이득인가?
어렵네…….
* * *
풀리지 않는 마법사에 대한 의문은 뒤로하고, 룬부터 실험했다.
룬 실험은 간단하다.
잘 그려진 룬 하나와 마법사가 있으면 된다.
마력펜을 사용하면 마법사도 필요 없긴 하지만, 아직 갬블과의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았다. 뭣보다 안전을 위해서는 마법사가 꼭 필요하다. 예전 아카데미와 같은 시설이면 각종 마법 실험을 해도 안전한….
아카데미도 안전하진 않았군. 심심하면 한 번씩 부서지던 아카데미 건물이 생각났다.
지금 양성고 건물에도 보호 마법 정도는 처리되어 있다. 박서현이나 최진우의 마법은 무언가를 부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전투 훈련을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연 펜션의 정원을 보라고. 샘 블룸 때문에 헤집어지기도 했지만, 그놈보다는 그냥 애들 굴리느라 생긴 게 더 많았다. 별거 안 해도 나무가 꺾이고 돌이 부서진다.
각성자가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 연약하다.
“이쯤이면 되겠죠?”
양성고에서 떨어진 곳까지 나왔다.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흘깃거렸지만 그뿐이다. 시야에 잡히지 않도록 일부러 건물 뒤쪽으로 돌아갔더니 금방 관심을 껐다.
김채민은 바닥에 룬을 그렸다.
“됐어요!”
김채민의 말에 검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푸른 불꽃이 나부낀다. 마력 시계로 확인한 노아 미셀의 룬에는 기능만 쓰여 있을 뿐, 사용하는 방법은 쓰여 있지 않았다.
어쨌든 룬은 활성화되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불이 붙지 않도록 잡초를 정리한 흙바닥을 작은 불꽃들이 기어간다. 김채민이 있긴 하지만 다른 곳에 불이 옮겨붙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화력 조정에 최대한 심혈을 기울였다.
“아!”
바닥에 그려진 룬에 닿은 불은….
김채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먹혔네요?”
그대로 사라졌다.
“신기하네. 진짜 룬으로 별걸 다 하네요.”
“김 선생님도 룬으로 식물 키우잖아요.”
“그게 이거랑 같나요. 노아 미셀이 똑똑하기는 한가 봐요. 이런 룬을 뚝딱 만들어 내는 거 보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노아 미셀이 만든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룬 속으로 빨려 들어간 불꽃은 많은 양이 아니다. 어느 정도 불꽃을 삼긴 룬은 불꽃이 위를 지나가도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룬의 마력이 불안정해졌다.
저 크기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 건가.
“노아 미셀이 만든 게 아니라면… 아!”
김채민은 신기한 듯 룬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몬스터?”
“몽생미셸 안에 있는 놈이 어떤 놈인지 모르잖아요. 김 선생님, 몽생미셸의 별명이 뭔지 기억하죠?”
“도서관….”
던전에 그런 별명이 붙었던 건 이유가 있다. 마법사들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몰래 들어가려고 하는 것도.
게이트가 발생하는 환경은 무작위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 규칙이 없는 건 아니다. 게이트 내부, 던전의 환경과 외부의 환경은 어딘지 모르게 일관된 점이 있다.
던전이 바다라면 게이트는 바다 근처에서 생성된다.
던전이 산이라면, 게이트 또한 나무가 많은 곳에서 생성된다.
사막 한가운데에 고블린의 땅굴 같은 던전은 생길 수 있지만, 물이 많은 던전은 생기지 않는다.
몽생미셸의 도서관도 비슷하다. 작은 섬 전체에 지어진 오래된 수도원의 꼭대기 층에 있는 던전. 그곳에 들어갔다가 겨우 돌아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토록 섬세한 던전은 또 없다고 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화려한 건물.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
책.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혀 있는 책들.
마법사들의 지식욕을 자극하는 그 책들.
“노아 미셀이 몬스터의 룬을 사용한다고요? 몬스터에게 그런 지능이 있을까요?”
“호프를 보세요. 멍청하긴 하지만 영악한 놈이잖습니까.”
“그, 그렇긴 하지만….”
몬스터가 마법을 쓰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꼭 마법이 아니더라도 괴상한 능력을 쓰는 몬스터야 얼마든지 있고.
역시 몽생미셸의 정보를 어떻게든 보긴 해야 한다.
“그럼 룬 지울게요.”
어쨌든 지금은 여기에 집중하자.
김채민은 실드를 먼저 둘렀다. 대마법사답게 캐스팅 속도가 경이로울 정도다. 그 실드 속에서 새싹 하나가 자라났다. 김채민은 실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새싹을 얇은 넝쿨로 키워 룬을 지웠다.
그리고.
쾅!!
“와우.”
김채민은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효과 좋은데요?”
“너무 좋은데요.”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래. 효과가 너무 좋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정확히는, 내가 만들어 낸 불꽃의 위력보다도 더.
이 검을 쓰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누나가 쓰는 걸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게 나다. 누나가 죽은 지금, 검의 능력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이는 없다.
방금 룬이 흡수한 불꽃의 양을 생각하면 절대 이만한 위력으로 폭발해서는 안 된다.
뭐지? 저 룬에 증폭 기능이라도 달려 있나?
“불 지르기 진짜 편해 보이는데요. 아, 근데 불이 금방 꺼지네?”
“제 마력으로 만든 불꽃이니까요. 마력 공급이 없으면 바로 꺼집니다.”
“흐응…. 그럼 우 선생님 불 말고, 마법을 담으면 안 꺼지겠죠?”
“…태우려고요? 뭘요?”
“에이. 제 마법은 불이랑 상성이 안 좋아요!”
하지만 김채민은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가끔 그냥 던전에 불 지르고 게이트 밖으로 도망치면 편하게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해서….”
“…….”
누나가 등급은 낮은데 공략이 귀찮은 던전을 처리할 때 제일 많이 써먹는 방법이긴 했다. 숲이나 평원같이 탈 만한 게 많은 던전이 제일 효과가 좋다고….
김채민은 내 얼굴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빠르고 안전하게 공략할 수 있으면 좋잖아요?”
“…그렇죠.”
“저 룬을 사용해서 폭탄 같은 걸 잔뜩 만들어서 몽생미셸 던전에 뿌려 놓는다거나?”
이건 좀 혹한다.
“그쵸? 괜찮죠?”
김채민은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그나저나 진짜 신기하네. 우 선생님, 룬의 원리에 대해 아는 게 있어요?”
“원리요?”
그렇게 웃던 것도 잠시, 김채민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마법은 그래도 비교적 원리를 알기 쉽단 말이죠. 나름대로 규칙도 있고요. 마법사의 마력의 성질에 따라 좌우되는 게 크긴 하지만, 마력을 이렇게 움직이면 이런 효과가 난다! 하는 이론은 있어요.”
“네.”
“그런데 룬은… 룬은 모르겠어요. 우 선생님이 보여 준 룬을 분석해 봐도 너무 중구난방이에요. 뭔가 규칙이 없는 건 아닌데, 여기서 이런 효과를 내던 게 저기선 또 정반대의 효과를 내고 있다고요.”
김채민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처음에는 마법 수식을 기반으로 그린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 맞는 것도 아니고….”
“그렇겠죠.”
“…우 선생님은 뭐 알고 계시죠? 역시 선생님 마법사인 거 아니에요?”
“아뇨. 전 마법사는 아닙니다.”
바닥에 떨어졌던 불똥까지 완전히 사그라들자 김채민이 실드를 풀었다. 나는 망가진 룬을 발끝으로 문질러 완전히 지웠다.
“김 선생님이 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거든, 그때 그것도 설명해 드릴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