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48)
안전장치(4)
처음 김채민이 들고 온 부실한 계약서의 원형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
솔직히 만족은 못 하는데, 그건 김채민도 마찬가지일 거라 여기서 그만하기로 했다.
나는 김채민에게 확인해 보라고 종이를 건네주기 전 마지막으로 읽어 보았다. 최소한, 그래. 제자라는 말은 빼는 데 성공했다…. 분명 김채민이 뭐라고 할 테지만.
“여기요.”
김채민은 내 손에서 종이를 거의 빼앗다시피 낚아챘다.
“변호사가 한 번 더 정리는 해 주겠지만, 대충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하나. 김채민은 길드 미미 부속 연구실 파로스에서 객원 마법사로 근무한다.
둘. 우희재는 김채민이 객원 마법사로 근무하는 한, 길드 미미 부속 연구실 파로스의 실장 혹은 그에 준하는 직책으로 근무한다.
셋. 우희재는 김채민이 요구하는 방주에 대한 정보와 마법 이론을 제공한다.
넷. 김채민이 해당 정보를 사용하여 실용성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거나 마법 이론의 발견 등을 이루었을 경우 길드 미미 부속 연구실 파로스의 이름이 동시 등재된다. 이에 대한 모든 권리는 파로스에서 가지며, 김채민이 파로스에 소속되어 있는 한 김채민의 의사를 우선 존중한다.
다섯. 김채민이 우희재와 홍석영과의 논의 없이 해당 정보를 외부에 공개할 시, 해당 정보를 사용한 김채민의 연구 결과는 길드 미미에 귀속된다.
여섯. 또한 김채민의 고유 마법에 대한 소유권도 길드 미미에 귀속된다.
“…….”
김채민은 A4 용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저게 여섯 장째였던가.
몇 시간 동안 설전이 벌어진 끝에 겨우 찾아낸 합의점이었다. 그런데도 김채민은 불만 어린 얼굴로 종이를 훑었다.
“저 제자가 되고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제자에 대한 말부터 꺼냈다. 이럴 줄 알았다고.
“왜 그렇게 제자에 집착합니까?”
“재밌잖아요?”
김채민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평범한 전투 헌터의 제자가 된 대마법사! 소설 같잖아요.”
“아, 네….”
“김 선생이 저렇게 원하는데 그냥 해 주게.”
“홍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재미는 모르겠고…. 아니지. 맞아, 재밌어. 아주 재밌어 보여.”
떨떠름하게 대답하던 홍석영은 갑자기 김채민의 말에 맞장구치기 시작했다.
이 아저씨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보는데 홍석영은 말을 할수록 자기 말에 설득이라도 되는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정 재미가 없거든 그건 얼마든지 만들면 되는 일 아닌가? 그렇지, 김 선생?”
“네? 네, 그렇죠?”
정작 김채민은 홍석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홍석영이 굳이 나를 보며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나중에 써먹을 일이 생긴다는 건가.
“…….”
…그런 식으로 쓸모를 따지면, 그래.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김채민의 손에서 종이를 가져와 일곱 번째 항을 추가했다.
일곱. 김채민은 우희재의 제자가 된다. 이 사실은 두 사람이 모두 동의하기 전까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이렇게 금방 납득할 거면 왜 아깐 싫다고 한 거예요!”
김채민은 황망한 얼굴로 외쳤다.
무작정 제자가 되겠다고 우기면 누가 하겠냐고. 자길 제자로 두면 어떤 면에서 이득이 있는지 날 설득하지 못할망정.
이쪽도 할 말은 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대신 다른 항목을 추가했다.
여덟. 사제 계약은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다.
“이거야말로 불공정 조항이죠! 빨리 추가하세요.”
“뭐라고요?”
“두 사람의 합의가 있을 경우에만!”
“…쯧.”
“방금 혀 찼어요? 와, 이 사기꾼!”
그래도 김채민이 요청한 대로 수정했다. 그제야 김채민의 얼굴이 풀렸다.
김채민은 한 번 더 항목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음, 음. 좋아요. 그럼 앞으로 호칭을 고쳐야 하나?”
“…어차피 대부분은 학교에 있을 텐데요?”
“에이, 이런 건 확실히 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누구한테요?”
마법사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런 걸 안 가르쳐 줬을 것 같은데.
“어머니가요!”
아니나 다를까 김채민은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대답했다.
김채민은 항목을 적은 종이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어디론가 보냈다. 여전히 김채민에게 불리한 조항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처음 우리에게 내밀었던 것보다는 덜하다고 생각한다. 김채민의 변호사도 그만두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스승님 같은 소리만 안 하면 됩니다.”
“앗.”
“하지 마세요.”
“알았다고요.”
김채민이 사진을 보내자마자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 댔다.
그러나 우리의 대마법사님께서는 그런 알림 따윈 들리지 않는다는 듯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실장님!”
이 호칭을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그냥 고개만 주억거리며 김채민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작게 흔들었다.
* * *
“…네. 제 연구실은 회의실이 아닌데 또 무슨 일이에요?”
“식사는 했습니까?”
“네…. 저번에 펜, 그거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난 거 아닌가요?”
“그것 때문에 온 게 아닙니다.”
“여기 회의실 아닌 거 알죠?”
산드라 갬블은 못마땅한 얼굴로 우리를 보았다.
분명 처음에는 마음껏 쓰라며 자리를 내줬던 것 같은데. 벌써 한국의 직장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뭐, 사장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말 익숙해진 게 맞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장이 자길 자르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시점에서 배 째라고 나올 수 있다는 부분이 익숙해진 게 아니겠는가.
제발 잘라 달라고 해도 억지로 붙잡아 놓을 판인데. 과연 갬블은 그 사실은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홍석영은 그런 갬블을 향해 껄껄 웃었다.
“그것 때문에 온 건 아니고. 앞으로 한식구가 될 테니 소개시켜 주려고 왔네.”
“한… 식구요?”
“안녕하세요!”
김채민은 방긋방긋 웃으며 갬블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째서인지 갬블의 경계심이 올라갔다.
…김채민이 따로 뭔가 하진 않았는데.
“아, 실례. 마법사와는 썩 좋은 기억을 가진 적이 없어서요.”
“마력 공학자니까 그럴 수도 있죠.”
김채민은 까르르 웃었다.
갬블은 묘한 표정으로 김채민을 바라보다가 뭔가 깨달은 듯 입을 헤, 벌렸다.
두 사람이 마주칠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니다. 일부러 이렇게 인사할 자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갬블은 무언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이래서 눈치가 빠른 사람과 일을 해야 한다니까.
물론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를 깨닫고 미리 도망칠지도 모르지만… 말했잖은가. 갬블은 우리가 자를 수도 없고, 본인이 그만둘 수도 없는 입장이다. 최소한 노아 미셀을 해결할 때까지는 우리와 함께해야 하고, 설사 방주를 해결한다고 해도 이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러니 근로 계약서는 잘 읽고 서명하자.
“정식으로 소개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정식으로요.”
“앞으로 함께 일할 사람들이니까.”
“함께 일… 네?”
“연구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파로스? 네, 파로스 연구실의 객원 마법사 김채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해요, 박사님.”
김채민은 멋대로 갬블의 손을 잡아 악수하며 밝게 웃었다. 갬블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런 김채민을 보았다.
“객원… 저기,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죄송한데, 대마법사 아니었나요?”
“맞아요!”
“그런데 왜…?”
“아직 계약서를 변호사가 검토 중이라 서명은 안 했지만, 객원 마법사로 근무하기로 해서요!”
“…그러니까 왜?”
“에이. 어차피 여기서 애들 가르치기도 하는데요.”
“…….”
김채민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웃었다.
객원 마법사로 근무하는 대마법사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대마법사 중 어느 쪽이 더 이상한 건지 알 수 없다.
하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대마법사 김채민은 그 두 개를 모두 하고 있으니까.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산드라 갬블은 물웅덩이를 보는 고양이처럼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채, 연구실에 자리를 잡는 김채민을 살펴보았다.
…갬블이 길드에 합류할 때 김채민이 없었던가? 처음 영상 통화를 할 때는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뒤로는 김채민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긴 했지만.
아니, 하지만 양성고로 옮기면서 인사도 제대로 시켜 줬고 몇 번 얼굴도 봤잖아? 왜 저렇게 경계하는 거야?
“아, 먼지! 여기 룬이라도 좀 달까요? 강당처럼 총명탕 달면 딱 좋을 것 같은데!”
“…그거 총명탕은 아니고요.”
“비슷한 효과잖아요!”
“저, 죄송하지만 마력에 예민한 장비들이 많아서 마법 사용은 곤란한데요….”
갬블이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깨를 한껏 움츠린 자세와는 달리 목소리에는 제법 힘이 실려 있었다.
김채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그래요?”
“네.”
“하긴, 그 홍 선생님이 여길 채운다고 통장에 구멍이 났다고 했으니 하나같이 비싼 장비겠죠? 그게 고장이라도 나면 곤란하죠!”
“…네. 그러니까 연구실에서의 마력 사용은 자제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저기 경고문도 있어요.”
“그래요?”
김채민은 입구 근처에 있는 경고문을 보았다. 새빨간 색으로 크게 적혀 있었다.
‘마력 사용 금지’
그러나 김채민의 눈이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마법사라고 해서 다 연구를 좋아하고, 마법 이론을 정립하길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간 김채민도 그런 쪽으로 관심은 없어 보였고, 양성고에 새로 영역을 선포한 이후에도 호미를 들고 다니며 씨앗을 심기 바빴지….
나는 눈을 깜빡였다.
김채민이 시범고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던가. 홍석영이 보여 준 룬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군.
“마력에 어떻게 반응하는 거죠? 어떤 마력에 반응하는 건가요? 룬에 사용되는 마력에 반응할 만큼 예민한 장비? 어떤 식으로? 이건 어디에 사용하는 건가요?”
“네? 자, 잠깐, 잠깐만요!”
“신기한 거 많다! 마력 공학자랑 이야기 나눌 기회는 잘 없으니까요! 사실 저번부터 여기 들어와 보고 싶었는데, 실장님이 하도 방해하지 말라고 어쩌고저쩌고 잔소리를 해서…. 이건 뭐예요? 갬블? 산드라? 뭐라고 부르면 돼요? 앗! 그러고 보니 한국말 진짜 잘하네요!”
“아, 가,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아하하, 마법사님이라니. 나 그렇게 대접받고 싶어 하는 사람 아니에요! 그냥 편하게 불러요.”
“편하게…?”
“이름요, 이름.”
김채민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갬블은 연구실을 돌아다니는 김채민의 뒤를 허둥거리며 쫓아다니다가 이쪽을 보았다. 호기심 넘치는 대마법사가 감당이 되지 않는지 도움을 구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홍석영에게 말했다.
“두 사람 잘 지낼 것 같지 않습니까?”
“대마법사와 천재 마력 공학자? 앞으로가 기대가 되는군.”
홍석영은 갬블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의 길드원과 한 명의 객원 마법사로 이루어진 길드다. 제대로 된 법정 근무일을 보증받으려면….
협회 겸 다선의 헌터 몇 명을 데려오면 이미선이 화를 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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