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5)
송파구 던전
서울 송파구.
서울송파-20210406-0103호 던전 입구.
최초 신고 등급 D.
“정말 D급인 거 맞는 거지?”
“그럼요.”
“갑자기 막 미노타우로스 같은 게 튀어나오는 거 아니지?”
“그렇다니까요.”
이미선은 곁에 서 있는 헌터에게 건네받은 태블릿을 확인하고는 홍석영에게 넘겼다.
“곤충 타입 몬스터가 나오긴 하는데 독성도 없고 크기도 작아요. 숨겨진 공간도 탐지되지 않고.”
“흠….”
“당연히 이름이 붙을 만한 몬스터도 없고요.”
빠르게 태블릿으로 던전 탐사 보고서를 훑어본 홍석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등급을 다시 매기는 거 아나?”
“아, 결국 그러기로 했어요? 사실 진작 그래야 했다니까요. 외국 헌터랑 일할 때 얼마나 불편했는데. 한국 던전 등급은 믿을 수 없다, 속이는 거 아니냐….”
이미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마어마하게 적발될걸요.”
“자네는?”
“저요?”
이미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홍 헌터님, 저 이미선이에요. 다연과 다선의 이미선. 그런 추잡한 짓 안 해도 잘 벌어요.”
“내가 자네를 너무 얕봤군?”
“그럼요. 얼른 사과하세요.”
“미안하네.”
낄낄거리며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장비를 챙겼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이례적으로 적은 수다. D등급 던전인 데다가 동행자가 홍석영이기에 가능했다.
이미선이 고르고 고른 다선의 헌터들 또한 던전에 진입할 채비를 끝냈다.
던전 게이트는 빛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반딧불이처럼 점점이 박힌 빛이 모여 있다. 주변을 무리 지어 떠다니는 빛은 누군가에게 끌려가듯 휙 모였다가 다시 풀려나 허공을 유영했다.
이미선은 녹음기를 꺼냈다.
“크흠. 2021년 5월 24일. 서울송파-20210406-0103호 던전. 진입 인원 총 다섯 명. 길드 다선의 이미선, 지유건, 강소윤, 최대현. 길드 외부 독립 헌터 홍석영. 현재 시각 13시 정각. 던전에 진입한다.”
다섯 명의 헌터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
“…….”
“…….”
“…….”
“…뭐라고 말 좀 해 보실래요, 홍 헌터님?”
“나라고 뭔 할 말이 있겠어.”
홍석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이 총총 박힌 밤하늘. 그 아래에 펼쳐진 평원. 저 멀리 숲이 하나 보이긴 하지만….
“평화로운 던전이구먼.”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마저 산뜻하기 짝이 없다.
홍석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D등급이 맞긴 하는가 보군. 이런 느긋함은 C등급만 되어도 느낄 수 없거든.”
하늘만 보면 밤이지만 던전 안은 대낮처럼 환하다.
그 위화감만 아니었다면 인적 드문 어딘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발목을 스치는 풀과 사이사이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 홍석영은 꽃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저 꽃들을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거라는 데에 자신의 창을 걸 수 있었다.
다시 하늘을 보았다. 달은 없다. 당연하지만 태양도 없다. 던전 안을 가득 채우는 빛이 어디서 오는 건지도 알 수 없고, 하늘에 있는 별마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별이 가득한 하늘 자체는 세상 어느 던전을 가도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특징이다. 대마법사 몇 명이 비밀을 밝혀 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누군가는 던전 내부의 환영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홍석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원에는 감각에 걸리는 몬스터가 없었다.
“몬스터는 어디서 발견되었나?”
“저 숲에서요.”
손바닥만 한 곤충 타입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다기에는 너무 넓은 던전이다.
“개체 수는?”
“다 파악한 건 아니지만 많지는 않아요.”
“흠…. 그럼 알은? 곤충 타입이니까 어디서 알을 깠을 수도 있어.”
“아뇨, 그것도….”
이미선은 고개를 저었다.
“얘들아, 알 본 적 있어?”
“아뇨. 본 적 없습니다, 마스터.”
“마지막으로 들어갔을 때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홍석영은 턱을 매만졌다.
“그럼 먹이는? 개체 수가 많지 않다고는 해도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냐.”
다선의 헌터들은 눈빛을 주고받다가 입을 열었다.
“그, 저희 길드에서는 던전 탐사 매뉴얼이 있습니다.”
“알아. 그거 누가 만들어 줬을 거라 생각하나?”
“어, 아, 넵! 실례했습니다. 매뉴얼에 따라서 몬스터의 습성을 조사하였습니다. 파악한 바로는 먼저 식성은 초식이고….”
“초식?”
대부분의 몬스터는 육식이다. 초식 몬스터가 없지는 않지만, 워낙 드물다 보니 말이 날카롭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선의 헌터는 잠깐 움찔하긴 했지만 설명을 계속했다.
“나뭇잎을 갉아 먹는 건 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져간 고기에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호기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먹진 않더군요.”
헌터들은 차례로 몬스터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말했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도 있습니다.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 공격은 하지 않았지만요. 눈앞에서 동족을 죽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체액도 인체에 무해합니다. 곤충형 몬스터에게서 자주 보이는 것처럼 산성을 띠지도 않고요.”
“외피도 단단하지 않아서 손쉽게 가를 수 있습니다.”
“아, 참고로 피에 반응하지도 않았습니다.”
홍석영이 헌터들의 보고를 가만히 듣다가 이미선을 보았다. 이미선은 어쩐지 뿌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본 홍석영은 입술을 실룩였다.
“뭐예요, 그 표정은? 얼른 칭찬하라고요. 꾸물거리지 말고.”
“해 달라니까 하기 싫어지는데.”
“하지만 미흡한 부분이 없잖아요?”
“…….”
“인정하세요, 홍 헌터님.”
“아, 숲에 도착했군. 자, 우리 이미선 마스터의 헌터들이 얼마나 정확한지 살펴볼까?”
“인정하세요! 우리 애들이 완벽하다고!”
게이트부터 평원을 지나올 때까지만 해도 건조하고 서늘한 날씨였다. 그러나 숲으로 들어오는 순간 덥고 습한 기후로 바뀌었다.
요란스럽게 숲으로 진입했음에도 헌터들의 보고대로 몬스터들은 인간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잠깐 기웃거리다가도 홍석영이 다가가자 빠르게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스스슥….
이미선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우,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이 던전에는 절대 안 들어왔어요.”
“벌레 싫어해?”
“진짜 싫어요!!”
이미선은 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몬스터를 발견하곤 고함을 내질렀다.
홍석영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몬스터는 이런 소음에도 공격성을 내보이지 않는다.
D등급. 평화로움. 방주에서는 왜 이 던전을 신경 썼을까?
“전 저보다 다리 많이 달린 것들은 다 싫어요!”
어린아이가 제대로 듣고 기록했을까? 혹시 오염된 정보는 아닐까?
“그런데 저걸 보세요! 다리가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많잖아요! 심지어 크기도 커!”
“커 봤자 손바닥만 하잖아.”
“전 새끼손톱만 한 벌레도 싫어요!”
“흐흠.”
홍석영은 마침 지나가는 몬스터 한 마리를 창으로 내리찍었다.
콰직.
밝은 녹색의 체액이 튀어나왔다. 창을 살짝 비틀며 들어 올리자 꿰뚫린 몬스터의 사체가 따라 올라왔다.
홍석영은 그걸 그대로 이미선에게 내밀었다.
“훠이.”
“꺄아아악!!! 저리 치워요!!! 치우라고요!!!”
이런 면에서는 곱게 자란 아가씨라니까.
하지만 이미선 주위에 있는 헌터들도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안 좋아할 수도 있지.
홍석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몬스터 사체가 떨어지면서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보기에도 손바닥만 한 지네가 배를 까뒤집고 죽어 있는 모양새가 좋지 못했다.
“알았네. 빨리 확인하고 나가자고. 던전 핵은 어느 방향에 있지? 아까 보고서 보니 노출되어 있다고 하던데.”
“숲 중앙에 있습니다. 땅에 파묻혀 있지도 않고… 접근도 쉽습니다. 핵을 지키는 몬스터도 없고요.”
“정말 딱 D등급다운 던전이군.”
크기만 넓다는 걸 빼면 말이다.
홍석영은 던전 핵으로 가면서 혹시나 헌터들이 놓친 것들이 있을까 싶어 꼼꼼하게 확인했다. 아무리 낮은 등급이라고 해도 던전 안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그러나 그 매서운 눈에도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핵에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몬스터가 늘었, 꺅!”
“하이고, 헌터는 무릇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법이거늘.”
“약점 없는 헌터는 없다고요!”
가끔 나무에서 툭 떨어지는 지네를 방지하기 위해 헌터 하나가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이미선의 머리 위로 씌워 주었다.
홍석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던전 핵에 가까워지자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름답게 던전 핵은 던전을 유지하는 동력원이다. 핵을 부수면 던전도 무너지기 때문에, 던전 공략은 핵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던전에서 발견되는 자원 때문에 일부러 공략하지 않고 놔두는 던전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핵의 위치는 미리 알아놔야 한다. 여차하면 닫을 수 있게.
던전의 유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핵은 꼭꼭 숨어 있기 마련이다. 몬스터들도 핵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지 대개 핵을 중심으로 둥지를 틀었다. 이 던전도 핵으로 다가갈수록 몬스터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 역시 아마 그런 본능 때문이겠지.
“잠깐.”
“…네?”
홍석영은 일행을 멈춰 세우고 눈을 가늘게 떴다.
짙은 풀 냄새와 윙윙거리는 던전 핵의 공명음. 수풀을 흔드는 지네 기어가는 소리.
그 사이에서 풍겨 나오는… 썩은 내.
홍석영은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헌터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수신호였다.
조용히.
기척을 없애고.
따라와.
이미선과 헌터들은 아무 질문 없이 홍석영을 따랐다. 던전 내에서 홍석영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홍석영이 맡았던 냄새는 곧 다른 사람들도 맡을 수 있었다.
홍석영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던전 핵이 있는 방향에서 구역질 나는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허.”
그리고 그 정체가 드러났을 때, 홍석영은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나뭇가지와 수풀이 엉망으로 꺾여 있다. 마른 피가 사방에 튀어 있다. 바닥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추리력까지는 필요도 없다. 누군가가 끌려가다가 반항한 흔적이다.
핏자국은 던전 핵까지 이어졌다. 던전 게이트처럼 반짝거리는 빛이 허공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홍석영은 던전 핵을 잠깐 바라보다가 그 아래를 보았다.
던전 핵 바로 아래.
시체가 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젊은 남성이다.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게 언제지?”
“나, 나흘 전입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이지만, 그땐 이런 거 없었지?”
“없었습니다!”
홍석영은 주위에 뿌려진 핏자국을 발끝으로 문질렀다. 창끝으로 시체도 건드려 보았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홍석영은 인상을 썼다.
“요놈들 식성 파악할 때… 신선한 고기를 던져 줬나?”
“몬스터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고기에 반응을 안 한 이유가 있었어.”
홍석영은 창으로 조심스럽게 시체를 뒤집었다. 보통은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뒤집힌 시체는 마침내 얼굴을 보였다. 채 감지 못한 두 눈과 벌린 입이 홍석영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홍석영은 시체의 얼굴을 보는 대신, 몸통을 보았다.
“윽….”
이미선이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이것들, 썩은 고기를 좋아하는군.”
내장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홍석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시체의 속을 파먹고 있는 몬스터들을 떼어 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