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51)
대마법사의 제자의 제자(2)
“그럼 마력의 형상화에 있어서는 기존의 방식보다는 이쪽이 더 효율이 좋다는 거죠?”
“그렇게 물어도 전 모릅니다.”
“아, 그런 게 어딨어요!”
“전 마법사 아니라니까요. 전 이론만 아는 거지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몰라요. 효율이 좋으니까 이전의 방법 대신 이게 쓰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흐으음. 좋아요. 그러면 다음 질문!”
김채민은 미래에서 온 직장 동료를 동전 넣으면 마법 이론을 툭 내뱉는 뽑기 기계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이상하지. 분명 그간 김채민 하면 마법사치고는 정상적인 시각, 대마법사치고는 소탈한 성격을 지녔다는 이미지가 컸는데.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정말….
홍석영은 오히려 좋게 생각하라고 나한테 말했다.
‘어쭙잖게 이해하니 뭐니 하면서 그간 고생이 많았겠다고 위로의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이쪽이 낫지 않은가?’
‘…그렇습니까?’
‘그래. 자네라면 내가 아무 전조도 없이 대뜸 미래에서 왔다고 하면 바로 믿을 것 같나?’
나는 제법 진지하게 고민한 후 대답했다.
‘수상하기 짝이 없으니 죽입시다.’
‘그렇지?’
‘네.’
‘그 상황에서 자네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날 받아들여. 그럼 내가 뭐라고 할 것 같나?’
‘수상하기 짝이 없으니 죽이자?’
‘그런 거네.’
‘이해했습니다.’
하긴, 김채민이 되지도 않는 이해의 말을 던지며 미래인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지금 김채민이… 나를 쉽게 받아들인 게 아니면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긴 한데,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여기 이거 한 번 더 설명해 주겠어요? 왜 마력이 그렇게 굴절되는 건데요? 제가 알기로는….”
뭐라고 해야 하지.
미래고 뭐고 간에 그런 건 뒷전이고, 내게서 뽑아내고 있는 마법 이론이 더 중요한 것 같은.
물론 김채민도 처음에는 내 말을 아주 믿지는 않았다. 본인이 말하기도 했듯이, 우리가 딱히 그런 허황된 말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믿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믿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거짓말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이지.
그런 조심스러운 기색은 내가 설명한 이론을 검증해 본 뒤로 돌변했다.
그래, 생각해 보면 김채민은 내가 계약서에 마법 이론을 올린 순간부터 입장을 분명히 하긴 했다….
홍석영의 말대로 아무 이유 없이 너그럽게 구는 것보다는 이유가 확실한 편이 나도 낫긴 한데.
하지만 말이다.
“흐흥, 그렇구나. 그렇게 되면 이 현상도 설명이 되겠다.”
이건, 이것대로 조금 기분이….
“실장님, 혹시 이 부분에 대한 이론도 정리된 게 있었나요? 미래엔?”
“어떤 부분이요?”
“마력의 굴절이요. 지금은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거든요.”
“그건… 뭐였더라, 있긴 했었는데요.”
박서현이 한번 지나가면서 언급한 적이 있어 따로 찾아본 기억이 있다.
박서현은 딱히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박서현이 누굴 가르칠 만한 인상은 아니잖은가. 어렸을 때 그대로 컸다면 모를까. 실제로도 잘 가르치진 않았다. 나 정도 되니까 어떻게 따라갔지, 아카데미 교사였으면 진작 강의 평가에서 안 좋은 평을 잔뜩 받고 권고사직 당했을 거다.
그래도 박서현은 성실하긴 했다. 비록 설명은 부실했다마는 내가 수업에 열의를 보이면 열심히 해 보려고 하긴 했다.
‘그, 그거… 논문을….’
자긴 설명을 잘할 자신이 없으니 논문을 찾아보라며 마법 학회 아이디를 빌려줄 정도였으니까.
“파키스탄 마법사가 정리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력의 굴절과 반사각이요.”
“무슨 내용인지 아시죠?”
“대략적인 건….”
슬쩍 시계를 보았다. 오전 내내 붙잡혀 있었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결국 못 참고 물어봤다.
“김 선생님.”
“그리고 또… 네?”
“제가, 놀랍지는 않습니까?”
“…….”
김채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우 실장님은 본인에 대한 자신감이 굉장하시네요.”
“네?”
“물론 실장님은 놀라운 사람이죠. 사실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모든 인간이 기적 같은 존재랍니다. 비록 살다 보면 짐승만도 못한 놈들도 많이 만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요!”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김채민이 실실 웃기 시작했다.
“네, 그런 뜻이 아니면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제가 미래에서 왔다고 한 거요. 김 선생님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요.”
“제가 신경을 안 쓴다고요?”
웃고 있던 김채민은 내 말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당연히 신경 쓰고 있죠!”
“…그렇습니까?”
“신경 안 쓰면 제가 이러고 있겠어요?”
김채민은 상담실 테이블을 가리켰다. 서한성이 부순 뒤 같은 모델로 교체된 테이블 위에는 종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룬이나 마법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수식들이 잔뜩 적혀 있는 종이다.
나는 김채민을 보았다. 김채민은 어이없어하며 코웃음 쳤다.
“엄청 신경 쓰고 있다고요.”
“…네,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계약서를 작성한 이후로 마법 이론만 묻길래 신경을 안 쓰시나 했네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김채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래에서 온 직장 동료 만나기가 어디 쉬운 줄 아세요?”
“그게 쉬운 줄 아냐는 말로 설명이 되는 문제였습니까….”
“제 말이 그 말이에요!”
김채민은 날 향해 삿대질을 했다.
“미래요? 당연히 놀라죠! 누가 안 놀라냐고요!”
내가 괜한 말을 꺼냈군. 그냥 마법 이론이나 계속 설명해 줄걸.
김채민은 왈칵 짜증을 냈다.
“네, 죄송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짜증이 났는지 김채민 주위의 마력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아니, 그냥 정말 마법에 정신 팔려서 그 부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궁금했던 거지 이런 식으로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싶진 않았다. 학생 상담도 아니고, 교사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언성이 높아져 테이블을 부숴 먹었다고 이미선한테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서한성이 테이블을 부쉈다고 하자 애를 안 말리고 뭐 했냐는 눈총을 잔뜩 받았다. 젠장, 원래라면 내가 이미선 입장이었는데. 앞으로 내가 또 예산 결제하는 위치가 된다면 좀 더 친절하게 굴어야지.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어휴, 진짜.”
다행히 김채민은 불안정한 사춘기 소년이 아니라, 그런 시절은 십 년도 전에 다 끝낸 성인이었다.
김채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홍 선생님이 옆에 안 있고, 이런….”
김채민은 테이블 위의 종이를 대충 가리켰다.
“증거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이런 부분에서까지 홍석영의 이름값이 통하는 건가.
“하지만 실장님이 설명해 주는 이론은 진짜니까요.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 연구할 수준도 아니고, 마법사라 하더라도 하루 이틀 연구해서 내뱉을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에요.”
김채민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덧붙였다.
“게다가 분야도 너무 제각각이라서요. 하나만 파고들어도 십 년은 족히 걸릴 이론들이에요. 이런 걸 다수 알고 있다? 실장님이 노아 미셀을 뛰어넘는 천재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냉정한 평가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한 거예요.”
“제가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요?”
“네.”
김채민은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 힘이 실린 어조를 유지하며 이어 말했다.
“근데 그게 저한테 무슨 영향을 주는데요?”
“…네?”
“미래를 안다고 모든 일이 뚝딱 해결된다면… 홍 선생님이나 우 실장님이 저한테 굳이, 굳이 미래에 대해 알려 주려고 했을까요?”
“…….”
“십구 년 뒤에 전 세계가 멸망한다? 방주가 저지른 짓이라고요?”
김채민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방주 잡으려고 이 짓거리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나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채민은 내 표정을 보더니 다시 웃었다. 방금과 같은 코웃음이 아니라 조금 힘 빠진 미소였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그럼 거기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게 치트키 같은 건 아니잖아요.”
그랬더라면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않았을 거다.
“아니, 세상에! 미래에는 세상이 멸망한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김채민은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었다.
“이렇게 덜덜 떤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
“그러니까 전 제가 제일 잘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요.”
김채민은 또다시 웃었다. 두 눈이 반짝인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눈빛이다.
“그리고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것에도요.”
“…그렇군요.”
“참고로 마법이 아니에요.”
예상치 못한 말에 김채민을 보자, 젊은 대마법사는 눈을 찡긋거렸다.
“바로 현재.”
* * *
김채민의 말은 명쾌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고. 아니, 김채민이 옳다.
미래를 아는 게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눈에 확 띄는 이득을 얻지도 못했다. 애초에 지금은 내가 아는 미래와 완전히 달라지기도 했고.
그게 조금 더 좋은 방향이길 바랄 뿐이지.
차라리 로또 번호라도 외워 둘 걸 그랬다. 때론 사람은 그런 눈에 띄는 보상이 필요한 법이니까.
어쨌든 그러다 보니 나도 김채민과 같은 입장이다.
현재에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일….
“그런데 전 김 선생님의 선생님이 아닌데요.”
김채민 가르치기도 할 수 있는 일에 속하는가? 그렇기야 하겠지….
김채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소리 하세요? 제 스승님이잖아요.”
이래서 계약서에서 그 항목을 빼 버리려고 했던 거였는데. 결국 홍석영의 말에 넘어가서 넣긴 했지만.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세요. 뭐라고 하는 인간이 있으면 매장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이 이 제자에게는 있답니다.”
“그거 저를 매장시키겠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어떻게 그런 섭섭한 말을 할 수 있어요?”
김채민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반문했다. 그러다가 여느 때처럼 깔깔 웃었다.
“하지만 이런 건 스승님의 가르침이 아니었으면 못 했을 거라고요.”
김채민은 손뼉을 두 번 쳤다. 짝, 짝. 손바닥 사이에서 마력이 반짝반짝 빛났다.
“지난번에 서현이가 마력 제어에 실패했던 일 기억나요?”
펜션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를 말하는 거다. 박서현이 펜션을 그림자에 전부 삼켜 버렸던 일.
“전 그게 서현이 속성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니라는 말입니까?”
“아닌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김채민은 빈틈없이 붙였던 손바닥을 뗐다. 천천히 벌어지는 손바닥 사이에서는 꽃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스승님의 스승께서는 말이죠.”
별 희한한 호칭이 나왔다. 거기에 반박할 새도 없이 김채민은 말을 이어 나갔다.
“어린 시절 본능적으로 시전한 마법에 체계를 부여했어요.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시켰다는 뜻이죠.”
“…….”
“스승님께서 지난 며칠 동안 저에게 입 아프게 설명해 줬던 그거요.”
꽃잎은 테이블을 가득 채우다 못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발치까지 쌓이기 시작했지만, 김채민은 마력을 거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걸 제 마법에 접목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됩니까?”
“보여 줄게요.”
장미 향.
장미 향이 난다. 김채민은 싱긋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