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52)
대마법사의 제자의 제자(3)
“…어?”
박서현은 기숙사 침대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몸 전체를 뒤흔드는 마력 파동이 느껴졌다.
아니, 따지면 그렇게 크진 않았다. 불었는지 안 불었는지 알아차리기 힘든 연풍과도 같이 미약한 파동이었다. 그러나 박서현은 심각한 얼굴이 되어 창밖을 살폈다.
평온한 오후에 인위적인 마력 파동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없진 않지. 운이 나쁘면 길을 걷다가도 마주하게 되는 게 던전 브레이크다. 던전 브레이크에 잘못 휘말리면 아무리 마법사라 하더라도 죽는 건 마찬가지다.
죽기 싫은 마법사들은 본인이 살기 위해서라도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든다. 박서현도 그런 마법사들의 필사적인 마법을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던전 브레이크 때문이 아닌가?
이런 인위적인 마력 파동이 평화로운 학교에서 느껴진다고?
미약하다고는 해도 한참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 진동이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아직 실력은 별 볼 일 없다지만 이쪽도 엄연한 마법사이다. 제대로 된 영역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알뜰살뜰 단장한 기숙사 방이 흔들릴 정도라니?
“…….”
한 번 더 몸이 떨린다. 이번에는 좀 더 선명한 마력 파동이다.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타인의 마력이 공기 중에 떠돈다. 태풍이 오기 전처럼 잔잔하지만 오싹오싹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게 정말 존재하는 바람인가? 아니면 영역을 침범당한 마법사가 느끼는 감각인가?
우우웅.
“……!!”
침대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울렸다. 박서현은 화들짝 놀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방금 그거 뭐였어?]최진우의 메시지.
박서현은 이를 악물었다. 꽉 다물린 이 사이에서 까드득, 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법사로서의 자존심은 제자에게 약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열아홉 살의 소녀는 친구에게 고민 정도는 털어놓아도 괜찮지 않냐고 말하고 있었다.
[너도 느꼈지?] [서현아?] [박서현?]제자를 안심시키는 일은 스승으로서의 의무.
…겁먹은 친구를 달래는 일에 스승과 제자가 어쩌고 하면서 따지는 것도 이상하다. 그런 걸 따질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할아버지의 마법을 가르쳐 줄 거라고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서현은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아마 채민쌤 마력인 것 같아]최진우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채민쌤이라고?]박서현은 다시 창밖을 살폈다. 아직도 잔잔히 대기 중의 마력이 떨리고 있다.
파동이 남아 있다면 추적은 어렵지 않다. 무엇이 원인이든 간에 숨길 의지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박서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학교 건물이다. 마법사가 마력에 더 민감하다고는 해도 학교에 남아 있는 선생님들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코끝에 옅은 풀냄새가 느껴진다.
그거면 됐다. 다른 증거는 필요하지 않았다.
[채민쌤 마력은 너도 많이 느껴봤잖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해봐. 느낄 수 있을 거야.]최진우는 금방 김채민의 마력을 알아보았다.
[진짜네] [채민쌤 마력이다. 채민쌤이 무슨 마법이라도 썼나?] [주위에 뭐 심고 다닐 때는 우리한테 항상 말해줬는데]최진우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박서현은 최진우와 몇 마디 더 얘길 하다가 더 이상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요 며칠 동안 오후에 있는 김채민의 마법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초조한 얼굴로 겨우 얼굴만 내민 김채민은 자습을 하라고 시키거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라며 사라지곤 했다.
어차피 오후 수업은 교사와 학생들의 편의에 맞추어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박서현도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전투 훈련을 하거나 다선 헌터들의 몬스터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급한 일이 있어 보이던 김채민이 상담실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한 번이 아니라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상담실에는 우 선생님이 계시잖아.’
박서현도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채민 쌤이 우 선생님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말도 들었고….’
대마법사가 마법사도 아닌 사람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말이 어디 잊기 쉬운 일인가.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무슨 사정일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박서현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의 제자가 될 것 같진 않았다…. 실제로도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누군가의 제자로 있었던 적은 없었다.
우 선생님이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믿긴 한다마는 반대로 우희재가 홍석영의 이름을 들먹이며 김채민에게 제자가 되라고 종용했다면 차라리 있을 법한 일이라고 여겼을 거다. 하지만 분명 김채민이 자기가 제자가 되겠다고 나섰었고….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우희재는 마법사도 아닌데 룬에 능숙했다. 거기에 기이할 정도로 욕심이 없었다.
명동에서의 일을 생각해 봐라. 우희재는 처음 만난 고등학생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룬을 가져다주었다. 나중에 홍석영이 너희들만 알고 있으라고, 다른 데 가서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긴 했지만 마력 가림막 룬이 어디 평범한 물건인가? 그렇게 쉽게 알려 주고 다닐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사실 우 선생님… 마법사인가?’
박서현은 무심코 떠올린 생각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교장 선생님과 가끔 대련을 할 정도이니 전투 실력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마법사라고 싸움을 못하라는 법은 없다. 자신과 최진우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간단한 무기 사용법 정도는 배우고 있지 않은가.
보통 마법사는 마법 연습할 시간도 부족해서 거기까지 하진 않지만 박서현은 학교의 수업 방식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마법사라도 몬스터에게 맞으면 죽는 건 똑같으니까.
그래. 그러면 다 이해가 된다.
불이 나오는 검? 그런 게 없지는 않겠지만 마법 사용을 숨기기 위해 검을 위장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
김채민이 오기 전에 우희재는 룬 수업을 했었다. 수업 중 은근히 드러나는 마법 지식이나, 그래, 마법 속성 판별법도 있었지.
전부 우희재가 마법사라면 설명이 되는 일이었다!
김채민 선생님은 그걸 알고서 우희재에게 제자로 받아 달라고 한 것이다!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박서현은 벌떡 일어났다.
그림자를 사용할까? 결국 들키긴 했지만 처음에는 확실히 속였잖아. 조금 더 조심해서 접근하면… 안 되려나?
“…….”
간간이 느껴지던 마력 파동이 드디어 멈췄다. 침대에 누워 있느라 엉망이 된 머리카락이 눈을 가린다. 박서현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다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날, 대마법사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으면서.”
* * *
“……어때요?”
김채민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파도처럼 몰아치던 김채민의 마력은 드디어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잔향은 여전히 주위에 맴돌고 있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것같이 촉촉한 흙냄새, 싱그러운 풀냄새, 그 위를 가볍게 맴도는 풍부한 장미 향.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이게 박서현의 이론을 접목한 거라고요?”
“네! 영역 선포를 마법과 결합한 건데, 효과가 좋죠?”
“…이건 좋다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닌데요.”
“그래요?”
김채민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히죽거리며 웃었다. 본인도 방금 펼친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어 나오는 웃음이었다.
“…이 정도면 고유 마법 아닙니까?”
“스승님께서 보기에도 그래요?”
“그 소리 좀 제발 그만해 달라니까요….”
내가 머리를 부여잡든 말든 김채민은 깔깔 웃어 대기만 했다.
김채민은 다시 마력을 운용했다. 아까 내게 보여 준 것보다는 좀 더 작은 크기의 마법이 펼쳐졌다. 장미 넝쿨이 김채민의 주위로 피어오른다. 장미는 작은 상담실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을 뒤덮었다. 평소의 김채민의 마법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골자부터 완전히 다른 마법이었다. 순전히 김채민의 마법이 식물과 관련되어 있어서 이런 모양인 거지. 박서현은 그림자가 모든 걸 삼키는 공간을 만들어 냈고, 만약 최진우가 이걸 익힌다면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니까 영역이다.
김채민이 절대자로 있을 수 있는 영역.
김채민은 싱긋 웃으며 마법을 풀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마력이 모두 가라앉았다.
“응용력이 괜찮은 마법사라면 고유 마법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라고요.”
“그만큼 난도도 높기는 해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김 선생님은 금방 했잖아요?”
“제가 그만큼 대단한 마법사라고는 생각 안 하세요?”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잘났냐고 뭐라고 하고 싶은데 김채민은 정말 잘났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재밌다! 또 이런 거 없어요? 대마법사께서 만드신 또 다른 마법? 이론?”
없지는 않지만….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이요?”
“지금 제가 말하는 마법이나 이론을 정리해 줄 수 있겠습니까?”
김채민은 눈을 깜빡였다.
“저는 이론만 알지 원리 자체를 전부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설명하는 걸 보면 이해 잘 하고 계시던데요.”
“그거랑은 다른 문제죠.”
수학 문제를 풀 순 있지만 수식을 증명하는 건 또 다른 문제 아닌가.
나는 눈을 찌푸렸다.
“룬도 그렇지만 마법도 양날의 검입니다만, 사실 저는… 헌터의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했습니다.”
“헌터의 수준?”
김채민은 내 말을 곱씹다가 금방 의미를 이해했다.
“던전이 다 같이 터진다고 했죠? 그래서 그런 거예요?”
“네. 그 전에 막을 수 있으면 좋지만, 그것도 대비해 둬야죠. 마력 가림막 룬도 원래는 그 일환이었습니다. 생존율 높이려고요.”
사실 그에 대한 가장 큰 결실은 김채민의 생존이 아닐까. 아직 완전히 방심할 순 없지만 최소한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세이렌은 이제 없으니까.
김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 측정기? 라고 했죠. 던전 안정도를 측정하는 거요. 그걸 만든 사람도 여기 있으니까….”
“그리고 노아 미셀보다 영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마법사인 김 선생님의 역할이 큽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한 게 아닌데요.”
산드라 갬블도 똑같은 말을 했다.
무단으로 막 가져가서 쓰는 것보다야 낫다는 건 아니지만… 이걸 양심적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고지식하다고 해야 할지….
“그냥 해 달라고 하면 안 되겠죠?”
“마법사라고 불러 주기도 싫은 자존심 없는 거지새끼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 아니에요.”
김채민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곧 망설이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실장님이 뭘 말하려는지는 알겠어요. 양날의 검이라고 한 것도요. 이거 발표하면 노아 미셀이 사용하게 되는 것 때문에 그러죠?”
노아 미셀은 이미 충분히 강력한 마법사이다. 헌터들의 생존율을 높이려는 내 의도는 노아 미셀에게도 유용한 지식이 될 수 있다. 아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향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고…. 골치 아프네요. 그냥 서현이 이름으로 발표해 버릴까요?”
“미쳤습니까?”
“그렇죠?”
“네.”
“…….”
“…….”
“그래도 제자한테 미쳤다고 하는 건 좀.”
김채민은 입술을 비죽거렸다.
그러나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어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