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53)
대마법사의 제자의 제자(4)
박서현이 이상하다.
이… 학교에는 다소 예민한 아이들이 많다. 아니, 걔넬 탓하는 게 아니라. 원체 감정적으로 변화를 많이 겪을 시기이기도 한데 이래저래 인생이 고달팠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홍석영이 정말 애들을 잘 데려왔지. 어지간한 어른들보다 더 굴곡진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나쁜 마음 먹지 않고, 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나. 서한성이나 오현욱도 그렇고, 강태우도 여동생의 일 이후로는 한결 안정되어서 부드럽게 웃고 다닌다. 주로 강태우와 수업을 함께 듣는 유지은이 왜 그렇게 실실 웃고 다니냐고 의아해할 정도였다.
다른 아이들의 성장 배경이 다소 험난해서 그렇지, 박서현도 평범한 가정에서 온화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여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뭐. 사람 생각하기 나름이지 않은가.
하지만 박서현이 예민한 성정을 가진 것도 맞고, 그 예민함이 해소되지 못한 채 극에 달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도 알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일 때문에 그렇게 성장하는지 이유조차 분명하다.
그래서 나름대로 박서현에게는 항상 신경 쓰고 있었다. 김채민에게도 박서현에 대해 따로 일러뒀을 만큼.
대단한 주의를 준 건 아니고 그냥….
‘서현이요? 서현이가 왜요?’
‘명동에서 있었던 일이 충격이 큰 모양입니다.’
시범고 학생 다섯이서 민간인을 구한 격이라 그 일은 한동안 화자가 되긴 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내 존재에 대한 목격담은 없었다. 홍석영이 손을 썼던 덕분이다.
아마 나중에라도 그때의 정체불명의 헌터 이야기가 나온다면 아이들 실습에 따라 나온 홍석영의 제자라는 이야기도 뒤늦게 나올 것이다.
어쨌든 명동에서는 학생들 말고도 다른 생존자들은 있었다. 뒤늦게 구조된 이들도 많았고.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 여러모로 후폭풍도 거셌다.
그래서 김채민도 바로 알아들었다.
‘애들 던전 공략 해 본 적 없었죠?’
2학년이 끝날 때까지도 제대로 던전을 공략해 본 적이 없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그것도 슬슬 시작하겠지.
김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받을 만하죠.’
박서현이 받은 충격은 사실 순전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내 상황이 이렇게 풀릴 줄 알았더라면 애들 데리고 그런 장난질은 안 쳤을 텐데. 아니, 필요가 없었던 일은 아니지만 좀 더 온건한 방법을 찾았을 거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풀릴지 모르는 법이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아니, 명동에서의 일이 원인이긴 하지만….’
나는 박서현의 성정에 대해 설명했다. 완벽주의자. 실패를 무서워함. 김채민은 한참 내 설명을 듣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로서는 나쁘지 않네요.’
‘…나쁘지 않다고요?’
‘마법사로서는요. 그 성격을 유지하면 본인을 갉아먹게 되니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안 좋겠지만요.’
어쨌든 김채민은 알겠다며 박서현을 잘 다뤄보겠다고 했다.
‘그런 애들은 많이 봤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마법사의 호언장담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믿는 것 말곤 도리가 없었다.
김채민 덕분인지, 아니면 최진우와 붙여 놓은 게 상성이 좋았던 덕분인지 박서현이 명동 직후처럼 불안정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특히 셈 불룸의 일로 난리가 났을 때조차 흔들림 없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달칵.
김채민은 노크도 없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품에는 공책이나 종이를 잔뜩 끼운 파일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김채민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김채민이 문을 닫자마자 소리 차단 마법을 거는 걸 본 뒤에야 나는 입을 열었다.
“……박서현 학생이.”
“…요즘 서현이가.”
동시에 김채민도 말했다.
둘 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도 눈치챘습니까?”
“그걸 어떻게 몰라요? 심지어 오늘은 진우도 하다 하다 물어보던데요.”
“최진우도 이유를 모른답니까? 둘이 친하잖아요.”
“물어봤는데, 자기도 알았으면 저한테 물어보겠냐고 하던데요.”
박서현이 이상하다.
예민한 사춘기와 다사다난한 어린 시절, 그리고 각성자의 튼튼한 육체의 조합으로 양성고에서는 이따금 별난 짓을 벌이는 학생이 나오기 마련이다.
작은 유지은을 봐라. 몸을 정화해야 하느니 어쩌니 하는 수상한 전단지를 들고 오지 않았는가. 한은영은 아직도 오빠만 보면 물에 젖은 고양이처럼 파르르 떨었고, 다른 애들이라고 얌전히 말을 잘 듣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박서현 차례라고 해도 이상하진 않다….
“서현이한테 물어봤어요? 걔도 선생님한테 상담받고 싶어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진작 찾아왔겠죠….”
“서현이가 부끄럼이 많잖아요.”
“…….”
많았나?
나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혹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고 물어봤는데 도망가던데요.”
“흐음…. 뭘까요?”
“글쎄요.”
김채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민이 있냐 물어봐도 고개만 젓고선 도망가 버린다. 내가 신경을 안 쓴다고 생각하면 슬쩍 돌아와서 내 주위를 맴돈다.
어린애가 하는 짓이고, 내가 지은 죄도 있으니 어지간하면 가만히 놔두려고 했지만, 슬슬 내 인내심도 닳고 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도 헌터라고. 특히 요 근래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다. 지금 박서현이 학생이라고는 하나 무시하고 가만히 놔둘 정도로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런 점을 들어 난감해하자 김채민의 표정도 조금 더 심각해졌다.
“그렇긴 하겠네요…. 정 안 되면 제가 붙잡아 놓고 물어볼게요. 그래도 남자 선생님보다는 여자인 제가 물어보는 게 낫겠죠. 같은 마법사이기도 하고.”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김채민은 자신을 믿으라는 듯 가슴을 활짝 폈다.
그런 표정을 지어 봤자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아는 입장에서는 영… 믿음이 안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
김채민은 가지고 온 것들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종이에는 복잡한 마법 수식이 가득하다. 나는 질린 눈으로 그것들을 보았다.
“…어디까지 정리한 겁니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이거 좀 확인을 해 달라고 가져왔어요.”
“계속 말하지만 전 봐도….”
“스승님께서 아시는 내에서만 확인해 주세요.”
김채민은 강경하게 말했다.
나는 김채민이 건네주는 종이를 받았다. 벌써부터 눈이 뻑뻑해지는 기분이다.
“…학회 설립 건은 어떻습니까?”
“그거요. 생각보다 절차가 어렵지는 않은데….”
김채민은 말끝을 흐렸다.
헌터와 마법사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나중에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영향력을 얻기 위해 김채민의 이름으로 대마법사 박서현의 마법을 공개하자는 내 의견은 김채민 본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김채민은 다른 제안을 했다.
‘마력펜에 파로스의 이름을 쓴 것처럼 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단체의 이름을 빌리죠!’
다만 홍석영의 길드에는 마법사가 없었기 때문에 김채민은 학회 설립을 거론했었다.
유럽이니 아메리카 학회이니 하는 건 규모가 큰 것들이고, 대여섯 명으로 굴러가는 소규모 학회도 얼마든지 존재는 했다.
“대신 정식 마법사가 최소 세 명이 필요해요.”
“…정식 마법사라고 하면?”
“학회에 등록되어 있고, 던전이든 연구든 뭔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얻은 마법사요.”
“음.”
“애들이 졸업하고 자기 몫을 할 수 있게 되면 모를까 당장 뭘 하기에는 힘들고…. 길드 이름으로 할까요? 파로스?”
김채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계약서에도 그 조항 있었잖아요. 길드 미미의 이름으로 발표한다.”
“…그렇긴 하지만.”
“아. 그럼 서현이를 포함 못 시키는구나. 맞다, 그게 중요했었죠.”
김채민은 잠깐 고민하는 시늉을 하더니 말했다.
“학회 만드는 게 어려울 것 같아 생각해 본 게 있는데요.”
“뭡니까?”
“역시 마법 동아리를 만들어야겠어요.”
이 무슨 청춘 영화 같은 소리일까.
나는 눈을 깜빡이며 김채민을 보았다. 김채민은 어쩐지 더 신이 난 얼굴로 설명했다.
“승연이도 동아리 만들었잖아요? 이렇다 할 활동은 안 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자기들만의 계획은 있는 모양이고. 선생님이 고문이셨죠?”
“네…. 그런데요?”
“그러니 제가 고문으로 있는 마법 동아리를 만드는 거죠! 나중에 학회로 바꾸든 어쨌든 간에요. 동아리면 제가 주도하는 격이 되긴 하지만 서현이와 진우 이름도 올릴 수 있고, 서현이한테 마법을 가르치는 것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
동아리라는 단어에서 오는 귀여운 어감 때문에 당혹스러웠을 뿐이지, 학회나 동아리나 하는 역할이 달라지진 않았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너무 쉽게 허락해 주시는 거 아니에요?”
“전 김채민 선생님 이름으로 발표해도 되니까요?”
“제가 싫다고요!”
“네. 그러니까요.”
이걸로 이야기는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김채민은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사고 치기 전에 딱 저런 표정을 짓고서 날 봤었는데.
불안감이 엄습한다.
“…뭡니까?”
“저기, 스승님께서도 고문으로 오시는 건?”
“싫습니다.”
“재고해 보시는 건?”
“싫다고요.”
“하지만 실장님이 가르쳐 주신 거잖아요!”
“호칭 통일이나 하세요!!”
“스승님!!!”
“그거 말고요!!!”
김채민은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물러설 생각은 없다.
“거기서 전 빼세요. 그거 말고도 저는 할 일이 많으니까요.”
더 말하지 않고 딱 잘라 거절했다. 김채민은 가만히 나를 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못 먹는 감을 찔러 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안 할 걸 알면서도 굳이….
“알았어요, 알았어. 서현이랑 이야기해 보고, 동아리 얘기도 해 볼게요.”
“차라리 걔넬 선생님 제자로 받아들이는 건 어떻습니까?”
“…네?”
김채민의 목소리가 튀어 올랐다. 의외의 반응이다.
“지금도 솔직히 제자나 다름없지 않나요? 마법사 입학생을 다 제자로 받으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 둘은… 김 선생님도 꽤 깊이 가르치고 계시는데.”
“…그으, 선생님 보기에도 그렇죠?”
“네.”
“으으…….”
김채민은 뭐가 그리 고민인 건지 머리를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하루 이틀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알아서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놔두었다. 빨리 이거나 확인하고 김채민도 눈앞에서 치워 버려야지.
“아우….”
인간의 언어를 잃어버린 것처럼 고뇌하던 김채민은 쉬이 진정될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무시했다.
“…사람이 고민하면 왜냐고 물어봐 주면 안 될까요?”
“지엄하신 대마법사의 고민에 일개 인간이 끼어들 수나 있겠습니까.”
“하나뿐인 제자인데….”
“그런 말 할 거면 나가요.”
김채민은 내 말에 깔깔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똑똑똑.
똑똑.
똑똑.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일정한 울림. 아무것도 없던 복도에 갑자기 인기척이 생겼다. 마치 땅에서 솟은 것처럼.
익숙한 기척이다.
“서, 선생님.”
박서현.
김채민이 허둥거리며 테이블 위를 치웠다. 드디어 상담실을 올 결심이 섰나? 오늘 오후에도 그렇게 도망치더니.
“선, 생님. 계시죠?”
“박서현 학생?”
“저기, 그, 혹시.”
김채민이 수식이 적힌 종이를 갈무리하는 걸 보고서 문을 열어 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내가 문을 여는 동시에, 박서현이 말했다.
“제자, 로. 받아 주시면… 안 될까요?”
10초만, 아니, 3초만 더 있다가 문을 열걸.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