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54)
대마법사의 제자의 제자(5)
“서현이가 자넬 많이 따르는 것 같던데.”
홍석영은 의자에 기댄 채 태평하게 말했다.
“학생 수가 열 명도 안 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니 좋군.”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는 교장 선생의 모습도 참 보기가 좋습니다.”
“아이들의 열정이 어째서 막말인가?”
“자기 일 아니라고 하는 부분이요.”
홍석영은 껄껄 웃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한 적은 없는데.”
“선생님 일이라고 한 적도 없잖습니까.”
“모함이네. 원래 애들 입장에서 교장 선생님은 학교에서 뭐 하는지도 모르는 나이 든 선생님 아닌가?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지.”
홍석영은 보던 문서를 내게 넘겼다. 지리산 던전에 관한 보고서였다.
아직도 던전 진입 허가는 이미선에게 맡기고 있다. 홍석영이 직접 나서기에는 너무 이목이 쏠리고, 원래 이런 잡다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위치인 나는 반대로 주목을 받으면 안 되는 위치이다.
이미 몇 번이고 훑어본 보고서에는 별다른 게 없다. 차라리 별다른 점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저한테 그냥 다 맡겨 놓는 게 아니라요?”
“날이 풀리거든 학교에 있는 일이 줄어들 거야.”
“…던전?”
“지금도 미뤄 두고 있는 게 많아서.”
홍석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국내의 불법 각성자 조직 문제도 있어서. 방주와 겸해서 수사 가닥이 잡히는 모양인데, 슬슬 크게 한번 터질 거네.”
그렇게 말하면서 홍석영은 내 안색을 슬쩍 살폈다. 아마… 시기상으로 내가 있던 연구소를 추적하고 정리할 때가 되었을 거다. 원래 시간대와는 달리 연구소는 이미 도망치고 없지만, 그렇다고 있던 연구소장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미선이 찾지 못한 납치된 아이들도 남아 있고.
“바쁘겠군요.”
“그걸 떠나서도, 서현이는 원래 나한테 그리 의지하지 않았어.”
홍석영은 턱을 매만졌다.
“서현이는 어른을 썩 좋아하지 않아서… 아니, 그냥 사람들을 싫어했지. 그나마 혜은이와 지은이를 붙여 놔서 많이 나아진 거네.”
“그렇습니까? 그런 것치고는 잘 지내던데요.”
“많이 나아진 거라니까.”
“으음.”
미래의 마녀 박서현을 떠올리면 아주 못 믿을 말은 아니었다. 그게 아니어도 처음 어린 박서현을 만났던 명동에서도 나를 경계했었지….
아니, 그때 사무실에 쓰러져 있던 수상한 헌터는 경계해야 하는 게 맞기는 했다. 박서현만 날 경계한 것도 아니었고.
명동은 특수한 상황이었으니 제외해도 그간 지켜본 박서현의 성격이 썩 살가운 편이 아닌 건 나도 안다. 김채민을 따르는 건 대마법사라는 지위도 있었으니까. 김채민의 성격이 워낙 살가웠던 덕분도 있고.
“그래도 이젠 어른한테 도움을 구할 줄 아는 애가 됐어.”
“…이게 도움입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가르침을 청하는 게 그럼 뭐라고 생각하는가?”
홍석영은 오히려 내게 물었다. 그러면 나도 할 말은 없지….
“무작정 도움만 구하는 것은 당연히 안 좋지만, 때론 자길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네.”
홍석영은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러니 도움을 갈구하는 학생을 내치지 말게.”
“이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요. 전 마법사도 아닌데…. 김 선생님만으로도 힘들다고요.”
“어차피 대마법사 하나가 제자인데 둘이 되면 뭐 어떤가.”
“문제가 큽니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인데.”
한참을 웃던 홍석영은 아직 웃음기가 남아 있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래도 서현이는 서현이대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네한테 갔던 걸 테니.”
“…….”
“그러니 희재야. 너도 마냥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답해 주렴.”
* * *
쾅쾅쾅!
거세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김채민은 깔깔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젠 익숙하게 테이블에 널브러져 있는 마법 수식 종이를 정리하더니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쳐 둔 마법을 거두었다.
그도 그럴 게 벌써 며칠째인가.
홍석영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대답을 해 주라고 했지만….
“선생님!”
박서현은 강경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두 눈은 흔들림이 없다. 머리는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다. 새까만 머리카락을 하나로 높이 묶고, 앞머리도 눈이 보이게 잘 정리되어 있다.
쓸데없이 올곧은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홍석영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진지하게, 진지하게….
“절! 제자로!”
차라리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기라도 했으면 얘가 지금 힘든 시기구나, 하고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김채민이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것이 느껴진다. 대놓고 웃지 않는다는 점이 김채민도 괜찮은 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도대체 왜 내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김채민이 내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걸 엿들었으니… 그래. 백번 양보해서 대마법사가 무슨 이득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고 따지러 오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박서현이 나를 찾아온다면 그런 이유에서일 거로 예상했다. 교사의 권위를 살리면서 박서현을 이해시키고, 다른 곳으로 말이 번지지 않도록 주의시킬 수 있을 만한 이유를 생각해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하지만 그런 내 고생에도 불구하고 박서현은 예상치 못한 말을 던졌다. 도무지 저 사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온 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거야…!”
“그거야?”
“……다 이유가 있으시죠.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게요! 어차피 얘기할 사람도 없어요!”
물어 봤자 박서현은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은근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작은 머리통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젠장. 게다가 홍석영에게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답해 주라는 말을 들어서 무작정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다.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하자.”
박서현은 냉큼 상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평소 새침하게 굴던 애가 요 며칠 동안 목소리도 높이고 활기를 띠는 모습을 보니 좋다. 나와 관련된 일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안녕하세요, 채민 쌤!”
“응, 안녕.”
박서현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와 김채민을 보더니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가르쳐 주세요!”
“…뭘 배우고 싶은 거니?”
김채민은 생글생글 웃으며 박서현에게 물었다.
박서현은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뭘 결심한 건데? 불안하게.
“그건 모르지만 무엇이든 배우고 싶어요.”
“왜?”
“우 선생님이 절 대마법사로 만들어 준다고 했으니까요.”
“흐응. 우 쌤이 그런 말을 했어?”
“네.”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김채민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필사적으로 숨죽여 봤자 얼굴에서 다 티가 나는데.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보았다.
그동안 내가 물었을 때는 입을 꾹 다물었던 박서현이 김채민에게는 맥없이 털어놓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나오는 말이.
나오는 말이라는 게.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건가?
그래,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기는 했었지.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미래의 대마법사가 될 인재를 날로 먹겠다는 나의 발언이 이제야 벌을 받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 하지만 그렇게까지 대마법사가 되고 싶으면 내가 아니라 김채민의 제자가 되겠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진짜 뭘 어떻게 생각했길래 내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거냐고!
안 그래도 할 일이 많다. 당장 이틀 뒤에는 문제의 지리산 던전에 들어갈 거다. 우이록이 잔뜩 뿔이 난 걸 달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가. 얘가 얼른 커서 내가 집에 안 들어온다고 하면 기뻐할 나이가 되어야 하는데.
눈앞에 드밀어진 원하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약속하셨잖아요.”
“그렇다고 네가 내 제자가 되는 건 말이 안 되지.”
“왜요?”
“난 마법사가 아니니까.”
“하지만 채민 쌤은 우 쌤 제자가 된 거 아니에요?”
박서현은 잔뜩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부정하는 건 쉽다. 그날 네가 엿들었던 대화는 선생님들끼리 장난치다가 나온 말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그래. 그건 쉽지. 이런 박서현을 모른 척하고 던전에 들어갔다 나오면 박서현의 기세는 한풀 꺾일 것이다. 그 뒤로 며칠 더 박서현을 피하면 충분하겠지. 괜한 억지 부리지 말고 마법 연습이나 더 하라고 하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갈 박서현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쉬운 방법을 두고 입이 열리지 않는 건 역시 홍석영의 당부 때문일까.
아니, 그게 아니어도 그런 성의 없는 방법을 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비록 여전히 사고 과정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박서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승연처럼 실실 웃는 얼굴로 농담을 하고 다니면 그만 찔러보라고 타박이라도 줬을 텐데, 박서현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다.
“…….”
홍석영의 말이 아니더라도 저 얼굴을 보면 가볍게 입을 놀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김채민은 나에게 맡기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모른 척하고 있었다.
“난 마법사가 아니다.”
“…그럼 그렇다고 치고요. 하지만 절 제자로 받아 주세요.”
“안 돼.”
“왜요? 채민 쌤은 제자로 받아 줬잖아요!”
“넌 김 선생님이 아니니까.”
박서현은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그런 박서현을 가로막으며 마저 설명했다.
“김 선생님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냐. 여러 이유가 있어서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지식을 가르쳐 주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서 임시로 계약서를 썼을 뿐이지.”
“그게 스승과 제자….”
“일종의 기밀 유지를 위한 계약이야.”
“…….”
“그러니 나는 널 제자로 받을 수 없어. 난 널 가르칠 만한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
박서현은 부루퉁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서 얼굴이 훤히 드러나기 때문인가, 표정을 읽기가 쉬웠다. 마녀 박서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기 어려웠다는 것을 생각하면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홍석영의 아들 우희재가 사라진 것처럼 마녀 박서현도 이젠 없을 거다. 돼지 오현욱도 그럴 거고, 이미선의 사진에만 존재하는 어린 나이에 죽은 조카 이승연도 그럴 거다.
…이게 내가 만들어 낸 현실이다. 내가 구한 현실. 내가 구해야만 하는 현실.
“대신.”
나는 박서현에게 당근을 내밀었다.
“김채민 선생님이 동아리를 만들 거야.”
“…동아리요?”
“너와 최진우가 졸업한 뒤에는 소규모 마법 학회로 전환할 수도 있어. 그건 그때 가 봐야 알고.”
“새로운 마법 이론과 룬에 대해 연구할 계획이거든.”
“새로운….”
“3월부터는 나도 룬을 다시 가르쳐 줄 거야.”
“룬을요?!”
박서현은 깜짝 놀랐다.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널… 대마법사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 건 진심이야. 하지만 내가 아니어도 박서현, 너는 대마법사가 될 수 있어.”
“…….”
“널 제자로 받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네 선생님이 아니라는 것도 아냐.”
나는 아직도 제 능력에 자신감을 품지 못하는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네게 도움이 될 만한 건 전부 가르쳐 줄 거다.”
그게 마녀 박서현의 입에서 나온 지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내가 네게 해 줄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다. 이해했니?”
“……네.”
박서현은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한 말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결국 박서현을 대마법사로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