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55)
지리산 요정(1)
“다녀오세요!”
김채민은 활짝 웃으며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나는 김채민에게 꾸벅 인사하며 운전석에 올랐다. 지리산까지라면 갈 길이 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낫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이쪽에 홍석영이 딸린 이상 무리였다.
자동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김채민은 몸을 돌렸다. 나는 그런 김채민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김채민을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 아닌가, 홍석영과 내가 없는 학교에 김채민만 두고 가는 건.
김채민은 내 걱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박서현과 최진우를 향해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박서현은 아직도 내게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지만, 그럼 최진우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묻자 고집을 피우진 않았다.
내 눈에는 어린애들끼리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제 딴에는 제법 진지하게 최진우를 지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김채민은 그런 박서현을 뿌듯하게 여겼다.
네가 마법사도 아닌 헌터의 제자가 되면 네 제자인 최진우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박서현은 대신 김채민의 마법 연구 동아리에는 최진우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켰다. 얠 빼 버리면 곤란해질 거라고 협박하듯 바라보는 박서현에게는 비록 겉모습은 달라졌더라도 그 마녀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니, 근데 진짜 왜 날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거야…. 요즘 애들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불안해?”
조수석에 앉은 홍석영은 내 얼굴을 살피더니 툭 물었다.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김 선생님을 못 믿겠다는 건 아니지만….”
불안하다는 것 자체가 못 믿겠다는 의미가 되는 건가. 뭐라고 하든 변명이 되는 것 같아서 말을 멈췄다.
정작 홍석영은 내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뭔가 저지르려면 지금이 딱 적기긴 하지.”
“…….”
“왜 그런 눈으로 보는가?”
홍석영은 여전히 재수 없게 웃었다.
“자네도 없고, 나도 없고. 뭘 해 보고 싶으면 해 보라는 마음이네. 너무 대놓고 하는 짓이라 오히려 미끼를 안 물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놓치기 어려운 기회다?”
“내가 입원했을 때를 보게. 이렇게 내 눈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어디 있겠나?”
“왜 없습니까? 던전만 가도 피해지는데.”
“자네도 없잖나.”
그렇게 말해도 홍석영이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겠다. 이 아저씨… 한결같다. 너무 한결같아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하긴, 뭐. 사람이 나이가 들면 쉽게 바뀌기 어려운 법이지.
“그러니 저지를 거면 지금 저지르고 쳐 내는 게… 왜 그런 눈으로 보냐니까?”
그간 홍석영이 나를 시험했던 수많은 일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일부러 틈을 줬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의뭉스럽게 굴다가, 또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홍석영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생각하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자만하지 말라니까요.”
홍석영은 일순 누가 목을 조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띄우는 정보를 확인했다. 지리산까지… 지루한 시간이 되겠군.
“커험, 그게, 그러니까. 내가 그러려던 건 아니고.”
홍석영은 드물게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헛기침을 하고, 손부채질 하다가 애꿎은 가로수나 노려보던 홍석영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네.”
“저한테 백날 말해 봤자 뭐 합니까.”
“…….”
홍석영은 내 눈치를 살폈다. 딱히 잘못했다고 질책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차피 김 선생님을 내내 감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네.”
“김 선생님이 뭐… 하거든 사람 잘못 본 우리 안목이나 탓해야죠.”
“…자네는 그럴 것 같나?”
나는 운동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서 있던 김채민을 떠올렸다. 박서현과 최진우는 새끼 코알라처럼 김채민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그 두 아이가 김채민의 제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아뇨.”
“음.”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을 배신할 사람은 아닐 겁니다.”
잊지 말자. 김채민은 알지도 못하는 헌터를 구하기 위해 죽었던 마법사다. 그런 사람이 돌변할 리가 없잖은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던 마법사가, 제자처럼 아끼는 아이들을 위험에 내모는 선택을 한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고 홍석영은 내 의견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 선생님은 믿을 수 있다고 말한 건 선생님이었습니다.”
“아… 그랬었지.”
홍석영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나는 한 번 더 주의를 주었다.
“자만하지 마세요.”
“……알겠네.”
“하지 말라고요.”
“명심하겠네.”
“진짜….”
“알겠다고!”
홍석영은 팔짱을 낀 채 부루퉁한 얼굴로 창밖을 보았다.
솔직히 조금 우스웠다. 홍석영을 비웃는다는 게 아니라, 뭐랄까. 항상 완벽하게만 보였던 사람에게 아직 고칠 점과 배워야 하는 것이 남아 있다는 게.
역시 살다 보면 별 희한한 일이 다 생긴다니까. 아버지라면 그런 게 바로 인생이라며 웃었을 거다.
지금 홍석영이 입술을 실룩거리고 있는 것처럼.
* * *
“와! 선배님!”
한태경은 손을 크게 흔들었다. 한겨울에도 쓰고 있는 선글라스가 돋보인다.
하도 쓰고 다니길래 한은영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집에서 저걸 벗기는 하냐고.
오빠가 독립한 지 오래라 평소에는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본가에서도 항상 쓰고 다닌다고 했었지. 부모님이 뭐라고 말을 해도 선글라스를 포기하지 않아서 결국 부모님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 미래에도 항상 쓰고 다녔는데 포기할 리가 없지. 이상한 놈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준비는?”
“다 됐습니다!”
한태경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지리산에 있는 던전은 크게 주목할 만한 것은 없지만, 딱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던전 내의 지형이 바뀐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지리산 던전은 산에서 발생한 던전답게 초목이 우거진 숲이다. 마력의 농도가 높아 헌터들이 움직이기에도 좋았다는 보고서가 남아 있다. 누나가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던전을 닫을 무렵, 던전 내부는 빠르게 황폐해졌다. 끝도 없이 펼쳐졌던 숲은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사막화되었다. 던전 내부의 환경이 조금씩 변하는 일은 있었지만, 몬스터가 살고 있기 때문인지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바뀌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덕에 지리산 던전은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밝혀지는 일 없이 닫히게 되었다.
아마 던전을 유지하는 동력의 문제가 아닐까 싶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사막화되기에는 멀었고, 던전 안은 푸른 나무로 가득하다.
“그런데 전 진짜 안 들어가도 됩니까?”
한태경은 과장된 몸짓을 하며 물었다. 어차피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목소리를 낮추는 꼴이 우스웠다.
아니지. 나도 자만해서는 안 되지.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네. 괜찮습니다.”
“저도 들어간다고 신고했지 않습니까?”
“쉬고 있으세요.”
“…게이트 주위에서 이탈하지 말라면서요?”
“차 안에서 한숨 자든지요.”
한태경은 아쉬운 얼굴로 게이트를 보았다.
“요즘 던전 안 들어간 지 꽤 돼서 심심한데….”
“그렇게 던전을 돌고도 심심합니까? 잘됐네요. 다음번에 또….”
“실례했습니다!!!”
한태경이 냉큼 도망갔다.
별로 굴리지도 않았는데…. 혀를 차다가 홍석영의 곁으로 다가가서 게이트를 확인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여타 다른 게이트들과 똑같이 보였다.
“다연의 요청으로 안에서 보라색 사과를 채집한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선생님이 들어가는 이유는 심심해서고요.”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이유는 나한테 너무한 것 같은데.”
“싫었으면 진작 말했어야죠.”
그냥 해 본 소리였는지 홍석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진흙 던전과는 달리 지리산 던전은 통행량이 아주 없지는 않다. 방금 말한 보라색 사과 때문이다. 독이라도 든 것처럼 불길한 색상이지만 마력을 머금고 있어서 초창기 포션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은 더 효율적인 재료로 대체되어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가치가 하락하였다마는 가끔 그걸 구하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다연에서도 한 번씩 구할 때가 있는데, 마침 시기가 맞물려 홍석영이 이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던전이 메마르면서 그 사과도 더 이상 나지 않게 되었다. 지리산 던전이 공략되었던 것도 그 영향이었다.
“그래서 핑계 하나를 더 추가했지 않나.”
“아이들이 실습할 던전 답사라고요?”
“괜찮은 핑계지?”
다선이 시범고, 헌터 양성 고등학교와 긴밀한 사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학생들을 데리고 던전 내부에서 나는 식물을 채집해 보기에 지리산 던전은 괜찮은 대상이었다. 엄청나게 위험한 몬스터도 없고, 복잡한 채집 과정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홍석영치고는 괜찮은 아이디어를 냈지만 그대로 수긍하기에는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덕분에 한태경도 이름을 올렸지만요.”
길드 미미 소속인 나와 홍석영만 있으면 그렇게 피하고 싶은 쓸데없는 주목을 받을까 싶어서 양성고 교사진 중 하나인 한태경의 이름을 올렸다. 김채민을 데리고 들어가면 편하겠지만 아직 형의 일을 말하진 않았다. 안에서 무엇을 발견할 줄 알고 김채민을 데리고 들어가겠는가.
이건 김채민에 대한 신뢰 문제가 아니라 나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문제이다.
어차피 한태경은 게이트 밖에서 수상한 놈이 접근하진 않는지 망을 보는 역할이고.
나는 게이트를 확인했다. 지리산 중턱에 있는 바람에 때아닌 등산도 했다. 등산로와는 거리가 있어 등산객도 없다.
“으음….”
“뭔가 문제가 있나?”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과거로 돌아온 후, 던전에 들어갈 때 확인차 사람이 나온 건 시범고 애들을 데리고 근처 던전에 들어갔을 때뿐이었다.
그것도 시범고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확인차 나온 거였지.
나라에서 던전을 관리하고, 던전에 들어가는 게 신고제면 뭐 하나. 실제로 그 던전에 신고한 사람만 들어가는지 확인을 해야지. 지금은 나도 그 맹점을 이용하는 입장에서 뭐라고 할 말은 아니지만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거 아닌가? 관리청에서는 그걸 하나하나 다 확인했었다고.
…인원이 부족한가? 부족하기야 하겠지. 그래도 너무 이렇게 방치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 던전이라면 아무나 들어갔다가 모른 척 나오겠다고. 하다못해 마력초 등 채집 가치가 있는 재료가 나오는 던전이라면 똑바로 관리를 하란 말이다.
“…그 사과 말입니다.”
“따서 나오기로 한 거?”
“네. 크게 가치가 없다지만 그래도 쓰는 곳이 있잖습니까. 혹시 안에 사람이 있진 않을까요?”
나는 게이트 근처에 있는 앙상한 덤불을 가리켰다. 꺾여 있다. 마치 무거운 짐에 깔리기라도 한 듯이.
홍석영은 턱을 긁적였다.
“호프 녀석이 말한 던전이니….”
안에 방주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게이트를 노려보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