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56)
지리산 요정(2)
마력 측정기는 많은 역할을 한다.
게이트의 마력 변동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게 많다. 물론 기본적인 용도는 던전의 위험도를 측정하고 던전 브레이크를 방지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점은 던전의 마력 변화가 또 언제 일어나냐는 것이다.
던전이 불안정해질 때?
그럼 ‘불안정하다’의 정의는 무엇일까?
마력 측정기가 관측할 수 있는 마력의 변동 폭은 의외로 넓다.
대부분의 헌터나 민간인들은 마력 측정기가 던전 브레이크만 경고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대로 말하면 마력 측정기의 역할은 그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더 자주 쓰인다.
바로 던전에 불법으로 진입하는 헌터를 적발할 때.
헌터가 던전 진입 시 생기는 마력의 파동은 보기보다 훨씬 거칠다. 당연히 던전 브레이크와는 비교할 수 있긴 하지만, 마력 측정기에 기록될 만큼은 된다.
기왕 설치한 장비를 여러 방면으로 유용하게 쓰면 좋지 않은가? 관리청의 던전 공략팀은 그 이름대로 던전 공략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런 헌터들을 적발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모든 건 마력 측정기가 나온 뒤의 일이다. 마력펜처럼 출처를 대충 세탁하면 안 되나.
…그러기에는 마력 측정기가 너무 대단한 물건이다. 내가 마력 공학에 능통했다면 모를까, 마력 시계에 있는 설계도를 백날 들여다봐도 이해를 못 한다. 그렇지만 그런 나도 안다. 이건 마력펜처럼 툭 튀어나오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
게다가 지금 그걸 만들어 봤자 누가 덕을 보겠나. 마력 측정기는 나중에 내가 관리청을 만든 다음에 생각해 봐도 충분, 아니 내가 아니라 홍석영! 그 아저씨가 만든 다음에 생각해도 충분하다!!
“일단 들어간 다음에 샅샅이 뒤져 보자고.”
홍석영은 엉망으로 꺾인 나뭇가지를 살피다가 결론을 냈다.
뭐, 이렇게 말해도 안에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 저것도 정식으로 신고하고 들어간 공략대가 만든 흔적일 수도 있고.
“그럼 저는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잡으면 되는 거죠?”
한태경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홍석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능숙하게 한태경에게 말했다.
“그래. 불법 각성자 단체가 이 던전에 들어갔다는 제보가 있었거든. 솔직히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인해서 나쁠 건 없잖은가?”
“그치만 그럼 둘만으로도 정말 괜찮습니까? 역시 저도….”
던전에 들어가고 싶어 수작질하는 내용이 참신하다. 홍석영이 들어가서 괜찮지 않은 던전이라면 그쪽이 무섭다.
정말 안에 불법 각성자가 있어서 공격해 온다고 해도….
홍석영을 보았다. 저 아저씨가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 공격해 온다고 해서 망설일 것 같진 않은데.
“혹시 바깥에서 누가 들어온다면 그게 더 곤란해.”
“끄으응.”
한태경은 앓는 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냥 막기만 하면 되나요?”
홍석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딱 보고 범상치 않은 놈이다 싶으면 도망가고.”
“이 한태경, 체이시의 정신을 이어받아 적에게 등을 보이는 법은.”
“정 안되면 던전 안으로 들어오게.”
“넵. 알겠습니다!”
한태경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이려다가 냉큼 대답했다.
“잘 부탁하지.”
“고생하십쇼!”
한태경은 선글라스를 바로 쓰며 경쾌하게 인사했다. 오렌지빛이 도는 선글라스 너머로 한태경의 눈이 보이는 대신 주변 풍경이 비쳤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산속에서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선글라스라니.
하긴 그림자 속에서 길을 찾을 만큼 성능 좋은 물건이었으니 이런 어둠 따위는 문제 되지 않는 모양이겠지.
나는 고개를 젓고는 홍석영을 따라 게이트를 마주 보고 섰다.
“…진입 인원 세 명.”
한태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홍석영, 우희재, 한태경. 현재 시각 4시 58분.”
실제로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한태경의 이름은 던전에 들어갔다고 남을 것이다. 나는 한태경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던전에 진입합니다.”
* * *
“…….”
던전에 대한 첫인상은….
“…….”
생각보다 훨씬 덥다.
“…….”
“…….”
글쎄, 이게 숲이라고 해도 되는 건가? 밀림이 아니라?
던전 바깥은 겨울이다.
추위가 한풀 꺾이긴 했다마는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아침마다 답답하다며 패딩을 벗어 던지는 우이록을 붙잡아 다시 입히는 것도 일이었다. 아직 각성하려면 시기가 남았는데…. 그래. 건강하니 되었다.
어쨌든 서늘한 바깥 날씨와는 달리 던전 안은 덥고, 습했다. 가벼운 방어구 안으로 땀이 찬다. 기온의 영향을 덜 받는 각성자의 육체를 생각하면 실질적인 온도는 체감보다 더 높을 것이다.
덥고, 습하다.
아무 규칙 없이 마구잡이로 자란 나무와 풀숲이 진로를 방해한다. 선명한 푸른색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곤두선 감각에는 싱그럽다 못해 코가 아릴 정도로 진한 풀냄새가 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숲엔 여타 다른 던전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기척이 없다. 진짜 밀림이었다면 숲에 들어서자마자 들렸을 새소리나 벌레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실제로도 없을 테고.
“…….”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리고 이미선이 구해 온 보고서에 따르면 이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골렘이다. 진흙을 뭉쳐서 대충 구워 낸 듯한 생김새의 골렘.
도자기와 같은 재질이어서 힘으로 부수면 쉽게 제압할 수 있다, 고 나와 있었다. 나중에 던전이 황폐해졌을 땐 골렘마저 몇 기 남지 않았었다. 골렘이 이 던전을 탈출 포트로 사용한 피난민? 이라고 상정한다면 먹이가 떨어졌거나 했겠지. 동력이 떨어진 게 아니라 던전 내부 시스템이 잘못되어서 생태계를 유지 못 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툭툭.
“…….”
“…….”
홍석영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곤 손을 움직였다. 창을 쥐지 않은 손이 그리는 수신호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던전 등급이 높은 것도 아니고, 골렘을 제압하는 일도 어렵진 않지만, 이 던전 안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기로 미리 얘기해 두었다.
나는 누나의 검을 쥔 채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이 손을 움직였다.
‘핵이 있다는 북쪽부터 확인.’
‘이동 중 헌터의 흔적을 발견하면 멈춤.’
던전에 들어오기 전 얘기했던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느긋한… 아니, 느긋하다고 하면 안 되지. 색적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를 찾는? 추적하는?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난 그런 섬세한 작업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근신 중인 한태경 대신 던전에 들어가거나 했을 때는… 그래. 내가 생각해도 무식한 방법으로 공략했었다. 핵이 있는 곳까지 밀어붙였다고. 등급이 높은 던전이 아니어서 가능한 방법이긴 했다마는.
진흙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그런 방식을 쓴 건 아니었지만, 그건 누나한테 질릴 정도로 들은 정보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여긴 누나한테서 들은 적도 없는 던전이다…. 그냥 공략하고 끝낼 곳이라면 쉬울 텐데.
나는 몇 발짝 앞에서 걸어가는 홍석영을 보았다. 반백 살에 가까운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성된 육체다. 애용하는 창을 어깨에 대충 걸친 채 걸어가는 모습은 그냥 집 앞 마실 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다르다.
어딜 세워 놔도 눈에 띌 것 같은 덩치는 무게가 없는 것처럼 사뿐히 움직인다. 실제로도 홍석영이 지나가는 걸음에 있는 풀은 상처 하나 없다. 바람에 흔들리듯 살랑 흔들리는 것 말고는 멀쩡하다. 내 눈앞에 홍석영이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믿을 수 없는 재주였다.
그렇다고 정말 놀라지는 않았고.
아버지는 내게 다 가르쳐 줬다니까. 당연히 흔적을 남기지 않고 걷는 법 정도야 나도 알지.
내가 놀란 건 다른 부분이었다.
“…….”
홍석영은 가볍게 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멈추라는 신호다.
홍석영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잎사귀가 떨어진 나뭇가지가 있었다. 나라면 수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홍석영은 창을 잠시 팔뚝에 끼워 둔 채 양손을 움직였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공용 수신호는 이렇게까지 자세한 내용을 전달하진 못한다. 이건 수화다. 아버지는 지금처럼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 헌터들끼리 의사를 주고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위적으로 제거된 흔적.’
…그렇다고?
나는 홍석영이 가리킨 나뭇가지를 유심히 보았다. 주변의 다른 가지에 비해 나뭇잎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다른 건가?
내가 이해하지 못한 티가 너무 났는지 홍석영이 설명을 덧붙였다.
‘던전 내부 생태계는 변화하지 않음. 나뭇잎을 먹는 초식 몬스터도 없는 던전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건 이상함.’
“…….”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홍석영은 근처의 나무를 몇 그루 더 가리켰다.
‘아마 길을 표시하려고 한 것 같은데. 핵이 있는 방향과 겹치니 그대로 따라가겠음.’
나는 그저 홍석영의 판단에 맡긴 채 고개만 끄덕였다.
아버지에게서는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배울 게 남아 있다.
…이쪽은 일부러 나에게 안 가르쳐 줬겠지만. 누나한테는 가르쳐 줬겠지.
내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홍석영이 다시 움직였다. 다만 이번에는 속도가 더 느려졌다. 원래도 그리 빠르지 않기는 했지만, 너무 느려진 거 아닌가?
잠깐 가졌던 의문은 금방 풀렸다. 홍석영은 불편하지도 않은지 창을 옆구리에 낀 채 끊임없이 손을 움직였다.
‘공략대 흔적이 섞여 있어서 구분을 잘 해야 해. 숨길 필요가 없어서 남겨 둔 것과 눈에 띄지 않게 숨겨 둔 건 다르거든.’
그냥 나한테 설명해 주기로 마음먹었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얼른 가기나 하라고 할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얌전히 홍석영의 설명을 들었다.
배워 두면 쓸모가 있겠지. 게다가 말로만 듣는 것보단 이렇게 예시가 있을 때가 이해하기 더 쉽다. 홍석영은 나무가 엉망으로 베어져 있는 공터를 가리켰다.
나도 손을 움직였다.
‘이건 공략대가 쉬었던 곳 아닙니까?’
홍석영은 대견하다는 듯 활짝 웃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도 내가 정답을 맞히면 저렇게 웃곤 했다.
…학교를 만든 것치곤 남을 가르치는 것에 재능이 있지도 않고, 썩 좋아하지도 않던 사람인데.
‘저쪽에도 있어.’
‘핵과 방향이 계속 겹치는데요.’
‘핵에 거의 다 왔으니까.’
홍석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창을 잡았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경계하겠다는 의미다.
그게 아니어도.
…쿵. 쿵.
발밑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지네 던전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잠시 몸을 떨었다.
아니, 그래도 여기는 벌레가 나오진 않으니까.
쿵!
점점 거세지던 진동이 마침내 지척까지 다가왔다.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것은 어설프게 뚫린 구멍이 눈코입을 그리고 있는 골렘의 머리다.
챙그랑!
홍석영의 창이 바로 머리를 꿰뚫는다. 반들반들한 생김새에 맞게 도자기 깨지는 소리가 나며 골렘의 머리가 떨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이렇게 머리를 부숴 버리면 골렘이 멈춘다고 했지만….
우드득.
“음.”
머리 없는 골렘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뒤로 다른 골렘이 따라 나왔다. 하나, 둘.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의 수.
검을 바로 쥐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