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57)
지리산 요정(3)
쨍깡!
제아무리 골렘의 수가 많다고 해도 하나하나는 대단찮은 놈들이다. 커다란 덩치는 평지나 건물 안이었다면 위협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무가 빼곡한 숲속에서는 오히려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게다가 숫자가 많다 보니 자기들끼리 부딪쳐 방해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무르지 않고 단단한 골렘의 재질도 이 상황에서 한몫했다. 아마 다른 헌터들이라면 이만한 숫자에 고전했을 거다. 하지만 이쪽이 누구인가. 여긴 홍석영이 있다.
홍석영은 말 그대로 골렘의 머리를 깨부수고 있었다.
아니, 머리만 부순다고 해서 골렘이 멈추지는 않아서 그냥 골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게 잘게 부수고 있었다.
“…….”
물론 나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고.
“아직도 남았습니까?”
“수가 많이 줄기는 했는데….”
어차피 전투가 일어나면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기 때문에 목소리를 죽이던 노력은 도루묵이 되었다. 이만큼 소란을 떨어도 다른 기척이 느껴지진 않는다.
홍석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골렘을 살폈다.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홍석영이 왜 저러는지는 나도 알았다. 나도 비슷한 표정으로 골렘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영….”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몇 남지 않은 골렘을 처리했다. 반면 홍석영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우리나라 헌터들의 수준이 언제 이렇게 낮아진 거지?”
왜 거기로 사고가 튀는 걸까.
박서현이나 다른 애들을 탓할 게 아니다. 이 인간도 똑같거늘. 그 선생에 그 학생이다.
그러나 다행히 홍석영은 그저 아무 말이나 지껄이진 않았다. 눈물부터 주르륵 흘리기 바빴던 아이들과는 달리 홍석영은 나름대로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간 여기에 들어왔다는 헌터가 몇인데 이걸 눈치 못 채?”
아. 그런 문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그건 좀 문제가 있죠.”
“그렇지?”
“네.”
홍석영은 남은 골렘을 부쉈다. 누가 보아도 화풀이하는 몸짓이다.
창으로 베거나 찌르는 게 아니라 창대로 후려 팼으니까.
부서진 골렘이 일어나지 않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홍석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종하는 놈이 따로 있는데 이걸 눈치 못 채고 출현 몬스터에 골렘만 표시한 거야? 도대체….”
“그렇게까지 이 던전이 등급이 낮진 않았는데요.”
“A였나?”
“네. 던전 내부가 넓어서 그 등급이고요, 난이도 평가는 B였습니다.”
“그럼 최소 A급 헌터가 들어왔다는 말인데. 실망스럽다니까. 라이센스 평가 방법도 손봐야 해.”
홍석영은 골렘이 습격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정도로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나는 홍석영의 불평을 한 귀로 듣고 흘려 넘기며 골렘의 잔해를 뒤적였다. 남아 있는 마력이 없다. 그냥 깨진 도자기 같았다. 확인차 조각에 대고 칼날을 세워 힘을 주었다.
파삭.
조각이 더 작은 조각이 되었지만 역시 느껴지는 게 없다. 보이는 것도 없다. 골렘을 부리는 놈이 있으면 분명 마력이 연결되어 있을 텐데, 싸우면서도 그런 건 보지 못했다.
“뭐 좋은 방법 없나?”
“…뭐가요?”
“등급 평가 방법으로.”
“그런 건 우리가 아니라 협회에서 생각해야죠.”
“음….”
홍석영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다가 납득했다.
“그건 그렇군.”
라이센스 발급은 관리청이 아니라 협회 소관이니까.
“이 헌터님한테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세요.”
“나가면 그래야겠어.”
“선생님도 이놈들 잡으면서 느낀 게 없었죠?”
홍석영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발밑에 있는 조각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는 풀 하나 다치지 않게 사뿐사뿐 걷더니. 일부러 힘줘서 걷는 거 봐라. 혹시나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조종자를 도발하려는 의도가 내게도 느껴진다.
“기분 나쁘던데.”
홍석영은 발바닥으로 바닥을 문지르며 말했다.
“손맛이 없어. 어린애 장난감 부수는 기분이 들어서 별로야.”
“뭐….”
홍석영이 뭘 말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골렘의 수많은 파편. 산산이 조각났음에도 불구하고 연결이 남아 있는지 덜그럭 움직이는 것들이 있다. 역시 눈에 보이는 마력은 없는데….
이렇게 많은 골렘을 없앴는데도 불구하고 홍석영의 말대로 몬스터를 잡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린애 장난감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장난감은 내 머리를 부수기 위해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언가를 베어 넘겼다는, 몬스터를 해치웠다는 감각이 없다는 의미로는 동의한다.
몬스터에게는 마력이 있다. 각성자들의 육체에도 마력이 깃들기 마련이지만 몬스터와는 다르다. 몬스터는 마력의 집합체다. 각성자의 피로는 마력석을 만들 수 없지만 몬스터의 피로는 마력석을 만들 수 있는 것이 그 때문이다.
마력에 민감한 각성자들은 몬스터가 죽을 때 바뀌는 마력의 흐름을 기민하게 잡아챈다.
모든 헌터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나 홍석영 정도의 실력인데 못 알아차린다면 라이센스를 돈으로 산 거다.
홍석영이 말하는 손맛은 바로 이 마력의 변화를 말한다. 헌터들에게 자신이 죽인 것이 몬스터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이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태울까요?”
홍석영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예전에도 그 검을 사용했나?”
“아뇨.”
“그럼….”
“아니, 뭐. 우리나라 지형상 던전도 나무가 많잖습니까.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으면 그냥 다 태워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요.”
“으음.”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홍석영의 눈빛이 기분 나빴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홍석영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니네. 그래도 태우는 건 참아 주길 바라네.”
“그래도 그게 제일 간편할 것 같은데요.”
“그래선 아무것도 남지 않잖은가….”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닙니까?”
나는 검을 살짝 휘둘렀다. 손톱만 한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평범한 불이라면 흙을 구운 것 같은 골렘을 태우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뭐. 이제 와서 굳이 입 아프게 떠들 필요는 없겠지.
푸른 불씨는 골렘의 파편 하나를 삼켰다. 숲에 옮겨붙지 않게 주의하며 작은 파편을 태웠다.
“…….”
불씨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
마력을 좀 더 넣었다.
“…….”
마력을….
“희, 희재 군? 거기서 더 넣으면 불난다?”
“이게 짜증 나게 하잖습니까!”
“불에 한 번 구운 놈 같은데, 그럼 잘 안 타겠지?”
“그건 평범한 불일 때의 얘기고요! 누나는 이걸로 별걸 다 태우고 다녔는데!!”
성능만큼은 확실한 놈이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 가리는 놈이기도 하다. 나는 검을 노려보았다. 이게 정말… 형과 관련 있어서, 이 던전에 형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리고 그걸 알아보았다면.
…아이템에 그딴 기능이 있었다면 사달이 나도 진작 났었겠지.
흥분하지 말자, 흥분하지 말자.
던전 안이라 감각이 곤두서 있는 탓인지 감정이 쉽게 동요된다.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목표로 했던 파편을 노려보았다.
누나는 이 검을 어떻게 썼더라.
‘뭐? 무슨 생각을 하고 불 지르냐고? 야, 우희재. 말하는 거 봐라. 누가 들으면 내가 아주 방화범인 줄 알겠… 아니거든?! 내가 불을 안 지르는 건 아닌데! 그건 던전에서만 그런 거고! 진짜 어쩔 수 없을 때만 지른다고.’
‘그런 것치고는 빈도가 높던데.’
‘주변에 태울 게 널려 있는데 그럼 안 태우고… 아니, 이건 농담이고. 야, 안 와? 왜 자꾸 멀어져?’
‘방화범….’
‘아니라니까! 그리고 어차피 나무는 태워도 몬스터는 잘 안 타. 특히 등급이 높아질수록. 몬스터 재질에 따라서도 다르고.’
‘못 태운다고? 그렇게 자랑하더니 별거 아니네.’
‘요게, 진짜…. 못 태운다는 게 아니라, 어렵다는 거지. 룬이나 마법으로 보조하면 화력은 끝내주게 높일 수 있어. 것도 아니면 마력을 때려 박든지.’
…도움이 안 되는 기억만 떠오르는군.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안 될 때는 무작정 마력을 넣고 보면 된다. 이 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헌터들의 해결책은 대부분 단순하고 무식하다.
“그러니까 꼭 태울 필요는 없다니까 그러네.”
“태워야겠습니다.”
“아니….”
홍석영은 쩔쩔매며 나를 말리다가 포기했다.
“그래,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제일 좋지. 한창 불장난이 재밌을 나이기는 하니까….”
“뭐라는 겁니까.”
누나의 조언에 힘입어 룬을 그릴까 하다가 이 던전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건 포기했다.
막연히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보단 조심하는 게 낫다.
마력을 집중시켰다. 주위가 타도 상관없다. 큰불로 번지기 전에 끄면 되는 일이다.
골렘을 잔뜩 박살 냈지만, 또 어디서 기어 나올지 모른다. 여차할 때 정말 불을 지르고 도망쳐야 한다. 나는 홍석영처럼 불법으로 던전에 들어온 각성자를 추적하거나 하는 일은 잘 못하지만, 던전 공략에 있어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항상 던전 안에서는 쓸 수 있는 모든 수단과, 그를 위한 조건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게 내 일이었다. 예를 들면, 불을 내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던전 안의 몬스터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온도가 몇 도일까 하는 것들까지.
마른 흙과 비슷한 누런색의 파편이 점차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조각이 얇아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종잇장처럼 얇아지더니, 파편은 재가 되어 파스스 흩어졌다.
그리고.
삐이이이이!!!!
[@!*%$#%>“윽!”
“큭!”
고막을 짓이기는 고음이 던전을 가득 채웠다.
황급히 마력으로 귀를 보호했다. 하지만 소리는 뇌에 직접 닿는 것처럼 여전히 울렸다.
이건 본 적 없는 패턴이다. 어떤 놈이지? 골렘을 조종하던 놈인가?
마찬가지로 소음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홍석영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감각을 어지럽히는 소음 덕분에 알아보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홍석영의 손은 짧은 단어를 반복하고 있었다.
‘요정.’
* * *
콰아앙!!!!
[#%^$(@&>머리카락 대신 나뭇가지가 있다. 작은 나뭇잎이 빼곡히 달린 덕에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이 나뭇잎이고, 피부가 옅은 흙색을 띠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간과 거의 다른 점이 없다. 아,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쭉 뻗은 손에 손톱 대신 작은 하얀색 꽃이 매달려 있는 것도 뺀다면.
[$*^@%@&>“뭐라는 거냐고!!”
[!$%^#*>놈이 입을 열 때마다 귀가 따끔거린다. 눈알이 빠질 것처럼 아려 오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청력을 차단해 봤자 통증이 가시는 것도 아니라 그냥 포기했다. 차라리 빨리 잡는 편이 낫다.
“아오, 진짜!”
푸른 잎사귀 아래로 보이는 이목구비는 선이 부드러운 여성이다. 나무껍질을 두르고 있는 몸도 여성에 가깝다. 그렇다면 저건 암컷인가? 몬스터에게도 암수 구분이 있던가?
이를 악문 채 검을 휘둘러 뻗어 오는 줄기를 잘랐다.
[%(@#@^>“씨발, 아프냐? 아프라고 한 거다!”
상처가 난 팔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얼굴을 보면… 그래. 왜 몬스터에게 홀리는 놈들이 있는지도 이해했다.
그리고 놈들에게 복수를 결의할 감정과 지능이 있다는 사실도 드디어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지능을 가진 몬스터? 어처구니가 없다.
“씹,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 없는데!!!”
푸른 불길이 타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