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58)
지리산 요정(4)
“……!!”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푹 꺼지는 바닥을 피해 위로 뛰어올랐다. 근처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지만, 밟고 올라선 나뭇가지가 훅 꺾였다. 물론 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얇지는 않았다.
다른 나뭇가지도 마찬가지다. 꿀렁거리며 사람을 삼키려 드는 땅, 이젠 땅이라고 부르기 힘들 지경이었다. 발목이 푹푹 잠기는 질척질척한 진흙. 이건 이제 바닥이 아니라 늪이다. 바닥이 없는 늪. 사람 잡아먹는 진흙 더미.
올라가는 족족 떨어뜨리려는 나무도 짜증 나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움직임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겨우 움찔거리기만 할 뿐이었는데.
…마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삐걱거리는 기계 더미를 보는 느낌이다.
재빨리 매달릴 나무를 바꿨다. 날 떨어뜨리기 위해 거칠게 몸부림치는 나무를 피해 다음 나무로, 다음 나무로. 버티기만 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걸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홍석영이 세이렌 던전에서 발 디딜 곳이 없을 때 어떻게 했다고 했지? 김채민을 썼었지? 역시 김채민을 데려올 걸 그랬나.
이런 던전일 줄 알았으면 데려왔다. 데려왔다고!
……그리고 욱해서 골렘 파편을 태워 버리지도 않았을 거고.
“쯧!”
홍석영이 나무 하나를 베어 넘겼다. 쓰러지는 나무를 밟고 뛰어올라 다른 나뭇가지에 매달리는 게 보였다.
“…….”
홍석영을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도 똑같은 처지다.
아니, 근데 나는 진짜 억울하다고.
나는 그냥 만약을 대비해서 골렘도 불에 타는지 안 타는지 확인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 골렘 주인이 겨우 그딴 거에 예민하게 지랄하는 놈인 줄 어떻게 알았겠나.
그럴 거면 처음 골렘 머리를 부쉈을 때 지랄하든지. 물량 공세를 할 땐 언제고? 골렘이 부서지는 게 싫었다면 아예 부리지 말았어야지! 자기가 나서든가!!
요정이란 놈들은 다 그 모양인가? 요정이라는 몬스터를 파악하기에는 표본이 너무 적다. 기껏해야 홍석영이 말해 준 내용이 전부다. 그나마 내가 만나 본 유일한 요정… 요정에 가까운 존재는 알렉스 호프뿐인데.
그 녀석을 생각하면…….
…….
그래. 요정이란 놈이 그럴 수도 있지. 지금도 봐라.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발광하고 있지 않은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움직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통증이 달가울 리 없다.
머리에 꽂히는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던전 전체가 크게 울렁거린다. 바닥에 깔린 진흙이 물결치고, 나무와 덩굴이 꿈틀거리며 나와 홍석영을 붙잡기 위해 뻗어 온다.
우습게도 그건 김채민의 마법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김채민처럼 화려하거나 딱 보기만 해도 생명력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넝쿨이 김채민의 마법처럼 움직인다 해도 처음 던전에 들어왔을 때의 경직된 느낌은 여전했다. 생명은 느껴지지 않고, 플라스틱 장난감이 움직이는 듯한 기괴함만 감돌았다. 이건 골렘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겉보기에는 식물이었으니, 김채민이라면 이 던전을 재밌어했을 것 같다. 저 진흙 더미에 자기 꽃을 강제로 피워 내며 깔깔거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필시 웃었을 거다.
그러나 불행히 김채민은 없고, 여기엔 창과 칼을 든 채 허둥거리고 있는 불쌍한 헌터만 둘 있다.
“핵까지 얼마나 남았더라?!”
홍석영이 불어난 진흙을 피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외쳤다.
“아직 멀었어요!!”
“이대로는 핵으로 가기에도, 잠깐. 저게 뭐야?”
“네?”
나는 홍석영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선 창백해졌다.
나무에 매달려 발목을 붙잡는 덩굴을 쳐 내던 홍석영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저건 쓰나미잖아!!!”
밀림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울창한 숲이다. 당연히 나무도 키가 크다. 그런 나무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집채만 한 파도가 멀리서부터 몰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물이 아니라 진흙이었다. 숲 위로 그림자가 졌다.
던전에서, 그것도 숲이 있는 던전에서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한 적도 없는 풍경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게이트!”
“…네?”
“게이트!! 던전에서 나가!!!”
나는 홍석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저기에 휩쓸리면 홍석영이라도 무사할지 장담할 수 없다. 아무리 최강의 헌터라고 해도 2미터도 되지 않는다. 수십 미터짜리 진흙 파도는….
씨발!
[&&@*$$^>바로 방향을 바꾸었다. 다행히 진흙 파도의 속도는 느리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필사적으로 달렸다.
[$(*&%@!~*>어디선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 요정의 목소리가 어쩐지 웃음을 띠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몬스터가 인간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는 또 모르겠지만, 짐승도 희로애락을 느끼는데 몬스터라고….
그래 봤자 몬스터다.
게이트가 보일 때까지 이를 악물고 달리기만 했다. 우리가 던전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걸 알았는지 방해하던 바닥이나 나무가 조금 얌전해졌다.
…왜?
멀리서 게이트의 푸른빛이 반짝거린다.
분명 던전에 진입할 때만 해도 게이트 주위에는 나무가 무성했다. 게이트를 지나자마자 나뭇가지 하나에 머리를 부딪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게이트 주위가 비어 있다.
땅에는 진흙 한 점 떨어지지 않은 채였다. 마른 흙이 버석거린다. 땅 위의 갈라진 틈은 나무가 움직인 자국이다. 게이트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은 아까 나와 홍석영을 떨어뜨리려는 것처럼 격렬하게 몸을 뒤트는 대신 아무 미동이 없다.
뭐지?
이건, 이건 마치….
“일단 나가!”
홍석영은 내 뒷덜미를 잡아채고 게이트를 향해 몸을 던졌다.
던전을 나가기 직전, 우리를 뒤쫓아 오던 진흙 파도를 보았다. 파도는 형체를 유지하는 대신 반으로 갈라진 채 천천히 무너졌다.
파도가 무너지며 진흙이 던전에 비처럼 내렸다. 파란 하늘 대신 별이 총총 박혀 있는 하늘에는 별을 삼키는 블랙홀처럼 검은 점이 하나 있다.
아니, 자그마한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 아니다.
[@^@#*%^)*#__&!>요정.
머리카락 대신 삐죽삐죽 솟은 가시덤불이 흔들린다. 진흙을 뒤집어쓴 몸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_)&@$>그러나 형형히 빛나는 황금색 눈만큼은 똑바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어? 벌써 나왔, 꼴이 왜 그럽니까?”
…ello, Bonnie!
캠핑용 의자에 푹 파묻혀 있던 한태경이 우리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태블릿 PC에서 어린아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보니라는 이름은 선명하게 들렸다.
저놈의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봐 놓고서는 질리지도 않나.
“뭐… 머드 축제라도 갔다 오셨는지?”
“한태경이.”
“네.”
“조용히.”
“넵.”
홍석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지 한태경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머리에서 진흙이 뚝뚝 흘러내린다. 기분이 더럽다.
앞은 봐야 하니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머리를 뒤로 넘겼다. 진흙으로 머리카락이 고정되는 기분은 더럽다. 알고 싶지 않았다.
손에 묻은 진흙을 털어 내려다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옆을 보니 홍석영도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다 라이센스 반납시켜야 해.”
홍석영은 살벌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홍석영에게서 조금 멀어졌다. 한태경은 진작 저 멀리 도망갔다.
“미친놈들…. 이걸, 뭐? 요정이 있다는 건 모를 수 있어. 하지만 이걸 몰라?”
“뭐… 저희도 처음엔 몰랐잖습니까.”
누구나 본인의 허물에는 관대한 법이지만 그래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홍석영은 나를 노려보았다.
“누구 편이야!”
“제 편이요.”
“그럼 내 편을 들어야지!!”
“여기에 무슨 편이 있습니까….”
나는 한태경에게 손짓했다. 머리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머리가 나쁘진 않은 한태경은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 바로 눈치채곤 짐에서 생수와 수건을 찾아 다가왔다.
몸을 씻을 순 없으니 손만 대충 닦은 다음 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훔쳐 냈다.
“어떻게 할 겁니까?”
“어떻게 하기는.”
홍석영은 화를 내야 할지 실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손을 씻었다.
“요정이 있는 이상 잡기는… 잡기는 해야지.”
“요정요?”
“어떻게요?”
“으음…. 보통 그딴 장난질을 치기 전에 잡는 편이긴 한데, 이번엔 그게 안 될 것 같군.”
홍석영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요정이, 아니,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있다는 말이라도 있었다면 던전에 그렇게 들어가진 않았지. 놈부터 찾아서 죽였을 거야.”
“그거 유럽에서 나오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게 낫죠.”
“보고서를 믿으면 안 되는데. 안일했어.”
“골렘을 잡을 때까지 우리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었잖습니까. 그만큼 교활한 놈이라는 거죠.”
“제 말 들리세요?”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던전을 빠져나오기 전 느꼈던 게 있다.
“그리고, 음. 그놈 말입니다. 우리를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홍석영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잘….”
나는 검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검날을 따라 불꽃이 화르륵 일어났다. 진흙이 순식간에 말랐다. 그 상태 그대로 검을 휘두르자 진흙이 떨어졌다.
나는 그제야 한태경을 슬쩍 보았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홍석영은 요란하게 헛기침을 터뜨렸다.
“커험, 그, 자네도 눈치챘나?”
“…게이트 주위를 그렇게 비워 뒀는데 눈치를 못 채면 이상하죠. 그 진흙도 말입니다. 우리가 게이트로 가기 시작하자 속도가 느려졌다고요.”
“내가 말했었잖은가.”
“네?”
“요정은 영악하다고.”
홍석영은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그간 꽤 많은 헌터들이 이 던전을 드나들었지.”
“뭐… 그렇죠.”
“헌터들과 조우한 몬스터는 골렘. 수가 많긴 하지만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아. 하지만 이 던전에는 사과가 있으니….”
“위험한 던전이 아니니 공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겁니까?”
“아마도.”
홍석영은 나를 똑바로 보았다. 한태경이 있어서 말을 하진 않았지만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 던전 안에 있는 요정이 미래에서 온 놈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
누나가 이 던전에 들어왔다가 그냥 나왔던 이유가 혹시 요정을 보아서인가?
아니, 말이 되지 않는다. 누나는 사과 채집을 위해 이 던전에 들어간 게 아니다.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갔다가 실패했다. 아무리 누나가 어릴 때라고는 해도 저딴 골렘에 애를 먹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정이?
하지만 그 뒤에 던전을 공략한 헌터는 누나보다도 한참 못한 실력이었다. 심지어 그땐 던전이 사막처럼 변한 뒤였다.
왜? 그땐 요정이 없었기 때문일까?
“일단…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그건 당연하지.”
“하지만 무작정 들어갈 수도 없잖아요.”
“당연히.”
“…그런 진흙을 상대론 김 선생님도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요.”
“음….”
생각해라, 우희재. 한정된 자원으로 공략법을 찾는 게 네 일이잖은가.
“저기? 제 말 들리세요? 들리냐고요.”
한태경은 포기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제가 던전에 들어가 봐도 되겠슴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