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6)
개꿈(1)
유지은이 방이동 던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언제더라.
솔직히 그런 사소한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던전 하날 공략해야 한다면서 노래를 불러 댔다.
‘야, 낙하산아. 우리 그거 공략해야 해.’
‘그게 뭔데요? 보고서 올려요.’
‘낙하산아, 낙하산아. 공략해야 한다니까.’
‘보고서 올리라고요.’
그래도 오랫동안 보아 온 정이 있으니까 좀 더 들어 주기로 했다. 공략팀장이 비서실에 와서 커피나 축내고 있는 꼴이 보기 싫었기도 했고.
일도 없나? 일이 없으니까 그렇겠지!
‘도대체 뭘 공략해야 한다는 겁니까? 던전이요? 최근에 위험도가 변한 던전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거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마력 측정기를 통해서 알림이 왔다면 유지은은 날 찾아와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팀원들을 모아서 튀어 나가고도 남았을 거라는 사실을.
그러지 않고 나에게 찾아와서 날 쿡쿡 찌르고 있다?
‘우희재야.’
이거 분명 뭔가 있다. 유지은은 보통 자기한테 불리할 때만 저런 간드러진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평소에는 낙하산이라고만 하는 주제에.
‘안 됩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거절했다. 본능이었다.
‘뭘 들어 보고 안 된다고나 해라.’
‘그러는 걸 보니 더 안 됩니다. 절대 안 돼요.’
‘아니, 씨발. 우희재야. 내 말을 좀 들어 봐라.’
‘아, 일해야 하니까 꺼져요. 일 없어요? 지난번 던전 공략 보고서 아직 제출 안 했던데. 빨리 내요. 더 미루지 말고.’
‘우희재.’
내가 막 관리청에 들어왔을 때는 저 내리깐 목소리에 속고 그랬다. 아직 순진했던 어린 날이여.
하지만 이젠 진지한 눈빛과 낮은 목소리에 속기엔 유지은을 너무 잘 알았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보고서.’
‘씨발, 공략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뭘요!!’
‘…송파구에 있는 거.’
대한민국에 있는 던전이 몇 개인데 그렇게만 말하면 알겠는가. 서울에만 해도 수백 개의 던전이 있다.
‘송파구?’
‘………방이동.’
조금 전 고함을 질러 대던 것과는 다르게 거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고 있다는 뜻.
당연하다. 다른 건 몰라도 송파구의 방이동 던전이라면 딱 떠오르는 게 하나뿐이니까.
‘설마 그 던전 말하는 겁니까? 마력석 나오는 거기?’
유지은은 내 눈을 살살 피했다.
‘거기가 뭐, 갑자기 위험도가 오르기라도 했답니까?’
알람은 잠잠하다. 당연히 유지은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다.
더 말할 것도 없다.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거기 느낌이 별로야.’
‘느낌이 별로라고 던전 공략을 막 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저번에 내가 거기 한 번 들어갔다 왔었잖냐.’
‘거기서 뭐, 세 번째 눈이라도 떴습니까?’
‘나 장난치는 거 아냐.’
‘저도 아닙니다.’
‘거기 공략하자.’
‘나가요. 일해야 해요.’
‘낙하산아.’
‘나가라니까요.’
‘공략….’
‘나가요!’
그래도 유지은은 끈질겼다.
유지은은 그 뒤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날 찾아와서 송파구에서, 방이동이, 던전을 어쩌고 노래를 불러 댔다.
그런 주제에 보고서는 끝까지 안 줬다. 정식으로 건의해 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알 정도의 머리가 유지은에게 있었던 탓이다. 날 찔러서 허락을 받아 내면 내가 뒷감당을 다 해 줄 거라는 계산 실력까지.
아줌마가 어디서 못돼 먹은 것만 배워 와서는.
그렇지만 난 착한 상사다. 부하의 말을 대놓고 무시하는 막돼먹은 상사는 아니다. 아, 뭐… 유지은이 정확히 내 부하는 아니지만 느낌상 그렇지.
그래도 말은 들어 주었다는 티를 내기 위해서 방이동 던전을 확인했다. 거긴 워낙에 안정적인 던전이라 나도 가끔 마력석이 잘 나오고 있나 체크만 할 뿐 방치하던 곳이었다.
D6급 던전.
아무 몬스터가 발견되지 않는 E등급을 제외하면 최하 등급 D.
던전 게이트 주변의 마나 안정도를 기준으로 나눈 여섯 단계 중 최하 등급 6.
D등급 던전이라면 설사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도 피해가 전혀 없는 수준이다.
이런 걸 공략하는 건 인력 낭비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전했다.
‘방이동 던전요? 그거 확인해 보니까 겨우 D급 던전이던데요.’
유지은은 요지부동이었다.
‘진짜 느낌이 안 좋다니까.’
유지은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꼭 말해 주고 싶다.
차라리 몰래 들어가서 던전 공략을 해 버리지 그랬냐고.
맨날 내 말은 귓등으로 듣는 시늉도 안 하는 사람이 왜 얌전히 내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을까.
그냥… 그냥 공략해 버리면 좋았잖아.
그랬더라면…….
“…….”
눈을 번쩍 떴다.
창밖을 보았다. 이제 막 해가 뜨고 있다.
꿈에 유지은이 나오다니. 개꿈도 이런 개꿈이 따로 없다.
아저씨가 꿈에 유명인이 나오면 복권을 사야 한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자기가 꿈에 나오면 꼭 복권을 사라고 했다.
…유지은도 나름 유명인이긴 했다. 복권 사야 하나? 아니면 그만큼 좋은 일이 생기려나?
하지만 유지은이 나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리가 없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발목에 있는 마력제어구를 풀었다. 여기 오고 난 뒤로 하도 풀어 댔더니 이제 눈 감고도 풀 수 있다.
마력 시계를 보려던 건 아니다. 그냥….
마력 패턴을 인식시켜 지갑을 열었다. 그대로 뒤집어서 손바닥 위로 툭툭 쳤다.
원래는 비상용 포션을 잔뜩 들고 다녔었는데, 그건 오기 직전에 유지은에게 써서 이제 하나도 없다.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것은 먼지 몇 톨과 내 헌터 라이센스. 그리고 작은 쇳조각.
홍석영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인식표.
“에이씨.”
이게 다 유지은 때문이다. 하필 그때 꿈을 꿔서는.
지갑을 넣고 마력제어구를 주웠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떴다. 곧 아이들의 등교 시간이 된다.
출근이나 하자.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일하는 게 최고다.
* * *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방이동 던전에 들어간다고 떠난 홍석영은 나흘째 돌아오지 않는 중이었다. 그 던전이 볼 게 많은 곳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홍석영도 없고, 빨리 룬을 그리라며 닦달하는 이미선도 없고, 무알코올 칵테일을 만들어 주던 바텐더… 아니, 다선의 헌터도 없으니 어쩌겠는가.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걔네가 즐거운지 안 즐거운지는 알 바 아니다.
어제부터는 내가 애들이랑 뒹구는 게 재밌어 보였는지 김채민이 최진우와 박서현도 내게 보냈다. 솔직히 그 둘은 하기 싫어하는 눈치긴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김채민은 어린 마법사들의 등을 떠밀었다.
‘마법사는 스태프로 두들겨 패는 방법은 몰라도 도망치는 방법은 알아야 해!’
맞는 말이긴 했다. 던전 안에서 다른 헌터들이 항상 마법사들을 지켜 줄 순 없었다. 마법사들도 혼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본부장도 옛날에 말한 적이 있었다.
‘애들은 이렇게 흙도 파 먹고 해야 면역력이 좋아져.’
…이게 아닌가?
“자, 다 쉬었지? 시작할까?”
“선생님, 저희가 잘못했어요.”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뻗어 있던 이승연이 손만 번쩍 들며 말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은 구석이 없다.
“잘못? 뭘 잘못했는데?”
“모르겠지만 잘못했어요.”
그 옆에 누워 있던 순순진이 음침하게 중얼거렸다.
“순간의 상품에 눈이 멀어 선생님의 목을 노린 죄….”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 헌터를 하지.”
“헌터 하기 전에 죽게 생겼는데요.”
서한성마저 동조했다.
나는 기가 막힌 얼굴로 아이들을 보았다.
“내가 너흴 죽이겠어?”
이래 봬도 부상 하나 없게 힘 조절 잘하고 있다. 멍이야 좀 들었지만, 뼈를 부러뜨리지도 않았고. 내가 짜증이 나는 건 홍석영이지 애들이 아니잖은가. 괜히 화풀이할 순 없지.
“심적으로는 이미 죽었는데요.”
“벌써부터 약한 소리를 해? 교장 선생님과 할 때는 안 그랬잖아?”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쉴 틈 없이 굴리지 않았다고요.”
드디어 나와 말문을 튼 마지막 시범고 학생, 한은영이 투덜거렸다. 새침한 인상답게 새침하게 굴었지만 역시 몸의 대화가 최고다. 아깐 내 공격을 막으며 욕도 했다.
이상하게 애들이 경계심이 높다. 그동안 자기들끼리만 있어서 그런가? 서한성이야 겪은 일이 있으니 이해한다마는, 나머지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래도 슬슬 나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친해지기 힘들어서 언제 얘넬 키우나.
그나마 법사들은 좀 다르겠지. 내가 그렇게 칭찬을 많이 해 줬는데.
나는 박서현과 최진우를 확인했다.
“…….”
“…….”
미세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이 아니었다면 죽은 줄 알았을 거다.
“어, 얘들아. 물 마실래?”
흙과 한 몸이 된 친구들이 안쓰러웠는지 유혜은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끙끙거리며 다가왔다.
힐러인 유혜은은 다른 애들처럼 굴릴 수 없다. 같은 각성자라고 해도 힐러는 육체적으로 연약한 편이다. 일반인보다야 튼튼하지만 근접 딜러들을 훈련 시키는 것처럼 할 순 없다. 결국 유혜은만 열외가 되어 김채민에게 마력 운용 수업이나 듣게 했다. 그게 친구들에게 미안했던 모양이지만.
아이들은 좀비처럼 깨어나 유혜은이 들고 온 아이스박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조금 양심이….
아프기는커녕 일어날 힘이 남았다는 점에 눈을 찌푸렸다.
아직 기력이 남았어? 더 세게 굴려도 되겠군.
부르릉.
“……?”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잡혀 좀비 떼들에게서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택시 한 대가 저 멀리서 오고 있다.
“어?”
꽝꽝 얼린 얼음물을 머리와 목에 들이붓던 아이들도 자동차 소리를 들었는지 하나둘 고개를 쭉 내밀었다.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던 김채민도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김채민의 스포츠카에서 이미선의 SUV, 이젠 택시라니. 어쩐지 점점 급이 낮아지고 있다.
홍석영과 이미선이라면 택시를 타고 오지 않을 거다.
그럼 누구지? 어지간해선 여기까지 오려는 민간인은 없을 텐데. 시범고가 있다곤 해도 여긴 관리하는 길드도 없이 버려진 던전과 워낙 가깝다 보니.
택시는 시범고 입구에 멈췄다. 조금 기다리니 뒷좌석 문이 열리고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 하나가 내렸다. 뒤돌아서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교복은 숙소가 있는 마을에서 본 적이 있었다. 유일하게 하나 있는 중학교였던가.
“내가 학생이라서 여기까지 와 준 거야!”
열린 창문으로 운전기사의 성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안 와! 알겠어?”
“가, 감사합니다….”
“나 참, 여기까지 무슨 볼일이 있다고. 학교고 나발이고.”
여자아이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 댔다. 별로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택시비로는 과한 돈으로 보이는 만 원짜리 지폐 뭉치를 창문 안으로 건네주고 나서야 짜증 내는 목소리가 멈췄다.
여자아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택시를 바라보는 모습이 처량 맞다.
김채민과 눈이 마주쳤다. 중학생이든 뭐든 방문객은 방문객이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나 싶어 다가가려던 찰나.
“너!”
아이스박스를 내팽개친 유혜은이 그 중학생을 향해 달려갔다.
“너 여기 왜 왔어!”
“언니!”
여자아이는 반가운 목소리로 외치며 유혜은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
“학교는?”
“조퇴했어!”
“뭘 웃고 있어! 어유, 내가 못 살아. 너 학교에서 누구 때렸어?”
“아아아, 내가 맨날 누구 때리고 다니는 줄 알아?”
“그럼 왜 왔어?”
유혜은은 양손으로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아이의 볼을 마구 뭉갰다. 그러나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유혜은이 동생을 붙잡고 다가오자 더 확신이 들었다.
“당연히 언니 보고 싶어서 왔지!”
“유지은. 언니 화내기 전에 사실대로 말해.”
“아아니, 그치만 진짠데. 학교에서도 얼른 언니 보러 가라고 했단 말야.”
오래전, 시범고 교복을 입은 소녀와 인사한 적이 있었다.
‘…얘가 선생님 아들이라고요?’
‘응. 희재야, 이 누나는 아저씨 제자야. 인사해.’
‘…….’
웃음기 하나 없는 파리한 안색. 형형히 빛나던 두 눈. 다가가기 힘든 우울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래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희미하게 웃었다.
‘안녕. 난 유지은이야.’
“왜? 진짜 사고 친 거 아냐? 설마 또 교무실 창문 깼어?”
“아니라고!!”
“내가 못 살아, 진짜…. 선생님! 죄송해요. 얜 제 여동생인데…. 유지은! 얼른 인사해. 접때 말했지? 새로 오신 선생님 계시다고.”
앳된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넌 살아라.’
그 위로 피를 토하던 얼굴이 겹친다.
“안녕하세요!”
저렇게… 웃을 수도 있었던 여자였구나.
“울 언니 동생 유지은이라고 합니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했더니, 이거네.
역시 그거 개꿈이 맞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