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61)
대책 회의(3)
“예?!”
한태경은 말 그대로 펄쩍 뛰었다. 내 말이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난 누가 던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고맙다고 하고 넙죽 받아들일 텐데.
하지만 한태경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억울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이래서 내가 헌터가 적성에 안 맞는다니까. 저게 진짜 헌터의 반응이겠지.
“저도 데려가세요!!”
한태경이 벌떡 일어났다. 연약한 캠핑 의자가 밀려 넘어졌다.
“저도 데려가라고요!!!!”
“아니….”
“왜 저만 외롭게 버려두는 겁니까!!”
“버리는 게 아니라 역할 분담을 하는 거죠.”
“김 선생님 오자마자 저 버렸잖습니까!”
도대체 버리긴 뭘 버렸다는 거야. 나는 어이가 없어 한태경을 보았다.
아, 저놈의 선글라스. 눈이 안 보이니 한태경이 진심으로 저러고 있는 건지, 그냥 장난치고 있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눈은 보기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나는 홍석영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저렇게 공략에 열의를 가진 헌터를 무시하진 않겠지만 이건 보통 상황이 아니잖은가.
아까 한태경을 던전에 들여보낸다느니 마느니 얘기를 했던 건 그냥 대응책을 논의했던 거지, 한태경보고 던전에 들어가라고 허락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걸 좋은 말로 다시 한번 설명했는데, 한태경은 얌전히 받아들이기는커녕 더욱 격렬하게 저항했다.
“아니죠! 그 흐름대로라면 제가 던전에 들어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던전에 들어가겠다는 말이 진심이긴 했구나. 아니, 그 난리를 쳤는데 한태경이 장난을 쳤다는 말이 아니라….
…….
됐다.
피곤해졌다.
“저도 들어갈래요!!”
그래도 김채민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논리적으로 자기 의견을 피력하던 한태경은 이제 그냥 떼를 쓰고 있었다.
진심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장난 같고,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진심이 담겨 있다.
한태경의 말을 무시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내가 멍청하게 느껴진다.
나이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지금 진짜… 뭐 하자는 거지?
“아까도 말했었지만 위험하다니까요.”
그래도 몬스터도 아닌데 폭력을 쓸 순 없지. 나는 문명인이다.
“그럼 다른 사람한테는 안 위험합니까!”
그렇다면 한태경은….
한태경은… 뭘까?
“김 선생님이 계시니까….”
“김 선생님이 계시니까 저도 괜찮은 거 아닙니까! 정 아니면 계속 말하고 있었던 대로 게이트로 바로 나오면 되니까요!”
“그게 불가능한 상황도 있을 수 있잖습니까.”
“김 선생님이 계시는데도요? 대마법사잖습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그래, 자기만 안전한 곳에 남아 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지.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다.
그게 아니면 자기만 빠져서 미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것조차 아니라면 그냥 자길 따돌린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것까지도 전부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말로 달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차라리 아까 전처럼 자기가 꼭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라도 한다면 모를까, 이건 정말로… 어린애가 자기 마음대로 해 주지 않는다고 바닥에 드러눕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심지어 그런 애들마저도 붙잡고 잘 설명하면 알아듣는다.
“저기, 한 선생님.”
내가 기분이 좋지 못하다는 걸 눈치챈 김채민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는 나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던전에 꼭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네?”
“던전에 엄청나게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김채민이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 이유가 있나 싶어서요.”
“…….”
한태경은 갑작스럽게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칭얼거리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 변화가 너무 극명해서 차오르던 짜증도 모두 사라졌다. 한태경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다가 앞으로 숙였다가 뒤로 젖히는 등 목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손목도 풀고 목덜미도 주무르다가 활짝 웃었다.
“잘 다녀오십쇼!”
뭔데, 진짜.
* * *
“흥, 흐흐흥, 흐응.”
한태경이 고장 났다.
아니, 원래부터 다소… 독특한 성격이긴 했으니 저걸 고장 났다고 표현하는 건 실례일 수도 있다.
한태경은 평소의 한태경으로 돌아왔다.
한태경은 모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혹시 이틀이 지나도 안 나오면 이 헌터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틀까지 걸릴 것 같지는 않지만.”
“모르는 일이잖습니까!”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한태경을 보았다. 나뿐만이 아니다. 홍석영과 김채민마저 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한태경에게 그걸 알 정도의 눈치는….
“아! 공략 실패할 거라고 하는 말은 아니고요!”
…없는 모양이다.
“무사히 나오는 게 제일이지요. 파이팅입니다!”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 눈치만 살피다가 그냥 던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던전에 들어가면 뭐라도 얘기할 수 있겠지 싶어서.
아니, 사실 얘기할 틈이 생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잠시만요!”
김채민은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 골렘과 진흙에 대비한 방어 마법을 몇 차례 둘렀다.
갑작스럽게 불려 오긴 했지만, 김채민은 능숙하게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방어 마법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옷도 움직이기 쉬운 것으로 갈아입었고, 간단한 방어구도 걸쳤다.
“게이트 통과할 때 마법이 깨지지 않습니까?”
“그 정도는 계산했어요! 제가 그렇게 멍청한 마법사처럼 보여요?”
혹시 몰라서 김채민에게 묻자 자신만만한 미소만 돌아온다.
이래서 대마법사 몸값이 비싼 건가. 아니, 뭐. 능력 좋은 마법사는 어디서든 모셔 가려고 하지만. 룬이 상용화되고 나서도 마법사의 존재가 여전히 공략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아, 그래도. 으으음….”
잠시 팔짱을 낀 채 고민하던 김채민은 가방에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안을 더듬으며 뒤적거리던 김채민은 나무를 대충 깎아 만든 스태프를 꺼냈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 보조 도구다.
보통 스태프에는 마력석을 주렁주렁 박아 놓기 마련인데, 김채민이 꺼낸 것에는 마력석이 보이지 않았다. 꽤 오랜 세월을 사용했는지 손이 닿는 부분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었다.
마법사의 개인 장비에 대해 묻는 건 실례다. 나는 김채민이 쥐고 있는 스태프에서 눈을 뗐다. 저 주위만 마력이 기묘할 정도로 없다. 필시 평범한 물건은 아니다. 연식이 있어 보이는 걸 보면 김채민의 물건이 아니라 조부에게서 물려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진짜 됐어요! 들어가요!”
이건 공식적인 던전 진입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의 절차는 생략된다.
“저 따라서 바로 들어와야 해요.”
선두는 김채민, 중간은 나, 마지막이 홍석영.
우리는 던전에 두 번째로 진입했다.
“…어라?”
게이트를 넘기 전 한태경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무언가가 나를 훅 끌어당겼다.
* * *
중력이 없다.
빛이 없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 감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를 정도로 어두운 공간에 갇힌 것은 박서현의 그림자 이후로 처음이다.
그만한 경험을 다시 체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다.
손끝부터 감각을 확인했다. 이상은 없다. 사지는 멀쩡히 움직인다. 정신 마법에 걸린 것도 아니고, 쥐고 있는 검도 그대로. 입고 있는 방어구도 그대로.
게이트에 통과한 건 기억난다.
…한태경이 이상한 소리를 냈던 것도.
“…….”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뭘 할 수가 없다. 몸이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긴 하지만 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것도 못 하겠지.
품속에서 펜 하나와 종이를 꺼냈다. 놓치면 다시 주울 수 없다. 손가락의 감각을 더듬어 익숙한 룬을 그려 낸다. 세상에는 다양한 환경의 던전이 있다. 빛에 의존해서 룬을 그리는 건 미숙한 헌터나 하는 짓.
완성한 룬을 활성화하자 결코 밝다고는 할 수 없는 푸른색 빛이 반짝거린다.
룬을 들어 주위를 비추었다.
달라지는 건 없다. 여전히 어둡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있다.
느리게 꿀렁거리는… 무언가. 무언가? 아니다. 저건 진흙이다. 나는 진흙 속에 있었다.
하.
저도 모르게 혀를 차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 내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소리를 내는 실수를 저지를 순 없다.
하지만… 이건 그 요정이 벌인 짓이겠지.
기껏해야 게이트를 넘어오는 타이밍을 노려 공격할 거라고 예상했지, 설마하니 게이트를 진흙 속에 담가 버릴 줄은 몰랐다.
뭐, 확실한 방법이긴 하다. 김채민의 마법이 없었더라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거다.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얇은 막을 손바닥으로 매만졌다. 꿈틀, 어느덧 익숙해진 김채민의 마력이 느껴졌다. 생명력이 넘치는 걸 보아하니 김채민도 무사하다. 아까 뭘 그렇게 덕지덕지 시전하나 했는데… 대마법사의 감이란.
단순한 실드를 넘어 훨씬 고차원적인 방어 마법이다. 덧대어진 마법만 얼추 다섯 개가 넘는다. 폐쇄된 공간에 갇힐 것을 대비한 산소 공급, 추락을 대비한 부유…. 아마 일행이 떨어질 것을 대비한 통신 마법도 있을 것 같은데.
[아, 아아. 들려요?>역시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찾아온다더니 머릿속에 김채민의 목소리가 울렸다.
[와. 혹시나 대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알겠어요? 두 사람 다 나가면 나한테 맛있는 거 사 줘야 해요.>맛있는 거? 목숨값에 비하면 지나치게 싸다.
[이런 미친 요정이 있다고는 말 안 했잖아요…. 아닌가? 진흙 쓰나미를 일으키는 놈이라면 제정신이 아니긴 하지. 어쨌든 위치는 파악했어요. 제가 끌어당길 거니까 놀라지 마세요.>천천히 막이 움직인다. 둥실, 둥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긴장을 놓진 못했지만 어쩐지 우스웠다. 진흙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즐겁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스릴에 중독되어 위험한 던전만 찾아다니는 헌터도 있다고 들었는데. 처음으로 그치들이 이해되었다.
[…이, 간섭. 마, 끊겨서… 곤란한, 아니, 그, 요!>조잘조잘 떠들던 김채민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뚝 끊겨서 들려왔다.
간섭?
이 진흙 속에서 김채민이 공격당하거나 마법이 해체되면….
…인식표가 질식사도 막아 줄까?
직접적인 대미지가 아니니 안 될 것 같은데.
톡.
김채민의 목소리가 끊겨도 다행히 나를 둘러싼 막은 둥실둥실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 무사히 합류만 할 수 있으면 된다.
톡. 톡.
하지만 던전 내부가 이 꼴이어서는 게이트를 찾는 것부터가 일인데. 홍석영이 말해 준 세이렌 던전도 바다가 이곳저곳 옮겨 다니긴 했지만, 게이트가 잠긴다는 말은 없었다고.
톡.
홍석영의 말이 옳다. 도대체 이 시대의 한국 헌터 수준이 어떻게 되어 버린….
톡톡톡톡톡.
“…….”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
고개를 들었다.
톡톡. 톡.
진흙 속에 떠 있는 황금색 눈과 마주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