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Save the World and Retire RAW novel - Chapter (262)
타티(1)
이름 모를 하얀 꽃이 진흙 위로 나풀나풀 떨어진다.
달걀처럼 둥근 꽃잎은 안쪽으로 말려 있다. 진흙 하나 묻지 않은 하얀 꽃은 연꽃과 흡사하게 생겼으나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꽃도 아닌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던전이었다.
던전.
그리고 저 꽃은 연꽃처럼 물 위에서 피어나지 않았다. 위에서 떨어졌을 뿐이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팔에 난 자상을 붙잡고 씨근덕거리는 몬스터가 보였다. 황금색 눈이 눈물을 뚝뚝 떨구다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공격하려던 게 거짓말 같다.
어쨌든 당장 공격을 재개할 의사는 없어 보였다. 괜히 자극하지 않으려고 두 손을 들어 자신 또한 공격할 마음이 없다는 뜻을 내보였다. 이런 인간의 제스처를 알아들을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몬스터는 살짝 경계만 할 뿐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울음을 그치고 이쪽이 뭘 하는지 궁금하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중에 떠 있는 몬스터가 자세를 바꾸자 머리에서 하얀 꽃이 떨어졌다. 연꽃처럼 보이는 작은 꽃은 요정 아래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던전은 처음 들어왔을 때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빽빽하던 나무는 진흙에 잠겨 끄트머리만 겨우 보였다.
침을 꿀꺽 삼켰다. 진흙에 빠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멀쩡히 살아 있다.
더듬거리며 바닥을 확인하자 부드럽고 매끄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몬스터에게서 눈을 떼는 것이 망설여지긴 했지만, 확인은 해야 했다. 천천히 고개를 내려 바닥을 보았다.
아니, 이건 바닥이 아니다.
바닥이라고 할 수 없다.
커다란 나뭇잎 한 장. 방금 저 하얀 꽃을 보고 연꽃을 떠올려서 그런지 연잎이 떠오르는 생김새였다.
물론 평범한 연잎이라면 성인 남성 하나를 위에 올린 채 물 위에 떠 있지 못한다.
슬쩍 손끝으로 잎을 꾹 눌렀다. 푹 들어갔다가 다시 떠오른다. 이 잎이 진흙 위에 떠 있고, 자신의 몸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은 마법사가 아니다. 그러니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몬스터는 이제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쪽에게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은근슬쩍 거리가 가까워져 있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주춤주춤 양손을 들어 올렸다. 이 제스처가 공격할 마음이 없다고 표현하는 걸 그새 배우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배웠다.
맑은 황금색 눈은 그간 보아 왔던 몬스터와는 다르다. 본능이 앞서는 짐승과는 달리, 지성이 있는 생명체의 눈.
[%&(_##*>조금 전에는 고통스럽게 들렸던 목소리가 마치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나긋하게 바뀌었다.
셀 수도 없는 수많은 별이 박혀 있는 하늘, 진흙이 가득한 땅, 그 위를 떠다니는 작고 하얀 꽃과 커다란 연잎.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몽환적인 광경이다. 동생들에게 보여 주던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하다.
[@~#(#+@$*^>몬스터는 점점 다가왔다. 만약 공격할 거라면 진작 하고도 남았을 거고, 죽일 생각이었다면 연잎을 띄우는 수고를 하는 대신 그냥 진흙 속에 빠뜨렸을 거다.
몬스터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다음에야 멈췄다. 몬스터는 끈질기게 입을 열었다.
[$^&&&!%#> [_^*@(*_$%(@!>“…….”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몬스터는 답답하다는 듯 팔을 버둥거리다가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 몬스터라고 해서 바디랭귀지가 다르진 않다. 인간과 신체 구조가 동일한가? 몬스터도 화병에 걸릴 수 있나?
[)^&^%$#>그걸 보고 있으려니 몬스터가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몬스터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건 다른 이야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몬스터는 점점 어린아이처럼 볼을 부풀렸다. 그 얼굴을 보니 어쩐지 연구소에 있을 동생이 겹쳐 보였다. 그 애들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저렇게 굴곤 했는데.
…그 애들이 무사한지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순 없다.
결국 이쪽도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안녕.”
[*#^@#!@%!#)($$(#$&>여전히 의미를 알 순 없지만 표정으로 대충 어떤 말을 하는지 느낌이 왔다. 머리에서 꽃이 퐁퐁 피어올랐다. 하얀색이던 꽃이 연한 분홍빛을 띠기 시작했다.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건가.
몬스터는 환한 얼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빠르게 지저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깨달았는지 시무룩하게 변했다. 분홍빛 꽃이 시들시들해졌다. 다시 초록색 잎사귀만 무성하게 남은 머리카락을 살피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설마설마했지만, 이걸로 분명해졌다.
지금 이 몬스터는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게 정말 몬스터인가?
상대의 몸짓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눈치채고 그걸 자기가 시도할 만큼 지능이 있다. 아니, 단순히 지능이 있다고 치부할 순 없다. 다치면 아파하고, 그에 화를 내다가, 그 분노를 삼키고 화해의 제스처를 건넬 만큼의 감성과 공감도 함께 지녔다.
…이건, 몬스터인가?
말을 알아들을 순 없지만 저게 일종의 언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그냥 몬스터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던전에 대한 음모론은 많다. 그중에는 몬스터가 외계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설도 있었다. 그간 보아 왔던 몬스터는 짐승에 불과했지만 이런 이라면 다른 종족이라는 말을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고민은 길었고, 망설임은 짧았다.
천천히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우, 희, 재.”
또박또박 이름을 반복하다가 상대를 가리켰다.
알아듣지 못하고 눈만 깜빡거리던 이는 다시 자신을 가리켜 이름을 말하고, 상대를 가리키기를 반복하자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_@&=>상대를 가리키자 지저귐이 돌아온다.
다시 나를 가리켜 이름을 말하고, 상대를 가리켰다.
[)#*#$#$!_@&=>알아들을 순 없지만 똑같은 음절이 반복된다.
입 안에서 굴려 보았지만 따라 할 수 없는 소리다. 난감한 얼굴로 손을 내리자 이번엔 상대가 나를 가리켰다.
[$&)#… 재.>어설프긴 하지만 비슷한 소리가 났다. 따라 할 수 있도록 천천히 이름을 한 음절씩 끊어 말했다.
[…재, %#$, 재, 우.>“우.”
[우.>“희.”
[히.>“재.”
[재.>“우희재.”
[우… 히, 재.>“…그 정도면 됐지. 희재.”
[히재?>“응. 희재.”
[))%))))))))>높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상대는 분홍색 꽃을 떨어뜨리다가 자기 가슴을 콩콩 쳤다.
[희재. )#*#$#$!_@&=>여전히 따라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발음이다…. 그러나 그걸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대충이나마 어떻게든 흉내 내 보려고 했다.
[)))))))))))>다행히 상대는 내 사정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다시금 깔깔 웃음을 터뜨리더니 천천히 말했다.
[*#*^^… )#*#$#$!_@&=)#*#$#$!타티.>“……?”
[타티.>“…….”
[타티.>내가 바로 알아듣지 못하자 상대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중간중간 그 발음할 수 없는 소리가 섞였지만 그건 금방 없어졌다. 상대는 자길 가리키며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말했다.
[타티.>“…타티?”
[타티! 히재, 타티. 히재, 타티.>“타티.”
[))))))))))>타티라는 이름의 몬스터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인간이라면 손톱이 있을 자리에 달린 꽃이 흔들렸다.
그때마다 던전을 채우고 있던 진흙의 수위가 낮아졌다. 진흙이 사라지고 던전이 처음 보았던 풍경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진흙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깨끗한 나무들. 나는 내 옆에 떨어져 있는 검을 보았다. 내가 검을 놓쳤던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몬스터를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무방비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이 던전 안에 있는 다른 몬스터는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저것을 죽이고 던전을 빠져나가면…….
[히재?>“…….”
나는 검을 줍지 않았다.
대신 손을 내밀었다.
[히재? 히재?>“이렇게….”
나는 내 손을 맞잡아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타티는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인간과 다름없이… 작고 보드랍고, 따뜻한 손이었다.
* * *
진흙 속의 황금색 눈은 섬뜩하리만치 비인간적으로 빛났다.
검을 쥐었다.
황금색 눈이 일그러진다.
[$(^#%(*@*@@%$>“큭…!”
머리를 파고드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곤란하다. 고막이 나가거나 하는 충격은 없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이러면 행동이 굼떠진다. 한순간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까득….
놈은 김채민이 만든 실드를 손으로 잡았다. 실드를 깨기 위해 손톱을 세웠지만 대마법사의 마법은 그런 충격으로 깨지지 않는다.
결국 놈은 손으로 마법을 부수는 건 포기했다. 진흙에 파묻혀 있어서 동동 떠다니는 황금색 눈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놈이 열받은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쿠르릉!
진흙이 크게 일렁거린다. 김채민의 보호 마법이 흔들린다. 그래도 여전히 마법은 견고하게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만….
쿠구구궁…….
무언가가 나를 위로 밀어 올렸다. 김채민의 마법까지도. 놈은 막에 매달려 따라왔다.
“……큭!”
그대로 진흙 위로 빠져나왔다. 마법으로 충격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긴 하지만 영향을 안 받을 순 없었다.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겨우 균형을 잡았다.
던전 특유의 별이 가득한 하늘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놈이 뭘 사용해서 나를 들어 올린 건가 싶어서 바닥을 보았다. 진흙이 덮여 있어 알아보기가 힘들었지만… 뭔가, 거대한 이파리 같은 게 있다. 식물? 김채민과 비슷한 능력을 쓰는 건가. 김채민과 상성이 좋을지 나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나는 여전히 막에 매달려 있는 요정을 보았다. 진흙이 뚝뚝 흘러내린다. 머리에 삐죽 솟은 가시에도 진흙이 매달려 있다. 인간형 몬스터는커녕 그냥 진흙 괴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놈은 가만히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진흙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법을 깨트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자기 힘으로는 무리라는 걸 알아서 그런가?
하지만 이 안에 있으면 나도 손을 쓰긴 힘들다. 이대로 김채민을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놈에게서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놈을 뒤덮고 있는 진흙이 한순간 말라붙었다가 껍질처럼 떨어졌다.
진흙 속에는 작고 마른 형태의 몸이 있었다. 인간 같지 않은 몸의 다른 부분을 제외하고 판단한다면… 그래. 왜 굳이 요정이라고 불렀는지는 알겠다. 비록 날개는 없었지만.
놈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방심할 순 없다. 김채민의 마법이 무적은 아니다. 마법이 부서진다면… 다른 건 몰라도 눈앞의 놈만큼은 확실하게 목을 날려야 한다.
[$(^&!#$^>놈은 내가 쥐고 있는 검을 보았다. 그간 이 안에서 잡아먹은 헌터가 얼마나 될까. 정식으로 진입한 공략대 중 실종되었다는 헌터는 없었지만 혹시 또 모르지…. 방주와 관련되어 있다면.
[그, 거.>“……!”
처음으로 놈은 인간과 비슷한 소리를 냈다.
무려 한국어로 들리는 말. 단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
[그거.>놈은 내 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어디서, 났, 어?>오